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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동문칼럼] 30 년이란 세월

이중우
2006.12.05 20:14 939 2

본문

  어언 만 30 년이 되어 가는군요.

전에 오신 선배님들도 계시겠지만, 공식적이고,대외적으로, "인하 동문회"
를 공표 한지가 ( 1976년 12 월 8 일 ), 세계적인 대 도시인 New York의
중심부인 Mahattan에서  처음으로 태동을 하였읍니다.

  처음에는 " 인하 공과 대학 New York 동문회"로 발족 하여, 8명의 동문들이
모여 처음으로, 신문 지상을 통하게 되었읍니다.

  저보다 선배분들께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거명 하시는 분들의 존칭 문제로,
저보다 선배분들께 " 님" 자를 붙이겠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1976년 11월 중순경에 이곳의 한국 계통의 신문 "한국일보"에 " 인하 공과대학
동문회 발기식"을 광고를 하게 되었으며, 허련 선배님(56 전기) (작고), 김광성 선배님(61 기계)( 작고),최상룡 선배님(61 기계),이무성 선배님(61 화공), 장계인 선배님(62 기계), 박용관 동문(65 기계), 들께서 미리 맟나시고, 홍수철 선베님( 63 기계)
이중우(64 화공) 두분은 신문 지상을 보고, 참석 하여 8 명이 " 인하 공과 대학
New York 지부"를 결성 하게 되었읍니다.

  장소는 Mahattan의 한인 중심 32가에 있던 " 서울 하우수"에 제가 도착을 하니
김광성 선배님,최상룡 선배님,이무성 선배님, 장계인 선배님,박용관 선배님,( 당시는 졸업 년도 기준), 이렇게 5분이 담소를 하고들 계셨고, 후에 허련 선배님, 홍수철 선배님들이 참석 하시어, 집행부 임원 선출을 했읍니다.

   회      장 ;  허   련   ( 3 회 전기과)

   부  회 장 ;  김 광 성 ( 9 회 기계과)

   총     무 ;  박 용 관  ( 12 회 기계과)

  또한 정관도 마련하여,희희 락락한 모임을 갖고, 허련 선배님과, 홍수철 선배님은
댁으로 가시고, 나머지 6명이 당시 Whitestone에 집을 갖이고 계신 이무성 선배님댁으로, 새벽 2시까지 독쟁이 진흙밭, 기숙사 풍경, 인경호등,옛 추억으로 담소를
나누다 보니,이무성 선배님댁의 비상 식량 라면도 동이 났지요.

  저는 그날 부터 최상룡 선배님이 지어 주신 "막내"로 지내게 되고, 당시 자동차
정비를 하셨던, 김광성 선배님 shop에 수시로 모임을 갖고, 동문애를 돈독히 하던중, 1977년 여름에 최상룡 선배님은 Ohio 주로 이사를 하였읍니다.

  당시 허련 선배님은 야채 가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계시며,New York 한인회
부회장을 겸직 하게 되어, 자연히 부회장 이신 김광성 선배님과 총무를 맡으신
박용관 선배님께서 주관 하셨읍니다.

  1977년도에 11월에 모임 광고를 내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인원은 보충이 안되고,
또한 최상룡 선배님도 Ohio로 이주 하시는 바람에, 아에 장소를 김광성 선배님댁
으로 옮기게 되었읍니다.

  김광성 선배님의 정비소가 한인 밀집 지역에서 벗어나 있어, 동문들의 규합이
여위치 안했고, 당시 한인의 인구수도 대략 2 - 3 만 정도 이었으니........

  또 모교의 1회 선배님들을 배출후, 18년만에 결성을 했으니......

  1979년도 (?) 에는 장계인 선배님께서 일본으로 2년간 가 계신 관계와 박용관 동문의 Dover, New Jersey 회사로 전근을 하시고, 홍수철 선배님은 인수를 한
Grocery shop 관계로, 자연히 모임이 축소가 되었읍니다.

  1980년에 최상룡 선배님이 다시 New York으로 오시고, 다음해에 장계인 선배님
도 돌아 오셔서, 다시 모임을 자주 갖게 되었읍니다.

   1976년도 참석 동문분들의 근황은

    허련 선배님과 김광성 선배님께서는 저희들 곁을 떠나시고,
   최상룡 선배님은 Verginia로 이주 하시어,Washington DC 지부에서 활동 하시고,
   홍수철 선배님은 Texas에서 Mini Market을 운영 하시며, 박용관 동문은
   Seattle 근처의 Hewlett Packard 에서 근무를 하시며,  지금 뉴욕 지부에는
   이무성 선배님, 장계인 선배님, 그리고 제가  있읍니다.

  1982년도에 조남규 선배님, 고기주 동문,곽영환 동문,조병원 동문,방일수 동문등
일일히 나열 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 동문분들이 종합 대학인 " 인하대학교 뉴욕 지부 발기"를 다시 하시게 되었고, 당시 그분들은 기존의 동문회를 모르고들 계셨읍니다.  

  당시 "인하 공과대학" 부회장직을 갖이고 계셨던 김광성 선배님은 기존의 동문회
존재 확인도 안했다고 하여, 종합대학 "인하대학교 동문회" 발대식에 참석을 거부도 했었지요.

  1982년도와 1983년도에는 주로 곽영환 동문의 사무실에서,행사의 규모와 계획을
마련들 했으며, 이병현 선배님(4회 전기과)께서도 함께하는 동문회 이었읍니다.


  1988년도에 '박명근 동문"이 뉴욕의 동문회에 참석으로 동문회가 모교와 같이 호흡을 맟추는 계기가 되었읍니다.

그동안의 집행부 임원진이나, 연중 행사 관계는 About US에 참작들 하시고,
1993년도의 집행부의 예산을 $14,000 을 넘는 집행도 했읍니다.

  거액의 돈을 기부 받은것이 아니고, 십시 일반인 $ 40 - 500 로 채워 나아갔고,
1993년도 까지는 대개 약력이 about US에 있지만, 1994년 부터의 약력이.......

  30년이라는 지나간 세월은 생각지 안하고, 항상 젊다고 생각 하는 저 자신은
참 행복 합니다.
  그것은 선배님들의 따뜻한 정겨움과,후배분들의 "형님" 이라는 단어와 함께
동행 하여 주셔서,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이제는 제가 도울길을 모색 하여야
하는데, 시기를 맟추려고, 준비는 하지만 서도........

  저는 생각 합니다.  
동문 여러분들의 동참과 선배님들의 내리 사랑, 후배님들의 존경심의 발로가       
 오늘을 있게 했으며,  최상룡 형님 앞에서는 아직도 막내 입니다.
  
   우리 "인하"의 앞은 광활 하다고,믿고, 또한 믿어야만 됩니다.

댓글목록 2

유대곤님의 댓글

유대곤 2007.01.14 08:16
  2004년 봄 ..선배님께서 우리 연수생들 많이 보살펴 주셨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연어구이도 직접사다가 먹이시고.....야유회도 여러번 베풀어 주셨었죠...<br />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간 오겠죠?.................<br />
정말 존경합니다. 선배님.<br />
건강하세요...<br />
<br />
- 98�39; 컴공 유대곤 올림 -

장용석님의 댓글

장용석 2006.12.11 00:38
  재미인하동문회의 역사를 정리해 주신 이중우 선배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 동안의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br />
동문회든 어떤 단체든, 몇 번 나왔다가 사라져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러나 한결같이 동문들을 <br />
사랑하시고 그 모임을 지켜오신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지금의 인하동문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br />
매년 12월 8일은 재미인하동문회 창립일로 지켜야 할 것 같네요. <br />
정리해 주신 역사를 보면서 박용관선배님과 같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 증인 계신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br />
그리고 또 한분의 �39;산 증인�39;, 박명준 선배님께서 마치 창립일을 축하하기 위함인 듯 동부를 �39;제 때�39; 방문하셨네요.<br />
좋은 여행이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