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74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임동섭의종교칼럼] 껍질로 사는 나무!

임동섭
2007.06.28 23:20 1,683 0

본문

        옛날 어느 고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책 읽는 것이 일과여서 세상물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힘들여 짠 베 한 필을 주며 장에서 팔아 쌀과 북어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길을 나섰으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장사하는 일을 굉장히 천히 여겼기 때문에 양반체면에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선비가 고갯마루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상냥하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저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입니다. 제게 베를 맡기시면 제가 대신 팔겠습니다.” “그렇지만 쌀과 북어도 사야 하는데 …”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해결하지요.” 선비에게 베를 건네받은 젊은이는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젊은이가 도둑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선비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자, 선비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낮에 있었던 일을 들은 아내가 말하였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지, 그놈은 도둑이에요.” “나 대신 고생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게 아니오, 다음 장날에는 꼭 팔아다 줄 것이오.”
        다음 장날이 되어 선비는 그 고개에서 젊은이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비는 장날마다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도둑은 고개를 지나다가 선비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둑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돌아가 베를 판 돈 만큼 쌀과 북어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선비를 도둑은 몰래 따라갔습니다.
        “허허, 그 젊은이, 나 때문에 고생하는구먼, 안 팔리면 그냥 와도 되는데…” “믿을 놈이 따로 있지, 그 도둑놈을 믿어요?” 퉁명스런 아내의 말이었습니다. “그럴 사람이 절대 아니오, 기다려봅시다.” 이 광경을 엿보던 도둑은 쌀과 북어를 들고 선비를 불렀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도둑의 울먹이는 소리에 아내가 뛰어 나왔습니다. “마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전 도둑입니다.” 그러자 선비는 “가장 큰 용기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네.” 그 뒤 도둑은 선비부부를 자신의 부모님처럼 모시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선비는 선비의 체통을 유지하기 원합니다. 도둑은 자기를 믿어주고 체면을 살려주는 선비의 인품에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생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살기도하고 죽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삼하6:16-23)에서 다윗은 예루살렘 궁전에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오면서 너무 기뻐 몸이 드러날 정도로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왕의 체통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까? 미갈이 다윗의 행동에 대해 지적한 것은 상식적으로 맞는 지적이 아닙니까? 평생 자녀를 낳지 못한 저주는 미갈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요?
        지금 이 시대에도 체면 유지는 중요한 일입니다. 체면 때문에 과소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품점이 개점하면서 할인한다는 광고를 보고 달려온 고객이 긴 줄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보기도 합니다. 과분한 집을 보유하거나 심지어 가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주전 1003년경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궁전으로 모실 생각을 합니다. 법궤를 70년 만에 다시 모셔오는 중요한 축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는 제사는 축제요 예배입니다. 미갈은 축제에 참여 하지 않고 궁전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미갈은 사울 왕의 공주로 자랐습니다. 미갈은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할 때 다윗을 도망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함께 고난 받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도록 시킬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미갈은 왕궁의 법도와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 왔습니다.         반면 다윗은 목동으로 자유롭게 살아 왔습니다. 지금 다윗은 왕입니다. 왕비인 미갈이 다윗 왕을 볼 때 몸이 드러나도록 뛰놀며 춤추는 모습이 천박하게 보였습니다. 왕의 체통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 오는 것은 다윗의 체면을 높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체면(영광)을 높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다윗을 통해 나타납니다. 다윗은 춤을 추면서 예배드렸습니다. 다윗은 남녀를 불문하고 공평하게 떡과 고기 그리고 건포도 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윗은 가정의 식구들을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공평하게 공의를 실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가정을 축복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높이는데 관심이 있었고 미갈은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뛰놀며 춤추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한 다윗은 높임을 받는 위대한 왕이 됩니다. 반면에 미갈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자녀를 낳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배의 성패는 받는 분인 하나님의 평가에 달려있습니다.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체면을 매우 중시합니다. 중국에서 체면이라는 말은 미엔즈(mianzi)라고 합니다. 원래 미앤즈에는 '얼굴'이라는 뜻 외에도, '면목·체면·체통'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중국인 사회학자는 체면, 즉 미앤즈의 기원을 사람이 어떤 영예를 얻었거나 잃었을 때, 얼굴에 나타나는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만약 주인이 테니스공을 잃어 버렸다면, 그것은 분명 중국인 하인이 주워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인은 화를 내며 그 일을 부정합니다. 그리고는 공을 잃어버린 곳으로 가 거기에서 금방 잃어 버렸던 공(실은 그의 소매에서 슬쩍 떨어뜨린 공)을 집어 들고는 당당하게 '당신이 잃어버린 공이 여기 있소'하고 말합니다."         미국의 카네기가 쓴 ‘인간관계론’의 한 원칙으로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체면으로 살고, 나무는 껍질로 산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나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껍질의 보호를 받듯이,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체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중국 특유의 체면의식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만들어 과소비마저도 불사하게 합니다. 체면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게 만들고 결국 적자인생이 되게 합니다.
        체면은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체면이야말로 자존심이 아니라 자긍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 보는 자에서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화목한 관계가 유지됩니다.
        예배를 멸시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 예배를 기뻐하는 자는 축복을 누립니다. “사람은 체면으로 살고, 나무는 껍질로 산다!”라는 중국 속담은 “사람은 체면으로 살고,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라고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낮아지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포근한교회/임동섭 목사/72 응용물리)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