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전무와 대리
임동섭
2007.08.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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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무와 대리! 사도행전 6장 1절-7절 (성경속의 인물 : 일곱 집사)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인 록펠러가 한 호텔에 묵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측은 이름난 부자로 알려진 그를 맞이하여 작은 실수라도 없게 하려고 무척 신중을 기했습니다. 록펠러가 머무는 동안 그의 시중을 들게 된 젊은 종업원은 지배인으로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쓰라는 특별 당부를 받고, 혹시라도 록펠러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눈치 있게 알아서 척척 해내는 종업원의 태도에 록펠러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속으로 쓸 만한 젊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호텔을 떠나게 된 록펠러는 그 동안 자신을 돌봐 준 종업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호텔의 규정대로 숙박료의 일부에 해당하는 만큼의 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호텔을 나오다가 등 뒤에서 종업원이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쳇, 미국의 대부호가 겨우 요만큼의 팁을 주네."
록펠러는 호텔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서서 그 종업원을 불러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 말대로 나는 지금 당장 자네에게 많은 액수의 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미국 최고 부자임에 틀림없네. 그러나 내가 자네에게 규정이상의 팁을 주는 순간 자네는 호텔 서비스 맨 이라는 당당한 지위에서 적선 받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위치로 전락하고 마는 거라네. 왜 스스로 그 같은 위치로 전락하려 하는가?" 말을 마친 록펠러는 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멈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자네를 눈여겨보면서 성실한 태도에 호감이 가 우리 회사에 특채를 할 까 생각했는데 자네 스스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군." 록펠러의 충고를 들은 종업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비스라는 단어를 인간에서 사용하면 섬김이라고 번역하지만 하나님께 사용하면 예배라고 번역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많은 교인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너무 많아지면서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히브리파 교인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게는 먹을 것을 제공했지만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은 자기들이 받는 푸대접에 불평과 원망이 높아갔습니다. 왜 같은 교인이면서 헬라파 과부들을 차별대우 합니까? 구제 사역이나 말씀 사역도 같은 사역인데 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만 하겠다고 차별하는 것입니까?
이 시대에도 오늘 본문과 같은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같이 사례비를 받는 전문 사역자는 사역자로 인정하지만 그 외에 사역자들에게는 사역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찬양 사역하는 집사님에게 왜 사례비를 주느냐고 불만스럽게 말씀하는 분도 계십니다. 직업은 다 천직이고 성직인데 왜 목회자만 성직이라고 부릅니까? 성경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대 교회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신자)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제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눠졌습니다. 한 그룹은 히브리파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주로 히브리어를 하고 대부분 보수주의자 들입니다. 다른 한 그룹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일찍이 팔레스타인을 떠난 이민자(디아스포라)들이고 헬라어를 말하며 대부분 자유주의자 입니다. 특히 헬라파 과부들은 여생을 성지에서 보내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을 이류 유대인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같은 유대인이며 같은 신앙인으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으므로 그들의 속상함은 점점 커졌습니다. 특히 헬라파 과부들은 남편이 없고 수입도 없고 교회에서 조차 돌봄을 받지 못하는 탓에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서로 다름을 틀림(차별)으로 보는가 아니면 다양함(아름다움)으로 보는가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기능적으로 구분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역은 기도와 말씀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구제와 봉사하는 사역 이였습니다. 12명의 사도가 이 모든 사역을 다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기도하는 사역과 말씀 전하는 사역만 전담키로 하고 구제와 봉사 사역은 집사들에게 위임하기로 하였습니다. 집사의 자격으로는 1) 성령 충만하고 2) 지혜가 충만하고 3) 칭찬을 듣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사역(섬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디아코니아라고 썼습니다. 본문에서 말씀 사역이나 봉사사역이나 똑같이 디아코니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하는 사역은 다 똑같은 귀한 사역인데 기능만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제자들을 교묘하게 유혹합니다. 외부적으로 핍박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갈등을 일으키도록 합니다. 사도들이 구제 사역으로 인하여 사도들이 기도 및 말씀 사역에서 멀어지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집사들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결단력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말씀이 왕성해지고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좋은 일을 다 하려고 하다보면 중요하고 좋은 일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섬기는 자는 자기가 가장 잘 하는 것에 집중해서 섬기면 제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의미에서는 서비스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이단은 영지주의자이었습니다. 영지주의란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으로 이원화하는 사상입니다. 그런대 현대에도 영지주의자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유사 영지주의 자들은 영적인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체적인 사역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복 받는 길과 천국 가는 것만 강조하고 저주와 지옥에 대해서는 무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중심주의는 영적인 사역, 육적인 사역을 다 중시합니다. 즉 우리의 인격은 영과 육이 합해진 전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을 다 같이 강조하고 축복과 저주도 함께 말합니다.
유사 영지주의 자들은 세상의 직업을 세속적인 직업으로 생각하며 성직만을 성스러운 직업으로 차별하는 것은 좋아합니다. 또한 세속적인 장소와 성스러운 장소를 구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의 구별은 쓰임목적에 따라 구별됩니다. 예를 들면 같은 마이크라도 술집에서 사람들의 음탕한 쾌락을 위해 쓰이면 세속적인 것이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때 성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비스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 은사를 잘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고 나의 유한성을 고려해서 사역의 양과 가능성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명에 충실한 자를 찾으십니다. 또한 은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전문가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무능한자도 들어 쓰시지만 모세나 바울처럼 준비된 전문가를 들어 쓰시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사람은 교만한 자로 보십니다. 무슨 일이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은 대행을 시킬 수 있습니다. 대행하는 사람은 대리이고, 전문가는 전무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에 집중하고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과 팀 사역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하시며 그러한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십니다.
사역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교회는 말씀이 왕성하여지고 신자들이 증가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하고 사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는 준비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은 마치 자석과 같아서 반대와 비판을 끌어당깁니다. 역으로 말하면 반대와 비판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 전문가가 되어서 하나님과 이웃으로부터 칭찬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포근한 교회 / 임동섭 목사 / 72 응용물리 / 콜로라도 덴버)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인 록펠러가 한 호텔에 묵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측은 이름난 부자로 알려진 그를 맞이하여 작은 실수라도 없게 하려고 무척 신중을 기했습니다. 록펠러가 머무는 동안 그의 시중을 들게 된 젊은 종업원은 지배인으로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쓰라는 특별 당부를 받고, 혹시라도 록펠러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눈치 있게 알아서 척척 해내는 종업원의 태도에 록펠러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속으로 쓸 만한 젊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호텔을 떠나게 된 록펠러는 그 동안 자신을 돌봐 준 종업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호텔의 규정대로 숙박료의 일부에 해당하는 만큼의 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호텔을 나오다가 등 뒤에서 종업원이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쳇, 미국의 대부호가 겨우 요만큼의 팁을 주네."
록펠러는 호텔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서서 그 종업원을 불러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 말대로 나는 지금 당장 자네에게 많은 액수의 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미국 최고 부자임에 틀림없네. 그러나 내가 자네에게 규정이상의 팁을 주는 순간 자네는 호텔 서비스 맨 이라는 당당한 지위에서 적선 받는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위치로 전락하고 마는 거라네. 왜 스스로 그 같은 위치로 전락하려 하는가?" 말을 마친 록펠러는 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멈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자네를 눈여겨보면서 성실한 태도에 호감이 가 우리 회사에 특채를 할 까 생각했는데 자네 스스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군." 록펠러의 충고를 들은 종업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비스라는 단어를 인간에서 사용하면 섬김이라고 번역하지만 하나님께 사용하면 예배라고 번역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많은 교인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너무 많아지면서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히브리파 교인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게는 먹을 것을 제공했지만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은 자기들이 받는 푸대접에 불평과 원망이 높아갔습니다. 왜 같은 교인이면서 헬라파 과부들을 차별대우 합니까? 구제 사역이나 말씀 사역도 같은 사역인데 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만 하겠다고 차별하는 것입니까?
이 시대에도 오늘 본문과 같은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같이 사례비를 받는 전문 사역자는 사역자로 인정하지만 그 외에 사역자들에게는 사역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찬양 사역하는 집사님에게 왜 사례비를 주느냐고 불만스럽게 말씀하는 분도 계십니다. 직업은 다 천직이고 성직인데 왜 목회자만 성직이라고 부릅니까? 성경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대 교회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신자)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제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눠졌습니다. 한 그룹은 히브리파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주로 히브리어를 하고 대부분 보수주의자 들입니다. 다른 한 그룹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일찍이 팔레스타인을 떠난 이민자(디아스포라)들이고 헬라어를 말하며 대부분 자유주의자 입니다. 특히 헬라파 과부들은 여생을 성지에서 보내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을 이류 유대인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같은 유대인이며 같은 신앙인으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으므로 그들의 속상함은 점점 커졌습니다. 특히 헬라파 과부들은 남편이 없고 수입도 없고 교회에서 조차 돌봄을 받지 못하는 탓에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서로 다름을 틀림(차별)으로 보는가 아니면 다양함(아름다움)으로 보는가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기능적으로 구분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역은 기도와 말씀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구제와 봉사하는 사역 이였습니다. 12명의 사도가 이 모든 사역을 다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기도하는 사역과 말씀 전하는 사역만 전담키로 하고 구제와 봉사 사역은 집사들에게 위임하기로 하였습니다. 집사의 자격으로는 1) 성령 충만하고 2) 지혜가 충만하고 3) 칭찬을 듣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사역(섬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디아코니아라고 썼습니다. 본문에서 말씀 사역이나 봉사사역이나 똑같이 디아코니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하는 사역은 다 똑같은 귀한 사역인데 기능만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제자들을 교묘하게 유혹합니다. 외부적으로 핍박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갈등을 일으키도록 합니다. 사도들이 구제 사역으로 인하여 사도들이 기도 및 말씀 사역에서 멀어지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집사들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결단력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말씀이 왕성해지고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좋은 일을 다 하려고 하다보면 중요하고 좋은 일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섬기는 자는 자기가 가장 잘 하는 것에 집중해서 섬기면 제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의미에서는 서비스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이단은 영지주의자이었습니다. 영지주의란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으로 이원화하는 사상입니다. 그런대 현대에도 영지주의자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유사 영지주의 자들은 영적인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체적인 사역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복 받는 길과 천국 가는 것만 강조하고 저주와 지옥에 대해서는 무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중심주의는 영적인 사역, 육적인 사역을 다 중시합니다. 즉 우리의 인격은 영과 육이 합해진 전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을 다 같이 강조하고 축복과 저주도 함께 말합니다.
유사 영지주의 자들은 세상의 직업을 세속적인 직업으로 생각하며 성직만을 성스러운 직업으로 차별하는 것은 좋아합니다. 또한 세속적인 장소와 성스러운 장소를 구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의 구별은 쓰임목적에 따라 구별됩니다. 예를 들면 같은 마이크라도 술집에서 사람들의 음탕한 쾌락을 위해 쓰이면 세속적인 것이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때 성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비스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 은사를 잘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고 나의 유한성을 고려해서 사역의 양과 가능성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명에 충실한 자를 찾으십니다. 또한 은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전문가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무능한자도 들어 쓰시지만 모세나 바울처럼 준비된 전문가를 들어 쓰시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사람은 교만한 자로 보십니다. 무슨 일이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은 대행을 시킬 수 있습니다. 대행하는 사람은 대리이고, 전문가는 전무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에 집중하고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과 팀 사역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하시며 그러한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십니다.
사역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교회는 말씀이 왕성하여지고 신자들이 증가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하고 사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는 준비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은 마치 자석과 같아서 반대와 비판을 끌어당깁니다. 역으로 말하면 반대와 비판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 전문가가 되어서 하나님과 이웃으로부터 칭찬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포근한 교회 / 임동섭 목사 / 72 응용물리 / 콜로라도 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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