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중동 분쟁의 숨겨진 이야기
성현경
2004.09.10 13:3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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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대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설사 미국의 외교적 중재와 바티칸의 종교적 교섭으로 현사태가 잠정적으로 가라앉을 수 있을지라도,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의 근본적인 긴장은 결코 진정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갈등원인이 정치 이전에 종교이기 때문이다.
AD 70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부터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사는 것을 제한받아 왔으며,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려는 유대민족의 신앙은 성전이 재건되면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예수님의 예언이 틀린 것이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 선지자로 만들려 한다는 음모로 보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원천적으로 봉쇄당해왔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같은 해에 예수를 죽인 유대인에게 세례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고, 그 후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대가로 인종세를 부과해 왔으며 고리대금업과 같은 당시의 천한 직업에 제한받아 왔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에 개혁을 외치고 나온 루터가 유대인전도를 힘썼으나 유대인들은 주께 돌아오지 않았다. 루터의 최후 설교문이 남아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제목은 ‘유대인을 멸절시키라’ 였다. 지난 세기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말살정책은 가톨릭의 하드웨어와 루터의 소프터 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6백만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는 유대민족에게 고토로 돌아가려는 시오니즘을 고취시켰고, 유대랍비들에 의해 홀로코스트가 야곱의 대환란(렘 30:7)으로 해석되며 고토에 이스라엘국가의 재건을 이루는 구약예언이 성취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천년 간 나라를 잃고 유리하는 고난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채 치유받지 못한 한을 지닌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고 있던 옛 고토에 들어와서 거기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에게 그들이 방랑하며 받았던 상처를 쏟아붓는 셈이 되었다. 이천년 만에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땅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웠고 그들의 육적 형제인 이스마엘 후손의 회교성전이 고토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의 조상 이삭이 제물로 바쳐졌던 예루살렘은 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가 승천한 장소라고 불리워지고 있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세우기만 하면 됐지만, 현재의 유대인들은 세우기 전에 무너뜨려야만 하는, 조상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로마제국의 압제하에 유대인들이 저항하였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인 현재의 이스라엘은 이천년 간의 고난에서 살아남아 고토를 찾은 유대인들 아래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하고 있다.
이번 유혈사태속에 국제 적십자사는 이스라엘에 구급차를 기증하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왜냐하면 그 구급차에는 적색 십자가가 그려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구급차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고, 팔레스타인 구급차에는 모슬렘의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세 종교의 대립이 첨예화되어 있는 이곳을 성경에선 이스라엘(Israel) 땅이라 불리우고 역사적으로는 팔레스타인(Palestine)땅이라고 불리어 왔다.
이번 사태 속에 드러난 갈등이지만 매스컴에는 알려지지 않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 간의 신학적 차이이다. 85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동족인 모슬렘들에게 위협과 고립을 겪고 있다. 이번 인티파다 봉기중에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모임장소가 모슬렘들에 의해 불타기도 하였다.
같은 조상 ,두 민족
10000 여 명에 이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동족인 정통 유대교인들에 의해 같은 신앙의 이유로 멸시와 거절을 당하고 있다. 매일 다섯 번씩 드려지는 유대교 기도문이 있는데 그 기도는 예슈아에게로 돌아간 유대 그리스도인을 저주하는 기도로 마친다.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동족에게 동일한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왜곡되게 첨가시킨 모슬렘과 신약을 거절하고 제외시킨 유대교의 대립을 우리는 매스컴에서 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 예수를 함께 주로 고백하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간의 신학적 대립이 내재되어 있고 이방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중보해야 할 부분이 이것이다.
땅, 토지에 대한 성경해석의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갈등배경에는 땅, 토지의 신학이 있다. 그 땅 자체에 대한 성경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동족에게 외면을 당하면서도 그 땅에 대한 신학은 자기 동족들의 정치적, 종교적인 입장에 가깝다. 이 둘은 자기 동족들에게 동일한 외면을 당하면서도, 땅, 토지의 신학에 있어서는 서로 갈등관계에 있으며 자신들을 외면하는 동족과는 같은 입장을 갖는 아픔이 이번 사태가운데 표출되었다.
* 유대그리스도인의 구약적인 토지신학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인용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로마서 11장 1절과 해와 달과 별들의 규정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나라로서 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레미야 31장 35~37 절이다. 성경에 조건부 약속과 무조건적 약속을 하나님이 하셨는데 이스라엘에 관한 언약은 후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로 앞의 31~34절도 강조하는데 하나님이 이 구절에서 세우신 새 언약은 교회와 세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에 세운 것임을 지적한다. 중세 가톨릭은 예수를 거절한 육적 이스라엘은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으로써 그 역할을 다해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로 대치되었고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은 교회에 적용하게 하였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인용하는 다른 예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 내었다’는 호세아 11장 1절을 인용하는 마태복음 2장 15절이다. 마태는 아기 예수가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이야기 중에 호세아 말씀을 인용하였는데 그 본문의 아들은 본래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킨다. 출애굽기 4장 22절에 이스라엘 백성을 집단적으로 하나님이 ‘내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태의 인용에서 이스라엘과 예수를 동일시했다는 점을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지적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민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안에서 교회에 영적으로 대치되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도 문자적으로 영원히 유대민족에게 성취되리라는 주장이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에게 특정한 땅을 약속하셨다(창 12:7 ). 그의 택한 백성이 그 약속의 땅으로부터 두 번 추방당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떠나야 했던 같은 근거로, 주님은 흩으셨던 열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토로 다시 돌리신 것이다(신 30:2,3 ). 그래서 고토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구약의 예언 성취에 필연적인 것이며,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재림은 임박했다는 것이다. 감람산 위에서 승천하셨던 주님은 회복된 고토 이스라엘의 동일한 감람산 위에 문자적으로 다시 오실 날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인은 정말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한다.
그들의 토지신학 위에.
* 팔레스타인 크리스챤의 신약적 토지 해석
반면에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초림과 초대교회 말씀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땅보다는 하나님나라의 주제를 강조하셨다고 한다.
구약에는 그 땅에 대한 말씀이 1600번 기록되었으나 신약에는 50번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서의 하나님나라는 구약에서의 약속의 땅에 대한 대응부분이라고 여긴다.
하여튼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 자체에 대한 관심을 복음서에서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유대인처럼 혈통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임을 상기시킨다(요 1:13).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 더 이상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예루살렘이나 그리심산이 예배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요한복음 4장 24절을 인용한다. 그래서 성전되신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 상에서 헐린 이후, 사도행전 7장의 스테반의 설교에서처럼 하나님은 더 이상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으며 우리가 그의 성전이고, 그러므로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더 이상 성전이나 땅의 문자적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세 가톨릭시대에 유대인들의 구원을 막고 말았던 대치신학을 연상시키고 만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문자 그대로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땅. 토지신학을 신약에서의 비유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영적의미를 실체로 여기는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적 요새가 이번 이스라엘 사태를 통해 표출되었다. 그들은 총알과 물맷돌을 던지는 대신에 그들의 신학을 서로에게 쏘았으며 결별하였다.
매스컴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이 갈등은
이방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중보해야 할 영적 실체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설사 미국의 외교적 중재와 바티칸의 종교적 교섭으로 현사태가 잠정적으로 가라앉을 수 있을지라도,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의 근본적인 긴장은 결코 진정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갈등원인이 정치 이전에 종교이기 때문이다.
AD 70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부터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사는 것을 제한받아 왔으며,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려는 유대민족의 신앙은 성전이 재건되면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예수님의 예언이 틀린 것이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 선지자로 만들려 한다는 음모로 보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원천적으로 봉쇄당해왔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같은 해에 예수를 죽인 유대인에게 세례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고, 그 후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대가로 인종세를 부과해 왔으며 고리대금업과 같은 당시의 천한 직업에 제한받아 왔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에 개혁을 외치고 나온 루터가 유대인전도를 힘썼으나 유대인들은 주께 돌아오지 않았다. 루터의 최후 설교문이 남아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제목은 ‘유대인을 멸절시키라’ 였다. 지난 세기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말살정책은 가톨릭의 하드웨어와 루터의 소프터 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6백만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는 유대민족에게 고토로 돌아가려는 시오니즘을 고취시켰고, 유대랍비들에 의해 홀로코스트가 야곱의 대환란(렘 30:7)으로 해석되며 고토에 이스라엘국가의 재건을 이루는 구약예언이 성취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천년 간 나라를 잃고 유리하는 고난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채 치유받지 못한 한을 지닌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고 있던 옛 고토에 들어와서 거기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에게 그들이 방랑하며 받았던 상처를 쏟아붓는 셈이 되었다. 이천년 만에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땅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웠고 그들의 육적 형제인 이스마엘 후손의 회교성전이 고토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의 조상 이삭이 제물로 바쳐졌던 예루살렘은 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가 승천한 장소라고 불리워지고 있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세우기만 하면 됐지만, 현재의 유대인들은 세우기 전에 무너뜨려야만 하는, 조상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로마제국의 압제하에 유대인들이 저항하였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인 현재의 이스라엘은 이천년 간의 고난에서 살아남아 고토를 찾은 유대인들 아래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하고 있다.
이번 유혈사태속에 국제 적십자사는 이스라엘에 구급차를 기증하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왜냐하면 그 구급차에는 적색 십자가가 그려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구급차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고, 팔레스타인 구급차에는 모슬렘의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세 종교의 대립이 첨예화되어 있는 이곳을 성경에선 이스라엘(Israel) 땅이라 불리우고 역사적으로는 팔레스타인(Palestine)땅이라고 불리어 왔다.
이번 사태 속에 드러난 갈등이지만 매스컴에는 알려지지 않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 간의 신학적 차이이다. 85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동족인 모슬렘들에게 위협과 고립을 겪고 있다. 이번 인티파다 봉기중에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모임장소가 모슬렘들에 의해 불타기도 하였다.
같은 조상 ,두 민족
10000 여 명에 이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동족인 정통 유대교인들에 의해 같은 신앙의 이유로 멸시와 거절을 당하고 있다. 매일 다섯 번씩 드려지는 유대교 기도문이 있는데 그 기도는 예슈아에게로 돌아간 유대 그리스도인을 저주하는 기도로 마친다.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동족에게 동일한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왜곡되게 첨가시킨 모슬렘과 신약을 거절하고 제외시킨 유대교의 대립을 우리는 매스컴에서 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 예수를 함께 주로 고백하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간의 신학적 대립이 내재되어 있고 이방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중보해야 할 부분이 이것이다.
땅, 토지에 대한 성경해석의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갈등배경에는 땅, 토지의 신학이 있다. 그 땅 자체에 대한 성경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동족에게 외면을 당하면서도 그 땅에 대한 신학은 자기 동족들의 정치적, 종교적인 입장에 가깝다. 이 둘은 자기 동족들에게 동일한 외면을 당하면서도, 땅, 토지의 신학에 있어서는 서로 갈등관계에 있으며 자신들을 외면하는 동족과는 같은 입장을 갖는 아픔이 이번 사태가운데 표출되었다.
* 유대그리스도인의 구약적인 토지신학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인용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로마서 11장 1절과 해와 달과 별들의 규정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나라로서 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레미야 31장 35~37 절이다. 성경에 조건부 약속과 무조건적 약속을 하나님이 하셨는데 이스라엘에 관한 언약은 후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로 앞의 31~34절도 강조하는데 하나님이 이 구절에서 세우신 새 언약은 교회와 세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에 세운 것임을 지적한다. 중세 가톨릭은 예수를 거절한 육적 이스라엘은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으로써 그 역할을 다해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로 대치되었고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은 교회에 적용하게 하였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인용하는 다른 예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 내었다’는 호세아 11장 1절을 인용하는 마태복음 2장 15절이다. 마태는 아기 예수가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이야기 중에 호세아 말씀을 인용하였는데 그 본문의 아들은 본래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킨다. 출애굽기 4장 22절에 이스라엘 백성을 집단적으로 하나님이 ‘내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태의 인용에서 이스라엘과 예수를 동일시했다는 점을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지적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민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안에서 교회에 영적으로 대치되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도 문자적으로 영원히 유대민족에게 성취되리라는 주장이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에게 특정한 땅을 약속하셨다(창 12:7 ). 그의 택한 백성이 그 약속의 땅으로부터 두 번 추방당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떠나야 했던 같은 근거로, 주님은 흩으셨던 열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토로 다시 돌리신 것이다(신 30:2,3 ). 그래서 고토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구약의 예언 성취에 필연적인 것이며,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재림은 임박했다는 것이다. 감람산 위에서 승천하셨던 주님은 회복된 고토 이스라엘의 동일한 감람산 위에 문자적으로 다시 오실 날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인은 정말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한다.
그들의 토지신학 위에.
* 팔레스타인 크리스챤의 신약적 토지 해석
반면에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초림과 초대교회 말씀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땅보다는 하나님나라의 주제를 강조하셨다고 한다.
구약에는 그 땅에 대한 말씀이 1600번 기록되었으나 신약에는 50번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서의 하나님나라는 구약에서의 약속의 땅에 대한 대응부분이라고 여긴다.
하여튼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 자체에 대한 관심을 복음서에서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유대인처럼 혈통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임을 상기시킨다(요 1:13).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 더 이상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예루살렘이나 그리심산이 예배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요한복음 4장 24절을 인용한다. 그래서 성전되신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 상에서 헐린 이후, 사도행전 7장의 스테반의 설교에서처럼 하나님은 더 이상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으며 우리가 그의 성전이고, 그러므로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더 이상 성전이나 땅의 문자적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세 가톨릭시대에 유대인들의 구원을 막고 말았던 대치신학을 연상시키고 만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문자 그대로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땅. 토지신학을 신약에서의 비유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영적의미를 실체로 여기는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적 요새가 이번 이스라엘 사태를 통해 표출되었다. 그들은 총알과 물맷돌을 던지는 대신에 그들의 신학을 서로에게 쏘았으며 결별하였다.
매스컴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이 갈등은
이방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중보해야 할 영적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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