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십일조
강신웅
2004.06.23 16:24
1,815
0
본문
십일조란 소출의 10분의 1을 바치는 율법의 규정으로서 그 기원은 족장 시대에 두고 있었는데(창 14:20; 28:22) 모세의 계명에서 법제화 되었습니다(레 27:30; 신 14:22-27).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을 때 엘람 왕, 고임 왕, 시날 왕, 엘라살 왕이(창 14:9)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고, 롯도 사로잡아 갔습니다(창 14:11, 12)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318명의 가신(家臣)을 이끌고 단까지 쫓아가서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때 살렘 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영접했는데, 아브라함은 그의 환대와 축복에 감사하여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습니다(창 14:17-20).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십일조의 본입니다. 그 후 약 400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계명으로 법제화하셨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규정으로 주시기 훨씬 이전(약 350여년 전)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의 일 즉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창 28:22). 즉 하나님께서 규정으로 주시기 전에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약을 한 것입니다.
십일조의 근본 취지는 ①자신의 소유에 대한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인정과 ②이웃 사랑(구제) 및 성전 운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자발적 사랑의 예물이 아닌 강제적 의무 규정으로 고착화 시켜, 이것을 통해 유대인됨과 율법 완수자의 규준(規準)으로 삼았습니다.
십일조를 드림은 자신의 모든 소유(자기의 몸까지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그 모든 소유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적 표현입니다(레 27:30). 이러한 신앙 고백적 의미가 결여된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헌물과 헌금은 사실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서 마땅히 지양되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말라기서 3장 10절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세로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도 않으실 뿐 더러(사람은 받지만) 기뻐하시지도 않으시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시험받으심을 용납지 않으시며 그들을 멸망시키셨음을 알아야 합니다(신 6:16).
십일조는 크게 세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① 첫 번째는(민 15:21-24) 전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성전 봉사를 맡은 레위인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일반 백성들의 소산물의 1/10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바침'과 더불어 인간과의 '나눔'이라는 2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② 두 번째는(신 14:23-27) 성소 내에 필요한 기구 제작과 감사 축제(신 14:23)에 소요되는 경비 충당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③ 세 번째는(신 14:28, 29; 26:12, 13) 매 7년 안식년을 기준하여 제 3년과 제 6년에는 제 2의 십일조로 성소 경비에 충당하지 않고 그것으로 가난한 자와 과부 및 고아 구제 사업에 사용토록 했습니다. 현대에는 물론 교회의 모든 운영경비에 포함되어 모든 분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결코 율법시대의 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십일조의 영역을 금전에만 국한시키기 보다 시간과 온 정열에까지 넓혀가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십일조 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림은 더 많은 것을 받기 위함(말 3:10)보다는 십일조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말 3:7, 8). 바울사도는 십일조만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하셨음을 생각할 때 십일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최대치가 아니고 최소의 것 즉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