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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임동섭의종교칼럼] 호롱불

임동섭
2012.12.25 17:46 1,361 2
  • - 첨부파일 : 호롱불.jpg (8.2K) - 다운로드

본문

호롱불


우리 옆집에는 ‘산타 눈사람’이 있습니다. 낮에는 바닥에 누워 있다가 밤이 되면 바람을 넣어 세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LED 조명을 켭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산타 눈사람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연말이 되면서 주위의 집들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합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화려한 거리를 보면서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포근한 어릴 적 시골이 생각납니다. 시골마을에는 호롱불이 주된 조명이었습니다. 흰색 사기병에 뚜껑을 만들고, 허드레 헝겊으로 심지를 만들어 넣고, 사기병에 석유를 조금 넣고 불을 밝히는 백색 등잔입니다.


그 무렵에는 집집마다 석유가 담긴 2리터의 한 되들이 유리병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저녁이면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는데 그나마 심지를 좀 올려 불꽃을 높게 만들었다가는 귀한 기름을 함부로 쓴다고 어른들의 꾸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심지를 돋우면 방이 환해지지만 아침이면 콧구멍이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열일을 제쳐 두고도 학교숙제는 낮에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호롱불을 켜 놓고 밤이 늦도록 숙제를 하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불을 끄면 잠드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끼던 호롱불도 시험공부를 할 때는 마음껏 켜놓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촛불은 호롱불보다 비싼 조명이었습니다. 중요한 시험 때에는 촛불을 켜고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1970년 가을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전기불이 켜질 때 번개가 치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밝은 지 그 밝은 촛불이 전기불 앞에서는 마치 반딧불 같았습니다.


호롱불은 온 식구를 등잔 주위로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아늑한 분위기로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호롱불 밑은 어머니가 해진 옷을 꿰매면서 숙제를 하던 우리들과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일어났던 집안 얘기, 옛날이야기를 듣는 장소이었습니다. 졸면서 책을 보다가 가끔은 앞 머리카락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은 호롱불에 두 손을 바짝 대서 말, 소, 개, 닭 모양을 만들어 벽에 모양이 만들어지도록 하면서 놀았습니다.


문이 닫혀 있어도 우풍(외풍 外風)이 심하여 호롱불이 흔들렸습니다. 시인 노산 이은상은 활황(活黃)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호롱불은 방문만 잠깐 열었다 닫아도 꺼지고, 앉았다 일어만 나도 꺼지고, 기침은커녕 하품만 하여도 꺼지는 것이어서, 방자한 행동은 도무지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일거수일투족을 지극히 근신해야 하는 그것이 어떻게 재미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이 호롱불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문을 여는 순간 세찬 오랑캐바람, 호풍(胡風)이 훅 밀고 들어와 호롱불을 꺼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허겁지겁 더듬더듬 성냥을 찾았습니다. 사각통의 ‘비사표,’ 팔각통의 ‘유엔성냥’이 인기였습니다.


그 때 호롱불 밑에서 때론 배 깔고 엎드려, 때론 궁둥이 치켜들고, 연필에 침 묻혀가며 꾹꾹 눌러 글씨를 쓰던 친구들은 도시로 나왔습니다. 우리들은 화려한 도시에서 조명을 받는 ‘스타’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은퇴할 시기를 맞았습니다.


‘스타’는 먼 하늘에 떠 있어 가까이 가지는 못하지만 뭇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바라봅니다. 반면 호롱불은 초가집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길을 밝히기에는 너무 흐리고, 약하게 부는 바람에도 쉽게 꺼집니다. 세상 전체를 밝히기에는 너무 미약하고 작습니다. 그냥 집안을 밝힐 뿐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떠있는 ‘스타’들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사는 방안을 밝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이제까지 ‘스타(?)’가 되려고 했던 헛된 꿈을 버리고 방 한 칸이라도 밝히는 호롱불이 되어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www.kgoodnews.com/ 포근한 교회

www.youtube.com/ 임동섭 목사


댓글목록 2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12.12.25 20:35
<p>어때 이렇게도 정확히 어릴적을 기억하게 하는지 참 놀랍습니다</p><p>참 그러고 보니 머리도 많이 태워 먹었더랬습니다</p><p>성냥곽은 얼마나 크고 또 양은 많았던지</p><p><br /></p><p>한편의 아련한 추억입니다</p><p><br /></p><p>이건 우리 동문회 facebook page로 연결 해야 겠습니다</p><p>감사합니다</p><p><br /></p>

노철영님의 댓글

노철영 2012.12.26 01:05
<p>목사님 글 잘읽었읍니다</p><p>이번에는 덴버에는 둥문모임이 있으셨는지요??</p><p>새해에는 맘을 내서 덴버에 한번 가려 합니다</p><p>제에게 많은 것을 주셨던 은시님도 몸이 많이 않좋으신 것 같아서</p><p>찿아뵙고, 목사님 강인수동문, 그리고 유태길교수님도 한번 뵙는 것이</p><p>새해의 목표중에 하나 입니다. 사모님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p><p>새해애도 건강하시고 기도하시면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루워지는 한해가&nbsp;</p><p>되시길 기도드립니다</p><p>노철영 드림</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