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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아랫목을 차지한 며느리!

임동섭
2013.02.05 19:51 1,4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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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을 차지한 며느리!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워집니다. 온돌방은 우리 조상들이 오랜 옛날부터 발전시켜온 대표적인 난방방식입니다. 우리 전통온돌의 구조는 방바닥에 방고래를 만듭니다. 그리고 구들장을 얹기 위한 두둑(주위보다 두두룩한 곳)을 돌로 세웁니다. 그 위에 판판하고 넓적한 구들장을 놓습니다. 진흙을 바른 후에는 불을 지펴 건조시킵니다. 그리고 더욱 고운 진흙이나 황토에 짚을 섞어 곱게 이긴 것으로 재벌 바름을 하여 다시 건조시킵니다. 그 위에 초배지를 바릅니다. 초배지가 마르고 나면 그 위에 장판지를 바르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우리 전통 온돌은 난방뿐만 아니라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일까지 동시에 합니다. 연료 효율성이 매우 높은 난방 방식입니다. 열과 연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방고래는 아궁이쪽을 낮게 만들어주고 굴뚝을 세워 연기가 잘 뽑혀 올라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온돌은 세계 유일의 바닥 난방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피부로 접촉하는 촉감의 문화를 즐겨왔고, 온돌은 그 대표적인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온돌은 한국인을 다른 나라 사람과 구별하는 징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동대 임재해 교수에 따르면 일본 경찰은 부둣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몰려든 사람 중에 불을 등지고 쬐는 밀입국 조선인을 잡아갔다고 합니다. 뜨끈뜨끈한 온돌바닥에 등을 지지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경사진 부넘기(아궁이에서 방고래로 불이 넘어가게 되는 조금 높게 쌓은 부분)를 넘은 열과 연기는 아궁이로 나오지 못하고 개자리(방구들 윗목에 깊이 파 놓은 고랑)에 이르게 됩니다. 열과 연기는 개자리에서 머물다가 굴뚝을 통해 빠져 나가므로 구들은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결혼한 후 시골 고향에서 6개월 정도 살았습니다. 대학교에 조교 자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학교 정책이 변경되면서 하루아침에 화백(화려한 백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처음으로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보았습니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같은 방에서 잤습니다. 아버님이 마당 쪽에 누우시고 다음이 어머님, 저 그리고 아내의 순으로 누웠습니다. 발은 아랫목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추위를 몹시 탔습니다. 아버님이 아내에게 아랫목으로 누우라고 하자마자 아내는 아랫목으로 쏙 들어가서 눕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부모님은 친딸처럼 여기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포근한 교회’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장인어른께서 창립예배에 참석하시기 위해 한국에서 오셨습니다. 온돌 생활에 익숙하신 장인께서 미국의 잠자리가 편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추워하셨습니다. 아내와 함께 돌침대를 보러 갔습니다. 당시에 돌침대와 흙침대가 인기 상품이었습니다. 당시 거금(?)인 $2400을 주고 구입하였습니다. 장인께서 한국으로 가신 후 옛날 한옥에서나 누릴 수 있었던 온돌의 따뜻함을 지금까지 누릴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지금 온돌은 세계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옥은 어둡고 춥다는 생각을 합니다. 착각입니다. 한옥은 놀랍게도 보일러가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따뜻한 집이었습니다. 온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국에서 난방시설이 필요하다면 온돌이 1순위로 채택될 것이라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주거문화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온돌을 떠올립니다. 온돌은 미국의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 의해 파이프난방시스템으로 발전해 세계화되면서 일본, 독일 등에서 이미 80년대부터 사용되었습니다. 관련 특허도 일본,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이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제온돌학회도 중국북경공업대학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꿈꾸고 있는 사이, 그들은 우리의 보물을 가공해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들고 오히려 우리에게 로열티를 받으며 되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좋은 온돌이 본고장인 한국에선 되레 ‘찬돌’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번듯한 전시관·박물관 하나 만들지 않았고, 온돌 장인들을 막일꾼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귀하게 여기고 이러한 유산을 우리 자녀들에게 전수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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