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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임동섭
2012.03.06 09:58 3,412 0

본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임 서방! 임 서방 죽는 거야 본인이 택한 것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내 딸이 과부가 되어 어린 손녀와 손자를 키우며 고생하는 것은 볼 수가 없네. 제발 서울로 가게. 돈 벌지 않아도 되니 무조건 서울로 가게. 서른다섯에 정남방으로 이사하면 ‘오귀(五鬼) 삼살(三殺) 방(方)’이 들었으니 북쪽인 서울로 가게!”


1987년 초에 담임목사(임종만)님께서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제가 목회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제가 목사가 되면 좋겠다고 권하신 분이 두 분이 계셨지만 마음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임종만 목사님께서는 교단 총회장(고신)을 역임하셨던 분이셨고 가볍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M그룹 전산실을 거쳐 홍보실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집사였지만 업무상 술도 마시며 그룹 계열사 사장을 목표로 열심을 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몇 개월만 지나면 과장으로 승진할 것은 확실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2년 동안 가르치다 보니 같은 학번에 비해 2년 정도 승진이 늦어졌으며, 올라갈 자리도 비어있었고, 인사고과 점수도 최고점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1987년 봄에 인사발령지가 게시되었습니다. 과장 진급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진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목사님께 목회의 길을 가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되는 지를 물었습니다. 며칠 후에 ‘고오베 신학대학’ 학장님이 오시면 만나 뵙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인어른께 상의를 드렸더니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지만 마지못해 승낙을 하셨습니다. 저는 집을 매물로 내놓았는데 오후에 팔렸습니다. 아내는 대전의 한 백화점 1층에 그릇가게를 차렸습니다. 제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전무님께서 왜 사표를 내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과장으로 진급이 되지 않아 사표를 낸 것이 아닌가?” “진급되지 않은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약 2% 정도일 것입니다.” “목회의 길은 100% 순수해도 어려운데 2%의 불만을 갖고 목회의 길을 가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니 마음이 변하면 언제라도 다시 오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전무님은 운전기사를 부르시고, 저를 서울역까지 배웅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장모님은 점쟁이를 찾아가셔서 저에 대해서 물었더니 점괘가 ‘서른다섯에 정남방으로 이사를 가면 오귀 삼살 방’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점괘를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서른다섯에 서울에서 정남방인 대전으로 이사를 가면 다섯 귀신이 세 번 죽일 정도로 나쁜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장모님께서 일주일 계속 울면서 저에게 무조건 서울로 가라고 하시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조금만 나쁜 일이 생기면 저 때문이라고 할 터인데....... 결국 가방을 들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면 목사가 될 것이고, 형님을 만나면 자영업을 할 것이고, 회사에 가면 회사원이 될 텐데.......


결국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경비실에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전무님께서 잘 돌아왔다고 반기셨습니다. 막상 책상에 앉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표를 낸 후 전무님은 인사발령에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를 하셨습니다. 마케팅 부장이 부당하게 처리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살다보면 유행가 제목 ‘이정표 없는 거리’처럼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1988년 과장으로 진급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미국 지사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3년 만에 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해고되었습니다.


다시 신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인어른께서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신학대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목회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미국에서 M.Div와 Th.M을 마치고 D.Min은 수료했습니다.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니 모든 것을 제가 고민하고 결정한 것 같은데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결국 목회자가 되었으며 덴버에서 목회한 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갑니다. 저의 부모님은 성경을 두 번 함께 읽으시고 돌아가셨으며, 장모님도 예수 믿고 돌아가셨고, 장인어른은 장로님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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