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기독교인은 성탄절에서 손 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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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성탄절에서 손 떼라!
고등학교 다닐 때로 기억합니다. 새벽 송을 돌기 위해 성탄절 이브에 교회에 모입니다. 동짓달이기도 하고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시절이라 주로 팥죽을 먹었습니다. 팥죽을 먹을 때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하면 팥죽을 내뿜는 일도 많았습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 벽을 보고 먹어 보지만 한 번 웃기 시작하면 관성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별로 우스운 이야기도 아닌데 누가 말만하면 웃게 되어 팥죽 한 그릇 먹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팥죽을 먹고 나면 새벽 송을 돌기 전까지 새끼를 꼽니다. 새끼줄은 교회 담장 지붕을 매년 새롭게 단장하는데 쓰였습니다. 저는 새끼 꼬는 실력이 없어 주로 구경하는 편이었습니다만, 대부분 청년들은 새끼를 잘 꼬았습니다. 여자 선생님들도 잘 꼬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길과 논을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새벽 송을 돌다가 논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성도님들이 과자를 주시기도 하고 어떤 성도님들은 떡국을 끓여주시기도 했습니다. 바짓단에 묻어있던 눈은 이미 작은 고드름이 됩니다. 떡국을 먹으려고 방에 들어가면 고드름이 녹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매우 즐거운 추억 중의 하나입니다.
새벽 송은 영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 상반기에 영국에서는 집집을 방문하면서 캐럴을 불러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부락의 모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쓸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11월말부터 시작하여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캐럴을 불렀다고 합니다.
연말이 되면 아버님은 많은 연하장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연하장은 두꺼운 종이 안에 얇은 반투명 종이가 들어있었습니다. 대부분 인사말을 얇은 종이에 쓰여 있었습니다. 얇은 종이를 떼어내면 마치 새 카드와 같았습니다. 카드가 귀한 때였기 때문에 아버님에게 온 연하장을 마치 제가 구입한 것처럼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교인들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고,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은 주로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카드는, 1843년에 영국의 미술교육가 H.콜이 고안하여 왕립 미술아카데미 회원인 존 C. 호슬리에게 보낸 것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카드에서 콜은 성탄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 넣고,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to You"라는 문구를 적어 런던에서 1,000장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1860년에는 이것이 온 영국에 퍼지게 되었고, 곧 미국으로 건너가 일반화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1870년 이후에, 각국의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그 우편요금이 싸지면서부터 크리스마스카드의 교환은 세계적인 풍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내가 재촉을 합니다. 크리스마스카드 발송리스트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선 크리스마스카드부터 사야겠다고 마트에 나가봅니다. 카드의 앞면은 트리, 종, 나팔, 산타, 사슴, 촛불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나마 성경에 가장 가까운 그림이라면 동방박사 세 사람 정도였습니다. 카드 안에 쓰여 있는 문구도 Happy Holidays나 Season's Greetings라는 문구로 대체되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이신 아기 예수님은 크리스마스카드에서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교회 안의 행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점차 크리스마스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 안의 행사였던 크리스마스가 교회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크리스마스에 예수님이 아닌 다른 주인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카드에서도 주인공인 아기 예수님이 빠지고 산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제 세상은 기독교인들에게 성탄절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의 문제는 본질을 벗어날 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물은 비에 젖습니까?” “물은 본질이고 비는 환경 또는 조건이기 때문에 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면 어떠한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에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성탄절에서 손을 떼라는 세상의 압력에도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면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포근한 교회 /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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