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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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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35회)

김시우
2007.07.11 15:27 1,431 2

본문

달수가 김 상무의 동업 제안을 거절한 이후 둘은 서로 눈치를 보아가며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는 상무와  상무보 자리를 지키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동찬은 사업을 크게 키우고 있었다.

그 즈음 동찬의 어머니 고 여사가  자궁 경부암으로 한국 원자력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수 년 째 투병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암세포가 대장으로 전이되면서 시한부 생명을 선고 받았다. 하루는 고 여사가 동찬과 희정을 불러들였다. 동찬과 희정이 너무 자주 면회를 오면 그들이 하는 일이 자신 때문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호통을 치며 그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던 그녀였다.

동찬은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참으로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급사하지 않은 한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안다고 하는데 동찬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평생을 바친 어머니가  이제 한 시름 놓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시기에 불치의 병으로 생을 마감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야속했다.

고 여사는 웬만한 통증은 참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동찬과 희정을 병원으로 불러들인 그 날 밤, 스스로  진통제를  주문해서 잠을 청했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녀도 남편의 곁으로 가는 순간만큼은 통증없이 평안하게 가고 싶었다.

“ 아가야, 내가 이렇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은 네가 동찬의 곁에 있기 때문인 거 알지? “

이 짧은 말이 고 여사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이며  유일한 말이었다. 고여사는 마지막 호흡을 고르는 순간까지 아들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동찬의 아버지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주필했던 법률서적 ‘민법개론’ 은 전문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십 수년 째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 민법개론의 인지세 수익권을 상속받는 동찬은 그 서적의 출판사를 인수하였고, 쪽 집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유명 입시 강사를 저자로 내세운 중, 고교 수험용 참고서를 출간하여 베스트 셀러의 대열에 올렸다.

동찬은 나아가 법학원, 컴퓨터 학원, 요리학원, 자동차 학원등 특화된 학원을 우선적으로 매입했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부실 학원을 인수하여 정상화시키는 수완도 발휘했다. 그렇게 하여 활성화된 학원 인근의 건물과 토지를 인수하여 학원 종사자와 학원생들을 위한 식당, 커피 숍, 극장 등 부대시설을 확충했다. 이렇게 동찬의 사업은 출판사, 학원, 부동산 개발 사업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갈대밭에 불을 놓아 번지듯 파상적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동찬은 아마도 조증이라는 유전적 광기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조증은 양성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인간의 에너지와 창의력, 모험을 즐기는 성질을 끌어들이는 기질로, 가벼운 조증은 야망과 성공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도덕성을 잃어가면서 목표에 집착하게 된다.

행동심리학자들이 야망의 동기를 유발하는 3가지 요소로 대의를 위해 싸우려는 욕구, 특정분야에 대한 열정, 명예와 부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다. 그러한 야망적 기질은 자발적이든 부모의 압력등 외부적 영향을 받은 것이든 장기간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데 아마도 동찬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희정도 동찬과 비슷한 내면세계를 가지고 동찬의 야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가난과 불구라는 희정과 동찬의 각기 가지고 있는 열등 요소가 그들을 조증 환자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동찬은 대형 아파트 단지에 의무적으로 들어서는 초,중,고 건축 입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낙찰받아 개교한 고등학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했으며, 장애인의 교육과 취업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자연스레 그는 장애인 협회 이사와 한국 장애인 올림픽 부위원장이란 자리에 추대되었다. 그의 이름은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렸고,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하여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인으로 추앙 받았다. 달수는 매스컴에 오르는 동찬의 사진 배경에서 희정을 비로소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달수는 오래 전 후배의 애인이었던 수연과 사랑에 빠진 일을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잠깐 열병을 앓았지만, 적절한 시기에 관계를 정리하여 후배의 애인과 사랑에 빠졌었다는 소문은 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믿어 왔었다. 그런데 달수는 평생을 통하여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이상형의 여인인 희정을  다시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동찬이 가로챘다는 피해의식과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겠다는 단순하고 위험한 생각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러나 달수는 자신의 현재의 모습으로는 희정의 앞에 당당히 설 자신이 없었다. 처음 희정을 만났을 때, 아니 지독히도 그녀의 뒤를 따라붙으며 구애를 할 때에도  자신의 외모, 자산, 지위 등을 고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동찬의 곁에 있는 희정을 볼 때 마다 달수는 왠지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그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달수는  경제적으로 사회적 지위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벌어진 동찬과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물지 못한 사랑과 옛추억에 스스로 호소해 보았다. 그러나 달수와 희정 사이의 짧디 짧았던 추억과 사랑이 차지하도록 공간마저도 이미 다른 것으로 메워져 있었다.

그 공간에 달수는 다시 자신과 희정의 사랑으로 채워 희정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무엇을 먼저 알아내고 그것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는 말을 자주 들어가며, 가끔 넋이 빠져 있는 달수가 벌떡 일어나 상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달수가 김 상무를 비지네스 클럽에서 독대한지 3개월 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 고맙네 나를 믿어줘서… 회장님에겐 내가 분위기 봐서 솔직히 보고하겠네. 독립하여 자신을 꿈을 펼치겠다는데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전 전적으로 상무님만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담과 두려움을 가지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 제 마음을 헤아려주시고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알았어, 알았어 나도 여기에 내 마지막 자존심을 걸었으니 걱정 말라구.”

둘은 회사에서 둘 사이의 동업을 눈치 채지 않도록 달수가 먼저 퇴직절차를 밟고, 김상무는 회사에 잔류하면서 사태를 지켜본 후 달수와 합류하기로 했다. 달수는 한창 건설붐이 일고 있는 김포에 회사 소재지를 두기로 하고 일전에 포장마차에서 만난 중 고교 동창 오진태를 불러들였다.  

“ 너 또 회사 돈 가지고 장난치면 그 땐 콩밥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너 나 알지?… 하하하…짜식 내가 너를 못 믿었으면 불렀겠냐, 우리 열심히 해보자 진태야.”

달수의 말에 진태가 조금 긴장하는 눈치를 보이자 어색해진 달수가 황급히 웃으며 분위기를 바꿨다. 달수는 진태에게 셈에 밝은 그의 장점을 살려 회사의 재정을 맡겼다.  달수가 김상무의 제안에 갈등을 하면서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잘 나가던 억대 연봉의 펀드 메니져였던 진태의 몰락을 목격한 것이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깊은 곳에 있는 동찬을 의식한 경쟁 의식일 것이다.

법인명 우림건설주식회사…사업 소재지 김포군…대표이사 김달수, 감사 오진태, 이사 김철근…이사 김달근, 이사 김달희…달수는 법무사가 보내온 두 동생의 이름이 형식적으로 등재된 법인 등기부 등본을 살펴보았다. 건설회사는 망하면 책상만 남는다고 했듯이 달수의 회사 역시 법정 필수 인력인 건축기사 및 기능사, 경리, 전화 응대을 위한 여직원 한 명을 포함하여 채 10명이 되지 않는 인원으로 출범했다.

댓글목록 2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7.07.11 16:47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br />
꽤 오랫만에 다시 돌아 왔구료<br />
<br />
거나 저나 달수네 회사가 잘되어야 될낀데<br />
작가가 또 우찌 쓸낀지 걱정이다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7.16 13:35
  자주 들어오려고 하는데 제 글만 있으면 좀 그래서...바쁘신 줄 알 지만 참여하는 동문들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