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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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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38회)

김시우
2007.07.30 01:52 1,640 2

본문

“ 아니, 신동찬…”

동찬이 목발을 짚고 서서 특유의 하얀 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또 다시 5년 만에 조우하는 그들이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희정이 그의 빈 휠체어 핸들을 잡고 서있었다. 한 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긴 그녀의 머리에 희끗한 은발이 비추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직도 달수는 그녀를 보면 가슴이 뛴다. 달수는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 이 나이에도 이런 설레임이 남아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 숨가쁨의 정체란 무엇이란 말인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희정은 여전히 달수에게 조신하게 목례를 할 뿐이었다. 달수가 희정에게 잠시 머물던 시선을 동찬에게 옮겼다.

“ 자네가 여길 어떻해?…”

“ 내가 작년도 수상자였거든… 그래서 초청을 받았지.”

“ 그랬구나... 늦은 감이 있지만 나도 축하해. 하하하…”

달수의 어색한 웃음 뒤에 가려진 멋적은 표정이 동찬에게 읽혀졌다.

“  자네 집사람은? 같이 안 왔어?”

“ 어?… 어! 마누라한테는 알리지 않았어…”

“ 뭐? 그런게 어딨어. 남편이 이같이 큰 상을 받는데 아내가 같이 나와 축하를 해줘야지…”

동찬은 달수의  다소 허둥지둥하는 모습과 그의 아내가 있어야 할 그의 옆 자리가 비어있는 것에 딱히 형언하기 힘든 어색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 그게… 나도 얼떨결에 급하게 참석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이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희정은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린 채 허공에 초점을 분산시킨 눈동자를 하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달수는 생각했다. ‘저 여자도 나 처럼 이렇게 기분이 이상할까, 아님 진짜로 무감각하여 저런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얄밉고 야속할 정도로 달수의 심기가 뒤틀렸다.

달수는 정말로 희정을 잊은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잊혀져가는 줄 알았다. 기억 저편에 그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 때문에 그의 감정이 흔들리는 일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다. 달수는 수상식 연회장을 빠져 나와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차장 밖을 희정이 가졌던 초점없는 눈으로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 회사로 모실까요, 아님 댁으로 모실까요?……… 형님?”

불법 오락실을 운영하다 검경의 합동수사에 단속되어 쫄딱 망하고  이혼당하고 갈 곳 없던 사촌 여동생 남편인 허상철을 달수가 거두어 회사 건물 관리와 운전기사로 채용했다. 달수가 대답이 없자 그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 형니임!”

“ 어? 글쎄… , 상철아! 오늘 나하고 한 잔 할까?”

“ 예? 조~오쵸… 왜 형수님 안 계시니까 외로우세요?”

“ 내가 떠나 보낸 사람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 그럼 왜 갑자기 약주를…”

“ 너도 마누라 도망갔잖아, 그래서 홀아비끼리 한 잔 하자는 거지 마, 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려고 해.”

“ 그, 그런가요…그럼 청양옥으로 모실까요.”

“ 거긴 안돼!”

청양옥은 달수 회사의 외식사업부가 관리하고 있는 고급 한정 식당이었다. 유흥사업장으로 허가되어, 한국무용 및 거문고와 가야금을 켜며 창을 부르는 미모의 접대부들의 세련된 서비스로 지역 유지나 큰손들이 은밀하게 드나드는 요정이었다.

달수는 몇 개월 전에 그곳에 들렀다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시의원과 지역 기업인들이 있는 테이블에 잠시 합석한 것이 메스컴에 보도가 되면서 검찰의 조사를 받았었다. 당시 모임은 한 시의원이 지역 기업인에게 뇌물을 받는 자리였었고 달수 역시 뇌물 공여자 또는 중재자로 몰려 곤경에 빠졌었다.  

달수는 아버지가 대한 기업 회장인 민규 아버지의 뇌물을 받은 정치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공직에서 물러났었고, 민규 아버지 역시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부정 축재자로 낙인 찍혀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경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승용차 안에서 달수가 약간 어둑해진 차창 밖을 내다보면 민국에게 말했다.

“ 여기가 어디쯤이냐?”

“ 조금 더 가면 부천 톨게이트예요?”

“ 그래? 부천으로 빠져나가…”

수년 전 달수는 김 철근상무와 룸싸롱에서 만난 경희로부터 경림이 부천역 광장에서 호프집을 운영한다는 말을 들었고, 여러 차례 그 건물을 지나쳤으나 차마 차를 세우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을 왠지 용기가 생겼다. 용기란 가끔씩 용기를 내는 사람조차 스스로 이해 못하는 순간에 나오나 보다. 달수가 경림이 운영하는 것이라고 여태 믿고 있었던 호프집 문을 밀고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 그랬군… 그런 일이 있었군. 난  세월이 그렇게 흐른 줄도 모르고… 나는 왜 우울할 때 더욱 더 과거에 집착하는 걸까? 그리고 그 멀리 있던 시절이 왜 어제 일어난 것처럼 시간적 착각을 느끼는 걸까.”

달수가 혈기 왕성한 초급 장교시절, 군부대 주위의 술집에는 유흥주점이나 사창가에서 지내 소위 한물 간  닳고 닳은 아가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달수는 경림도 그들 중의 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녀를 알아가면서 그녀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었다.

그녀와 몇 번 밤을 보낸 것 만으로 그녀가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온전한 가정에서 자란 달수는 경림이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에서 사랑과 존경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달수의 연인이거나 달수가 연정을 품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위기의 여자들이었다. 희정, 수연이 그랬고, 경림, 은숙, 간호장교 였던 차미례 중위가 그랬다. 그리고 그녀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달수가 그녀들에게 보다 진하게 느낀 것은 이성에 대한 감정보다는 연민의 감정이었는지 모른다. 고통받는 자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달수의 세심한 성격이 달수를 그녀들 앞으로 다가 세웠을 것이다.  

“ 형님, 그 호프집 주인이 누구예요?”

“ 내가 총각시절 군에 있을 때 외로운 토요일 밤마다 일용한 양식과 따뜻한 영혼을 전해준 여자였지… 톡 쏘는 크라운 생맥주에 그녀가 만들어낸 낙지 볶음 국수는 정말이지 맛 있었어,그걸 오늘 다시 먹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그 여자가 세상을 등지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다는 거야.”

“ 예? 도망갔다는 거예요 아님 죽었다는 거예요? ”

“ 글쎄…그 중간쯤 되겠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달수를 힐끗 돌아보고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던 상철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 저…그나 저나 형수님은 이제 안 오신데요?”

“ 내가 보냈다.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겠지.”

“ 근데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요… 형님께서 요즘 무척 외롭고 불안해 보여서요. 쫌 걱정이 되서 그래요.”

“ 나도 네 부부관계에 대해서 콩나라 팥나라 하면서 너를 많이 혼냈지만, 부부관계는 그들 자신들만이 안다고 했듯이 우리도 우리만의 비밀이 있다. 언제가 밝혀지거나 내가 또는 자기 스스로 얘기할 때가 오겠지.”

이후 달수는 부사장 진태에게 회사를 떠맡기고 3개월 가량 자리를 비우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날 15년 형을 언도 받고 10년 만에 가석방되는 경림을 교도소 문 밖에서 맞은 것은 다름 아닌 달수였다. 그의 옆에 경림의 동생 경희가 진한 눈물을 흘리며 서있다.

댓글목록 2

김종삼님의 댓글

김종삼 2007.07.30 09:15
  기다려가며 연재를 읽다보니 연결을 위해 자주 지난호를 들쳐보게 됩니다. 언제 달수의 부인이 떠나갔는지, 읽었던것 같은데 벌써 가물거립니다. 혹시 중간 정도에 연재를 묶어서 파일로 올려주시면 쉽게 지난호를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책을 읽을때도 자주 읽었던 장을 뒤Ȍ33;거립니다. <br />
그런데, 달수라는분 참 사업수단이 좋은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 살면서 꼭 제가 가지고 있다가 판 아파트나 땅이 크게 올라서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20~30% 정도 올라서 신났다고 팔고 나면 그후에 100%~200% 더 올라서 별로 였습니다. 분당의 아파트도 그랬고, 송파에 본가가 있어서 아파트를 팔고 나니 2배이상이 더 오르고 겨우 20~30%정도 오른것도 양도세 등으로 세금내고 나니 별로 소득이 없었습니다. 한수 배워야 할것 같습니다.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7.30 13:31
  김동문의 기억이 맞습니다. <br />
달수가 대학시절 아내될 사람을 만난 내용이 있었지만 떠나갔다는 내용은 금회에 처음 언급뒤는 것입니다. 시간나는대로 지금까지 올린 내용을 종합하여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