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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3

김시우
2007.01.25 14:36 1,400 3

본문

“ 김대위!  너 오늘 이상하다  예전의 너 같지 않아,  왜 그리 말이 없냐 ?  무슨 생각해? ”

촛점이 없는 달수의 눈동자를  본 동찬이 추억의 소용돌이에 말린 달수를 깨운다.
달수는 예상 밖의 장소에서 동찬과 함께 그녀를 상봉한 후 머리속이 혼란스러워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어  그게….  잠깐 너하고 같이 병상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어, 그것도 추억이라고 돌아보니 가슴이 저미네”

“ 그래 ?  넌 너무 센치한게 탈이야… 잠깐만 좀 걷자  ”
대학 정문을 나서자  동찬은 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 동찬씨  그냥 택시 타고 가요 네?”
그녀는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그를 만류했다.

“걸을 수 있어?”
달수 역시  놀란 표정으로 동찬에게 물었다.
그녀가 동찬에게 목발을 건네자 그는 오늘은 그냥 걸어보겠다면서 오른팔을 이용해 휠체어의 팔가대를  집고
일어서려 하지만  허리를 반도 못 펴고 그냥 주저 앉는다.

“신대위, 그냥 가지 그래 무리하지 말고… 정 걷고 싶으면 목발을 사용해.  희정씨 목발 이리주세요."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파랗게 질려 달수를 쳐다보고는 다시 동찬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핀다.  
달수도 ‘아차’ 싶어 헛 기침을 한 번 하고 동찬을 내려다 본다.

동찬의 이마와 코잔등에는 땀이 송송 맺혀있었다.
일어서려고 했다가 주저앉은 그의 표정은 적 전투기에게 꼬리를 잡힌 전투기 조종사의 얼굴같이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뭔가 보여주어야 겠다는  의지에 이글거리듯 타고 있었다.
달수는 그러한 동찬의 눈빛에서  아내를 뻬앗기지 않겠다는 경계심과  호전성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달수는 동찬이 희정의 이름을 불러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존심 강한 동찬이 은근히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던 달수를 오랜만에 만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다 실패하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달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을 들었냐고 동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 어…저… 신대위, 자네 집도 부평이었지 저 현대백화점 옆에 있는… 현대아파트. 우리 회사에서도 부평 1차 지구에
아파트 12,000호 올릴 때, 회장님 수행하고 그 쪽을 몇 번 지났었는데 자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
달수는 다시 동찬의 반응을 살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자 더 이상 다음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 저… 김대위 나 말야…. 음… 나 말이지… 자네가 좀 도와주겠나?”
동찬의 진지한 태도변화에  달수는  긴장했다.

“ 그래 말해봐,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달수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아  그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나 여기 대학정문에서 저기까지  걸어올라가는 것이 소원이야. 그러니 자네가 나 좀 옆에서 부축해주겠나?
그냥 내가 넘어질 것 같으면 잡아주면 돼.  넘어져 다쳐도 자네 원망하지 않을게.  넘어진게 한 두 번이 아니야.”

그의 여윈  왼쪽 광대뼈 위에는 아스팔트에 긁혀 생긴 상처가 아문 흔적이 버짐처럼 하얗게 번져있었다.
동찬의 오른쪽 부위는 어느정도 힘이 있어보였으나 왼팔은  팔꿈치가 굽혀져 바깥으로 틀어져 있었고  
왼 다리는 거의 힘이 없어 보였다.

“신대위, 네가 그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그래도 난 겁난다. 왜 굳이 평지를 두고 언덕길을 오르려고 해.”

“ 나 말이지… 저기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고 싶은게 있어.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
넘어지고 깨지고 … 한 번은  정신을 잃어 119가 긴급출동해서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있어,  
그래서 와이프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  그러니 오늘은 자네 오른쪽 어깨만 잠시 빌려주게나”

달수의 부축으로 일어선 동찬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 발 두 발 발걸음을 옮겼다. 뒤틀어진 왼팔과 오른팔은
마치 줄타기 하는 광대처럼 양쪽으로 벌려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다.  이를 악물자 그의 마른 얼굴의
광대뼈와 턱뼈가 더욱 두드러졌다.  

그의 걸음은 뇌성마비환자가  혼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우스꽝스럽기조차 하였으나,
그의 눈에서 반드시 저 언덕위에 올라야 한다는 의지가 발산했다.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눈싸움으로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그 선비의 눈빛이 이러 했으리라.

“아 악”
동찬의 힘이 없는 왼 발등이 바닥에 끌려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달수가 그의 왼팔을 잡아 세우려 하였지만
달수도 중심을 잃고 같이 넘어진다.  다행히 달수가 동찬의  팔을 잡아 당긴터라  둘 다 큰 충격은 없었다.
둘은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본다.  

“ 젠장 오늘도 실패군!  저 구름은 아무런  대과없이 소리없이 조용히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가고 싶으면 가는데 나는 왜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못갈까…”

“ 왜 못 가? 지금가고 있잖아, 단지 친구의 어깨를 하나 빌렸을 뿐이지… 그건 그렇고  저 언덕위에서 보고 싶은 게 뭔데? ”

“ 법학원!”  
동찬이 짧게 힘주어 말한다.

“ 신도림역 앞에 앞에 있는 고시학원?  그걸 왜 …”

“내가 지난 달 매입했어.  빌딩을 서서 보아도 시원찮을 텐데 휠체어에 앉아서 보니 영…”

“아니 내가 건설회사에 근무해서 잘 아는데 그 건물이 적어도  1,200억 이상 할 텐데,
네가  그 많은 재산이 있었단 말야? ”

“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구… 내가 1급 불구 판정받고  공군에서 받은 보상금과  자동차 보험금, 와이프가 떠난 뒤에
팔은 부평 현대아파트, 그리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신촌의 고급 양장품 가게를  모두 팔아  여동생이 사는 서초동에 
 아파트를 5채 분양받아  4채는 세를 주고 한 채는 내가 살면서 1-2년 마다  번갈아 가며 팔아 시세 차익을 남겼어.

" .................................."

"또 전국의 요소 요소의  신개발 아파트에 투자했지.  몸이 이러니 할 수 있는 것이 어디다 투자하고
기다리는 것 밖에 없지 안그래? 근데 그게 돈이 되었던 거야,  그리고 얼마전 모두 팔고 좀 모자라는 돈은
은행에서 융자해서 그 빌딩 인수한거야. ”

" 와우! 너 제대하길 잘했다. 안그랬으면 그 사업수완 비행기 타면서 허공에 뿌릴 뻔 했잖아"
달수는 불구가 되었다는 충격을 아직도 씻지 못하고 있는 동찬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싶었다.

“ 나도 제대 직후에 거기서 수강했는데… 사시나 한 번 보려고…   아휴…사실은… 법무사를 준비했어.
법무팀장으로 발령받고 팀원들은 전부 명문대 법학과 출신인데,  나는 법대근처도 안갔으니  팀원들이 은근히
무시하는 것을 느꼈지.”

" ............................................"

동찬은 갑자기 달수의  목소리가 커지며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다.  

“이 대학원에 등록하기 전까지 1년정도 6법 전서를 들고 나녔지.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지만 한가지 깨우친 게 있어.
법은 결국 상식선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올바른 사회적 가치관과 양심을이 있다는 전제하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내가 곧 법이요 내가 곧 천하야 안그래? "

“ ……………………………………..”

동찬은 달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직도 감을 잡지고 못하고 있는데 달수가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 내가 하려고  해서 안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달수는 말끝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려 이미 달수에게 고개를 돌린 동찬의 눈을 뚫어지게 본다.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 달수는 동찬만이 들릴만한 작은 소리로 또 다시 말을 잇는다.

“ 난 내것을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아, 언젠가는 다시 찾아오지, 비록 그것이 파멸로 향하는 길이라 하더라도...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란 노래도 있잖나.  
어차피 영겁이라는 세월의 X축에 점하나 찍지도 못하고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의 길 … 바로 여정이라네."

“두 분 일어나세요 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관악산길을 전부 세 낸 것도 아니고 고  내참…”
어색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희정이 깬다.  희정이 그들을 내려다 보며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피식 웃어 보인다.  그녀의 뺨에 살며시 보조개가 머물다 이내 진다.  
사루비아 꽃잎끝을  빨면  나오는 상큼한  꿀이 담겨있을 것 같은  부끄러움을 살포시 머금은 보조개 …




“ 김달수 중위님! ”

헌병이 땅에 반쯤 박힌 돌을 전투화 발로  툭 툭 걷어차는 달수를 부른다.
달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들어 듬성 등성 살 얼음이 있는  논 너머  눈 덮힌 산을 바라본다.  
달수는 그녀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  소심함에 그리고  지갑을 빠뜨리고 온 자신에게 스스로 화가 치밀어 올라
전투화 앞에 있는  돌맹이를  세차게 걷어찬다.

“ 김중위님 추우신데 여기서 기다리십시요, 강남터미널 가는 버스는 4-50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 됐어 마.  (쇄끼… 병주고 약주고… ) ”  
투덜대는 달수의 눈에 저멀리서 시골길 푸석한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버스가 들어온다.

“ 야 야 헌병!  저... 저 버스 좀 세워봐,   얌마 빨리 나와봐”

“ 예? 저 버스는 서울역 행이데요.  김중위님은 강남 터니널 가는게 아녜요?  
그 버스는 4-50분 이후에나 온다니까요. 초소에 들어가서 기다리시래두 참.”

헌병을 앞세운 장교가 서울역행 버스안에 들어서자 버스안에 있던  승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수를 바라본다.

“ 탈령병이 있나벼… 아이구 무시라”
버스 승객중  한 아주머니가  놀란 목소리로 주위를 살피고  여기 저기에서 수근거린다.

“기사 아저씨…  이 중위님 지금 긴급한 작전수행중이니  그리 알고 표 검사는 하지 마십쇼.”

(“쇄끼… 그것도 끝발이라고….”)  
달수는 푹 뒤집어 쓴 철모 아래로 헌병의 윙크를 보고  손을  들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아무말 없이
중간 정도의 빈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보다 눈을 감는다.

달수의  뺨은 차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날리던 그녀의  머리칼에  간지럽다.
(음...) 라일락 꽃 향기도 … 살포시 피었다 지는 보조개도 선하다.





댓글목록 3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1.25 23:44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 움직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br />
4편도 잠시후면 올라갑니다.

돼랑님의 댓글

돼랑 2007.01.25 17:00
  1착이요....단숨에 읽어 내렸읍니다. .......꼴깍....?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7.01.25 20:25
  전개가 좀 어려워 지는 것 같은데<br />
어떻게 인연이 맺어지고 풀어질런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