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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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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31회)

김시우
2007.06.24 13:26 1,39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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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은 그냥... 자네 요즘 너무 야근 자주 하는 거 같아서 내가 한 잔 사려고... 좀 쉬엄 쉬엄 해."

평소에 회식에도 잘 참석 안하고 참석해도 일찍 자리에서 일어서는 김상무 였기에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하는 제안에 달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 내심을 알 수 없었다. 만날 사람이 있어 일찍 퇴근하겠다는 김상무가 뒷모습을 보이고 사무실을 나갔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던 달수가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책상을 정리하고 김상무가 일러준 장소에 도착했다. 건물에 들어서자 검정 나비 넥타이를 한 웨이터가 복도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밀실로 안내했다. 김상무는 어느새 그곳에 와 있었고, 나이를 감춘 듯 짙은 화장의 서른 초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무언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 어? 김차장, 어서 와. 쉽게 찾았어?”

“ 그냥 식당에서 만나지 왜 이런 곳까지…”

“ 저기 말이지, 난 술을 먹고 싶어도 내가 회사 중역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도 자꾸 직원들의 입에 오르 내리것이 부담스러워서 말야, 회사에서 좀 떨어지고 은밀한 여기가 좋겠다 싶어서… 자, 거기 좀 앉지 그래.”

김상무가 서둘러 짙은 화장의 여자를 밀실에서 내보내고 달수에게 자리를 권했다. 달수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룸을 빠져나가는 그녀를 돌아보면서 한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밀실 분위기에 어리둥절하며 살결같이 부드러운 양가죽 쇼파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 우리 맨 정신에 얘기를 하는 게 낫겠다. 잘못 하면 술에 취해 진정성이 의심 받을 수 있으니 까… 김과장, 저 말야… 내가 회장님 조카라는 이유 때문에 사장단하고 문제가… 그게 이렇게 나를 옥죌 줄은 몰랐어. 나는 뻔히 보이는 사장들의 견제를 견디는 게 이젠 싫어…계열사 사장들의 회장님 경영방침에 어긋나는 것을  밀고하는 역할도 이젠 신물이 나고…그렇다고 못 본 척 할 수도 없고…”

“………”

“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님 앞에서 나를 은근히 기 죽일려고 하고… 어떤 사장은 나를 발판으로 자리보존이나 더 높은 자리, 더 힘있는 자리에 올라가려 하고… 그들의 기 싸움에 찡겨서 너무 힘들어… 내가 회장님에게 누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인데 우리같이 나가자 .”

“ 네? 나가다니요? 그게 무슨…”

“ 독립해서 다른 회사를 차리자는 거야,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우리 같이 해보자 응?”

달수는 김상무의 심정을 이해할 만 했다. 특히 공채출신 사장들과 김상무의 알력은 말단 사원들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했다. 달수도 직장생활에 다소 지쳐가고 있었던 차라 김상무의 제안을 받자, 누구라도 그러하듯 가지고 있는, 마음속에 짓눌려 가라앉아 있었던 봉급쟁이 생활을 당장 때려 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머뭇거리는 달수의 눈치를 보던 김상무가 말을 이었다.

“… 그래서 말인데…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 제가 어찌 감히 상무님을 도울 힘 같은 게 있습니까? 그 말씀은 더 이상 하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그 얘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니 김과장? 김과장이 나 없으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어떻게 그렇게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가 있어? 키워준 사람이 누군데…”

“ 키워 주셨다구요? 들판에 내던져졌다는 것이 옳은 표현 아닙니까? 하긴 불모지에서 살아 남아 그것으로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졌고 회장님 눈에 띄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으니 어찌 됐거나 상무님 덕 본 것은 사실이네요.”

“김과자앙~ 왜 그래, 술도 안 먹고 취했어?”

달수의 비꼬는 듯한 다소 격앙된 목소리에 김상무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달수가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상무가 달수에게 건설조정분쟁 업무를 맡겨 달수는 군 재직시 일년에 몇 달씩 밖에서 생활해야 하는 야전 훈련을 이제 그만 두려나 싶었는데, 그 기간을 4년 연장시키고 이어서 자신의 비서로 앉힌 다음 결국 자기사람 만들어 회사를 배신하는 길로 인도하는 김상무의 의도를 알아 챘기 때문이다. 건설분쟁조정업무를 맡았던 대부분의 동료들은 견디다 못해 전보를 신청했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퇴사를 했어야 했다.

“ 김과장, 그러지 말고 같이 나가자, 그래서 우리의 세상을 멋지게 만들자. 난 이제 숨이 막힐 것 같아. 외삼촌 아니, 회장님도 이제 연세가 있으셔, 청해물산 사장인 조카가 회장자리를 승계하고 물갈이 하기전에 내가 알아서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야. 자네도 낼 모래면 마흔이야.”

달수가 이제 그 말은 다시 꺼내지도 말라고 하고 일어서려 하자 김상무가 서둘러 달수의 허리춤을 붙잡아 앉히고 호출 버튼을 누르니 기다렸다는 듯이 마담이 룸으로 들어왔다. 달수는 고개를 정면으로 고정하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룸 벽에 장식되어 있는, 아마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본듯한 여신상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마담의 뒤를 따라 들어와 달수의 허리를 감싸고 고개를 기울이며 아양을 떠는 아가씨가 옆에 있는지 모르는지 달수는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김상무는 움직일 적 마다 바짝 달라붙은 니트 원피스가 밀려 올라가 팬티가 보일 듯한 아가씨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넣고  왕복하며, 연신 달수의 눈치를 보았다. 특별 주문하여 달수의 옆에 앉아 있는 탤런트 뺨치게 이쁜 아가씨와, 역시 특별 주문한 고급 양주를 마다하고 맥주를 물 마시듯 하는 달수의 눈치를 보며 달수의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뭔가 조치를 취하라는 듯한 고개짓을 보냈다.

최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달수의 옆에 앉은 그녀와  달수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최양이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려 시선 각도를 좁히고 달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돌차게 얘기했다.

“ 저기… 아무리 분위기가 안난다고 해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법이 어딨어요. 무지 서운하네요…제가 싫으세요.”

그제서야 힐끔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된  달수가 어깨를 틀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는 달수를 지켜보던 김상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 그거 봐, 내가 뭐랬어? 탈랜트 뺨치는 아가씨라고 했잖아… 하하하 천하의 김달수도 어쩔수 없구만 하하하…”

달수는 그녀를 어디선가 본 것이 분명하다. 달수가 그녀에게 자신을 본 적이 있냐고 하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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