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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혼놀 / 무주례 / 졸혼!

임동섭
2017.04.18 08:11 1,57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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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놀 / 무주례 / 졸혼!

(임동섭 목사 / 에콰도르 선교사)


지인을 ‘천등산’ 입구에 내려주었습니다. 그는 혼자 등산을 즐긴다고 했습니다. 등산 후에는 식당에서 혼자 밥 먹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가끔 혼자 식사하면서 술도 마신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혼밥(혼자서 식사), 혼술(혼자서 술 마심), 혼놀(혼자서 노는 것)을 즐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방도시에서 알부자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학교동문들과 함께 식사 할 기회가 있을 때 그가 돈 낼 것으로 모두 기대한다고 합니다. 음식 값을 내도 감사하기 보다는 부자가 너무 쩨쩨하다고 흉을 본다고 합니다. 잘 알지도 못한 동문이 찾아와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고 합니다. 만나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 지더랍니다.


자발적으로 혼자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쉬고 싶다!’가 72%를 차지합니다. ‘혼자=외로움’이라는 등식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 홀로 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같이 공부한 H목사님이 전주에서 목회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 주일 오후예배에 설교해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주일 오전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주일 오전예배 후 교회의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교제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맡은 시간들이 있고, 오후예배는 3시 30분에 시작하므로, 우리 부부는 그 사이에 ‘한옥마을’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한옥마을’까지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여러 번 와본 곳이지만 거리만 둘러봤지 ‘경기전’은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경기전’을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경기전 정전(慶基殿 正殿)’의 특징이라면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어진(국보 317호)’을 모신 건물이라는 점입니다. ‘어진(御眞)’은 ‘왕의 초상화’를 뜻합니다.


‘한옥마을’ 거리에도 ‘경기전’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거의 다 ‘셀카봉’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촬영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도, 그러니까 둘이 자연스럽게 함께한 모습을 남기고 싶을 텐데 왜 남에게 부탁하지 않고 셀카로 처리할까 궁금했습니다. 오직 우리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예식장은 ‘수원역’에 가까운 N호텔이었습니다. 식장에 들어서니 중앙에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나중에 함께 행진할 통로가 있었고, 좌우에 원탁들이 3계단 아래에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원탁은 총 30개가 놓여있었는데, 원탁 하나당 10개의 의자가 놓여있었습니다.


예식이 시작 된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예식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예식을 한다는 느낌보다 축하공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드디어 ‘성혼선언(문)’ 선포시간이 되었습니다. 신랑의 아버지가 단상에서 성혼선언문을 낭독(선포)했습니다. 이어 등단한 신부의 아버지가 덕담(주례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순서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례(사)가 없는 예식이 20%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젊은이들의 반응은 ‘신선하다!’ 그리고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는 예식 후에 왠지 모를 허전함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예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서약하고 신부는 신랑에게 서약했습니다. 즉 서약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가 헤어지기로 결정하면, ‘배우자’ 앞에서 한 서약을 서로 무시하면 자연스럽게 이혼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되고 있습니다.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했다!’라는 뜻입니다.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는 점에서 ‘별거’나 ‘이혼’과는 다릅니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므로 법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롭고 경제적인(재산분할) 문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사생활을 보장하느냐의 관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즉 별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졸혼을 “부부가 함께하면서도 원하는 삶의 내용은 자유롭게 추구하자는 ‘따로 또 같이’의 철학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너무 아름답게 포장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에 ‘졸혼’은 황혼이혼 보다 더 이기적으로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대중매체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정을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을 때 저는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모이는 곳마다 화제는 ‘탄핵’이었습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면 아주 적대적이었습니다. 분쟁의 골이 너무 깊었습니다.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이 남한을 위해 핵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핵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아주 위험하며 환상적인 안보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는 ‘미세먼지’ 농도가 몇 년 전보다 엄청나게 심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잠을 자다가 호흡곤란으로 깰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뾰쪽한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문제나 환경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나 홀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큰일도 할 수 있고 실제적인 자기 수입도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내려가는 것은 ‘재앙’이라고 봅니다.


‘나 홀로 문화’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있다고 봅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유한한 노력으로 하나님(영원히 전능하신 분)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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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물리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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