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라면 봉지가 전투기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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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봉지가 전투기보다 강하다!
(임동섭 목사 / 에콰도르 선교사)
그는 어느 날 강원도 원산시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닷가에 떠밀려온 이상한 비닐봉지를 보았습니다. 그 비닐봉지는 ‘삼양라면’봉지였습니다. 그는 라면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삼양라면 의 ‘면’자를 보고 국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라면을 ‘꼬부랑국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이 가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쇄된 한글
포장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라면 봉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판매나 유통과정에서 별질, 훼손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남조선은 이런 작은 물건
하나까지도 인민의 편의를 도모하는구나! 그렇다면 ‘인민의 지상낙원’이라던 우리 공화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북한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비행군관인 이웅평
상위(대위)였습니다. 그는 당시 배급받은 석탄가루를 진흙과 섞어 만든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고 합니다. 일반 주민들은 땔나무로
난방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전투기의 라디오로 한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로는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김책
공군대학’을 졸업했으며, ‘조선인민군 공군 1비행사단’ 책임비행사였습니다. 1983년 상위(대위) 시절 전투기를 몰고 탈북
했습니다. 탈북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분 중의 한 분입니다. 그 이유는 북한 공군 장교가 비행기를 몰고 내려온 사례(4건) 중에서
‘MiG-19’기를 타고 온 최초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귀순 당시(1983년 2월 25일) 한국에서는 ‘팀
스피릿’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날 훈련을 위해 오전 10시 30분쯤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MiG-19 편대 중
그의 전투기는 편대를 이탈하여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습니다. 추격하는 북한 전투기들을 따돌리기 위해 저공비행을 하였습니다.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전속력으로 남하했습니다.
공산 진영의 군수품을 가지고 올 경우 장비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한 법률에 따라서, MiG-19기로 무려 15억 6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2천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한 달 뒤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특별 임관되었습니다. 그는 다음 해에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결혼도 하는 등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망명으로 인해 고통 받을 가족 생각에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북한 정부는 그의 부모와 가족들을 모두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나중에 처형되었다고 같은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모 탈북자는 증언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도 대단히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여성동아’ 2000년 7월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남편의 상태를 증언했습니다. “독극물을 탐지할 수 있는 은제품을 쓰게 하고, 가게는 한 곳에 단골로 못 다니게 했어요. 이웃에서 주는 떡이나 배달해오는 우유도 먹어서는 안 되고요.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갑자기 아이 아빠가 없어지는 일이 생겼죠. 언제 어떻게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만큼 항상 긴장하고 살아야 했어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졌어요. 약을 숨기거나 버리기 일쑤였고, 주위 사람들을 모두 의심했죠. 그 속상함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어요.”
그는 1996년에 대령으로 진급했습니다. 2002년 5월 4일 ‘간 기능 부전증’으로 별세했습니다. 북에 남은 가족들의 생각에 지속적으로 폭음을 한 것과, 혹시 모를 테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간을 망가뜨린 원인이라고 합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튼(Edward Bulwer Lytton)’이 발표한 역사극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duc de Richelieu et de Fronsac)’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리슐리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 때 재상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입니다. 희극 속 ‘리슐리외’는
침착한 목소리로 하인에게 “펜은 칼보다 강하네! 칼을 치우게! 국가는 칼 없이도 구할 수 있네!”라는 대사를 읊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시 “적대적인 신문 4개가 1,000개의 총검보다 더 무섭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요즈음은 ‘키보드’가 칼보다 강하다! 라고들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52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에도 고난을 피하기 위해 칼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천사들의 힘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초라하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세계 3분의 1인 약 24억 명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는 펜 끝에서 기록된 글이 거짓되지 않고 진실하여,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죽음의 길로 가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힘을 가진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신뢰하는 이유는 펜을 가지신 분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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