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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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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십년공부 나무아비타불

최강일
2004.06.07 15:48 1,725 1

본문

Columbia에는 두개의 박사학위 프로그램이 있다. 하나는 각 단과대학(College)에서 주는Doctor (Dr.) 학위가 있고 종합대학(University)에서 수여하는 Doctor of Philosophy (Ph.D.)가 있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은 둘 중에 하나로 학위를 준다. 예를들면 공과대학 경우에 하버드는 전공에 상관없이 Ph.D. (한국말로 번역하면 철학박사: 예전에는 철학박사가 모든 박사의 통칭이었기 때문에..)로 주고 MIT는 Dr. of Engineering (공학박사)로 준다.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은 대동소위하지만 Ph.D.가 절차가 좀더 까다롭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서 다른 대학이 아닌 Columbia에서 석사학위 (Master of Philosophy)가 있어야 한다든지 처음 2년간 풀타임으로 교과 과정을 마쳐야 한다든지 또는 졸업논문 심사위원이 5명 (공학박사는 3명) 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장학금을 받은 강치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Ph.D. 쪽으로 프로그램을 정했고 박사자격시험 (Qualifying Exam) 통과 후 행해진 연구결과를 모아 박사학위 논문 예비심사 (Proposal)을 가볍게 통과, Pitney Bowes를 다니면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강치는 공부하면서 가끔 학교 채플 (Chapel: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곤 했는데 그때 항상 간구하는 것이 있었다. 10년공부 나무아비타불이 안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1984년 미국에 와 가을학기에 시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시작한 후 10년안에는 목표로 한 박사학위를 마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강치가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정리해서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한 것은 1차 졸업논문 시험을 통과한 1993년 가을부터였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994년 봄학기에 학위를 마쳐야 하는 것이기에 회사를 다니면서 논문을 쓰는 강치의 마음은 초조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5월 졸업을 위해서는 늦어도 4월에는 박사학위 논문 심사 (Defense)를 마쳐야 하고 그럴려면 심사위원들에게 2월달 쯤에는 통보를 해주어야 바쁜 5명의 심사위원을 한날로 모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인것이다. 2주일에 한번씩 할아버지 지도교수 Freudenstein을 만나 그 주일에 쓴 논문을 주고 지난 주일에 강치가 준 논문을 교정하거나 discussion을 하는데 마음이 바쁜 강치의 속도를 지도교수가 못 맞추는 일들이 생겼다. 이미 내년 5월에 졸업을 하고 싶다고 말을 했건만 지도교수는 서두르는 건 고사하고 강치가 써준 논문을 미처 다 못보고 오는 일들이 빈번했다. 다른 6명의 박사과정학생도 봐 주어야 하니 바쁘기도 하겠지만 마음이 급한 강치는 교수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강치는 이에 개의치 않고 나름대로 복안을 갖고 열심히 논문을 써가면서 지도교수를 push 해 나갔다. 하도 다그치니까 교수가 하루는 전체 연구결과는 이미 봐주었으니까 논문 내용은 꼭 from cover to cover로 다 읽을 필요는 없다고 짜증 섞인 변명을 하는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끝에 3월 말경 교수와의 논문 review가 모두 끝났다. 완성된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쓰는 것만으로도 이정도 시간이 걸릴 줄은 예상을 못했다. 논문을 쓰면서 새로 튀어나온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강치는 9개월이나 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논문 review가 끝나던 날 강치는 지도 교수에게 4월에 논문심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가

“I think it is too late. You know this is already end of semester. Everybody is quite busy. You better have schedule for defense next semester.”

5월에 졸업을 하려던 강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강치는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Professor, don’t worry. I already meet the other four professors and they all agree they could come on Apr. 15 for my defense. You are the last committee member I need to get approval. Are you free on Apr. 15 at 2 PM?”

강치의 지도 교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지도교수인 자신이 먼저 승낙을 하고 committee에 들어올 다른 교수들과 날짜를 의논하고 이를 학과에 통보 해야 하는데 이미 다 되 있다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강치가 계속 늦어지는 교수와의 논문 교정 과정으로 인해 자신이 미리 지도교수가 승인한 것처럼 말하고 학과와 다른 committee 교수들 네명을 오고 가면서 날짜를 맞춘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지도교수가 보통 화요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Everybody is in your side including Mary (Mary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학과의 Administrator이다). Ok! Looks like I don’t have choice. Let’s do it.”

이틀후인 4월 17일이 5월 졸업을 위한 논문 deposit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데 그보다 이틀전으로 Defense (최종 박사 학위 논문 시험) 날짜가 결정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5월 졸업을 하려는 강치의 용의주도한 작전의 결과였다. 유학 와서 이미 기계공학, 항공공학, Computer Aided Design 분야로 3개의 석사를 마쳤고 동시에 박사과정에 필요한 2개의 시험 (자격시험, 논문 예비시험)을 통과 이제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박사학위논문 시험의 날짜가 1994년 4월 15일로 잡힌 것이다. 실로 1984년 미국으로 유학을 온지 10년, 그리고 콜럼비아에서 공부를 시작 한지 5년 만에 최종 목표의 마지막 관문 앞에 강치는 와 있는 것이다.

댓글목록 1

JP님의 댓글

JP 2007.04.2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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