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56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자기계발] Dr. Choe

최강일
2004.06.07 15:51 1,660 5
  • - 첨부파일 : CUgraduation.jpg (102.7K) - 다운로드

본문



4월 15일, 강치 인생의 마지막 중요 시험의 날은 밝았고 시험을 볼 때 말이 없어지는 강치를 아는 와이프는 잘 하라는 간단한 말로 배웅을 하고 시험 끝날 즈음 학교로 가겠다고 말을 했다. 91년도부터 4년이나 탄 도요다 코롤라 이건만 조지와싱톤 브리지를 건너는 강치의 기분은 난생 처음 타는 차인 양 생경했고 20분만에 도착한 캠퍼스도 모두 새롭게 보였다. 짧은 운전 시간이었지만 아쉬모프가 쓴 Si-Fi 소설에 나온 과거를 보여주는 신기한 박스처럼 이곳까지 오는데 걸렸던 10년이 짧은 파노라마처럼 강치의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케네디공항에 도착했을 때 두 주먹을 불끈 쥐던 강치, 세탁소 아르바이트가 너무 힘들어 멍하게 에어컨 밑에 누어 자신의 빈 머리를 느끼던 강치, 때로 안 풀리는 시뮬레이션 문제로 컴퓨터와 미친놈 처럼 밤새 대화를 나누던 강치, 기적처럼 이루어진 콜럼비아 입학을 위해 어두운 차 안에서 기도하는 강치, 자격시험 통과 후 같이 가슴조렸던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던 강치.. 이런 모습들이 서로 엉키며 소리를 내며 강치 앞에 보여졌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먼저 지도교수를 만나 간단한 주의사항과 당부를 듣고 곧 다른 4명의 심사위원이 있는 방으로 강치는 들어갔다. 5명의 심사위원 중 자신의 지도교수를 비롯 3명이 자신의 학과 소속 교수이고 2명은 다른 과에서 오는데 Pitney Bowes에서 강치의 보스이며 이전 지도교수였던 David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논문 사본을 다 읽어 보고 온 교수들 앞에서 강치가 정확하게 2시부터 30분 정도 Presentation을 했다. 그 후에 Chapter별로 질문이 이어졌다. 별 어려움 없이 대답을 하고 시험을 마친 시각은 2시50분. 지도교수가 시험사정회의를 할 테니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자 이미 와이프가 와 있었고 다른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났냐고 물었다. 글쎄.. 별 대답이 없는 강치에게 한 학생이 말한다. 보통 2시간 길어지면 4시간도 걸리는데 이외라고 말했다. 시험이 끝난 후 교수들 그리고 동료 학생들과 함께 할 간단한 파티를 위해서 과자와 음료수를 준비하는 와이프의 손이 바쁘다. 별 말이 없는 강치를 쳐다보는 와이프의 표정이 오히려 차분하다. 강치는 얼마전에 뉴욕대학 (New York University)의 한 한국 학생이 마지막 학위심사 시험에서 영어 공부 더하라는 말과 함께 떨어져 끝내 공부를 포기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그리고 버클리의 한 외국인 학생은 자신을 떨어뜨린 지도교수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끔직한 사건도 비슷한 때 있었음을 지면을 통해 알고 있었다. 강치는 차라리 처음 자격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이 낫지 논문까지 다 쓰고 떨어지면 정말 죽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강치를 지도교수가 불렀다. 처음 시험 볼 때 그대로 교수들이 자리한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라고 말한 후 각 심사위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해 나갔다. 대부분 호의적인 반응이었으며 작은 교정 요구를 하는 교수가 한명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치의 지도교수 차례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본 후 강치의 지도교수가 일어나서 말을 했다.

“Congratulation! Dr. Choe.”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는 강치에게 지도교수가 와 악수를 하고 차례로 다른 교수들이 같은 말로 축하하고 악수를 했다.

Dr. Choe

그 말이 그칠 줄 모르고 강치의 귀에 환청처럼 들렸다. 어느 선배가 자신을 가르친 선생들에게 Doctor라는 그 말 한마디 들으니 인생 최고의 기분이더라고 말했는데 인생 최고까지는 몰라도 기분이 썩 괜찮았다.

시험장을 나와 그동안 흔들림 없이 도와준 와이프와 잠시 포옹을 했다.

“고생 많았어.”
“애 썼어요.”

좀더 멋있는 말이 있으련만 겨우 그 두 마디를 주고 받고 강치의 와이프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는 파티가 준비된 방으로 교수들을 안내한다. 동료들로부터 Doc이라는 애칭과 함께 축하를 받으며 파티는 간단히 끝났다. 한국 학생들은 언제 진짜 파티하냐고 물으면서 최소한 4차까지는 가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옆 좌석의 와이프와 별 말이 없던 강치는 문득 유학 올 때 강치에게 빼앗기듯 만불을 주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 무서웠던 얼굴이 생각났다. 아직 학교 들어가기 전 4살 때 정도로 기억하는데 너무나도 생생한 조그맣고 까만 밥상 앞에 강치를 앉혀놓고 한글과 한문으로 이름 쓰는 것을 가르치시며 “아직도 한문으로 지 이름 석자도 못쓴다”고 꾸지람을 하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드디어는 눈물을 흘리고 만, 그리고 그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보시던 젊은 날의 어머니… 왜 지금 그 생각이 나는지… 아마도 가난으로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당신은 공부를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어보려던 아버지의 한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치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았다. 차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허드슨강을 쳐다보며 강치는 와이프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아버지와 약속 지켰나?”

댓글목록 5

황태현님의 댓글

황태현 2004.11.27 01:44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br />
매번 힘들때 마다 최강일 선배님의 글을 읽곤 했는데 첫 글부터 마지막 글까지 모든 글을 읽기는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br />
내년 가을학기를 목표로 원서와 GRE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저로서는 선배님의 글들이 너무나 제 마음속에 와닿았습니다.<br />
<br />
저희 지도 교수님이신 컴퓨터 공학부 조근식교수님도 CUNY를 나오셔서  글들이 더 쉽게 와닿은지도 모르겠습니다.(교수님이 학창시절 얘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br />
<br />
요즈음 한달간  가을학기 입학을 위한 모든 과정을 마쳐야 하는 저로써는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다라고 느꼈었는데 선배님의 글을 읽다보니 제가 정말 나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br />
<br />
선배님의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수 있었습니다.<br />
<br />
앞서 외국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신 선배님들 앞에 부끄럼 없는 후배가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br />
<br />
언젠가는 저도 최강일 선배님이 남기신 글을 제 후배들에게 남길수 있겠죠 ;) <br />

최강일님의 댓글

최강일 2004.06.22 18:09
칭찬 감사합니다. 지나고 보니 모두 좋은 추억인것 같아서 올려놓았습니다. 이글들이 공부하려는 후배들에게 조금 힘들어도 끝까지 하면 된다는 얘기로 들리면 좋겠습니다.

최시준님의 댓글

최시준 2004.06.18 18:32
이야... 정말 멋진분이신듯.. 나도 닥터최가 될 수 있을라나 T^T

김동현님의 댓글

김동현 2004.06.20 21:37
박명근 선배님께서 최강일 선배님의 글솜씨를 말씀하셨는데, 정말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나중에 또 최선배님 뵐 수 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4.06.07 19:03
Congratulations. 와 최박사 나도 눈물날려고 하네. 정말 진지하게 단숨에 잘 읽었습니다. 유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요. 그리고 문필 실력이 뛰어난데 글 쓰는 사람으로 나가도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이군요. 그 기분으로 다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