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14회)
김시우
2007.03.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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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 아~ 이제 가야겠네요..."
달수가 아쉬운 얼굴을 숨기지 못하며 체념한 듯 신음같은 외마디 짧은 말을 토해냈다. 달수가 땀과 눈에 젖어 가라앉은 머리카락을 두손으로 물기를 털어 솎아 세우자, 희정이 그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자신도 뭔가 생각이 난 듯 핸드백에서 고무 밴드를 꺼내어, 눈에 젖어 일부 머리카락은 뺨에 들러붙고 치렁거리며 정돈되지 않는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 메었다.
달수가 부대 복귀를 서두르면서 자유공원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몇 번 씩이고 뒤를 돌아 보자 희정이 미소지으며 ‘어서 가라’ 는 손짓을 했다. 둘이 헤어지기 전 나눈 긴 포옹에 희정은 그의 체온이 남아있는 듯 가슴이 훈훈하다.
달수가 코너 길을 돌아 사라지자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희정이 눈을 감아 한숨을 크게 내쉬고 달수와 반대 방향으로 언덕을 내려 집에 도착했다.
“누나! 매형한테 갔다 오는 길 아냐 ? 강릉에서 어제 출발했다는데 왜 인제 와아~?”
희정은 얼굴이 상기된 남동생 희철의 얼굴을 보고, 다시 한 번 집안 분위기를 돌아보았다. 할머니가 자리에 누워, 평소 한 복 치마 저고리의 허리에 감아 묶고 계셨던 아버지 넥타이를 머리에 질끈 동여 메고 울고 계셨다. 희정은 할머니를 내려다 보며 소리쳤다.
“ 무슨 일이야? 왜 그래?... 할머니 어디 아퍼?”
희정의 할머니는 희정의 어머니가 희정이 취학 전에 교통사고로 죽고, 아버지마저 다리에서 추락사로 돌아가시자,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어린 희정과 젖먹이 희철을 키운 어머니나 다름없다.
“ 아이고 이 년아! 네 서방이 죽었단다. 아이고 이를 어쩌냐, 아이고, 아이고오~”
희정은 쥐고 있던 핸드백을 놓치고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슬프다기 보다는 남편 완기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프랑스 유학시절, 파리 제 2 대학에서 만난 그와 열정적인 사랑을 해보진 않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참아주던 착한 남편이었다.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희정은 어제 온 길을 다시 거슬러 가야만 한다.
“ 버스가 이미 출발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강남 터미널 매표원이 강릉행 버스 출발시간에 임박하여 매표소에 헐레벌떡 도착한 희정을 위 아래로 훝어보며 말했다. 희정은 ‘그래도 괞찮다’ 며 매표원에게 건네받은 강릉행 버스표를 손에 쥐고 승차장으로 뛰었다.
희정이 승차장 출구문을 밀어 젖히는 순간 버스는 이미 자동문을 닫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버스에는 달수가 신문을 펼쳐 들고 공비침투 관련 뉴스를 읽고 있었다. 희정이 힘없이 다시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다.
달수를 태운 버스가 터미널을 떠난 후 약 2시간, ‘덜커덩’하고 버스가 급정거하였다. 이어서 바람빠지듯 ‘피식’하는 소리에 달수와 승객들이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는데 뭔가 타는듯한 냄새가 버스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승객들이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달수는 승객들을 향하여 ‘모두들 내리라’고 소리쳤다.
미군이 월남전에서 패하고 철수할 때, 한국군에게 인계한 M-00장갑차가 노후화 되어 수명이 다해가자, 1년여전 육군 본부는 달수가 속한 00 기갑여단에 그 장갑차를 인수해 정비하고 2군 후방지역 OO사단으로 인계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 장갑차는 월남전에서는 위용을 떨쳤으나 전장에 투입한지 15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전투용이 아니고, 후방 경계 및 폭도 진압하는 용도로 전락하여,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고물이었다.
그 고물 장갑차는 버스와 배기량이 같은 디젤 엔진을 사용하였는데, 달수 대대가 정비를 완료하고 OO사단에 인계하기 위한 부대 이동 중, 여러 대의 장갑차 엔진이 불타 병사 수 명이 중화상을 입었고 결국 1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런데 버스 엔진에서 그 때와 같은 냄새를 맡은 달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폭발이 발생할 수 있는 엔진과열 또는 트랜스 밋숀에 과부하가 걸려 오일이 새서 타는 냄새임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운전기사가 정비에 대한 책임의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지 달수가 위험하다는 것을 뿌리치고 버스 밑으로 누워 기어 들어갔다. 달수와 20여명의 승객은 뺨을 얼얼하게 만든 칼바람에 어깨를 움추리고, 멀치감치서 옹기종기 모여 버스 아래에서 기름 연기에 콜록거리며 뭔가를 고치는 운전사를 숨 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다 다를까, ‘퍽’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타는 하얀 연기가 거세지더니 운전기사가 급히 차 밑에서 기어나오면서 ‘퇘퇘’하고 침을 뱉았다. 그의 한 쪽 눈과 입에 주먹크기 만한 시커먼 기름이 떨어져, 바둑 강아지의 그것처럼 큰 검정 반점을 그리고 있어, 참으로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승객 몇 명이 참다못해 킥킥거리고 웃자 운전기사는 ‘뭐가 우습냐’ 며 소리를 질렀댔다.
그 때 괭음과 함께 엔진이 폭파하여 버스 앞부분이 불길에 휩싸였다. 만약을 대비 버스 안의 소화기를 들고 나온 달수가 불길의 진압을 시도하지만, 불길이 거세어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다. 잠시후 불길이 스스로 잡혔지만 여전히 하얗고 시꺼먼 끄름이 섞인 연기가 썩여 뿜어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달수와 승객들이 수 십분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서울 방향에서 흙먼지 꼬리를 달고 달려오는 버스가 보였다.
달수와 승객들이 반색을 하며 환호를 질렀다. 운전사를 포함한 승객 모두가 두 팔을 들고 흔들어 차량을 세웠지만, 버스는 입석까지 승객으로 가득 차 있었고 1-2명이 간신히 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망하는 빛이 역력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 중에 달수만큼 ‘실제 작전상황’이라는 객관적이고 설득력있는 핑계거리를 가진 이가 없었다. 달수는 승객들의 부러운 시선을 뒤로 한 채 버스에 올랐지만 층계에서 한 발자국도 올라설 수 없었다.
달수가 버스 안으로 j간신히 올라섰지만, 운전기사 바로 뒤 까지 꽉 차있는 입석 승객들에 밀려 운전사 보호 쇠기둥을 잡고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버스가 덜컹거리고 서행하거나 정지할 때 마다 달수의 가슴과 한 쪽 뺨이 쇠기둥에 짜부러 들었다. 뺨이 얼얼하고 광대뼈와 갈비뼈가 애렸다.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버스 안에는 공비가 내륙 깊숙히 침투했을 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접하고 부랴 부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 양평입니다.”
운전사의 안내방송에 승객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서있던 승객이 좌석에 앉자, 버스 안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달수는 눈을 의심했다. 꿈을 꾼다고는 생각치 않았지만, 꿈이 아니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희정이었다. 오늘 이른 아침까지 입은 옷도 같았고, 턱과 목 사이에 파란 실핏줄이 보이는 하얗고 투명한 피부도 희정의 그것과 같았다.
(“ 쌍둥이가 있다는 얘기는 안했지, 아마”)
“ 저, 희정씨!… 여긴 어떻게…”
“ ………”
희정도 달수를 보자 놀라는 기색이 있었으나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슬픈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 말이 없다. 달수도 뭐라 말할 수 없어 버스 천정에서 내려와 출렁이는 손잡이 중 한 개를 잡고 그냥 서있었다.
희정의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가 다른 빈자리를 찾아가자 달수가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고 희정의 옆에 앉았다. 짧지만 긴 시간이 흘렀다. 희정은 우아한 침묵으로 달수를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었다.
희정은 어제 강릉의 시댁을 방문하여 돌아올 때, 처마의 대들보에 한쪽 어깨를 비슴듬히 기대어 앉아 희정이 저멀리 사라질 때까지 힘없이 바라보는 남편과 그의 옆에 서서 수심찬 얼굴을 하고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랐다.
“ 결혼이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닌 건 알아요, 습관으로 사는거죠, 켜켜히 쌓여있는 먼지 같은 일상처럼… 그러나 영원한 이별이 슬픈 것은 마찬가지네요.”
희정이 한참 만에 말문을 열었다.
“ ………”
“ 내가 떠난 직후에 자살했대요,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참아낼 수가 없었겠죠, 그리고 곁에 있는 노모와 나에게도 짐이 된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직장 때문에 곁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요.”
달수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지만 희정이 왜 이 버스에 올라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달수가 희정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희정의 머리가 힘없이 달수의 어깨로 미끄러져 앉았다. 달수는 희정의 어깨를 감아안아 오른 어깨를 도닥거리며 위로의 말을 대신했다.
“ 나중에 전화 드릴께요, 힘 내세요.”
“ 달수씨도 조심하세요.”
강릉 터미널에서 내린 달수는 희정을 태운 택시 문을 닫으며 희정에게 말했다. 희정을 태운 택시가 멀리 7번 도로로 들어서 작은 점을 이룰 때까지 바라보던 달수가 부산해 지기 시작했다. 자유공원에서 희정과 한 시간 정도를 지체했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5
정창주님의 댓글
돼랑님의 댓글
박명근님의 댓글
지난번에는 분명히 공비잡다가 후송되던것 같았는데<br />
지금 오디로 온기고?<br />
<br />
작가님 이것 뭐좀 건너 뛴것 아닌교?<br />
김시우님의 댓글
영화 시나리오에서 달수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중인 어느날, 희정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쓰여집니다. <br />
달수가 또 다시 갈등에 빠지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전제가 되기도 하구요. <br />
<br />
영화는 음성이나 색상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데 소설은 설명을 거쳐야 됩니다. <br />
그런데 설명이 길다보면 글이 산만해지고 통통 튀는 맛이 없지요. <br />
또한 동문중에는 글이 길어 읽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어 스토리 전개와 독자의 요구, <br />
이 두가지를 감안하여 매회 글량을 조절하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생깁니다. <br />
그래서 책 한권을 쓰는 것보다 연재를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br />
하지만 이미 출판이 되어 책방에서 고른 책보다 연재소설은 독자가 같이 참여한다는 커다란 매력이 있습니다. <br />
<br />
소재가 빈약하고 표현력의 한계를 느껴 절망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미천한 글쟁이와 성숙한 독자가 대화하며 <br />
글을 써간다면 정말 좋은 글이 탄생하리라고 용기를 받습니다. 또한 작가의 상상력과 경험, 감성등이 독자의 <br />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글을 이해하고 재미를 더해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br />
읽어주시고 평해주셔 감사합니다.
JP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