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15회)
김시우
2007.04.04 10:37
1,978
0
-
- 첨부파일 : 가훈3.jpg (11.6K) - 다운로드
본문
[친구 부부 가훈]
달수는 대대 참모로서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아니기에 그의 부재가 대대장의 부대 지휘나 작전 통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희정과 같이 있는 동안 내내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또한 달수는 본분을 망각하고 한 시간이나 부대 복귀를 미루면서 희정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자괴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달수는 “ 난 하늘보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라고 아버지가 직접 묵필로 써서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놓은 가훈이 눈에 선하다. 부끄럽다… 마음이 급해진 달수가 휴가 복귀 장병을 위해 각 터미널 내보냈다는 60트럭을 찾아 여기 저기를 휘둘러 본다.
“ 김 중위니임~”
달수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고정했다. 멀찌감치 손정호 중사가 달수를 부르며 손을 흔들어 위치 신호를 보냈다.
“ 잠수함이 침투했답니다.”
트럭의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얼굴에 위장 검정칠을 한 손중사가 달수에게 말했다.
“ 그건 알어! 국지전이 벌어진 거야?”
“ 그게 아니고요, 소형 잠수함이 좌초한 것을 어부가 발견했는데요, 그 안에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구요, 7-8명으로 추정되는 북한군이 육지에 상륙했답니다.
“ 그것도 알어, 신문을 보니까 나머지 탈출한 승무원도 전부 장교로 추정된다며? 이런 저런 상황으로 봐서 침투한 게 아니고 장교들만 모아 특수 훈련중 조류 때문에 좌초한 거네…그럼 군단 특공대나 대대 수색대가 투입되면 되잖아… 탱크를 밀고 들어온 것도 아닌데 웬 난리를 그렇게 떨어… 한 참 좋았는데…
“ 네?”
“ 어? 어! 아무것도 아냔 마.”
“ 높은 분들에겐 이런 것이 공을 세우는 좋은 기회 아닙니까. 김중위님도 빨리 대대장, 아니 여단장님 되십시요. 김중위님 실력은 이미 인정받았으니 동기들중에 가장 먼저 장군되실 껍니다. 그때 저 그냥 주임상사나 시켜주세요 히이~.”
손중사가 아부성 발언을 하자 달수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씨익 웃었다. 약 3년전 손중사는 달수가 처음 부대에 부임해왔을 때 영외거주가 가능한 고참하사였는데 달수가 휴가 나올 때 위병소에 있었던 달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차 병장, 당시 차 일병과 함께 달수에게 얼마나 삐딱하게 굴었던지, 하루는 달수가 손 중사와 차병장을 불러 ‘계급장 떼고 한 번 뜨자’ 고 한 적이 있다.
나이가 비슷한 장교가 부임하여 군기를 잡으니 병사들에겐 이유없는 반항심이 생긴다는 것은 이미 학군단 시절이나, 임관 후 초등군사학교의 ‘통솔학’ 에서 배우고, 그에 대해 많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었기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지만 이유없이 부하들이 삐딱하게 나올 때마다 주먹이 쥐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초급 장교의 고충이고 서러움이었다.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퇴근을 하여 버스 터미널 근처의 책방에서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와 잡지 2권을 사서 나오다 손하사와 마주쳤는데 그가 달수를 외면했다. BOQ에 도착한 달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군복을 입은 상태로 휴게실 쇼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달수는 담배를 한 대 물고 바닥 청소를 하는 관리병이 경례를 하는 것에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받았다.
관리병의 물 젖은 마포가 발 근처를 훔칠 때 달수는 발을 들었다 놓다가 담배재가 바닥에 떨어지자 손가락에 침을 발라 담배재를 붙여 재떨이 옮겼다. 달수의 눈은 벽 한쪽 코너에 얹혀있는 먼지덮힌 20인치 금성 텔레비젼의 7시 저녁 뉴스에 가있었지만 아니운서의 말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후보생 시절을 떠올렸다.
친구들이 여름방학이면 산과 들을 누비며 청춘을 불 태울 때, 달수는 유격장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어쩌면 물 한 방울이라도 남아 있을까 싶어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수통을 열어 입안에 털면서 노출된 피부를 태워야 했다. 그리고 교관들 몰래 논바닥의 물을 입을 가져가 들이 마셨다. 동기생 하나가 그 물을 먹고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을 하였지만 달수는 운이 좋았다.
친구들이 여름밤 산과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고스톱을 때릴 때, 달수는 장마비가 새어 들어가 행군 내내 ‘찌그덩’거리는 소리를 내었던 전투화 안에 신문지를 쑤셔 집어넣고, 세탁실에서 땀냄새가 진동하는 군복을 빨래 방망이로 때려야만 했다.
한 여름밤 친구들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사랑을 속삭일 때, 달수는 새벽 보초를 서면서 풀벌레를 친구삼아 건강이 좋지 못한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혼자 속삭였었다.’
친구들이 사랑타령으로 여자친구의 브라우스 단추를 꿰멜 때, 달수는 발바닥 여기 저기에 자리잡은 물집을 바늘에 실을 넣어 꿰매야 했었다. 그러면 진물이 실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렇지 않고 물집을 그냥 터뜨려 버리면 피부가 벗겨져 몹시 쓰라렵고, 2차 염증으로 훈련을 이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어떻해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퇴교를 당해” 달수가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늘 마음 속으로 하는 말이었다.
친구들이 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하여 학교 후문가 허름한 식당에서 1000원 짜리 삼치 안주에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면서 시덥지 않은 주제를 놓고 토론하며 젊음을 만끽하고 있을 때, 달수는 학과 수업을 마치고 후문가 식당의 따끈한 라면국물이 생각났지만 혹시나 선배들을 만나 트집이나 잡히지 않을까 싶어, 빈 강의실에서 차디 차게 식어 잘 퍼지지도 않는 굳은 밥이 담긴 저녁 도시락을 까먹고, 학군단 강의실로 향해야만 했다.
실제로 달수는 같은 과 선배 전태중에게 찍혀 동기생 전부가 연대책임을 물어 기합을 받은 적이 있다. 달수가 애인과 같이 가다가 선배인 자신을 보고도 모른 척 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달수는 장교 후보생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정에서 선배들에게 크게 인사하는 것이 좋았는데, 그 많은 학생들 틈에 사복을 입은 선배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후미진 문과대학 강의실로 소집당한 이유라는 것에 황당했었다.
달수는 점심시간에 학교 후문가 식당에서 동기 조성민에게 그 사실을 전해듣고 주문한 떡라면이 나오기도 전에 학교 후문가에서 자취를 하는 전태중의 집을 찾았다. 그는 윗통을 벗고 맨살에 거울을 보면서 V자형 완력기로 근육을 키우고 있었다. 한 눈에도 그의 팔은 여느 남자의 장딴지 두께만 하였고 가슴 근육은 팔을 움직일 때마다 크게 씰룩거렸다.
“선배님 그건 오해십니다. 저희 집이 바로 저기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선배님들의 절도있는 행동에 반해 ROTC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선배들에 대한 충성의 표시를 하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나중에 후배들에게 받을 대우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게만 책임을 묻게 해주십시요. 동기생들에게는 피해가 안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성민이가 요즘 몸이 안좋습니다.”
“ 시끄러워 새꺄… 빨리 꺼져.”
“ 선배님…”
“ 빨리 꺼지래두…”
“ 퍽”
돌아서는 달수의 등에 둔탁한 통증을 느껴지면서 팔이 저려왔다. 전태중이 손에 들고 있던 완력기로 달수의 등을 내리친 것이다. ‘아니 돌아서는 사람 등을 때려 그것도 흉기로?’ 달수의 왼쪽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돌려차기로 그의 턱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달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서있다가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슬어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작은 철대문을 밀어 고개를 숙이고 그 집을 나왔다.
강의실에 미리 와서 선배들은 기다리는 달수와 동기생들은 말이 없다. 달수도 더 이상 선배들이 군기를 잡기 위한 어줍잖은 핑계의 재물이 된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몇 십분은 전태중의 기합과 구타를 받아내었지만 달수가 반항하듯 전태중의 눈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 선배니임~”
동기생 조성민이 헐크라는 별명을 가진 전태중의 펀치에 두발이 동시에 뜨면서 2-3미터 뒤로 나뒹굴어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심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간신히 일어서는 것을 본 직 후였다.
“ 선배님께서는 일관성이 없습니다. 선배님께서 처음 저희 입단할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른 것을 전혀 타취하지 않을테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근데 제가 선배님을 미처 보지 못하고 결례를 했다라는 이유로 이렇게 동기생이 구타를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달수는 전태중이 학사경고를 여러차례 받아 간신히 졸업을 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는 높은 학점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대부분의 장교 후보생들에게 ‘바보티시’라는 은어를 듣게 한 장본인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전태중은 달수의 말을 듣고 쭈빗 쭈빗하더니 “ 내가 늬 말에 할 말이 없데이” 하며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고 강의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멀뚱히 서있던 다른 선배들도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의 뒤를 따랐다. 동기들이 달수에 곁에 다가와 달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달수의 땀에 젖은 하얀 단복 상의의 좌측 어깨에 전태중이 내리쳤던 완력기의 벌건 녹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달수는 그날 전태중의 턱을 날려버리지 않고 참은 것을 잘했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달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음대에 입학하였다가 자신을 지원하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자주 다투는 것을 보고 학교를 자퇴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을 생각해서라도 소위 일년 꿇고 다시 시작한 대학생활을 종칠 수 있는 폭력행동을 자제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 달수는 혼자 조용히 담배연기를 허공에 뿜으며 푸념한다.
“ 그 때 시원스럽게 그 인간 턱주가리를 날리고 ROTC를 그만 두었다면 오늘 내가 여기 이 산꼴짜기 촌구석의 허름한 숙소의 냄새나는 쇼파에 앉아있지 않을 텐데… 내가 이 쇄끼를 그냥~”
그리고 벌떡 일어나 탁자 위에 있는 전화 수화기를 잡았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