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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17회)

김시우
2007.04.18 12:15 1,909 2

본문

“저기... 아가씨! 저 좀 도와줄래요?”
        
신동찬 대위는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를 찾아 헤매는 듯한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동찬은 저녁식사를 한 후, 당직 간호장교 차 중위로부터 약을 받아 먹고 곤하게 잠이 들어있는 달수를 차마 깨우지 못하고, 옆 침상 이 성호 중위의 도움을 받아 혼자 휠체어에 올랐었다.

동찬은 퇴원 신청이 거절당한 후 요즘 부쩍 낮잠이 많아진 달수의 잠든 얼굴에서 병원생활의 지루함을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수는 일중독 환자급이다. 달수는 아침을 먹고 재활 훈련실에  다녀와서 취침시간 전까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편지를 쓰거나 늘 뭔가를 하고 있었다. 달수는 창가에 책상을 가져다 놓고 앉아 밖의 오가는 사람을 멍청히 쳐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죽이는 사람을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달수도 그 보다 못한 낮잠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동찬은 내과에 공군 사관학교 동기생이 있었지만 달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동찬은 다소 거친 듯 하지만 다정 다감한 달수가 더 시원스럽고 편했다. 달수가 동찬이 공군사관학교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이라는 성적에다, 공군 역사상 최연소 탑건이었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를 통해 알고, 그 만큼 동찬의 비애가 크다는 것을 이해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배려하기에 그러했다.  

병원은 건물 중심부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6개의 방향으로 복도가 갈라져 병실로 이어지는, 마치 팬타곤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동찬은 힘이 들어가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 복도를 따라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정신과 병동 복도에서 30분이 넘도록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정신과 병동으로 통하는 복도는 작은 쇠창살 창문이 있는 두꺼운 회색 철문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런데 약 4개월전, 헌병대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이유로, 그 철문이 개방되어 환자들이 집단 탈출을 시도하다, 병원 담을 넘지 못하고 모두 체포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기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그 철문에서 일정한 공간을 두고 또 하나의 창문도 없는 철문이 설치되었다. 이 철문은 화재시 방화문처럼 천정에서 내려와 통로를 차단 하게끔 설비되어 있었다. 이 문제의 철문은 오후 7시 50분에 안내방송이 있고 난 후 정확히 8시가 되면 작동하여 다른 병동과 또 하나의 완충 공간을 형성했다.  동찬이 그 방송을 들은 지 5분 정도 흐른 것 같았다.

“저…지금 급하게 가봐야 하는데…”

“ 휠체어 바퀴에 뭔가 감긴 것 같은데,  제가 허리를 숙일 수 없어 그래요. 잠깐만 도와주시면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부탁해요.”

30여분 동안 한 자리에서만 맴도는 휠체어와 씨름을 하였기에 기진맥진하여 안색이 창백한 동찬이 간신히 소리를 냈다.  천천히 동찬에게 다가운 그녀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휠체어 왼쪽 바퀴 도르레에 감긴 환자복 천 조각을 풀려고 했지만, 오른 쪽에만 힘이 들어가는 동찬의 탈출 시도가 그것을 더욱 단단하게 감기는 작용을 하여, 그것은 마치 나무토막같이 단단하여  칼 같은 도구 없이는 제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해야겠어요.”

그녀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려는 순간 사이렌 신호음이 들리면서 멀찌감치서 육중한 쇠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 갇혔어요. 우리가 갇혔어요. 제기랄…”  신대위가 체념한 듯이 중얼거렸다.

“ 갇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내가 출구를 찾아  볼께요.”

“ 아 악!”

그녀가 철문 닫히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어가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왜 그래요?  괞찮아요?”  동찬이 옆으로 넘어지는 그녀를 보고 소리쳤다.

“ 바 발목이…”  

그녀의 오른 쪽 하이힐 구두가 벗겨져 나가고 그녀는 허리를 웅그린 채 엎어져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동찬은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허리 벨트를 벗고 사력을 다해 휠체어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휠체어의 오른쪽 바퀴가 뒤로 움직여 밀리면서 신대위는 복도 바닥에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체가 힘없이 왼쪽으로 고꾸라지면서 머리 또한 바닥을 세차게 때렸다. 그리고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아!  안돼…”

가까이서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그녀는 공포에 파랗게 질렸다. 잠시 후 죽은 사람처럼 조용했던 동찬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후들거리는 오른 팔을 휠체어에  가져갔다. 엉덩이의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두툼히 쌓아놓은 군용 담요를 잡아 입에 물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기어갔다. 그녀도  그런 동찬을 돕고 싶었지만 어쩌지 못하고 몹시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 땀을 맺은 채 신음을 삼키고 그저 그를 지켜볼 뿐이다.

그녀에게 당도한 동찬이 어두침침한 복도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도  그녀의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부어 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대위는 입에 문 담요를 돌돌 말아 그녀의 발목아래 대고 다시 기기 시작했다. 동찬은 적어도 30m 정도 떨어져 있는 철문을 향해 기고 또 기었다.  보통사람이며 채 1분도 안될 거리지만, 전신마비 상태인 동찬에게는 마라톤 완주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동찬의 입에서 단내가 나고 끈적한 침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충혈된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코 안의 점막 모세혈관이 터져 코피가 흘러나왔다.  목 이하로는 감각이 둔한 동찬은 바지가 벗겨져 나가고,  배뇨감을 못 느껴 기저귀를 찬 앙상히 뼈만 남은 하체가 모두 드러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에서 송장이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연상시킬 만큼 처참했다.

동찬은 철문에 다다르자 오른손으로 그것을 두드렸지만 그 소리는 신대위의 가쁜 호흡소리 보다 약했다. 그의 팔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더러 주먹을 쥐지 못하였다. 철문 밖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손바닥으로 철문을 몇 번 더 세게 두드리다가 다시 균형을 잃었다. 그의  머리와 상체가 철문으로 쏠려 부딪히면서 미끄러져 내려가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꿈쩍하지 않았다.

“아,  안돼요,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그녀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다가 깨끔발로 깡총 깡총 뛰다 넘어지고 기는 것을 여러 번 하고서야 그에게 닿을 수 있었다. 그녀의 무픞이 깨져 발목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의식하지 못 한듯 하다. 그녀가 동찬의 상체를 잡고 흔들었지만 동찬의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차디 찬 시멘튼 콘크리트 바닥에 널무러져 있는  동찬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끌어안고 흐느끼며 하이힐 굽이 떨어져 나가도록 육중한 철문을 두드렸다.

정신과 병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정형외과 병동 위생병 최도수 병장이 ‘핫 윈드’ 남성잡지를  뒤적이다 ‘흠짓’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야!  이 일병 어디서 무슨 소리 안들려?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하고... ”

“에이… 최병장님, 우리 정형외과에 무슨 여자가 있다고… 간호장교들도 다 퇴근하고 없는데, 지금 저 겁주는 거죠?  귀신 뭐 그런 얘기할라고 …어?...  정말 !”

이 일병이 정신과 병동 쪽에서 희미한 여자의 흐느낌 소리를 듣고 구렛나루에 소름을 느끼면서 최병장을 바라보았다.

“충성, 정형외과 병장 최도수 입니다. 저희 정형외과와 정신과 사이에 있는 완충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안전문을 열어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병장이 당직사령 민정수 대위에게 내선으로 보고 했다.  잠시 후 철문이 위로 열리고 상상치 못한 광경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몸이 얼어붙은 듯이 서있었다.

“무엇들 해요? 빨리 이분 좀 도와주세요. 숨을 쉬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녀가 호통을 쳤다.

“ 야, 야,  이동 침대하고 잉겔…그리고… 담요 몇 장 더하고 ”

민 대위가 동찬의 맥을 짚어보며 아직 심장이 뛰고 있슴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다 보며 위생병들에게 소리쳤다.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찬이 이동 침대 위에 뉘여지고 잉겔병이 걸렸다.  그녀 역시 휠체어에 앉혀져 동찬의 뒤를 따라 1층 응급실로 신속히 후송되었다.  분산한 구두발자국 소리가 복도 가득히 진동하다 사라졌다.

(화장실에 갔나?)

같은 시각 옅은 잠에서 깨어난 달수는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에서 내리다가 동찬의 침대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달수는 화장실을 들러 아무도 없슴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려 화장실 맞은 편에 있는 휴게실 문을 열고 고개만 삐꼼 들이밀어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바둑을 두고 있던 수 명의 병사가 고개를  돌려 달수를 행동을 이상히 여기듯 쳐다보다가 다시 자기들의 대화로 돌아갔다.

“ 이상하다. 어디갔지?”

“ 어이, 김대위…”

달수가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병실로 향하는데 노란색에 검정줄 2개가 그어진 일직사령 완장을 찬 최상호 대위가 달수를 세웠다. 그는 달수와 기갑장교 동기였으나 중위때 의무병과로 전과했다. 그는 병원에서 선후배들에게 편의를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이기주의자로 달수는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 어제 퇴근 시간쯤… 저녁시간 좀 지나서였나?  내가 위병소 쪽으로 순찰을 나갔었는데 어떤 여자분이 네 이름을 대면서 면회 신청하는 것을 봤는데…  만났어?

“ ??? ”

“ 누구야 ?  이쁘던데…”

“ 아니,  어제는 아무도 안 왔는데… 나랑 같은 이름이겠지  뭐 ”

좋은 사람에게는 간까지 빼주지만, 몇 차례 기회를 주고 관찰하다 ‘한 번 아니다’ 싶은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않는 달수는, 그와 같이 있는 것이 즐겁지 아니하여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고, 사방으로 갈라져 있는 복도 끝을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다 이내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나 잠든 사이에 어머니가 오셨나?… 어머니가 바람 쏘여주려고 데리고 나간 모양이군…”)

달수는 별일이 있겠나 싶어 동찬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침대에 철퍼덕 앉았다가 모로 쓰러졌다.  머리맡에 있는 소설 삼국지를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한 팔을 괴고 한 페이지 정도 읽다가 이내 접어버렸다. 잠을 청해보지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 팔을 깍지끼고  머리 밑에 괴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료한 병원생활이 늘 그렇듯이 하릴없이 선잠이 깜빡 들었다 말았다 한다. 이렇게 속 편하게 잠을 청하는 달수가 그 순간부터 동찬과 인생의 평행선을 그리며 기가 막힌 인생 여정을 달리게 되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걸까.

댓글목록 2

정창주님의 댓글

정창주 2007.04.18 20:05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 자유게시판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제가 어서 빨리 작업을 해야하는데, 제 일도 있고 기타 등등 일이 많아 일정을 앞당길 수가 없어서 항상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나중에 꼭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4.19 14:54
  전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br />
졸작인 제 글을 남길 공간이 있으니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br />
천천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