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18회)
김시우
2007.04.2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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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어? 얘가 어딜 갔지? "
다음날 아침, 늘 그렇듯이 아침 배식이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병실에 도착하여 동찬이 화장실 가는 것과 세면을 돕는 동찬 어머니 고금자 여사가 동찬의 침상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단짝인 달수를 돌아다 보았다. 달수가 눈살을 찌뿌리고 손등으로 눈을 쓸며 부시시 잠 깨어 일어났다.
“ 글쎄요 어머니… 어제 저녁에도 안 보이던데… 저도 지금 일어나서 잘 모르겠네요, 요즘 혼자 잘 다니던데 화장실 갔겠죠 뭐, 제가 다녀 오겠습니다.”
“ 그래 주실라우…”
달수가 화장실을 가서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당직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상에 앉아 꾸벅 꾸벅 턱을 괴고 졸고 있는 당직하사의 팔을 밀자, 그가 고개를 앞으로 떨구며 깜짝 놀라 일어나, 턱에 흐른 침을 왼 소매로 훔치며 오른 손으로 거수 경례를 했다. 얼마 전 식물인간 상태의 중사의 등에 생긴 욕창을, 달수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의없이 치료하다 달수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아 뒤로 나자빠졌던 위생병이다.
“ 야, 이 새끼야, 근무 안하고 처자냐? 여기도 네 전우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란 말야… 그러니까 환자가 밤새 없어졌지. 장교 병실 신대위 봤어?”
“ 공군 신대위님 말입니까? 지금 응급실에 계실 껍니다.”
“ 뭐라고? 응급실에? 거기는 왜? 괜찮은 거야? ” 달수가 위생병에게 다그쳐 물었다.
“ 예, 생명에 지장이 없답니다. 어제 밤에 정신과 병동 복도에서 탈진한 상태 발견되었고 호흡곤란으로 긴급 후송했는데 아마 지금도 거기서 안정을 취하고 있을 겁니다.”
달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수술부위의 통증을 손 바닥으로 눌러 참아가며 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여 문이 열려 달수가 내리는데 바로 옆 다른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출입구 상단에 있는 층 번호가 2층을 넘어 3층으로 변했다. 그 안에는 위생병이 동찬을 태운 휠체어 핸들을 잡고 있었다.
달수가 응급실 문을 황급히 열었을 때는 오른 발목에 압박 붕대를 돌려감은 그녀의 휠체어가 건물 외부로 향하는 응급실 문을 막 나서고 있었다. 달수가 그 위생병이 밀고 있는 그 휠체어를 보았지만 동찬를 찾아간 그의 눈에는 그저 허상일 뿐이었다. 이렇게 그들의 운명은 엇 박자를 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 아니 동찬아! 이게 어떻해 된거냐? 괜찮은 게야? 그리고 왜 혼자 오냐? 김대위는?”
“ 못 봤는데요… 엄마, 나 몹시 피곤하거든… 좀 잘께요.”
“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근데 이게 뭐야?
고여사가 동찬이 휠체어에서 침대로 오르는 것을 돕다가 그의 환자복 상의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종이 한 장을 보았다.
“ 이희정?”
“ 아! 그거요? 엄마가 가지고 계세요, 나중에 얘기해요, 몹시 피곤해요.”
“ 이화여대 불문과?…”
고 여사는 여자의 이름보다 자신의 모교인 것에 호감이 감과 동시에 동찬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답답할 지경이지만, 등을 돌리고 쌕쌕거리며 자는 동찬을 내려다 보고는 어쩌지 못했다. 그렇게 동찬의 병원 생활은 위태함과 지루함에 찌들어 갔다.
달수도 이젠 병원을 떠나고 싶었다. 군인이 부하의 목숨을 담보로 전장에서 살아남은 수치감은 그를 지겹도록 괴롭혔다. 물론 그로 인해 차병장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숨을 잡으며 뭔가를 얘기하려 하던 차병장의 눈은 달수를 어지간히도 괴롭힌다. 달수는 차 병장의 얼굴이 떠올려질 때마다 그 얼굴 위로, 자신의 대검에 가슴을 찔려 눈을 부릅뜨고 죽어가는 북한군 장교의 피 범벅이 된 얼굴이 오버랩 되어 덮여진다. 이런 악몽 아닌 악몽에 달수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헬기 착륙장에 오늘에만 3번의 헬기가 내렸다. 그 안에는 또 어떤 젊은이가 고통에 절규하며 피 눈물을 흘렸을까. 야만적인 전쟁이 훝고 지나간 자리에는 인간의 추악함이 배설되어 있슴을 역사가 증명하듯이, 혹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남북의 두 청년은 이렇게 기성체제의 탐욕이 빚어낸 전장의 피먼지로 허무하게 허공에 흩뜨려진 것이다.
(“ 새끼… 그러게 말 좀 잘 듣지… 고개 들지 말라고 그리 얘기했건만… 나쁜 놈… 처음 전입 올 때부터 그렇게 날 괴롭히더니 죽어서 까지…)
달수의 눈가가 촉촉해 진다. 달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취침등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벽시계의 바늘이 자정을 넘고 있었다. 사물함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늦가을 바람이 그의 얼굴과 깊게 파인 환자복 밖으로 드러난 목을 쏴하게 훝고 지나갔다.
건너편 병동 영안실의 지하 입구에 육안으로 잘 확인이 안 되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어느 전장 아닌 전장에서 산화한 젊은이의 영혼이 새어나오듯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달수는 담배만 피우고 들어갈까 하다가 조금 걷기로 했다. 병동 사이에 여기 저기 산재한 정원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고요한 가을밤의 적막한 슬픔을 달래는 것 같았다.
등나무가 붉은 벽돌 기둥마다 감아 올라간 야외 휴게실의, 나무 색깔과 모양으로 빚어진 콘크리드 의자로 향하던 달수는 흠칫 놀랐다. 기둥에 가려진 의자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훌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영안실에 있는 누군가의 아내로 생각되었다. 달수는 돌아서 가려고 하다 희미한 달빛아래 그 여자의 머리에 간호장교의 모자를 보고 조금 더 가까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주위는 아랑곳 않고 슬픔이 절절히 베어있는 흐느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소복이 아닌 달빛아래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을 내는 간호장교복 이었다. 차미례 중위?… 언제나 웃는 그녀의 눈 안에는 눈물이 아닌 눈알을 잘 돌아가게 하는 반짝이는 윤활유 같은 것만 들어있을 것 같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다니…
달수는 망설였다. 그냥 가야 할지 아니면 가서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할지. 그 때 그녀가 인기척을 느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서 달수를 쳐다봤다. 달수는 그녀가 우는 모습을 들켜 민망해 할까 봐 마치 금방 도착한 것처럼 꾸며대며 먼저 아는 척을 했다.
“ 아니 이게 누구세요… 차 중위님 아세요?”
차 중위는 이 늦은 시각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그가 달수임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는 얼른 손등으로 눈 밑의 눈물을 훔치며 들키고 말았다는 체념에서인지 그 자리에 다시 철퍽 주저 앉았다. 달수가 우물 쭈물 하다가 그녀의 옆에 앉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눈알만 굴리면서, 싸늘한 가을밤 공기에 시린 허벅지를 두 손으로 문지르며 어색함을 달래고 있었다. 달수가 그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담배를 피기 위해 일어서는데 그녀가 달수를 잡아 세웠다.
“ 가지 마세요.”
“ 네?... 저 가려는게 아니고 담배…”
“ 정국씨한테 달수씨 얘기 들었어요.”
“ 정국씨? 아!~ 박 중위요?”
“ 박 대위죠, 부대에 있었으면 이 번 달 초에 진급을 했을 테니까… 김대위님 처럼요.”
“ 그, 그렇군요…근네 박중위 아니 박대위가 왜 내 얘기를 차중위님 한테…”
미례는 정국과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사랑을 키웠다고 했다. 체육학과 3년 선배인 정국은 펜싱을 전공했고 자신은 태권도를 전공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끌려 하기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아 운동 삼아 한 것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특기를 살려 여군 특전하사관으로 1년 근무하다가 우연히 국방신문에서 본 간호장교 선발 기사를 보고 응모하여 간호사관학교에 입학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공비 토벌전에 같이 투입되었던 손중사가 떠오르며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 그럼 여기에 오게 된 것도 박대위 때문에...”
“ 제가 외삼촌에게 졸랐죠. 정국씨 입원해 있는 정형외과 간호장교로 가겠다고…”
“ 외삼촌이요? “
“ 병원장님이 제 외삼촌 이예요.”
“ 최도수 장군님이?”
달수가 수술 직후 마취가 풀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옆자리에 서서 달수를 내려다 보던 최도수 장군의 근엄하고 온화한 얼굴이 떠올랐다. 최 장군은 김재규의 쏜 총탄을 맞아 수도 통합병원으로 실려온 박정희 대통령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서거를 확인한 군의관이었다는, 장교병실에서 옹기 종기 모여 바둑을 두는 무리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 그런데 정국씨가 나를 보자 반가와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도 괴로와 했어요…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해서 특별보호대상으로 독실에 1주간 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외삼촌이 저를 정형외과에 신경외과로 보직변경을 지시한 거예요.”
달수는 정국에게 제대하면 계명 여고의 체육교사겸 펜싱부 감독으로 가기로 되어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미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국이 미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오늘 당직이라 조금 전 정형외과 장교병실을 들렀어요. 정국씨가 보이지 않더군요, 이리 저리 찾아 헤맸어요. 잠을 못 이루고 비상계단 층계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더군요. 그가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던 것을 잊고 그에게 다가갔어요. 살벌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더니 옆에 기대두었던 목발을 짚고 일어서 부리나케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랬군요…” 달수는 위로의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한 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그가 병실에 있는 것을 보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았어요. 정형외과 병실 창문으로 그가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대어 미끄러져 주저 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흐흐흑…”
달수는 갑자기 귀가 멍해지면서 주위에 서로 경쟁하듯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은쟁반에 구슬 굴러가는 듯한 미례의 목소리가 저런 슬픔을 담고 있었을 줄이야. 항상 미소가 담겨, 별 하나 없는 칠흙 같은 밤하늘에 오로지 혼자 빛나던 반달 같던 저 눈에서 저토록 고통에 밀려 흘러나오는 눈물을 담고 있었을 줄이야. 달수는 인간만이 감정을 숨기고 주변과 동화하며 살아간다지만 어쩐지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 잘 하셨어요… 미례씨… 그래요… 감정을 너무 숨기고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용기를 가지세요 정국이가 저러는 것도 이해하셔야 되요. 잘나가던 펜싱선수가 다리를 잃었으니 그에겐 무슨 말도 위로가 안될 거예요. 저도 그래서 그에게 가급적이면 과거 얘기보다는 순간 순간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했어요.”
“고마워요 달수씨… 그렇찮아도 한 달 전 정국씨와 이곳에서 처음 상면했을 때 정국씨가 얘기했어요. 신경외과에 동기가 하나 있는데,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쓴다고 하더군요. 그 때 달수씨 이름을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외삼촌이 정형외과에서 저를 내쫓을 때 신경외과로 가겠다고 했죠.”
“근데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군요. 지금까지… 하하하 ”
“ 호호호”
미례의 슬픈 이야기에 차마 소리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던 것 인양, 끊겼던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미례의 실같이 가느다란 조신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달수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정국이 다시 비상계단으로 나와 쪼그리고 앉아 길게 빨아대어 뿜어내는 담배 연기 사이로 달수와 미례가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 보고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마치 연인 같은 모습이 그의 아직 마르지 않은 눈동자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늘 그렇듯이 아침 배식이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병실에 도착하여 동찬이 화장실 가는 것과 세면을 돕는 동찬 어머니 고금자 여사가 동찬의 침상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단짝인 달수를 돌아다 보았다. 달수가 눈살을 찌뿌리고 손등으로 눈을 쓸며 부시시 잠 깨어 일어났다.
“ 글쎄요 어머니… 어제 저녁에도 안 보이던데… 저도 지금 일어나서 잘 모르겠네요, 요즘 혼자 잘 다니던데 화장실 갔겠죠 뭐, 제가 다녀 오겠습니다.”
“ 그래 주실라우…”
달수가 화장실을 가서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당직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상에 앉아 꾸벅 꾸벅 턱을 괴고 졸고 있는 당직하사의 팔을 밀자, 그가 고개를 앞으로 떨구며 깜짝 놀라 일어나, 턱에 흐른 침을 왼 소매로 훔치며 오른 손으로 거수 경례를 했다. 얼마 전 식물인간 상태의 중사의 등에 생긴 욕창을, 달수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의없이 치료하다 달수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아 뒤로 나자빠졌던 위생병이다.
“ 야, 이 새끼야, 근무 안하고 처자냐? 여기도 네 전우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란 말야… 그러니까 환자가 밤새 없어졌지. 장교 병실 신대위 봤어?”
“ 공군 신대위님 말입니까? 지금 응급실에 계실 껍니다.”
“ 뭐라고? 응급실에? 거기는 왜? 괜찮은 거야? ” 달수가 위생병에게 다그쳐 물었다.
“ 예, 생명에 지장이 없답니다. 어제 밤에 정신과 병동 복도에서 탈진한 상태 발견되었고 호흡곤란으로 긴급 후송했는데 아마 지금도 거기서 안정을 취하고 있을 겁니다.”
달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수술부위의 통증을 손 바닥으로 눌러 참아가며 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여 문이 열려 달수가 내리는데 바로 옆 다른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출입구 상단에 있는 층 번호가 2층을 넘어 3층으로 변했다. 그 안에는 위생병이 동찬을 태운 휠체어 핸들을 잡고 있었다.
달수가 응급실 문을 황급히 열었을 때는 오른 발목에 압박 붕대를 돌려감은 그녀의 휠체어가 건물 외부로 향하는 응급실 문을 막 나서고 있었다. 달수가 그 위생병이 밀고 있는 그 휠체어를 보았지만 동찬를 찾아간 그의 눈에는 그저 허상일 뿐이었다. 이렇게 그들의 운명은 엇 박자를 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 아니 동찬아! 이게 어떻해 된거냐? 괜찮은 게야? 그리고 왜 혼자 오냐? 김대위는?”
“ 못 봤는데요… 엄마, 나 몹시 피곤하거든… 좀 잘께요.”
“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근데 이게 뭐야?
고여사가 동찬이 휠체어에서 침대로 오르는 것을 돕다가 그의 환자복 상의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종이 한 장을 보았다.
“ 이희정?”
“ 아! 그거요? 엄마가 가지고 계세요, 나중에 얘기해요, 몹시 피곤해요.”
“ 이화여대 불문과?…”
고 여사는 여자의 이름보다 자신의 모교인 것에 호감이 감과 동시에 동찬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답답할 지경이지만, 등을 돌리고 쌕쌕거리며 자는 동찬을 내려다 보고는 어쩌지 못했다. 그렇게 동찬의 병원 생활은 위태함과 지루함에 찌들어 갔다.
달수도 이젠 병원을 떠나고 싶었다. 군인이 부하의 목숨을 담보로 전장에서 살아남은 수치감은 그를 지겹도록 괴롭혔다. 물론 그로 인해 차병장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숨을 잡으며 뭔가를 얘기하려 하던 차병장의 눈은 달수를 어지간히도 괴롭힌다. 달수는 차 병장의 얼굴이 떠올려질 때마다 그 얼굴 위로, 자신의 대검에 가슴을 찔려 눈을 부릅뜨고 죽어가는 북한군 장교의 피 범벅이 된 얼굴이 오버랩 되어 덮여진다. 이런 악몽 아닌 악몽에 달수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헬기 착륙장에 오늘에만 3번의 헬기가 내렸다. 그 안에는 또 어떤 젊은이가 고통에 절규하며 피 눈물을 흘렸을까. 야만적인 전쟁이 훝고 지나간 자리에는 인간의 추악함이 배설되어 있슴을 역사가 증명하듯이, 혹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남북의 두 청년은 이렇게 기성체제의 탐욕이 빚어낸 전장의 피먼지로 허무하게 허공에 흩뜨려진 것이다.
(“ 새끼… 그러게 말 좀 잘 듣지… 고개 들지 말라고 그리 얘기했건만… 나쁜 놈… 처음 전입 올 때부터 그렇게 날 괴롭히더니 죽어서 까지…)
달수의 눈가가 촉촉해 진다. 달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취침등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벽시계의 바늘이 자정을 넘고 있었다. 사물함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늦가을 바람이 그의 얼굴과 깊게 파인 환자복 밖으로 드러난 목을 쏴하게 훝고 지나갔다.
건너편 병동 영안실의 지하 입구에 육안으로 잘 확인이 안 되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어느 전장 아닌 전장에서 산화한 젊은이의 영혼이 새어나오듯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달수는 담배만 피우고 들어갈까 하다가 조금 걷기로 했다. 병동 사이에 여기 저기 산재한 정원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고요한 가을밤의 적막한 슬픔을 달래는 것 같았다.
등나무가 붉은 벽돌 기둥마다 감아 올라간 야외 휴게실의, 나무 색깔과 모양으로 빚어진 콘크리드 의자로 향하던 달수는 흠칫 놀랐다. 기둥에 가려진 의자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훌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영안실에 있는 누군가의 아내로 생각되었다. 달수는 돌아서 가려고 하다 희미한 달빛아래 그 여자의 머리에 간호장교의 모자를 보고 조금 더 가까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주위는 아랑곳 않고 슬픔이 절절히 베어있는 흐느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소복이 아닌 달빛아래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을 내는 간호장교복 이었다. 차미례 중위?… 언제나 웃는 그녀의 눈 안에는 눈물이 아닌 눈알을 잘 돌아가게 하는 반짝이는 윤활유 같은 것만 들어있을 것 같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다니…
달수는 망설였다. 그냥 가야 할지 아니면 가서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할지. 그 때 그녀가 인기척을 느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서 달수를 쳐다봤다. 달수는 그녀가 우는 모습을 들켜 민망해 할까 봐 마치 금방 도착한 것처럼 꾸며대며 먼저 아는 척을 했다.
“ 아니 이게 누구세요… 차 중위님 아세요?”
차 중위는 이 늦은 시각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그가 달수임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는 얼른 손등으로 눈 밑의 눈물을 훔치며 들키고 말았다는 체념에서인지 그 자리에 다시 철퍽 주저 앉았다. 달수가 우물 쭈물 하다가 그녀의 옆에 앉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눈알만 굴리면서, 싸늘한 가을밤 공기에 시린 허벅지를 두 손으로 문지르며 어색함을 달래고 있었다. 달수가 그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담배를 피기 위해 일어서는데 그녀가 달수를 잡아 세웠다.
“ 가지 마세요.”
“ 네?... 저 가려는게 아니고 담배…”
“ 정국씨한테 달수씨 얘기 들었어요.”
“ 정국씨? 아!~ 박 중위요?”
“ 박 대위죠, 부대에 있었으면 이 번 달 초에 진급을 했을 테니까… 김대위님 처럼요.”
“ 그, 그렇군요…근네 박중위 아니 박대위가 왜 내 얘기를 차중위님 한테…”
미례는 정국과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사랑을 키웠다고 했다. 체육학과 3년 선배인 정국은 펜싱을 전공했고 자신은 태권도를 전공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끌려 하기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아 운동 삼아 한 것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특기를 살려 여군 특전하사관으로 1년 근무하다가 우연히 국방신문에서 본 간호장교 선발 기사를 보고 응모하여 간호사관학교에 입학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공비 토벌전에 같이 투입되었던 손중사가 떠오르며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 그럼 여기에 오게 된 것도 박대위 때문에...”
“ 제가 외삼촌에게 졸랐죠. 정국씨 입원해 있는 정형외과 간호장교로 가겠다고…”
“ 외삼촌이요? “
“ 병원장님이 제 외삼촌 이예요.”
“ 최도수 장군님이?”
달수가 수술 직후 마취가 풀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옆자리에 서서 달수를 내려다 보던 최도수 장군의 근엄하고 온화한 얼굴이 떠올랐다. 최 장군은 김재규의 쏜 총탄을 맞아 수도 통합병원으로 실려온 박정희 대통령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서거를 확인한 군의관이었다는, 장교병실에서 옹기 종기 모여 바둑을 두는 무리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 그런데 정국씨가 나를 보자 반가와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도 괴로와 했어요…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해서 특별보호대상으로 독실에 1주간 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외삼촌이 저를 정형외과에 신경외과로 보직변경을 지시한 거예요.”
달수는 정국에게 제대하면 계명 여고의 체육교사겸 펜싱부 감독으로 가기로 되어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미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국이 미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오늘 당직이라 조금 전 정형외과 장교병실을 들렀어요. 정국씨가 보이지 않더군요, 이리 저리 찾아 헤맸어요. 잠을 못 이루고 비상계단 층계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더군요. 그가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던 것을 잊고 그에게 다가갔어요. 살벌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더니 옆에 기대두었던 목발을 짚고 일어서 부리나케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랬군요…” 달수는 위로의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한 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그가 병실에 있는 것을 보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았어요. 정형외과 병실 창문으로 그가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대어 미끄러져 주저 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흐흐흑…”
달수는 갑자기 귀가 멍해지면서 주위에 서로 경쟁하듯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은쟁반에 구슬 굴러가는 듯한 미례의 목소리가 저런 슬픔을 담고 있었을 줄이야. 항상 미소가 담겨, 별 하나 없는 칠흙 같은 밤하늘에 오로지 혼자 빛나던 반달 같던 저 눈에서 저토록 고통에 밀려 흘러나오는 눈물을 담고 있었을 줄이야. 달수는 인간만이 감정을 숨기고 주변과 동화하며 살아간다지만 어쩐지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 잘 하셨어요… 미례씨… 그래요… 감정을 너무 숨기고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용기를 가지세요 정국이가 저러는 것도 이해하셔야 되요. 잘나가던 펜싱선수가 다리를 잃었으니 그에겐 무슨 말도 위로가 안될 거예요. 저도 그래서 그에게 가급적이면 과거 얘기보다는 순간 순간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했어요.”
“고마워요 달수씨… 그렇찮아도 한 달 전 정국씨와 이곳에서 처음 상면했을 때 정국씨가 얘기했어요. 신경외과에 동기가 하나 있는데,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쓴다고 하더군요. 그 때 달수씨 이름을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외삼촌이 정형외과에서 저를 내쫓을 때 신경외과로 가겠다고 했죠.”
“근데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군요. 지금까지… 하하하 ”
“ 호호호”
미례의 슬픈 이야기에 차마 소리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던 것 인양, 끊겼던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미례의 실같이 가느다란 조신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달수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정국이 다시 비상계단으로 나와 쪼그리고 앉아 길게 빨아대어 뿜어내는 담배 연기 사이로 달수와 미례가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 보고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마치 연인 같은 모습이 그의 아직 마르지 않은 눈동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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