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39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20회)

김시우
2007.04.29 17:15 1,814 0

본문

충성! 그럼 김대위님, 부대는 신경 쓰지 말고 잘 다녀 오십시요.”

짚차로 달수를 태워 부대에서 시내 버스 터미널까지 따라 나온 당직사관 변상호 상사가 침통한 표정을 하고 달수에게 경례를 부쳤다. 달수는 억지 쓴 웃음과 손을 들어 고맙다는 표시를 하며 서울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변 상사는 본부중대 인사계로 달수의 고등학교 6년 선배다. 대대 간부 회식 때 옆에 앉은 그와 대화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둘은 사적으로 만나면 호형 호제하지만 군복을 입으면 찬바람이 불 정도로 위계질서가 명확했다. 서로의 이해와 믿음이 있어 가능했다. 그 때부터 달수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들에게 자존심의 상처를 주는 언행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기도 하고, 공사를 구분하여 부하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려 노력하는 습관이 생겼다.

달수가 육군 수도 통합병원에서 원대 복귀하여 바로 휴가 길에 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 가지 못한 것은 다시 한 번 대대장의 출세욕에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달수는 대대장에게 복귀신고를 하고 그와 함께 여단장의 초청을 받았다. 여단장으로부터 하사금 봉투를 받은 달수는 그것을 야전잠바 상의 주머니에 찔러넣고 대대 인사과에서 휴가증을 받아 인사과장과 잠시 환남을 나눈 뒤,BOQ에서 휴가가방을 챙겨 위병소로 향했다.

위병조장 하철수 중사가 달수의 휴가증을 확인하고 위병소 관리일지에 뭔가를 적는데 처음보는 중령이 짚아에 앉아 위병의 정지신호를 받고 신분증 조사를 받고 있었다. 휴가증을 돌려받은 달수가 부대 정문을 통과하면서 방금 통과한 중령의 신문을 묻자 군단 정훈참모라고 했다. 그는 대대장의 갑종장교 3년 선배로 전임 대대장이었다. 그는 진급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달수가 위병소 정문을 통과하고 100여 미터 전방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하는데 어디선가 전화를 받은 하중사가  달수를 불렀다. 달수가 돌아서 보니 대대 주임상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엇이 그리 급한지 짚차를 손수 운전을 하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연병장을 가로 질러오며 달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 김 대위니임~ 잠깐만요”

달수 앞에 정차한 짚차를 타고 있는 주임상사 서상철 원사는 마치 짚차대신 자신이 직접 달려온 것처럼 헐떡거렸다. 달수는 짚차가 만들어낸 먼지를 손을 가로 저어 흩뜨리며 눈살을 찌뿌리다 자신이 타고 갈 버스가 정류장으로 가까워오는 것을 쳐다보면서 서원사에게 물었다.

“ 무슨 일입니까?”

“ 군단 정훈참모가 보시자고 합니다.”

“ 나를? 왜요?”

“ 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서 차에 오르십시요.”

“ 이것 보세요, 주임상사 내가 오라고 오가 가라면 가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난 휴가중 입니다. 직속상관도 아닌 사람의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휴가 갔다와서 제가 찾아 뵙겠다고 하세요. 저 그럼 이만…”

달수가 돌아서 정류장에 정차하기 위해 서행하는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자 서원사가 황급히 짚차에서 내려 달수의 팔을 잡고 난감한 표정으로 통사정했다.

“제가 김대위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온 것 아닙니까, 저 혼자 돌아가면…”

“주임상사! 참 답답하십니다.  제가 이미 출발해서 만나지 못한 것으로 하세요."

버스기사가 달수에게 탈건지 아닌지 묻었다. 서원사가 그냥 가라고 눈짓하자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는 검은 매연과 먼지를 일으키며 달수의 휴가가 사라지듯 사라져 갔다.  달수는 작은 아버지 나이뻘 되는 서원사를 노려만 볼 뿐 격한 감정표현을 할 수  없었다. 달수는 땀이 송송 맺혀있는 그의  이마의 깊은 주름에서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골마을의 흙 벽돌로 지은 허름한 그의 집과 초라한 그의 살림살이를 읽어냈다. 달수의  힘이 들어간 눈이 풀리고  입에서는 한숨이 내쉬어졌다.

“ 그래 김달수 대위라고 했던가? 여기 좀 앉지.”

대대장실로 들어간 달수가 경례를 하자 대대장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정훈참모가 달수를 자신이 앉은자리 맞은 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대대장은 여전히 달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일어서 보안을 위해 부대의 현황도를 가린 커튼의 맵시를 다듬었다. 정훈 참모는 그러는 대대장을 잠시 올려다 보다가 자신이 대대장에게 제안한 것을 달수에게 설명했다.

그의 말은 공비침투 및 토벌의 국민적 관심이 식지 않았을 때 군단 예하 전 부대를 순회하며 달수의 환영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달수는 그의 말을 듣고 단번에 그가 환영회로 포장한 정신교육의 교보재로 달수를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대대장과 정훈참모의 진의는 대대적인 정신교육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을 제고하여 근무평점을 높여 진급을 하기 위한 발판을 삼겠다는 것이다.

“ 정훈참모님, 아시다시피 저는 휴가 첫날 복귀하여 공비토벌전에 투입되어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5개월을 보내고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셔 제 병문안도 오지 못했습니다. 이번 만큼은 꼭 떠나야겠습니다.”

달수의 완강한 태도에 정훈참모가 말을 잇지 못하자 대대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김대위… 자네가 알다시피 난 갑종출신 장교야, 진급에 이만 저만 불리한 게 아니야. 나나 저 형님, 아니 참모님이나 여기까지 온 것도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나도 이러는 내가 싫어. 나도 여단장 한 번 해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장군도 되보고 싶네…김대위 내 이 은혜 잊지 않겠네.”

이런 대대장의 인간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달수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달수는 꽃다발과 화환에 파묻혀10여일 동안 전 부대를 돌며 정훈참모가 작성해준 원고를 외워서 연설을 했다. 전쟁영웅으로 위장된 10여일은 정말 달수를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투담이 과장된 원고를 읽을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버리는 허탈감에 시달렸다. 부대에 복귀하여 정기휴가 15일에 포상휴가 7일이 더해진 휴가장을 받아 든 달수는 바로 고향으로 떠나지 않았다. 공비 토벌전에 같이 투입되었던 손중사를 만나기 위해 군단 야전병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건장한 위생병 두 명이 그의 양 옆에서 그의 팔을 잡고 면회실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여기 저기 피멍이 들어있었고 두 손은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수갑이 채워있었다. 그가 벽에 머리를 스스로 부딪히거나 손으로 스스로 목을 조여 자해를 한다는 위생병의 설명이었다. 손중사가 달수를 보고 잠시 고개를 꺄우뚱 하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달수를 죽일 듯이 와락 달려들었다.

“ 공비다, 공비야… 죽여야 해 죽여야 해.”

환자실과 면회객실은 쇠창살 위에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송송 뚫린 통유리가 덧대어 가로 막고 있었다. 그가 묶인 두 손으로 통유리를 두드리면서 괴성을 질러댔다. 위생병들이 그의 팔을 양쪽에서 잡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면회실 문을 밀고 사라졌다. 한마디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던 달수는 입이 벌어진 상태에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달수는 고향으로 향하지 못하고 BOQ에 이틀 동안 두문불출 처박혀 있었다. 바로 옆방의 달수의 후배 김경식 중위가 그의 방문을 노크를 하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그가 방문을 열자 달수의 방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 캔 수 십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경식의 부축으로 가까스로 앉은 달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술은 영혼을 적시는 달콤한 액체하고 했던가. 부하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전쟁공포로 인한 치유 불능한 정신질환자가 된 현실 앞에서 달수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술 밖에 없었다.

달수가 몸을 추스리고 고향으로 떠나기 전날 저녁, 잠이 안 올지도 모르는 긴 밤과 여행길에 읽을 소설책 몇 권을 사려고 시내의 서점에 들렀다. 고개를 숙여 신간을 뒤적이다 마땅한 게 없어 서점을 나서려는데 수명의 병사가 먼저 책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모자와 가슴에 제대병 마크가 선명했다.

“ 어? 너희들 제대했어? 근데 여긴 어쩐 일이냐?”

“ 터미널로 가다가 소대장님이 보여서요…”

“ 어~ 그래?”

“ 소대장님 한 잔 하시죠. 이제 언제 볼 지 모르는데…”

그들은 달수가 처음 부대에 전입하여 소대장 보임을 받았을 때, 역시 갓 전입 온 신병들이었다. 달수가 소대장 보직을 마치고 대대 참모로 부임한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달수를 소대장이라고 불렀다. 달수는 그들과 함께 시장터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허름한 순대국집을 찾았다. 달수가 바로 옆에 있는 경림의 찻집 “물망초”를 염두해 두었기 때문이다. 제대병들은 아직도 달수의 그 대나무같이 뻣뻣한 소대장 시절만을 기억하는지 처음에는 약간 긴장한 듯 하다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전임FM 소대장의 망가지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제대병들에게 차비에 보태라고 하면서 만원씩 손에 쥐어준 달수는 물망초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에 들리던 음악소리는 끊기고 홀 중간 천정에 반짝이 조명등 만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닥에 엎어져 찌들은 맥주의 보리냄새가 평소보다 달수의 코점막을 강하게 찔렀다. 달수가 여기 저기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경림이 희미한 조명등이 비추고 있는 구석의, 맥주병과 안주 접시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진 테이블 곁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 아니 무슨 일이예요? 경림씨…”

“ 어머니가 돌아가셨대요, 나 이제 어떻해 살아요?”

경림은 부천에 본가가 있으나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릉에 정착한 20대 중반의 아가씨였다. 고등학교때 기사식당에서 일하는 홀어머니가 택시기사 서성구와 눈이 맞아 결혼하였는데 그는 그녀의 어머니가 식당에서 늦게 돌아오는 틈을 타 자신의 방에 들어와 몹쓸 짓을 일삼아 가출을 했다고 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당장 이혼을 하게 될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 서성구가 술마시고 운전하다 사고를 내서 직장을 잃고 매일 엄마에게 술값을 달라고 했나 봐요. 참다 못한 엄마가 대드니까 그 놈이 칼로 엄마를… 흐흐흑”

달수는 조금 전 마신 독한 소주가 확 깨는 기분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접한 경림에게 달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담배연기만 허공에 쏘아올렸다. 경림은 손님들에게 유행 지난 옷을 입었다는 핀잔을 참아내며 알뜰하게 저축을 하여 허름하지만 살림집이 달린 가게를 장만하여 7년의  유랑생활을 접고 이곳에 정착하고, 엄마와 동생들을 불러들여 함께 살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것을 달수가 잘 알기 때문이다.

“ 경림씨… 이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두 동생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결혼도 하고… 결혼식에 초대해주시면 꼭 갈께요.”

달수는 경림의 가게 셔터문을 내려주고 경림이 오랜만에 신어보는 하이힐로 총총걸음을 하고 터미널로 향하는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녀가 돌아서 손을 흔들자 달수도 활짝 웃으며 어서 가라는 손짓을 하고 BOQ로 향하는가 싶더니 방향을 틀어 대대 지휘본부에 도착했다. 당직 사령으로 근무하고 있을 2년 선배 조만식 대위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바둑 상대가 되어줄 생각이었다.

달수가 일직 사령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대위가 심각한 표정을 띄고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차마 입을 떼기 힘든 것처럼  쭈빗 쭈빗거렸다.  

“아니, 뭐 못 볼 사람 봤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 김대위… 저기 말야…”

조 대위가 도무지 입을 뗄 수 없다고 느꼈던지 달수의 뒤에 서있던 당직 하사관 변상호 상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달수는 그의 말을 듣고 당직 근무자들에게 나누어 주려던 전기구이 통닭 꾸러미를 바닥에 놓아버렸다. 이렇게 해서 달수는 정기휴가, 포상휴가 또는  위로휴가인지 알 수 없는 때늦은 휴가를 떠나게 되었고, 변상사가 호위한 짚차에서 내려 서울행 버스에 앉아 있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오늘 떠나길 잘했지? 주중이라 자리가 텅 비었잖아, 어?”

강릉 제일여고 동창인 친구들과 강릉 경포대에서 2박 3일을 지내고, 재잘거리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기타를 둘러메고 앞장서서 서울행 버스에 올라탄 방수연은 자신들이 앉으려는 맨 뒷 좌석 바로 앞 좌석의 창가에 깊숙이 눌러 앉아 있는 달수를 보았다. 그런데 그가 창 밖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리를 잡은 수연은 달수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막아 울음을 감추는 모습를 보고, 군인이 그것도 장교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것이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한 번 정도 본 듯한 사람이라 궁금함이 더해졌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