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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23회)

김시우
2007.05.17 01:10 2,051 2

본문

“어후~  잠깐만…… 불 좀 켜고…”

달수는 통증이 심한 왼 다리를 끌고 서클 룸 출입구로 기어가서  오른 다리로 일어선 다음 출입구 근처 어딘가에 있을  전원 스위치를 찾아 더듬었다. 전원스위치를 올리자 달수가 뛰어내린 자리에 기타 하나가 박살나 있는 것이 보였다.  달수의 왼다리가 벽에 비스듬히 세워있던 기타를 밟아 미끄러지면서 왼발목이 심하게 접혔던 것이다. 달수가 깨끔발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수연의 지갑을 찾아 헤매었으나 수연의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 저 좀 잡아줘요.”

희정이 창틀에 걸터 앉아 창문 안으로 다리를 집어넣고 말했다. 담장을 뛰어넘을 때와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 또?  아~ 미치겠다. 그냥 거기서 봐, 이 좁은 서클 룸 다 뒤졌는데 없잖아, 다른 데 두고 찾는 거 아냐?”

“ 형이 다쳤는데 내가 여기서 마냥 이렇게 있을 수 없잖아.”

” 내가 한 발로 일어서 너를 잡으면 아주 위험해.”

“ 그럼 미안하지만 저 책상 이쪽으로 밀 수 있어요? ”
  
달수가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오른 발로 책상을 밀어 수연에게 가까히 갖다 대었다. 수연이 창틀에 앉아 책상에 내리려는데 한 뼘 차이로 발끝이 닿지 않았다. 수연의 엉덩이가  창틀에서 미끌리면서 책상에 안착했지만, 창틀이 수연의 짧은 치마를 쓸어 올려 달수는 또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 아뿔사”

달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책상에서 내려 쇼파에 풀석 주저앉은 수연의 눈썹에는 눈물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달수가 넘어지는 소리에 무서워서 울었고 그가 아픈 다리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자신의 지갑을 찾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울었던 것이다.

“ 형 어디 좀 봐요, 괜찮아요?”

달수가 전투화와 양말을 벗자 발목의 검붉게 퉁퉁 부은 살이 복숭아 뼈를 덮고 있었다.

“ 형 이거 심한데……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 괜찮아, 화장실에 가서 찬물 좀 받아와”

수연이 울면서 흘리는 코를 소매로 훔치다가 일어서 주전자를 들고 문을 열려다가 문이 밖에서 잠긴 것을 깨닫고 탄성을 질렀다.

“ 문이 잠겼잖아요, 어떻하죠?”

“ 아~ 그렇지, 밖에서 문이 잠긴거지, 음…비켜봐 ”

달수가 깨끔발로 문에 다가가 어깨로 세게 밀어보지만 장쇠가 문틀에서 빠지지 않는다. 보고만 있던 수연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뛰어 달려들어 어깨로 문을 때리자 손가락 2개정도 들어갈 만큼 문이 열렸다. 달수가 마포자루를 지렛대 삼아 그 틈새에 넣어 잡아당기자 자물쇠와 장쇠가 복도 바닥으로 쇳소리를 내면서 떨어져 문이 활짝 열렸다.

“ 형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다쳐 가지고…”

화장실에서 주전자에 찬물을 받아온 수연이 쇼파에 앉아 쟁반에 올린 달수의 발목에 찬물을 부으면서 달수를 올려보며 울상을 짓는다.

“ 괜찮아, 곧 나아질 꺼야, 발목이 잘린 놈도 있는데 뭐…”

“ 네?”

“ 응? 아, 아무것도 아냐…”

달수는 어느새 동기 박정국이 얘기한 징크스를 믿고 있었다.

“ 이제 됐어, 많이 좋아졌어, 그렇게 있지 말고 여기 편하게 앉아.”

여기 저기가 찌그러지고 금색이 벗겨져 군데 군데 은색 양은 색깔을 내는 주전자의 검정 플라스틱 손잡이를 잡고 쪼그리고 앉아있던 수연이 달수의 오른쪽에 앉았다. 달수가 아직도 훌쩍 거리고 있는 수연의 등을 두드리며 안심시키려 하는데 수연이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수연이 울음을 터뜨린 것은 순진하게도 자신에게 속아 이 깊은 밤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달수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 때문에 다치고도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는 달수에게 편안함을 느껴 긴장이 풀린 탓이기도 하지만, 그 울음에는 그러한 달수의 포근한 성격에 감격하고 그를 향해 소용돌이치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왜 그래?  나 괜찮다니까, 천하의 여장부 방수연 답지않게…허허 참…”

달수가 들썩이는 수연의 어깨를 감싸 위로하자 수연이 달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때 멀찌감치서 누군가 걸어가는 소리가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들려왔다. 아마도 당직 근무자가 순찰을 하는 것 같았다. 수연이 재빨리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달수 곁에 다가와 찰싹 달라붙어 달수의 팔을 감아 안고 숨을 죽인 채 그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밖에서 더 이상 인기척이 없자 수연이 더듬 더듬 쇼파옆에 있는 책상 서랍을 뒤져 양초 케이스를 꺼내어 냈다. 그리고 양초에 불을 붙여 책상 밑에 촛농을 떨구더니 그 위에 양초를 세웠다. 불빛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으면서 서클 룸 바닥으로 그 빛이 깔려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수연이 다시 가끔 서클 멤머들과 캠퍼스 잔디에 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은박지 방석을 철제 캐비넷에서 꺼내어, 달수가 밀어놓았던 책상 위에 올라가더니 까치발을 하고 창문을 닫은 다음 압정으로 고정해 불빛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달수는 또 다시 희정의 속살을 볼까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제 됐다는 듯이 손을 탁탁 턴 수연이 책상에서  껑충 뛰어내리더니 책상 밑의 촛불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조금 어둡다고 느꼈는지 한 개를 더 꺼내 불을 붙였다.

“ 분위기 괜찮다. 그치 형.”

“…………”

“ 아직도 많이 아파? 아! 진짜 우리 비상약 있어, 얼마 전에 기우회 서클 룸에서  남학생이 사람이 다친 사고가 있었는데 그 뒤로 학교에서 비상약함을 구비하도록 지시가 내려왔었어.”

수연이 캐비넷을 열어 비상약함에서 안티푸라민을 꺼내 손가락으로 찍어내어 달수의 발목에 골고루 펴 발랐다. 고개가 숙여진 수연의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자 달수가 손으로 빚어올렸다. 수연이 고개를 들어 씩 웃어보인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울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 오빠, 어? 내가 오빠래… 저기 형… 에이~ 오빠가 낫겠다. 오빠, 우리 노래 부를까?”

“ 이 시간에?  음…  그러지 뭐. 얼큰하게 취했겠다. 기분 한 번 내자.”

수연이 기타를 두 개 가져와서  중창을 할 수 있는 노래를 찾으려 악보를 뒤졌다.

“ 이거 하면 되겠다.”

Let it be me 악보를 펼친 달수가 전주를 연주하니 수연이 곧 따라잡아 선창을 했다. 달수가 2절을 이어 불렀다. 그리고 3절은 둘이서 화음을 내어 마치 여러 차례 연습을 한 것 처럼 완벽하게 마지막 음까지 마무리를 깔끔히 하면서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수연이 기타를 내려놓으면서  달수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달수가 조금 어색해 하더니 입 주위가 가볍게 떨리는 미소를 띄웠다.    

달수도 기타를 내려놓자 수연이 달수의 허벅지를 베게 삼아 누웠다. 수연의 하얀 얼굴이 촛불을 받아 파스텔톤 고운 빛을 냈다. 달수를 올려다 보는 수연의 눈에는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촛불이 담겨 이글거리는 눈을 한 수연이 달수의 목을 잡아 내렸다. 달수와 수연의 입술이 맞닿았다. 둘은 입을 열어 서로의 입술을 몸 안 빨아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엇비껴 가며 끈적한 점막의 접촉부위를 넓히고 쾌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수연의 코에서 뜨겁고 거친 숨이 품어져 나왔다. 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정욕을 불태워야만 했다.

수연이 일어나 달수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베이지색 실크 브라우스 단추를 풀어 제쳤다. 가느다란 파란 실핏줄이 거미줄같이 도포된 투명한 수연의 젖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리호리한 그녀의 몸매에 헐렁한 브라우스에 감추어져 있었던 그것은 제법 풍만했다.

“ 아~!”

달수가 수연의 자홍색 유두를 앞 이로 살짝 깨물자 수연이 입을 반쯤 열고 가느다란 신음을 토해 내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녀의 턱선이 도두라졌다.  달수는 수연의 가슴을 두 손으로 덮어 원을 그리며 맛사지 한 후, 유두부위를 한 움큼 입안으로 물어 넣고 혀를 돌려 애무했다. 수연이 고개를 더욱 뒤로 젖히며 반쯤 감겨진 눈에서 하얀 눈자위만이 드러났다. 수연은 스스로 자신의 목을 감아 쓰다듬으며 달수의 애무를 받아들이면서 끈적한 신음을 토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무거운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달수의 목을 감아 포옹한 수연이 상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연의 단발 머리가 펄럭거려 얼굴을 가렸다. 달수가 두 손으로 수연의 머리를 쓸어올리고 서로 이글거리는 마주 한 둘의  눈은 포효하는 호랑이의 그것 같았다. 양손으로 달수의 어깨를 잡고 상하로 움직이던 수연이 하반신을 앞 뒤로 움직이다 목을 뒤로 제끼면서 아랫 배에 강하게 힘을 주고 내는 신음소리를 냈다. 아랫배를 쥐어짜듯이 반복적으로 수축을 하는 격렬한 쾌감에 수연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이윽고 수연이 달수의 목을 감고 풀석 업어졌다. 수연의 허리를 감고 있는 달수의 손과 팔에 아직도 수연의 아랫배가 수축을 반복하는 것이 느껴진다.

소낙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서로 밀고 당기며 서클 룸을 빠져나온 달수와 수연은 대학 본관 층계에 앉아 한 눈에 들어오는 캠퍼스를 돌아보았다. 동이 트면서 수위실에서 사람이 나와 정문을 개방하는 것을 보고 둘은 서로 돌아보며 씩 웃었다. 달수는 군 작전보다 더 실전 같은 전투를 치뤄낸 기분이다. 그보다 동기 박정국에게서 들었던 징크스를 극복하고 더 이상 자신과 가족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미신 같은 확신을 갖게 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막 밥상을 치운 사람처럼 만족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달수는 또 다시 동기 박정국이 한 말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했다. 수연이 이상하다는 듯 달수를 올려다 보자 달수가 말했다.  

“ 그래서 대장부가 한번  칼을 뽑으면 무우라도 자르라고 했던가 보다. 아니 호박이던가?”

“ 예?”

“ 넌 몰라도 돼… 그런게 있어 하하하.”

4세기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아누스가 거주하던  거대한 기둥을 가진 궁전을 닮은 대학 본관을 뒤로 하고 일어서서 호탕하게 웃는  달수는 군중의 환호에 답하는  그 로마황제가 부럽지 않다.

댓글목록 2

정창주님의 댓글

정창주 2007.05.17 12:10
  더도 덜도 아닌 적당한 수위였다고 생각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선배님.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5.19 11:57
  영화 시나리오에 있는 찐한 표현을 소설체로 풀어 옮기며 수위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