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24회)
김시우
2007.05.19 13:37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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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희정은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앉아있다. 남편이 죽은 뒤로 눈에 띄게 친절해지고, 눈빛이 끈적하게 변한 불문과 교수 김진만과 한 사무실에 있는 것이 불편했었다. 그는 이전에도 조교를 농락했다는 대자보에 이름이 올랐으나 그 대자보는 학교측에 의해 신속하게 찢겨 내려졌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김 교수는 벨기에 출신 불어 회화 교수인 까뜨린느와 결혼하였다가 다음 해에 이혼했다. 그가 혼자가 되었다는 것과 그의 아버지가 재단 이사 중 한 사람이라는 것도 희정에게는 불편한 압력이 되었다. 희정이 유학을 결정하고 사표를 제출하자 희정을 회유하던 김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 무슨 유학이야, 그냥 국내에서 학위를 받아, 그럼 아버지에게 얘기해서 교수 임용토록 할께. 어차피 외국 물 먹어도 고추장 발음은 못 버려.”
그러나 김교수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은 학위를 위한 것이지 발음 교정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 2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교수는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어떻해 그 나라를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국내에서 받은 학위로 선생질 하냐며 국내파 외국어 학과 교수들을 비난하곤 했다.
희정이 고인이 된 남편 완기와의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시절도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날 달수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본 이후였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을 떠나는 파리행 비행기에 그녀를 앉힌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희정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할 때 어쩔 수 없이 지나게 되는 동찬 어머니의 양품점을 접할 때마다 동찬 아닌 달수를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희정은 불연듯 다시 달수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자신을 그토록 처절하게 뒤따라오던 그의 모습과 강한 의지에 타올라 강렬한 눈과 그안에 진지하고 선량한 눈빛도 기억해 내니 달수가 자신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고 확신이 들었고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었다. 그러나 희정은 몇 정거장 못 가고 내려 집으로 돌아왔다. 희정은 아직도 달수에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희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수로 향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선명해졌다. 주말 저녁 퇴근길에 홀로 대학로에 나온 희정은 거리 악사의 공연에 고개를 빼어 들어 쳐다보다가 이내 시큰둥하고 돌아섰다. 희정은 근처의 눈에 띄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분주한 거리가 바라보이는 창가에서 따끈한 코코아 한잔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쌍쌍으로 부여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연인들에게 꽂히는 희정의 시선을 가리려고나 한 듯, 코코아 잔에서 피어 오르는 김이 창문에 서려 거리가 뿌옇게 보였다. 코코아 잔에서 아직도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뒤로 하고 다시 거리로 나온 희정의 발걸음이 공중전화 부스 앞에 멈춰섰다.
“ 자기야 나 오늘 자기 보고 싶단말야… 빨리 나와… 뭐라고? 그렇게 멀리 있어. 그래도 한 시간이면 올 수 있잖아… 나 저 번에 갔던 샹드리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께…빨리 와야 돼.”
한 젊은 여자가 콧소리를 만들어가며 애인과의 약속을 얻어내고 환한 얼굴로 폴짝 폴짝 뛰어 나와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희정이 전화기에 동전을 넣으며 바라보았다. 제법 목을 움추리게 만드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초 겨울 저녁,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드는 젊은 청춘들이 흐드러지는 대학로의 공중전화에서, 희정이 잡은 차가운 전화 수화기만큼 달수의 퇴원을 전하는 국군 수도 통합병원 위생병의 목소리도 차갑다.
“ 퇴원하셨습니다.”
‘살아있으면서 연락도 안하고 말야…’ 갑자기 희정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오기가 밀고 올라왔다. 그녀가 손수건에 감싸 보관하고 있는, 달수도 소중히 여기는 임관반지는 그녀에게 달수를 찾아갈 수 있는 빌미와 용기를 주었다. 강릉 터미널에서 전차부대로 가자면 택시기사들이 더 잘 안다는 달수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날 강릉 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를 잡아타고 달수의 부대로 향하는 희정의 눈에 강릉 관광 호텔 전면에 <대학 가요제 금상 수상, 우리 고장출신 가수 수연> 이라는 나이트 클럽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에 희정은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그 플랭카드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강릉 제일 여고 동창 방수연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연은 같은 반에서 자신과 1, 2등을 다투었기 때문이다.
달수 부대 입구에 도착한 희정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위병이 면회실로 쓰고 있는 PX로 안내했다.
“여기다 면회 할 병사, 계급과 이름을 쓰시고 본인의 이름, 주소, 관계를 쓰시면 됩니다.”
“ 관계요? … 그냥 친군데… 김달수…”
군 부대 면회는 생전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몰라 얼떨떨한 희정이 오른 뺨을 쓰다듬으며 어색한 표정을 지면서 말한다.
“ 네? 김달수 대위님이요? 그러면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장교들은 그냥 면회객들하고 직접 통화하고 시내로 나가는데 왜 여기까지 직접… 그리고 김대위님 지금 휴가중입니다. ”
“ 병원에서는 퇴원해서 자대 복귀했다고 하던데…”
“ 예 맞아요, 얼마전 퇴원하시고 복귀했다가 휴가가셨다니까요. 이것 보세요.”
면회 관리병이 검정색 두툼한 표지의 부대 장사병 휴가자 명단 파일을 열며 손으로 달수의 이름을 짚었다.
“ 야, 김대위님 BOQ에 계신다. 아까 점심시간에 간부식당에서 김대위님 옆방을 쓰는 허정구 중위 만났는데, 김대위님, 손중사 면회 갔다 돌아오신 후로 휴가 갈 생각은 않고 매일 술만 마신다고 하더라.”
책상 맡에 고개숙여 앉아 서류를 뒤적이며 희정의 다리를 곁눈질하며 힐끔거리던 PX 관리관 송해철 상사가 면회 관리병을 돌아보며 말하자 그가 전화기를 잡아들며 희정에게 말했다.
“ 잠깐만요, 내가 BOQ에 관리병에게 확인 좀 해볼게요.”
“ 고맙습니다.”
면회 관리병이 뭔가 잘 못 된 것 같다는 불안감에 안절 부절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희정을 바라보며 전화 수화기를 천천히 내리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을 희정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는지 잠시 뜸을 들였다.
“ .........한 두 시간 전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가셨다고 하네요. 연락처 남겨주심 제가 김대위님께 전해드릴께요.”
“ 아니예요, 제가 시내에 나가서 다른 일 좀 보다가 다시 전화 할께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희정이 송상사와 면회 관리병에게 깊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면회실 출구로 향하자 관리사병이 희정을 막아세웠다.
“ 아니, 여기서 어떻게 시내를 간다는 겁니까?”
“ 오다 보니까 버스가 있던데... 저거 버스 정거장 맞죠, 버스 타고 가죠 뭐”
“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 버스가 와요. 음... 앞으로 1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면회객 태우고 오는 택시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세요.”
장교 숙소 관리병에게 달수가 어떤 여자의 전화를 받고 났다는 말을 차마 전하지 못한 면회 관리병은 희정이 달수와 희정의 관계가 궁금해지며 희정과 몇 마디라도 말을 더 하고 싶었다. 희정이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쭈빗 쭈빗하는 동안 다른 테이블에서 양념 고추장에 절인 닭발을 물어뜯어 오물거리다 뼈를 뱉어내는 병사들이 서로 쳐다보며 ‘키키’거리고 웃었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치마만 둘러도 다 여자로 보인다는 그들에게 희정은 너무나 이뻤다. 희정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둘러 쌓인 느낌이 편하지 않아 자리를 차고 일어나 면회실을 빠져나갔다.
희정은 괜히 서러웠다. 푸석 푸석한 먼지 길을 촛점없는 눈을 하고 앞만 보고 걸었다. 지나가는 군용 60트럭에 앉아있는 병사들이 휘파람을 불고 야유을 보냈다. 다시 바닥만 보고 걷는 희정은 달수를 때려주고 싶었다. 멀쩡히 살아있으면서 연락도 안하고 말야… 그렇게 헛고생을 하게 만든 책임이 연락도 안하고 불쑥 찾아온 자신이 아닌 달수에게 쏠렸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육중한 산들이 중첩된 곳에 툭 떨어진 느낌… 외롭다… 달수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너무나 보고싶다...
뿌옇게 먼지가 덮힌 희정의 윤이 나는 검정 하이힐은 희정의 베이지색 스타킹 색으로 동화되었다. 긴 속 눈섭에는 솜털 같은 것이 달려 이러 저리 날리고 있는 이름 모를 풀의 씨앗이 앉아 거북했다. 희정이 아랫 입술을 빼내어 그 씨앗을 불었으나 그녀의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가 잠시 너풀거릴 뿐, 야생풀 씨앗은 눈썹에 그대로 붙어있다. 희정이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손으로 쳐서 날려버렸다. 괜시리 화가 났다. 희정이 오른 발로 들었다 바닥을 세게 내리 눌렀다.
다리가 아파 주저 앉고 싶을 때 쯤, 멋을 낸답시고 파란색 페인트로 띠를 둘러 더욱 촌티를 내는 마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가 만들어낸 먼지세례를 받은 희정이 구두 굽이 덜렁거리는 하이힐을 손에 들고 버스에 올랐다. 일반 시내버스보다 반 정도 작은 버스 중간의 자리에 주름이 깊은 할머니가 이름 모를 나물이 들은 비닐 봉투를 손목에 감아 들고 옅은 졸음을 이겨내고 있었다.
시내에 도착한 수연은 강릉역 맞은 편 빌딩 숲의 어느 골목길에 있던 것으로 기억나는 구두 수선점을 찾아 헤맸다. 고등학교 때도 보았던 그 아저씨가 그 때 보다 조금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한 평 남짓한 수선점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쇠망치로 희정의 구두 뒷굽을 내리치고 있다. 희정이 수선공의 깊이 갈라진 손가락 끝에 검정 먹이 끼여있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사람들을 포함한 시내의 모습은 10여년 전과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자신은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항상 이고 다니는 하늘이지만 오늘 보는 하늘은 어제와 같은 하늘은 아닐 성싶다. 구두가 고쳐지는 동안 희정은 똑 같은 구름이 똑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자니 지나온 과거들이 주마등처럼, 햇빛에 눈부셔 반쯤 감긴 그녀의 눈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구두굽을 갈아까운 아저씨에게 만원짜리를 건네고 거스름 돈을 마다한 희정은 역전 좌측에 촌을 형성하고 있는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학용품 살 돈을 아껴 모은 돈을 각출해 순대와 곱창을 이쑤시기로 찍어 먹던 곳이었다. 3개 째 순대에 후추소금을 찍어 입에서 오물거리던 희정이 물 한 컵으로 입안을 헹구고, 남은 것을 싸주겠다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좁고 어둑한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달수가 그녀 앞을 ‘휙’하고 지나갔다.
희정은 눈을 의심했다. 워낙 군인들이 많이 왕래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달수로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희정은 골목길에서 한걸음 걸어 나와 그 남자의 뒷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 남자의 왼편에는 그 남자의 팔을 감아 잡고 남자에게 몸을 기대어 거머리 같이 바짝 붙어있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희정은 몸이 얼어붙은 듯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그들과 거리를 좁히려고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서로 무슨 얘기를 주고 받던 남녀가 돌아서 희정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왔다. 희정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 쳐 다시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희정은 눈만 내밀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서로 연신 얼굴을 쳐다 보며 대화를 하고 걸어오는 그 둘을 다시 보았다. 분명히 달수였다. 그리고 그 거머리 같은 여자는 강릉 관광호텔의 옥상에서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플래카드에 인쇄된 얼굴을 가진 고교 동창 방수연 이었다.
“ 하필 방수연…”
고등학교 학예회때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에서 수연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극성스런 로비에 희정이 양보한 줄리엣 역을 한 수연이다. 수연은 로미오 역을 맡은 남학생의 아이를 가져 중퇴하고 소식이 끊겼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말을 몇 년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들었었다. 어깨가 축 쳐져 강릉시내를 하릴없이 터벅터벅 걷던 희정이 어느 조그만 슈퍼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유일한 친척인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다.
희정은 평생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작은 아버지의 얼굴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의 변변치 못한 수입은 부족한 살림을 견디다 못한 작은 어머니를 직업 전선에 내몰았다. 작은 어머니는 동해바다 물질을 해서 소라나 전복을 캐는 일을 하여 생계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다 잠수병에 걸려 오히려 병원비로 살림을 축내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게 사랑, 가난, 그리고 기침이라고 하였던가. 그들은 옹색한 살림처럼 웅크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연신 기침을 쏟아내는 작은 어머니 앞에서 담배연기를 쏘아 올리는 작은 아버지의 시름을 참아내기 힘든 희정이 말없이 가게 문을 나섰다.
희정은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 완기의 본가를 찾았다. 마당에서 빨간 고추를 널다가 희정을 본 시어머니의 주름 잡힌 눈가가 금방 벌개졌다. 잊으려 노력하는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포옹한 둘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안고 있던 팔을 놓아 서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툇마루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희정과 시어머니의 눈에 철 늦은 고추 잠자리 떼가 어지럽다.
“ 완기가 불란서 유학 갔을 때 여기 이렇게 혼자 앉아 있으면 그 놈이 어릴 적 저 고추잠자리 잡으려고 망을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도록 그리워서 눈물을 짓곤 했지만,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 저 푸르고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눈물을 삼키며 잘도 참아 넘겼는데… 올해는 너무 힘들구만… 저 하늘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자식은 칠흑 같은 곳으로 보내놓고 나는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그 놈이 어렸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 몹쓸 병이 걸린거야.”
이제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 지쳐 자학까지 하고 있는 완기 어머니의 주름져 힘없이 내려앉은 눈 밑이 짠 눈물에 진물러 벌겋다. 희정은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가 보다… 나는 그의 죽음을 벌써 가슴 아닌 머리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다른 남자를 찾아 왔는데…’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수치심이 범벅되었던 희정은 다시 강남 터미널행 버스에 올랐고 그 버스는 날개를 달고 파리행 비행기가 되었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김 교수는 벨기에 출신 불어 회화 교수인 까뜨린느와 결혼하였다가 다음 해에 이혼했다. 그가 혼자가 되었다는 것과 그의 아버지가 재단 이사 중 한 사람이라는 것도 희정에게는 불편한 압력이 되었다. 희정이 유학을 결정하고 사표를 제출하자 희정을 회유하던 김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 무슨 유학이야, 그냥 국내에서 학위를 받아, 그럼 아버지에게 얘기해서 교수 임용토록 할께. 어차피 외국 물 먹어도 고추장 발음은 못 버려.”
그러나 김교수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은 학위를 위한 것이지 발음 교정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 2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교수는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어떻해 그 나라를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국내에서 받은 학위로 선생질 하냐며 국내파 외국어 학과 교수들을 비난하곤 했다.
희정이 고인이 된 남편 완기와의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시절도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날 달수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본 이후였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을 떠나는 파리행 비행기에 그녀를 앉힌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희정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할 때 어쩔 수 없이 지나게 되는 동찬 어머니의 양품점을 접할 때마다 동찬 아닌 달수를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희정은 불연듯 다시 달수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자신을 그토록 처절하게 뒤따라오던 그의 모습과 강한 의지에 타올라 강렬한 눈과 그안에 진지하고 선량한 눈빛도 기억해 내니 달수가 자신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고 확신이 들었고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었다. 그러나 희정은 몇 정거장 못 가고 내려 집으로 돌아왔다. 희정은 아직도 달수에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희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수로 향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선명해졌다. 주말 저녁 퇴근길에 홀로 대학로에 나온 희정은 거리 악사의 공연에 고개를 빼어 들어 쳐다보다가 이내 시큰둥하고 돌아섰다. 희정은 근처의 눈에 띄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분주한 거리가 바라보이는 창가에서 따끈한 코코아 한잔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쌍쌍으로 부여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연인들에게 꽂히는 희정의 시선을 가리려고나 한 듯, 코코아 잔에서 피어 오르는 김이 창문에 서려 거리가 뿌옇게 보였다. 코코아 잔에서 아직도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뒤로 하고 다시 거리로 나온 희정의 발걸음이 공중전화 부스 앞에 멈춰섰다.
“ 자기야 나 오늘 자기 보고 싶단말야… 빨리 나와… 뭐라고? 그렇게 멀리 있어. 그래도 한 시간이면 올 수 있잖아… 나 저 번에 갔던 샹드리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께…빨리 와야 돼.”
한 젊은 여자가 콧소리를 만들어가며 애인과의 약속을 얻어내고 환한 얼굴로 폴짝 폴짝 뛰어 나와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희정이 전화기에 동전을 넣으며 바라보았다. 제법 목을 움추리게 만드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초 겨울 저녁,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드는 젊은 청춘들이 흐드러지는 대학로의 공중전화에서, 희정이 잡은 차가운 전화 수화기만큼 달수의 퇴원을 전하는 국군 수도 통합병원 위생병의 목소리도 차갑다.
“ 퇴원하셨습니다.”
‘살아있으면서 연락도 안하고 말야…’ 갑자기 희정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오기가 밀고 올라왔다. 그녀가 손수건에 감싸 보관하고 있는, 달수도 소중히 여기는 임관반지는 그녀에게 달수를 찾아갈 수 있는 빌미와 용기를 주었다. 강릉 터미널에서 전차부대로 가자면 택시기사들이 더 잘 안다는 달수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날 강릉 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를 잡아타고 달수의 부대로 향하는 희정의 눈에 강릉 관광 호텔 전면에 <대학 가요제 금상 수상, 우리 고장출신 가수 수연> 이라는 나이트 클럽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에 희정은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그 플랭카드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강릉 제일 여고 동창 방수연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연은 같은 반에서 자신과 1, 2등을 다투었기 때문이다.
달수 부대 입구에 도착한 희정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위병이 면회실로 쓰고 있는 PX로 안내했다.
“여기다 면회 할 병사, 계급과 이름을 쓰시고 본인의 이름, 주소, 관계를 쓰시면 됩니다.”
“ 관계요? … 그냥 친군데… 김달수…”
군 부대 면회는 생전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몰라 얼떨떨한 희정이 오른 뺨을 쓰다듬으며 어색한 표정을 지면서 말한다.
“ 네? 김달수 대위님이요? 그러면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장교들은 그냥 면회객들하고 직접 통화하고 시내로 나가는데 왜 여기까지 직접… 그리고 김대위님 지금 휴가중입니다. ”
“ 병원에서는 퇴원해서 자대 복귀했다고 하던데…”
“ 예 맞아요, 얼마전 퇴원하시고 복귀했다가 휴가가셨다니까요. 이것 보세요.”
면회 관리병이 검정색 두툼한 표지의 부대 장사병 휴가자 명단 파일을 열며 손으로 달수의 이름을 짚었다.
“ 야, 김대위님 BOQ에 계신다. 아까 점심시간에 간부식당에서 김대위님 옆방을 쓰는 허정구 중위 만났는데, 김대위님, 손중사 면회 갔다 돌아오신 후로 휴가 갈 생각은 않고 매일 술만 마신다고 하더라.”
책상 맡에 고개숙여 앉아 서류를 뒤적이며 희정의 다리를 곁눈질하며 힐끔거리던 PX 관리관 송해철 상사가 면회 관리병을 돌아보며 말하자 그가 전화기를 잡아들며 희정에게 말했다.
“ 잠깐만요, 내가 BOQ에 관리병에게 확인 좀 해볼게요.”
“ 고맙습니다.”
면회 관리병이 뭔가 잘 못 된 것 같다는 불안감에 안절 부절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희정을 바라보며 전화 수화기를 천천히 내리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을 희정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는지 잠시 뜸을 들였다.
“ .........한 두 시간 전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가셨다고 하네요. 연락처 남겨주심 제가 김대위님께 전해드릴께요.”
“ 아니예요, 제가 시내에 나가서 다른 일 좀 보다가 다시 전화 할께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희정이 송상사와 면회 관리병에게 깊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면회실 출구로 향하자 관리사병이 희정을 막아세웠다.
“ 아니, 여기서 어떻게 시내를 간다는 겁니까?”
“ 오다 보니까 버스가 있던데... 저거 버스 정거장 맞죠, 버스 타고 가죠 뭐”
“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 버스가 와요. 음... 앞으로 1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면회객 태우고 오는 택시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세요.”
장교 숙소 관리병에게 달수가 어떤 여자의 전화를 받고 났다는 말을 차마 전하지 못한 면회 관리병은 희정이 달수와 희정의 관계가 궁금해지며 희정과 몇 마디라도 말을 더 하고 싶었다. 희정이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쭈빗 쭈빗하는 동안 다른 테이블에서 양념 고추장에 절인 닭발을 물어뜯어 오물거리다 뼈를 뱉어내는 병사들이 서로 쳐다보며 ‘키키’거리고 웃었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치마만 둘러도 다 여자로 보인다는 그들에게 희정은 너무나 이뻤다. 희정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둘러 쌓인 느낌이 편하지 않아 자리를 차고 일어나 면회실을 빠져나갔다.
희정은 괜히 서러웠다. 푸석 푸석한 먼지 길을 촛점없는 눈을 하고 앞만 보고 걸었다. 지나가는 군용 60트럭에 앉아있는 병사들이 휘파람을 불고 야유을 보냈다. 다시 바닥만 보고 걷는 희정은 달수를 때려주고 싶었다. 멀쩡히 살아있으면서 연락도 안하고 말야… 그렇게 헛고생을 하게 만든 책임이 연락도 안하고 불쑥 찾아온 자신이 아닌 달수에게 쏠렸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육중한 산들이 중첩된 곳에 툭 떨어진 느낌… 외롭다… 달수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너무나 보고싶다...
뿌옇게 먼지가 덮힌 희정의 윤이 나는 검정 하이힐은 희정의 베이지색 스타킹 색으로 동화되었다. 긴 속 눈섭에는 솜털 같은 것이 달려 이러 저리 날리고 있는 이름 모를 풀의 씨앗이 앉아 거북했다. 희정이 아랫 입술을 빼내어 그 씨앗을 불었으나 그녀의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가 잠시 너풀거릴 뿐, 야생풀 씨앗은 눈썹에 그대로 붙어있다. 희정이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손으로 쳐서 날려버렸다. 괜시리 화가 났다. 희정이 오른 발로 들었다 바닥을 세게 내리 눌렀다.
다리가 아파 주저 앉고 싶을 때 쯤, 멋을 낸답시고 파란색 페인트로 띠를 둘러 더욱 촌티를 내는 마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가 만들어낸 먼지세례를 받은 희정이 구두 굽이 덜렁거리는 하이힐을 손에 들고 버스에 올랐다. 일반 시내버스보다 반 정도 작은 버스 중간의 자리에 주름이 깊은 할머니가 이름 모를 나물이 들은 비닐 봉투를 손목에 감아 들고 옅은 졸음을 이겨내고 있었다.
시내에 도착한 수연은 강릉역 맞은 편 빌딩 숲의 어느 골목길에 있던 것으로 기억나는 구두 수선점을 찾아 헤맸다. 고등학교 때도 보았던 그 아저씨가 그 때 보다 조금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한 평 남짓한 수선점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쇠망치로 희정의 구두 뒷굽을 내리치고 있다. 희정이 수선공의 깊이 갈라진 손가락 끝에 검정 먹이 끼여있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사람들을 포함한 시내의 모습은 10여년 전과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자신은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항상 이고 다니는 하늘이지만 오늘 보는 하늘은 어제와 같은 하늘은 아닐 성싶다. 구두가 고쳐지는 동안 희정은 똑 같은 구름이 똑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자니 지나온 과거들이 주마등처럼, 햇빛에 눈부셔 반쯤 감긴 그녀의 눈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구두굽을 갈아까운 아저씨에게 만원짜리를 건네고 거스름 돈을 마다한 희정은 역전 좌측에 촌을 형성하고 있는 먹자골목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학용품 살 돈을 아껴 모은 돈을 각출해 순대와 곱창을 이쑤시기로 찍어 먹던 곳이었다. 3개 째 순대에 후추소금을 찍어 입에서 오물거리던 희정이 물 한 컵으로 입안을 헹구고, 남은 것을 싸주겠다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좁고 어둑한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달수가 그녀 앞을 ‘휙’하고 지나갔다.
희정은 눈을 의심했다. 워낙 군인들이 많이 왕래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달수로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희정은 골목길에서 한걸음 걸어 나와 그 남자의 뒷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 남자의 왼편에는 그 남자의 팔을 감아 잡고 남자에게 몸을 기대어 거머리 같이 바짝 붙어있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희정은 몸이 얼어붙은 듯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그들과 거리를 좁히려고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서로 무슨 얘기를 주고 받던 남녀가 돌아서 희정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왔다. 희정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 쳐 다시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희정은 눈만 내밀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서로 연신 얼굴을 쳐다 보며 대화를 하고 걸어오는 그 둘을 다시 보았다. 분명히 달수였다. 그리고 그 거머리 같은 여자는 강릉 관광호텔의 옥상에서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플래카드에 인쇄된 얼굴을 가진 고교 동창 방수연 이었다.
“ 하필 방수연…”
고등학교 학예회때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에서 수연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극성스런 로비에 희정이 양보한 줄리엣 역을 한 수연이다. 수연은 로미오 역을 맡은 남학생의 아이를 가져 중퇴하고 소식이 끊겼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말을 몇 년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들었었다. 어깨가 축 쳐져 강릉시내를 하릴없이 터벅터벅 걷던 희정이 어느 조그만 슈퍼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유일한 친척인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다.
희정은 평생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작은 아버지의 얼굴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의 변변치 못한 수입은 부족한 살림을 견디다 못한 작은 어머니를 직업 전선에 내몰았다. 작은 어머니는 동해바다 물질을 해서 소라나 전복을 캐는 일을 하여 생계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다 잠수병에 걸려 오히려 병원비로 살림을 축내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게 사랑, 가난, 그리고 기침이라고 하였던가. 그들은 옹색한 살림처럼 웅크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연신 기침을 쏟아내는 작은 어머니 앞에서 담배연기를 쏘아 올리는 작은 아버지의 시름을 참아내기 힘든 희정이 말없이 가게 문을 나섰다.
희정은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 완기의 본가를 찾았다. 마당에서 빨간 고추를 널다가 희정을 본 시어머니의 주름 잡힌 눈가가 금방 벌개졌다. 잊으려 노력하는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포옹한 둘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안고 있던 팔을 놓아 서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툇마루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희정과 시어머니의 눈에 철 늦은 고추 잠자리 떼가 어지럽다.
“ 완기가 불란서 유학 갔을 때 여기 이렇게 혼자 앉아 있으면 그 놈이 어릴 적 저 고추잠자리 잡으려고 망을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도록 그리워서 눈물을 짓곤 했지만,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 저 푸르고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눈물을 삼키며 잘도 참아 넘겼는데… 올해는 너무 힘들구만… 저 하늘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자식은 칠흑 같은 곳으로 보내놓고 나는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그 놈이 어렸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 몹쓸 병이 걸린거야.”
이제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 지쳐 자학까지 하고 있는 완기 어머니의 주름져 힘없이 내려앉은 눈 밑이 짠 눈물에 진물러 벌겋다. 희정은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가 보다… 나는 그의 죽음을 벌써 가슴 아닌 머리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다른 남자를 찾아 왔는데…’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수치심이 범벅되었던 희정은 다시 강남 터미널행 버스에 올랐고 그 버스는 날개를 달고 파리행 비행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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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돼랑님의 댓글
지금 시켜서 묵고 있읍니다.....^^
정창주님의 댓글
김시우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