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27회)
김시우
2007.06.11 01:4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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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르본느 대학 기숙사에 여장을 푼 희정은 오랜 전통을 말해주듯이 페인트가 일부 벗겨져 나간 파란 파스텔 톤 나무틀 창문을 올리고 교정 안팎 을 내려다 보며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의 대학도 이렇게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캠퍼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문만 나서면 차도 좌우측에 정체불명의 수많은 카페와 술집 간판, 옷 가게들… 학원가 라기 보다는 차라리 유흥가에 가까운 자신이 공부하고 일을 했던 모교의 대학가를 떠올렸다. 희정은 커다란 잎의 느티나무를 정자나무 삼아 등을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백인 여학생과 북적대는 거리의 좌판에서 머리핀을 고르는 한국의 여학생을 자연스레 비교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분위기를 바꾸어 탄 희정은 모든 것을 잊은 듯 했다. 대학 졸업 직 후 겁도 없이 감행했던 첫 번째 유학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첫 번째 유학은 얼떨결에 보냈다면 두 번째 유학은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학문적인 식견과 세상을 보는 견문도 넓어진 희정은 사회 반향적인 주제와 토론으로 신선한 바람을 가져온 동양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희정은 비행 중 실종된 셍떽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와 야간여행 통해 그의 실제적 삶을 역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형식의 독특한 논문으로 외국인 학생 중에는 최고성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사랑을 뒤쫓기보다는 유학을 택했던 희정의 선택은 그녀가 학위를 받는 그날까지는 적어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 성공적인 유학은 희정 자신도 당시에는 가늠하지 못한 달수에 대한 열정이 승화된 것이리라. 유학 기간 중, 달수와 수연이 강릉역 한 복판에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난 희정의 애증은 찬 물속에 가라앉은 녹말가루처럼 녹지않고 가라앉아 누군가 젓가락으로 휘젓지 않은 한 영원히 묻혀진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유학시절 완기를 만나 결혼을 했었지만, 두 번째 유학에선 희정은 오로지 책과 씨름을 하였고 학업적인 목적이 아닌 사교적인 모임은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한 고의적인 고립과 침잠은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캐랙터와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감정을 스스로 가라앉히고 스스로 부상시킬 수 있는 완벽한 감정조절능력이 그것이다. 그것은 배우가 감정을 조절하여 눈물을 빼어내는 그런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희정의 지도 교수 삐에르 마르뗑 부부는 귀국을 하루 앞둔 희정을 포함한 자신의 제자들을 그의 집에 초대했다. 그의 집에는 한국 프랑스 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하는 그의 아들 애론이 휴가차 방문 중이었다. 애론은 IEP(파리정치학교)와 프랑스 역대 대통령의 산실인 ENA(파리행정대학원)을 거쳐 한국 프랑스 대사관 근무를 자처했다.
드골에 의해 창당되었고 쟉끄 시락끄에 의하여 주도되어 프랑스 제 1 정당으로 발전한 공화 연합당에서 시라끄와 발라뒤르 두 명의 대통령 후보의 알력으로 당론이 분열되자, 시락끄는 차세대까지 내다보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갖추고 당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차세대 젊은 지도자로 애론을 지목, 영입하려 하였으나 애론은 한국행을 택했다.
애론의 선택은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어머니 소피의 영향이 컸다. 또한 그는 한국의 집단 또래 문화를 연구하여 논문을 낸 프랑스에서 몇 명 안 되는 한국통 이었다. 훗날 그는 시라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중심적 위치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의 눈이 희정에게 자주 머무는 것을 그의 어머니 소피가 눈치채고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들이 짭짤한 올리브가 잘 버무려진 샐러드와 함께 와인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던 중 소피가 동찬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한국 친구 얘기를 하기에 희정이 물었다.
“ 혹시 마담 고 아닌가요?”
“ 뫄드뫄젤 리… 마담 고를 알아요?”
지도 교수 부인 소피가 동찬 어머니 고여사의 친구였었다니 세상 좁다 했지만 희정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미모에다 교양도 넘쳤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안부 전해 주십시오. 아니... 전화번호를 알고 있나요? 내가 직접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피에르 교수 부인 소피는 30 여 년전 교환 학생으로 이화여대에서 2년을 머물었을 때 의상학과에 재학중인 동찬의 어머니를 만났고, 그녀를 통해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정서를 배우고 이해했다고 했다. 지도교수 초청에 감사를 표하고 집으로 향하는 희정은 3년전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 출국 인사차 동찬 어머니를 뵈었을 때 그녀가 억지로 자신의 손에 쥐어준 담뱃갑 크기만한 보석함을 보고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 성의 표시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요. 조그만 반지하나 준비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열어봐요.”
비행기내에서 궁금증이 발동한 희정이 핸드백에서 고여사가 강제로 떠맡기다 시피한 반지함이기에는 조금 크다싶은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포장을 풀고 뚜껑을 들어올리자 한 눈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자홍색 루비가 얹혀진 반지와 작은 쪽지가 있었다.
[상자 바닥에 현금카드가 있습니다. 유학 생활하는 동안 긴요하게 쓰여지면 저희 모자의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희정이 보석함 안의 주름 잡힌 상아색 실크로 감싸진 반지 거치대를 걷어내자, 희정의 이름으로 발급된 현금카드가 드러났다. 그때서야 희정은 고여사가 왜 상자를 열어보지 못하게 했는지 알았다. 희정이 파리에 도착한 후 은행에 전화를 하여 확인해 보니 잔고가 5만 프랑이나 되었다. 희정은 동찬과 우연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큰 돈을 받아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었다.
희정은 반지와 카드를 상자 안에 집어넣고 다시 핸드백 바닥에 깊숙히 넣었다. 희정은 귀국할 때가지 이 보석함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이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았다. 노동허가증이 없으면 식당의 웨이츄레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인 프랑스의 외국인 노동현실은 그 다짐을 무너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한국식당의 일자리는 몇 년 새 부쩍 늘은 유학생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희정이 2년 6개월 동안 모교에서 조교로 일해서 저축한 돈은 1년이 채 안되어 바닥을 드러냈다. 3년의 유학생활 동안 희정은 고여사의 장학금 아닌 장학금이 없었으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할 수 없을 만큼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많았었다. 기숙사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유리창을 깨고 카 스테리오 박스를 뜯어간 사건, 강의실에 잠시 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누군가 비싼 전공서적을 가져간 것, 와인과 같이 먹은 파스타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3일간을 병원 신세를 져 병원비가 지출되었던 것 등이 그러했다.
희정은 다시 서울행 비행기 안에 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다가 책갈피에서 박사모를 쓰고 지도교수와 같이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미소를 짓는다. 책을 덮은 희정이 시트에 머리에 기대어 눈을 감자 그제서야 달수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비행도중 행방불명이 된 셍떽쥐베리 처럼 달수의 곁에서 사라졌던 희정이었다.
남편 완기를 잃고 달수도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타인의 존재를 인간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가장 구체적이며 해소하기 어려운 문제로 제시하고 있는 사르트르가 말했던 ‘타인은 지옥’ 을 떠올리는 것이 희정의 자연스러운 사고 작용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의 사전적 정의는 2개의 안구가 하나의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시선은 두 눈을 집중해 누군가를 바라보는 단순한 시각 작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시선 주체의 의식 흐름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달수를 향했던 희정의 시선은 달수가 수연과같이 있던 날 끊기고야 말았다. 시선을 받지 아니하는 자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되 정신적으로 실존하지 않는 것 처럼 희정이 훗날 우연히 달수를 만날 때까지 달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와 무는 다르지 않는 하나일까. 어쩌면 희정은 자신의 의식의 흐름이 달수로 향하는 것을 거부했는 지도 모른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던 사르트르 처럼.
“ 어머니… 그 동안 건강하셨어요?”
“ 아이고! 이게 누구야? 어서 와. 시간을 꺼꾸로 거스른 사람처럼 더 이뻐졌어, 낯선 곳에서 공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그래 학위는 문안이 받았다며? 거기다 외국 유학생 중에 최고의 성적으로 총장님 표창까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오늘 아침 소피에게 전화를 받았어, 희정씨 덕분에 30년 만에 옛 친구도 찾고… 이거 겹경사 났지 뭐야. 하여간 희정씨는 복덩어리야.”
김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신촌의 고여사 양품점에 귀국인사를 하러 들른 희정을 고 여사가 고향을 떠나 시집 간 외동 딸자식 반기듯 했다. 복덩이라는 호감적인 언어 속에는 고여사의 그녀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깊이 서려 있었다.
“ 어머니 덕택입니다. 그 돈을 받고 쓸 때까지 정말 부끄럽고 힘이 들었지만 그 돈이 없었다면 학위를 포기하고 조기 귀국을 했을 거예요,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보다 여건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제가 곧 벌어서 갚을께요, 다시 감사드려요 어머니…”
“갚다니 무슨 얘기야? 생명의 은인한테 그 정도 밖에 답례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구만…”
고개를 약간 틀어 사시 눈을 하고 희정을 바라보던 고여사를 희정이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다. 유학을 떠날 때 보다 실내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을 느낀 희정이 고여사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고개를 두리번 거리는데 차를 내어오던 고여사가 말했다.
“ 좀 변했지? 옆에 세 주었던 보석점 내 보내고 확장 공사해서 넓혔지. 그리고 저기 보이지? 간이 칸막이로 구분해놓은 곳… 동찬이 사무실로 쓰고 있어. 동찬이 몸이 불편하니… 그 보다 걔가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내가 불안해서 그렇게 했어.”
3년전 동찬이 국군 수도 통합병원에서 복도에 갖혀 생명에 위태했던 사건 이후 동찬 어머니는 동찬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자동차는 장애인 용으로 개조해서 가까운 거리는 동찬이 운전을 하고 볼 일을 보지만 동찬 어머니가 항상 동승하여 동찬의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 다닌다고 했다.
“ 동찬씨 퇴원했어요? "
“ 그럼, 벌써 2년이 되어가는 걸…가만있자… 얘, 동찬아… 동찬아~”
고 여사가 고개를 돌려 양품점과 사무실을 구분한 회색 칸막이로 향하여 동찬을 불렀다. 사실 동찬은 희정의 목소리를 듣고 칸막이 너머 책상에 앉아 일손을 놓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 처럼 갈비뼈 내부를 두드리고 있었고 살없는 광대뼈 위에는 홍조가 일었다. 고여사의 외침에 잠시 머뭇거리던 동찬이 휠체어에 앉아 청색남방에 자주색 스웨터를 어깨에 걸치고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머리도 제법 길어 무스를 발라 광채를 내고 있었다. 얼굴은 제법 살이 붙어 큰 눈과 오똑한 콧날은 그대로이나, 날카로왔던 턱선이 다소 갸름해져 있었다. 그가 어색한 웃음으로 희정을 맞았다. 희정이 동찬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꾸벅였다.
“ 그래도 지금은 목발을 짚고 일어서 걸어 다니며 자기 할 일 다해… 자긴 목발 없이 걷는 것이 목표 라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못하는 게 없어.”
고여사가 침묵을 깨고 동찬이 더 이상 이전의 불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어조로 말을 이어 갔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조류를 거스리지 못하는 강바닥의 모래가 쓸리듯 불안감이 바닥을 일고 있었다.
“ 동찬이가 용산에 입시학원을 인수하고 건설 투자 자문회사를 설립해서 삼성동에 학원을 짓고 있어, 학원장 에다가 건설회사 사장님이야. 얘, 동찬아 거기에도 불어반이 있냐? 우리 이박사님 자리 말야.”
“ 에이 엄마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아요, 그리고 그 학원은 희정씨 같은 박사님이 강의할 만한 곳이 못 되요. 그냥 입시학원인데요 뭐.”
“ 그러냐?… 근데 희정씨는 어디 일자리 알아봤어?”
“ 아니요 아직…우선 모교에 귀국 인사차 찾아가서 타진을 해보고요, 그래서 안되면 몇 군데 이력서를 넣을 생각이예요…”
“ 음… 잠깐만… 동찬 아버지 친구가 서울대 법대 학장인데 내가 한 번 만나봐야 되겠네.”
“ 엄마 대학교수 뽑는데 입김 넣으면 안돼요. 희정씬 다른 사람 도움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동찬은 희정이 돌아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반갑고 기뻤으나 표현할 수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동찬은 불구자라는 족쇄가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을 희정을 다시 만난 이후로 또 한 번 깨우쳤다. 고여사는 동찬과 희정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했는지 과일을 내어온다며 내실로 들어갔다. 5분 여 지나도록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만이 감돌았고 눈도 마주하지 못하고 화제거리를 찾지 못하는 두 젊은 남녀에게는 그 찰나가 고문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양품점 손님이 듯한 중년 여자 두 명이 들어오면서 고여사를 찾았다. 동찬은 기다렸다는 듯이 휠체어 바퀴 하나를 잡아 돌려 희정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고여사를 불렀다. 고여사가 광주리에 과일을 한가득 들고 나오다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피둥 피둥한 두 중년 여자들을 보자 반색을 하고 맞았다. 꽤나 돈 씀씀이가 큰 유한 마담들이 틀림없었다.
희정은 고여사의 영업에 방해가 되나 싶어 시차에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빠져 나와 조교로 일했던 모교로 향했다. 양품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희정이 커다란 쇼윈도우에 세워져 있는 마네킹들의 사이를 비집고 빠져 나가듯 양품점 앞을 지나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동찬이 말없이 휠체어를 움직였다.
고여사가 옷을 고르는 손님들 뒤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상품 설명을 하였으나 그 둘은 다음에 오겠다며 그냥 나가버렸다. 속상한 표정을 지며 풀이 죽어있던 고여사가 흠짓 놀라 동찬 쪽을 돌아보았다. 담배 타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고 여사가 동찬의 사무실 칸막이 너머 연기가 모락 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동찬에게 다가갔다.
“ 내가 누구 땜에 이러는데 너는 죽으려고 환장했냐? 네 폐활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최박사님 얘기 못 들었어? 담배는 네게 치명적이야… 동찬아… 엄마도 이렇게 참고 견디고 산다. 너만 바라보고 산단 말이다. 다신 담배 입에 물 생각을 마라.”
“ 엄마가 뭘 알아? 엄마가 내 마음을 아냐고?…”
고여사가 동찬이 입에 물린 담배를 빼앗아 재떨이에 비벼 끄며 호통을 치자 동찬이 소리쳤다. 이러는 동찬의 절규의 속내음을 고여사가 모를 리 없고, 동찬 역시 어머니 고여사가 자신의 비애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슴에도 동찬은 아이가 떼쓰듯 했다.
장난감을 사주지 않자 길거리에 주저 앉아 발버둥을 치며 우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동찬은 이미 손에서 멀어진 그 무엇을 다시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 몸을 떠는 것이다. 희정은 짧은 시간이지만 동찬이 자신에게 연정을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고여사의 자신에 대한 대한 언행 또한 그러한 동찬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희정은 완기와의 결혼이란 희망의 그늘에서 신음했고, 달수로 향한 열정이 만들어낸 상처가 아직도 그녀의 몸 어디에선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추상적인 사랑의 달콤함에 젖을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살아 남아야겠다는 본능적인 생존의식만이 희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서는 김진만 교수를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생존본능 앞에서는, 한겨울 처마 밑에 절대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게 달려있었으나 봄이 되자 녹아내려 시냇물에 합류하는 고드름처럼 녹아 내렸다. 그녀는 어느새 문중 어른의 훈계를 듣는 후손처럼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김 교수의 앞에 공손히 앉아있다.
“글쎄… 교수가 한 명 더 필요하긴 한데… 아버지 말에 의하면 요즘 학교가 긴축 재정이라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 교수회의에서 내가 불문과 교수 한 명 더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이 조교, 아니 이 박사가 하기에 달린 거 아니겠어?”
고여사의 양품점에서 나와 곧바로 모교를 찾은 희정에게 유학 간 사이 주임교수가 된 김진만이 알아들을 듯 말듯한 어투로 희정의 속을 긁었다. 희정은 그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정이 눈이 띄게 건강이 나빠진 할머니의 산보를 돕고 간호하며, 이력서를 제출한 몇 군데의 대학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한 달여 기다리던 어느날 그녀의 전화 벨이 울렸다.
“누나! 나 합격했어, 내가 해냈어 누나!”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희정의 눈에 흐르다 남은 눈물이 괴어 있다. 가슴의 멍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칠순을 넘긴 할머니와 남동생 희철을 떠나야만 했던 희정이었다. 남들처럼 공부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주말이면 혼자 계신 할머니 병수발해야 했던 동생이 3번째 도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검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 감격스런 순간을 같이 지낼 수 있었을 텐데…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감싸안고 바닥에 주저 앉아 우는 희정을 향해 희철이 했던 말이 여전히 수화기를 내려놓은 희정의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반드시 밝혀 낼꺼야.”
정문만 나서면 차도 좌우측에 정체불명의 수많은 카페와 술집 간판, 옷 가게들… 학원가 라기 보다는 차라리 유흥가에 가까운 자신이 공부하고 일을 했던 모교의 대학가를 떠올렸다. 희정은 커다란 잎의 느티나무를 정자나무 삼아 등을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백인 여학생과 북적대는 거리의 좌판에서 머리핀을 고르는 한국의 여학생을 자연스레 비교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분위기를 바꾸어 탄 희정은 모든 것을 잊은 듯 했다. 대학 졸업 직 후 겁도 없이 감행했던 첫 번째 유학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첫 번째 유학은 얼떨결에 보냈다면 두 번째 유학은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학문적인 식견과 세상을 보는 견문도 넓어진 희정은 사회 반향적인 주제와 토론으로 신선한 바람을 가져온 동양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희정은 비행 중 실종된 셍떽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와 야간여행 통해 그의 실제적 삶을 역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형식의 독특한 논문으로 외국인 학생 중에는 최고성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사랑을 뒤쫓기보다는 유학을 택했던 희정의 선택은 그녀가 학위를 받는 그날까지는 적어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 성공적인 유학은 희정 자신도 당시에는 가늠하지 못한 달수에 대한 열정이 승화된 것이리라. 유학 기간 중, 달수와 수연이 강릉역 한 복판에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난 희정의 애증은 찬 물속에 가라앉은 녹말가루처럼 녹지않고 가라앉아 누군가 젓가락으로 휘젓지 않은 한 영원히 묻혀진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유학시절 완기를 만나 결혼을 했었지만, 두 번째 유학에선 희정은 오로지 책과 씨름을 하였고 학업적인 목적이 아닌 사교적인 모임은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한 고의적인 고립과 침잠은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캐랙터와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감정을 스스로 가라앉히고 스스로 부상시킬 수 있는 완벽한 감정조절능력이 그것이다. 그것은 배우가 감정을 조절하여 눈물을 빼어내는 그런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희정의 지도 교수 삐에르 마르뗑 부부는 귀국을 하루 앞둔 희정을 포함한 자신의 제자들을 그의 집에 초대했다. 그의 집에는 한국 프랑스 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하는 그의 아들 애론이 휴가차 방문 중이었다. 애론은 IEP(파리정치학교)와 프랑스 역대 대통령의 산실인 ENA(파리행정대학원)을 거쳐 한국 프랑스 대사관 근무를 자처했다.
드골에 의해 창당되었고 쟉끄 시락끄에 의하여 주도되어 프랑스 제 1 정당으로 발전한 공화 연합당에서 시라끄와 발라뒤르 두 명의 대통령 후보의 알력으로 당론이 분열되자, 시락끄는 차세대까지 내다보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갖추고 당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차세대 젊은 지도자로 애론을 지목, 영입하려 하였으나 애론은 한국행을 택했다.
애론의 선택은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어머니 소피의 영향이 컸다. 또한 그는 한국의 집단 또래 문화를 연구하여 논문을 낸 프랑스에서 몇 명 안 되는 한국통 이었다. 훗날 그는 시라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중심적 위치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의 눈이 희정에게 자주 머무는 것을 그의 어머니 소피가 눈치채고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들이 짭짤한 올리브가 잘 버무려진 샐러드와 함께 와인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던 중 소피가 동찬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한국 친구 얘기를 하기에 희정이 물었다.
“ 혹시 마담 고 아닌가요?”
“ 뫄드뫄젤 리… 마담 고를 알아요?”
지도 교수 부인 소피가 동찬 어머니 고여사의 친구였었다니 세상 좁다 했지만 희정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미모에다 교양도 넘쳤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안부 전해 주십시오. 아니... 전화번호를 알고 있나요? 내가 직접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피에르 교수 부인 소피는 30 여 년전 교환 학생으로 이화여대에서 2년을 머물었을 때 의상학과에 재학중인 동찬의 어머니를 만났고, 그녀를 통해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정서를 배우고 이해했다고 했다. 지도교수 초청에 감사를 표하고 집으로 향하는 희정은 3년전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 출국 인사차 동찬 어머니를 뵈었을 때 그녀가 억지로 자신의 손에 쥐어준 담뱃갑 크기만한 보석함을 보고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 성의 표시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요. 조그만 반지하나 준비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열어봐요.”
비행기내에서 궁금증이 발동한 희정이 핸드백에서 고여사가 강제로 떠맡기다 시피한 반지함이기에는 조금 크다싶은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포장을 풀고 뚜껑을 들어올리자 한 눈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자홍색 루비가 얹혀진 반지와 작은 쪽지가 있었다.
[상자 바닥에 현금카드가 있습니다. 유학 생활하는 동안 긴요하게 쓰여지면 저희 모자의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희정이 보석함 안의 주름 잡힌 상아색 실크로 감싸진 반지 거치대를 걷어내자, 희정의 이름으로 발급된 현금카드가 드러났다. 그때서야 희정은 고여사가 왜 상자를 열어보지 못하게 했는지 알았다. 희정이 파리에 도착한 후 은행에 전화를 하여 확인해 보니 잔고가 5만 프랑이나 되었다. 희정은 동찬과 우연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큰 돈을 받아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었다.
희정은 반지와 카드를 상자 안에 집어넣고 다시 핸드백 바닥에 깊숙히 넣었다. 희정은 귀국할 때가지 이 보석함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이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았다. 노동허가증이 없으면 식당의 웨이츄레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인 프랑스의 외국인 노동현실은 그 다짐을 무너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한국식당의 일자리는 몇 년 새 부쩍 늘은 유학생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희정이 2년 6개월 동안 모교에서 조교로 일해서 저축한 돈은 1년이 채 안되어 바닥을 드러냈다. 3년의 유학생활 동안 희정은 고여사의 장학금 아닌 장학금이 없었으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할 수 없을 만큼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많았었다. 기숙사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유리창을 깨고 카 스테리오 박스를 뜯어간 사건, 강의실에 잠시 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누군가 비싼 전공서적을 가져간 것, 와인과 같이 먹은 파스타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3일간을 병원 신세를 져 병원비가 지출되었던 것 등이 그러했다.
희정은 다시 서울행 비행기 안에 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다가 책갈피에서 박사모를 쓰고 지도교수와 같이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미소를 짓는다. 책을 덮은 희정이 시트에 머리에 기대어 눈을 감자 그제서야 달수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비행도중 행방불명이 된 셍떽쥐베리 처럼 달수의 곁에서 사라졌던 희정이었다.
남편 완기를 잃고 달수도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타인의 존재를 인간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가장 구체적이며 해소하기 어려운 문제로 제시하고 있는 사르트르가 말했던 ‘타인은 지옥’ 을 떠올리는 것이 희정의 자연스러운 사고 작용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의 사전적 정의는 2개의 안구가 하나의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시선은 두 눈을 집중해 누군가를 바라보는 단순한 시각 작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시선 주체의 의식 흐름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달수를 향했던 희정의 시선은 달수가 수연과같이 있던 날 끊기고야 말았다. 시선을 받지 아니하는 자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되 정신적으로 실존하지 않는 것 처럼 희정이 훗날 우연히 달수를 만날 때까지 달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와 무는 다르지 않는 하나일까. 어쩌면 희정은 자신의 의식의 흐름이 달수로 향하는 것을 거부했는 지도 모른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던 사르트르 처럼.
“ 어머니… 그 동안 건강하셨어요?”
“ 아이고! 이게 누구야? 어서 와. 시간을 꺼꾸로 거스른 사람처럼 더 이뻐졌어, 낯선 곳에서 공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그래 학위는 문안이 받았다며? 거기다 외국 유학생 중에 최고의 성적으로 총장님 표창까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오늘 아침 소피에게 전화를 받았어, 희정씨 덕분에 30년 만에 옛 친구도 찾고… 이거 겹경사 났지 뭐야. 하여간 희정씨는 복덩어리야.”
김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신촌의 고여사 양품점에 귀국인사를 하러 들른 희정을 고 여사가 고향을 떠나 시집 간 외동 딸자식 반기듯 했다. 복덩이라는 호감적인 언어 속에는 고여사의 그녀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깊이 서려 있었다.
“ 어머니 덕택입니다. 그 돈을 받고 쓸 때까지 정말 부끄럽고 힘이 들었지만 그 돈이 없었다면 학위를 포기하고 조기 귀국을 했을 거예요,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보다 여건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제가 곧 벌어서 갚을께요, 다시 감사드려요 어머니…”
“갚다니 무슨 얘기야? 생명의 은인한테 그 정도 밖에 답례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구만…”
고개를 약간 틀어 사시 눈을 하고 희정을 바라보던 고여사를 희정이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다. 유학을 떠날 때 보다 실내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을 느낀 희정이 고여사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고개를 두리번 거리는데 차를 내어오던 고여사가 말했다.
“ 좀 변했지? 옆에 세 주었던 보석점 내 보내고 확장 공사해서 넓혔지. 그리고 저기 보이지? 간이 칸막이로 구분해놓은 곳… 동찬이 사무실로 쓰고 있어. 동찬이 몸이 불편하니… 그 보다 걔가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내가 불안해서 그렇게 했어.”
3년전 동찬이 국군 수도 통합병원에서 복도에 갖혀 생명에 위태했던 사건 이후 동찬 어머니는 동찬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자동차는 장애인 용으로 개조해서 가까운 거리는 동찬이 운전을 하고 볼 일을 보지만 동찬 어머니가 항상 동승하여 동찬의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 다닌다고 했다.
“ 동찬씨 퇴원했어요? "
“ 그럼, 벌써 2년이 되어가는 걸…가만있자… 얘, 동찬아… 동찬아~”
고 여사가 고개를 돌려 양품점과 사무실을 구분한 회색 칸막이로 향하여 동찬을 불렀다. 사실 동찬은 희정의 목소리를 듣고 칸막이 너머 책상에 앉아 일손을 놓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 처럼 갈비뼈 내부를 두드리고 있었고 살없는 광대뼈 위에는 홍조가 일었다. 고여사의 외침에 잠시 머뭇거리던 동찬이 휠체어에 앉아 청색남방에 자주색 스웨터를 어깨에 걸치고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머리도 제법 길어 무스를 발라 광채를 내고 있었다. 얼굴은 제법 살이 붙어 큰 눈과 오똑한 콧날은 그대로이나, 날카로왔던 턱선이 다소 갸름해져 있었다. 그가 어색한 웃음으로 희정을 맞았다. 희정이 동찬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꾸벅였다.
“ 그래도 지금은 목발을 짚고 일어서 걸어 다니며 자기 할 일 다해… 자긴 목발 없이 걷는 것이 목표 라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못하는 게 없어.”
고여사가 침묵을 깨고 동찬이 더 이상 이전의 불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어조로 말을 이어 갔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조류를 거스리지 못하는 강바닥의 모래가 쓸리듯 불안감이 바닥을 일고 있었다.
“ 동찬이가 용산에 입시학원을 인수하고 건설 투자 자문회사를 설립해서 삼성동에 학원을 짓고 있어, 학원장 에다가 건설회사 사장님이야. 얘, 동찬아 거기에도 불어반이 있냐? 우리 이박사님 자리 말야.”
“ 에이 엄마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아요, 그리고 그 학원은 희정씨 같은 박사님이 강의할 만한 곳이 못 되요. 그냥 입시학원인데요 뭐.”
“ 그러냐?… 근데 희정씨는 어디 일자리 알아봤어?”
“ 아니요 아직…우선 모교에 귀국 인사차 찾아가서 타진을 해보고요, 그래서 안되면 몇 군데 이력서를 넣을 생각이예요…”
“ 음… 잠깐만… 동찬 아버지 친구가 서울대 법대 학장인데 내가 한 번 만나봐야 되겠네.”
“ 엄마 대학교수 뽑는데 입김 넣으면 안돼요. 희정씬 다른 사람 도움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동찬은 희정이 돌아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반갑고 기뻤으나 표현할 수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동찬은 불구자라는 족쇄가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을 희정을 다시 만난 이후로 또 한 번 깨우쳤다. 고여사는 동찬과 희정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했는지 과일을 내어온다며 내실로 들어갔다. 5분 여 지나도록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만이 감돌았고 눈도 마주하지 못하고 화제거리를 찾지 못하는 두 젊은 남녀에게는 그 찰나가 고문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양품점 손님이 듯한 중년 여자 두 명이 들어오면서 고여사를 찾았다. 동찬은 기다렸다는 듯이 휠체어 바퀴 하나를 잡아 돌려 희정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고여사를 불렀다. 고여사가 광주리에 과일을 한가득 들고 나오다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피둥 피둥한 두 중년 여자들을 보자 반색을 하고 맞았다. 꽤나 돈 씀씀이가 큰 유한 마담들이 틀림없었다.
희정은 고여사의 영업에 방해가 되나 싶어 시차에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빠져 나와 조교로 일했던 모교로 향했다. 양품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희정이 커다란 쇼윈도우에 세워져 있는 마네킹들의 사이를 비집고 빠져 나가듯 양품점 앞을 지나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동찬이 말없이 휠체어를 움직였다.
고여사가 옷을 고르는 손님들 뒤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상품 설명을 하였으나 그 둘은 다음에 오겠다며 그냥 나가버렸다. 속상한 표정을 지며 풀이 죽어있던 고여사가 흠짓 놀라 동찬 쪽을 돌아보았다. 담배 타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고 여사가 동찬의 사무실 칸막이 너머 연기가 모락 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동찬에게 다가갔다.
“ 내가 누구 땜에 이러는데 너는 죽으려고 환장했냐? 네 폐활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최박사님 얘기 못 들었어? 담배는 네게 치명적이야… 동찬아… 엄마도 이렇게 참고 견디고 산다. 너만 바라보고 산단 말이다. 다신 담배 입에 물 생각을 마라.”
“ 엄마가 뭘 알아? 엄마가 내 마음을 아냐고?…”
고여사가 동찬이 입에 물린 담배를 빼앗아 재떨이에 비벼 끄며 호통을 치자 동찬이 소리쳤다. 이러는 동찬의 절규의 속내음을 고여사가 모를 리 없고, 동찬 역시 어머니 고여사가 자신의 비애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슴에도 동찬은 아이가 떼쓰듯 했다.
장난감을 사주지 않자 길거리에 주저 앉아 발버둥을 치며 우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동찬은 이미 손에서 멀어진 그 무엇을 다시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 몸을 떠는 것이다. 희정은 짧은 시간이지만 동찬이 자신에게 연정을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고여사의 자신에 대한 대한 언행 또한 그러한 동찬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희정은 완기와의 결혼이란 희망의 그늘에서 신음했고, 달수로 향한 열정이 만들어낸 상처가 아직도 그녀의 몸 어디에선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추상적인 사랑의 달콤함에 젖을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살아 남아야겠다는 본능적인 생존의식만이 희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서는 김진만 교수를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생존본능 앞에서는, 한겨울 처마 밑에 절대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게 달려있었으나 봄이 되자 녹아내려 시냇물에 합류하는 고드름처럼 녹아 내렸다. 그녀는 어느새 문중 어른의 훈계를 듣는 후손처럼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김 교수의 앞에 공손히 앉아있다.
“글쎄… 교수가 한 명 더 필요하긴 한데… 아버지 말에 의하면 요즘 학교가 긴축 재정이라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 교수회의에서 내가 불문과 교수 한 명 더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이 조교, 아니 이 박사가 하기에 달린 거 아니겠어?”
고여사의 양품점에서 나와 곧바로 모교를 찾은 희정에게 유학 간 사이 주임교수가 된 김진만이 알아들을 듯 말듯한 어투로 희정의 속을 긁었다. 희정은 그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정이 눈이 띄게 건강이 나빠진 할머니의 산보를 돕고 간호하며, 이력서를 제출한 몇 군데의 대학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한 달여 기다리던 어느날 그녀의 전화 벨이 울렸다.
“누나! 나 합격했어, 내가 해냈어 누나!”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희정의 눈에 흐르다 남은 눈물이 괴어 있다. 가슴의 멍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칠순을 넘긴 할머니와 남동생 희철을 떠나야만 했던 희정이었다. 남들처럼 공부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주말이면 혼자 계신 할머니 병수발해야 했던 동생이 3번째 도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검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 감격스런 순간을 같이 지낼 수 있었을 텐데…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감싸안고 바닥에 주저 앉아 우는 희정을 향해 희철이 했던 말이 여전히 수화기를 내려놓은 희정의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반드시 밝혀 낼꺼야.”
댓글목록 4
길동돼랑님의 댓글
박명근님의 댓글
김동문 담 부턴 좀 쪼개서 실어 주시구랴<br />
이것 시작하는 사람들 기부터 죽는대요<br />
독자의 complain도 반영해 주어야제
길동돼랑님의 댓글
김시우님의 댓글
다음 회부터는 잘게 쪼개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