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28회)
김시우
2007.06.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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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달수는 전역하여 인천 본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달수는 결혼도 하고 30대 중반의 평범한 셀러리맨으로 살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생각과 평범한 꿈을 가진 그의 사회 생활은 7년 만에 희정을 조우할 때 까지 흐트러짐 없이 계속되었다.
달수의 아내는 달수가 학교 후문가의 카페에서 강제로 끌어가다시피 하여 학군단 축제의 파트너가 되었던 그 여학생이다. 달수는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지만 출근할 때 모른 척 하고 집 근처의 양식당에 미리 저녁 예약을 해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기 전 전화를 하여 그 식당에서 만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7년만에 동찬과 함께 있는 희정을 우연히 만나고 전철에 오른 달수는 내내 희정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안역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승차권을 만지작 거리던 달수가 전철이 용산역에 이르자 전철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달수가 공중전화 옆에 가느다란 쇠사슬 줄에 간신히 걸려있는 묵직한 전화번호부에서 동찬의 관악 법학원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동전을 넣고 전화번호를 누르던 달수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기가 토해낸 동전을 그대로 둔 채 뒤돌아 섰다.
담배를 물어 허공을 바라보던 달수의 눈에 역사 사이로 용산역 광장이 들어왔다. 달수가 소위 임관하고 광주 전투병과학교로 입교를 하기 위해 군용 열차에 올랐던 곳이다. 그 때 진희는 달수 친구들과 집결지 용산역까지 마중을 나왔었다. 인솔 장교의 명령에 따라 군용열차에 오르는 대열에 들어선 달수가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울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플랫포옴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힘없이 앉은 달수의 손에는 생담배가 타고 있었고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지금부터 애인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주겠다. 가장 짧은 내용에 애절하고 멋있는 문장을 구사한 장교에게 토요일 아침 일찍 외출을 허락하겠다. 고무신 꺼꾸로 신으려다가도 편지를 읽어보는 순간 마음이 돌아오는 그런 편지여야 한다.”
기갑학교 훈육관 장대식 중위가 달수를 포함한 기갑학교 학생 장교들에게 30분 뒤에 돌아오겠다고 하며 강의실을 나갔다. 달수는 진희에게 입대전 고무신 꺼꾸로 신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다짐을 받지 않았기에 그녀가 애인일까라는 생각을 그 때서야 해보았다. 달수가 마땅히 쓸 내용이 없어 시로 대신한 편지가 연애편지 응모전에 당선했다.
한 달만에 외출이었다. 동기생들보다 기갑학교 정문을 4시간 먼저 빠져 온 달수는 마침 완연한 봄을 맞아 짧아진 치마를 입고 오가는 아가씨들의 다리를 훔쳐보다가 문득 인도에 설치된 우편함을 보았다.
“ 진희야, 네게 편지가 왔다. 김달수 소위가 누구야?
논리학 개론 강의가 막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려는 진희에게 일문과 조교수 임수정이 진희에게 달수의 편지를 건넸다. 진희는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하고 누가 볼세라 달수의 편지를 얼른 가방에 넣었다. 도서실에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 박혜경이 ‘나중에 보자’며 빈 강의실을 찾아 헤메는 그녀의 뒷 모습을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강의실 구석에 깊숙히 숨어 앉아 달수의 편지를 읽는 진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태양이 바다의 굼실대는 물살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냇물에 떠 흔들릴 때 난 너를 생각한다.
창 밖을 봐, 바람이 나뭇가지에 살며시 흔들리면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귀를 기울여봐, 가슴에 뛰는 소리가 들리면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너는 내 눈물 마렵게 하고 코를 맵게 하고
목줄마저 비틀어 숨조차 쉬기 어렵게 하누나.
나의 시린 가슴에 너의 영혼을 담는다.
군기가 세기로 악명이 높던 기갑학교의 초등 군사교육반을 이수한 달수는 3군단 예하 28전차대대로 배치 받은 후 두 번 째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은 1달에 한 번 정도 안부를 전하는 정도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부대 안에 있는 BOQ에서 소파에 엉덩이를 빼고 앉아, 제목을 알 수 없는 드라마를 생각없이 보고 있던 달수가 속초시내 구경을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데 관리사병 조철구가 달수를 불러세웠다.
“ 소대장님 누가 면회를 왔다는데요?”
“ 뭐? 아참! 그게 오늘이었나?”
달수는 아차 싶었다. 3주전 마지막 진희의 편지에서 오늘 면회를 갈 것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위병소로 내려가는 달수의 눈에 3명의 젊은 여자가 면회실에서 나와 부대 막사쪽을 향해 고개를 길게 빼고 두리번 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달수의 아내는 달수가 학교 후문가의 카페에서 강제로 끌어가다시피 하여 학군단 축제의 파트너가 되었던 그 여학생이다. 달수는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지만 출근할 때 모른 척 하고 집 근처의 양식당에 미리 저녁 예약을 해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기 전 전화를 하여 그 식당에서 만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7년만에 동찬과 함께 있는 희정을 우연히 만나고 전철에 오른 달수는 내내 희정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안역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승차권을 만지작 거리던 달수가 전철이 용산역에 이르자 전철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달수가 공중전화 옆에 가느다란 쇠사슬 줄에 간신히 걸려있는 묵직한 전화번호부에서 동찬의 관악 법학원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동전을 넣고 전화번호를 누르던 달수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기가 토해낸 동전을 그대로 둔 채 뒤돌아 섰다.
담배를 물어 허공을 바라보던 달수의 눈에 역사 사이로 용산역 광장이 들어왔다. 달수가 소위 임관하고 광주 전투병과학교로 입교를 하기 위해 군용 열차에 올랐던 곳이다. 그 때 진희는 달수 친구들과 집결지 용산역까지 마중을 나왔었다. 인솔 장교의 명령에 따라 군용열차에 오르는 대열에 들어선 달수가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울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플랫포옴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힘없이 앉은 달수의 손에는 생담배가 타고 있었고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지금부터 애인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주겠다. 가장 짧은 내용에 애절하고 멋있는 문장을 구사한 장교에게 토요일 아침 일찍 외출을 허락하겠다. 고무신 꺼꾸로 신으려다가도 편지를 읽어보는 순간 마음이 돌아오는 그런 편지여야 한다.”
기갑학교 훈육관 장대식 중위가 달수를 포함한 기갑학교 학생 장교들에게 30분 뒤에 돌아오겠다고 하며 강의실을 나갔다. 달수는 진희에게 입대전 고무신 꺼꾸로 신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다짐을 받지 않았기에 그녀가 애인일까라는 생각을 그 때서야 해보았다. 달수가 마땅히 쓸 내용이 없어 시로 대신한 편지가 연애편지 응모전에 당선했다.
한 달만에 외출이었다. 동기생들보다 기갑학교 정문을 4시간 먼저 빠져 온 달수는 마침 완연한 봄을 맞아 짧아진 치마를 입고 오가는 아가씨들의 다리를 훔쳐보다가 문득 인도에 설치된 우편함을 보았다.
“ 진희야, 네게 편지가 왔다. 김달수 소위가 누구야?
논리학 개론 강의가 막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려는 진희에게 일문과 조교수 임수정이 진희에게 달수의 편지를 건넸다. 진희는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하고 누가 볼세라 달수의 편지를 얼른 가방에 넣었다. 도서실에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 박혜경이 ‘나중에 보자’며 빈 강의실을 찾아 헤메는 그녀의 뒷 모습을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강의실 구석에 깊숙히 숨어 앉아 달수의 편지를 읽는 진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태양이 바다의 굼실대는 물살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냇물에 떠 흔들릴 때 난 너를 생각한다.
창 밖을 봐, 바람이 나뭇가지에 살며시 흔들리면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귀를 기울여봐, 가슴에 뛰는 소리가 들리면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너는 내 눈물 마렵게 하고 코를 맵게 하고
목줄마저 비틀어 숨조차 쉬기 어렵게 하누나.
나의 시린 가슴에 너의 영혼을 담는다.
군기가 세기로 악명이 높던 기갑학교의 초등 군사교육반을 이수한 달수는 3군단 예하 28전차대대로 배치 받은 후 두 번 째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은 1달에 한 번 정도 안부를 전하는 정도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부대 안에 있는 BOQ에서 소파에 엉덩이를 빼고 앉아, 제목을 알 수 없는 드라마를 생각없이 보고 있던 달수가 속초시내 구경을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데 관리사병 조철구가 달수를 불러세웠다.
“ 소대장님 누가 면회를 왔다는데요?”
“ 뭐? 아참! 그게 오늘이었나?”
달수는 아차 싶었다. 3주전 마지막 진희의 편지에서 오늘 면회를 갈 것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위병소로 내려가는 달수의 눈에 3명의 젊은 여자가 면회실에서 나와 부대 막사쪽을 향해 고개를 길게 빼고 두리번 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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