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 여정 47회
김시우
2008.01.29 15:51
1,765
0
본문
달수는 기사에게 하인천 역 앞에 있는 올림프수 호텔 커피숍으로 가지고했다. 그러나 희정은 그 곳은 절대 안된다며 기겁을 하고 달수의 말을 막아 나섰다. 둘은 하인천 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카페에 마주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희정의 하얀 손의 핏줄이 야윈 피부를 밀고 나와 더욱 창백해 보였다. 희정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고개 돌림 짓을 하고 있었다.
" 나가서 조금 걷는 게 좋겠어요, 희정씨..."
희정이 뜨거운 코코아 잔을 반 쯤 비웠을 때 달수가 희정을 일으켜 세웠다. 같이 아무말 없이 걷던 둘이 하인천역에 가까이 이르자 희정은 더욱 불안해 보였고 달수와의 동행이 무척이나 거북한 몸짓이었다.
“ 우리 여기서 헤어져요…”
희정이 달수를 바라보고 말했지만 달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달수는 희정의 곁에만 있으면 왠지 목화 솜 이불을 밟고 뛰어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발걸음이 가볍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희정의 그 한 마디에 묵직한 구름이 태양을 가려 음지가 되어버린 골목길에 서있는 사람처럼 검은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웠다.
“ 그리고…우리 이것을 마지막으로 연락하지 않기로 해요...네?”
애써 희정을 외면하며 고개들 돌리다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괜시리 발로 흙을 차내는 달수의 어깨마저 땅을 향해 처져 있었다. 희정이 확답을 하지 않은 달수에게 등을 돌려 언덕길을 올랐다. 달수는 마치 망부석이 된 듯이 얼어붙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희정이 냉정하게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멀어져 작아질 때, 달수도 자신이 한 없이 작아지는 좌절감과 함께 이 하늘아래 아무도 기댈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해 옴에 몸서리를 쳤다.
희정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서울 검찰청 서부지점에 부장 검사보로 근무하는 남동생 희철과 강릉의 작은 아버지 내외, 조카들이 그녀를 반겼다. 그렇게 희정은 달수와 헤어져 달수와의 만남의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가족의 품에서 밤 늦도록 웃음 꽃을 피웠다.
희미한 가로등에 비추이는 희정의 뒷모습이 어둠 속에 묻힐 때 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달수는 희정을 처음 만나 함께 걸었던 월미도 순환도로의 철제 난간을 붙잡고 바다를 향해 서있다. 멀리 화물선이 정박한 채 작은 섬을 이루고 있었고 작은 선박 1채가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 어! ”
달수는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을 자아내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미 해가 지고 제법 바닷 칼 바람이 목춤을 파고드는 초겨울 밤, 검은 하늘에 갸날프게 흩뿌려 지려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눈이었다. 희정과 함께 보낸 첫날도 밤새 눈이 왔었다. 달수가 품어내는 담배 연기와 흩뿌리는 눈이 만나 함께 흐뜨러졌다. 달수는 생각했다. 저렇게 같은 빛을 품어내는 두 색채는 같이 어우러져도 결국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연기는 공중 속으로 눈은 아래로 향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 어우러질 수 없는 자신과 희정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박실장은 급하게 김포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제주도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관광단지 개발 포럼에 참석하기 전에, 대전 공사현장을 시찰 중이었던 동찬의 연락을 받고 떠나는 길이었다. 일기 예보에도 없었던 돌풍이 제주 앞바다에 몰아쳐 비행기 출항이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동찬의 승차를 돕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는 박실장은 룸 밀러로 동찬을 표정을 살펴보았다. 몇 번을 망설이던 박실장이 입을 열었다.
“ 몹시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러게 제가 동행한다고 했는데 굳이 그렇게 혼자 가시려고 하다니…”
“ 박실장…자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몇 달간 내 곁에만 있었잖아, 모처럼 있는 동기들 모임도 나 때문에 못 가면 내가 맘이 편치 않아. 그래, 동기들하고 회포는 풀었나? 송 준위는 잘 있고?...”
“ 예! 그 친구 전역하고 신촌에 호프집 차렸습니다. 그래서 사장님하고 예전에 가끔 갔던 카페에서 모였다가 송준위 호프집으로 직행해서 밤새 퍼 마셨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 근데 뭐?...”
“ 그 카페 앞에서 김달수 사장을 만났습니다.”
“ 그래? 혼자던가? 신촌은 달수 회사하곤 상당히 먼 거린데…그 친구가 뭐 땜에 거기까지 행차하셨나? 나도 근간에 통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요즘 사업은 잘 된데? ”
“ 긴 얘기 주고 받을 틈도 없었습니다. 카페 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저하고 인사만 하고 급하게 어디로 향하더라구요. 조금 당황해 하는 것도 같구요.”
동찬은 달수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기획실의 정보담당직원으로 하여금 경쟁 건설사의 사업현황을 자세하게 보고받고 있었기 때문에 달수의 근황도 잘 알고 있었다. 동찬은 언제부턴가 달수가 자신과 같은 컨셉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달수에게 은근히 경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박 실장이 신촌에서 달수를 직접 보았다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찬은 달수가 개발 예상 지역을 직원들 모르게 혼자서 사전에 답사하고 복안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동찬은 수십년간 신촌 일대에서 사업을 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 희정이 이화여대의 교수로 재직했던 당시에 맺었던 인맥 등을 이용하여, 신촌 일대의 정부 발주공사는 물론 주택단지 토목 공사에서도 타 업체를 따돌리고 독점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김포와 경기도 신도시 개발에 주력하던 달수의 신촌지역 출현은 가히 동찬을 위협하는 행보였다.
“ 그런데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하던 말을 잇지 못하고 급하게 스스로 입을 봉하는 행동까지 보인 박실장은, 동찬이 몇 차례 하려고 하던 말이 무엇이냐고 추궁했지만,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일라면서 함구하였고, 박실장의 당황스런 모습에 싱겁다는 듯 시트에 머리를 기대로 눈을 감는 동찬을 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달수와 헤어진 후 들어간 카페에서 급하게 자리를 뜨는 여자의 뒷 모습이 희정과 똑 같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확신도 안 서는 얘기를 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경솔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희정과 달수를 의심하는 자신의 내심을 들켜버릴 것 같은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동찬이 달수와 희정을 연결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 근데 이 교수는 지금 인천에 있나? ”
동찬은 박실장을 영입하여 측근에서 자신을 수행하도록 한 이후 희정의 빈자리에 아직 적응이 안 된 듯 박실장에게 자주 희정의 근황을 묻곤했다. 동찬은 오랜 동안 자신의 곁에서 손 발 노릇을 한 희정을 놓아주었지만 마음은 항상 그녀를 구속하고 있었다.
한 편 달수는 같은 시각 십 수년전 희정과 함께 지냈던 모텔 문을 밀고 나왔다. 희정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민규를 횟집에서 조우한 이후로, 희정이 왠 일인지 폭음을 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자 달수가 희정을 업고 찾아 들었던 그 모텔이었다. 달수는 전날 희정과 헤어져 월미도 순환도로에 늘어선 포장마차 중에 희정과 함께 술을 마셨던 그 포장마차를 찾아냈다.
그리고 희정이 연거푸 들이마셨던 소주를 희정처럼 급하게 마셨고 주인 남자의 손에 이끌려 철제 난간을 붙잡고 토하고 말았다. 혀를 차며 돌아서는 포장마차 주인 남자가 돌아간 후 달수는 아스팔트와 보도에 얕게 쌓인 눈을 두 손으로 끌어 모아 얼굴에 대고 문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그 날의 희정이 되어 휘청거리며 순환도로를 걷고 또 걸어 희정과 함께 지냈던 그 모텔을 찾아냈고 그 방에서 그녀를 체취를 느끼며 잠이 들었었다.
다음 날 아침 모텔 문을 나서는 달수는 심하게 머리를 쥐어짜는 두통에 미간을 찌뿌리면서 뭔가 가슴 속에 풀어내지 못한 묵직한 거북함의 정체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희정과 함께 있으면 희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는 탓으로 물어보지 못한 것이였다. 그토록 차분하고 이성을 잃을 것 같지 않은 희정이 민규를 본 후 왜 그렇게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의 얼굴을 하였는지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 대청 반점으로 갑시다.”
달수는 모텔촌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노란 택시의 문을 열고 택시 안으로 들어서 앉으며 기사에게 말했다. 남녀가 같이 택시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여, 뒤를 한 번 더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기사에게 달수는 혼자라며 길을 재촉했다. 대청 반점은 희정의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에서 처음 짜장면을 개발한 유명한 화교식당이다. 실제로 달수는 희정의 집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달수는 희정의 집 일대의 토지 및 가옥 등기부 등본을 모두 발급받아 소유자의 성이 이씨인 집을 4개를 찾아냈고, 신현동 동대장으로 근무하는 후배가 뒤를 봐주는 화수동 사무소 직원을 통해 4개의 집 중에 희정의 집을 찾아냈었다.
달수의 그러한 투지와 추진력은 합법, 불법 또는 과제의 성격을 불문하고 언제나 통했다. 그러나 달수의 지독한 사랑이 과연 자신과 뼈가 사무치도록 그리운 희정의 행복을 보장할 것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 시각에 동찬도 돌풍 덕분에 희정의 친정식구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박실장에게 희정의 친정 집으로 향하라고 지시했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향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 나가서 조금 걷는 게 좋겠어요, 희정씨..."
희정이 뜨거운 코코아 잔을 반 쯤 비웠을 때 달수가 희정을 일으켜 세웠다. 같이 아무말 없이 걷던 둘이 하인천역에 가까이 이르자 희정은 더욱 불안해 보였고 달수와의 동행이 무척이나 거북한 몸짓이었다.
“ 우리 여기서 헤어져요…”
희정이 달수를 바라보고 말했지만 달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달수는 희정의 곁에만 있으면 왠지 목화 솜 이불을 밟고 뛰어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발걸음이 가볍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희정의 그 한 마디에 묵직한 구름이 태양을 가려 음지가 되어버린 골목길에 서있는 사람처럼 검은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웠다.
“ 그리고…우리 이것을 마지막으로 연락하지 않기로 해요...네?”
애써 희정을 외면하며 고개들 돌리다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괜시리 발로 흙을 차내는 달수의 어깨마저 땅을 향해 처져 있었다. 희정이 확답을 하지 않은 달수에게 등을 돌려 언덕길을 올랐다. 달수는 마치 망부석이 된 듯이 얼어붙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희정이 냉정하게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멀어져 작아질 때, 달수도 자신이 한 없이 작아지는 좌절감과 함께 이 하늘아래 아무도 기댈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해 옴에 몸서리를 쳤다.
희정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서울 검찰청 서부지점에 부장 검사보로 근무하는 남동생 희철과 강릉의 작은 아버지 내외, 조카들이 그녀를 반겼다. 그렇게 희정은 달수와 헤어져 달수와의 만남의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가족의 품에서 밤 늦도록 웃음 꽃을 피웠다.
희미한 가로등에 비추이는 희정의 뒷모습이 어둠 속에 묻힐 때 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달수는 희정을 처음 만나 함께 걸었던 월미도 순환도로의 철제 난간을 붙잡고 바다를 향해 서있다. 멀리 화물선이 정박한 채 작은 섬을 이루고 있었고 작은 선박 1채가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 어! ”
달수는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을 자아내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미 해가 지고 제법 바닷 칼 바람이 목춤을 파고드는 초겨울 밤, 검은 하늘에 갸날프게 흩뿌려 지려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눈이었다. 희정과 함께 보낸 첫날도 밤새 눈이 왔었다. 달수가 품어내는 담배 연기와 흩뿌리는 눈이 만나 함께 흐뜨러졌다. 달수는 생각했다. 저렇게 같은 빛을 품어내는 두 색채는 같이 어우러져도 결국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연기는 공중 속으로 눈은 아래로 향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 어우러질 수 없는 자신과 희정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박실장은 급하게 김포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제주도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관광단지 개발 포럼에 참석하기 전에, 대전 공사현장을 시찰 중이었던 동찬의 연락을 받고 떠나는 길이었다. 일기 예보에도 없었던 돌풍이 제주 앞바다에 몰아쳐 비행기 출항이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동찬의 승차를 돕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는 박실장은 룸 밀러로 동찬을 표정을 살펴보았다. 몇 번을 망설이던 박실장이 입을 열었다.
“ 몹시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러게 제가 동행한다고 했는데 굳이 그렇게 혼자 가시려고 하다니…”
“ 박실장…자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몇 달간 내 곁에만 있었잖아, 모처럼 있는 동기들 모임도 나 때문에 못 가면 내가 맘이 편치 않아. 그래, 동기들하고 회포는 풀었나? 송 준위는 잘 있고?...”
“ 예! 그 친구 전역하고 신촌에 호프집 차렸습니다. 그래서 사장님하고 예전에 가끔 갔던 카페에서 모였다가 송준위 호프집으로 직행해서 밤새 퍼 마셨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 근데 뭐?...”
“ 그 카페 앞에서 김달수 사장을 만났습니다.”
“ 그래? 혼자던가? 신촌은 달수 회사하곤 상당히 먼 거린데…그 친구가 뭐 땜에 거기까지 행차하셨나? 나도 근간에 통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요즘 사업은 잘 된데? ”
“ 긴 얘기 주고 받을 틈도 없었습니다. 카페 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저하고 인사만 하고 급하게 어디로 향하더라구요. 조금 당황해 하는 것도 같구요.”
동찬은 달수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기획실의 정보담당직원으로 하여금 경쟁 건설사의 사업현황을 자세하게 보고받고 있었기 때문에 달수의 근황도 잘 알고 있었다. 동찬은 언제부턴가 달수가 자신과 같은 컨셉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달수에게 은근히 경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박 실장이 신촌에서 달수를 직접 보았다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찬은 달수가 개발 예상 지역을 직원들 모르게 혼자서 사전에 답사하고 복안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동찬은 수십년간 신촌 일대에서 사업을 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 희정이 이화여대의 교수로 재직했던 당시에 맺었던 인맥 등을 이용하여, 신촌 일대의 정부 발주공사는 물론 주택단지 토목 공사에서도 타 업체를 따돌리고 독점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김포와 경기도 신도시 개발에 주력하던 달수의 신촌지역 출현은 가히 동찬을 위협하는 행보였다.
“ 그런데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하던 말을 잇지 못하고 급하게 스스로 입을 봉하는 행동까지 보인 박실장은, 동찬이 몇 차례 하려고 하던 말이 무엇이냐고 추궁했지만,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일라면서 함구하였고, 박실장의 당황스런 모습에 싱겁다는 듯 시트에 머리를 기대로 눈을 감는 동찬을 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달수와 헤어진 후 들어간 카페에서 급하게 자리를 뜨는 여자의 뒷 모습이 희정과 똑 같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확신도 안 서는 얘기를 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경솔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희정과 달수를 의심하는 자신의 내심을 들켜버릴 것 같은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동찬이 달수와 희정을 연결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 근데 이 교수는 지금 인천에 있나? ”
동찬은 박실장을 영입하여 측근에서 자신을 수행하도록 한 이후 희정의 빈자리에 아직 적응이 안 된 듯 박실장에게 자주 희정의 근황을 묻곤했다. 동찬은 오랜 동안 자신의 곁에서 손 발 노릇을 한 희정을 놓아주었지만 마음은 항상 그녀를 구속하고 있었다.
한 편 달수는 같은 시각 십 수년전 희정과 함께 지냈던 모텔 문을 밀고 나왔다. 희정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민규를 횟집에서 조우한 이후로, 희정이 왠 일인지 폭음을 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자 달수가 희정을 업고 찾아 들었던 그 모텔이었다. 달수는 전날 희정과 헤어져 월미도 순환도로에 늘어선 포장마차 중에 희정과 함께 술을 마셨던 그 포장마차를 찾아냈다.
그리고 희정이 연거푸 들이마셨던 소주를 희정처럼 급하게 마셨고 주인 남자의 손에 이끌려 철제 난간을 붙잡고 토하고 말았다. 혀를 차며 돌아서는 포장마차 주인 남자가 돌아간 후 달수는 아스팔트와 보도에 얕게 쌓인 눈을 두 손으로 끌어 모아 얼굴에 대고 문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그 날의 희정이 되어 휘청거리며 순환도로를 걷고 또 걸어 희정과 함께 지냈던 그 모텔을 찾아냈고 그 방에서 그녀를 체취를 느끼며 잠이 들었었다.
다음 날 아침 모텔 문을 나서는 달수는 심하게 머리를 쥐어짜는 두통에 미간을 찌뿌리면서 뭔가 가슴 속에 풀어내지 못한 묵직한 거북함의 정체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희정과 함께 있으면 희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는 탓으로 물어보지 못한 것이였다. 그토록 차분하고 이성을 잃을 것 같지 않은 희정이 민규를 본 후 왜 그렇게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의 얼굴을 하였는지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 대청 반점으로 갑시다.”
달수는 모텔촌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노란 택시의 문을 열고 택시 안으로 들어서 앉으며 기사에게 말했다. 남녀가 같이 택시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여, 뒤를 한 번 더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기사에게 달수는 혼자라며 길을 재촉했다. 대청 반점은 희정의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에서 처음 짜장면을 개발한 유명한 화교식당이다. 실제로 달수는 희정의 집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달수는 희정의 집 일대의 토지 및 가옥 등기부 등본을 모두 발급받아 소유자의 성이 이씨인 집을 4개를 찾아냈고, 신현동 동대장으로 근무하는 후배가 뒤를 봐주는 화수동 사무소 직원을 통해 4개의 집 중에 희정의 집을 찾아냈었다.
달수의 그러한 투지와 추진력은 합법, 불법 또는 과제의 성격을 불문하고 언제나 통했다. 그러나 달수의 지독한 사랑이 과연 자신과 뼈가 사무치도록 그리운 희정의 행복을 보장할 것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 시각에 동찬도 돌풍 덕분에 희정의 친정식구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박실장에게 희정의 친정 집으로 향하라고 지시했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향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