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사순 5주일 신부님 강론 요약
김종삼
2008.03.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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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가 다니는 뉴저지 중부에 있는 이튼타운성당 신부님의 강론정리 입니다. 제가 매 주일마다 신부님 강론을 받아적고 요약하여 저희 성당주보에도 기고하곤 합니다. 제가 구술하여 정리하다보니까 간혹 신부님 강론과 다른부분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평신도의 구술이라 생각하시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인하옥을 풍성하게 하기위하여 이곳에 올리니, 혹시 이견이 있어서 연락을 주시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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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5주일 강론 요약
오늘 복음은 나자로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나자로를 다시 살리시고 부활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과 고통에 대해 괴로워 하셨고, 성서에서 3번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첫번째는 마태복음 26장 38절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전에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하시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번민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두번째는 루카복음 19장 41절에서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 라며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비통의 눈물을 흘리셨다. 세번째는 오늘 복음 말씀인 요한복음 11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하시며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 중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흘리신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눈물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위해 흘리신 예루살렘 도성에서의 눈물과 비교할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사랑하셨고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사랑 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이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위해 울어줄 친구가 있는지도 되새겨 봐야 합니다.
신부가 되고 몇 개월 후에 노부부의 장례미사를 집전한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병간호하시다가 넘어져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뒤따라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이 노부부와 자식들이 모두 엄청남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울어주는 자식이 없었고 오히려 자식들은 재산싸움으로 장례미사 때도 얼굴을 붉히곤 하였습니다. 자식교육을 잘못 시킨 이 노부부가 불쌍해서 따로 제가 기도를 드려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자식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죽으면 진실로 자신을 위해서 울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 만큼 내 인생을 잘 살아왔습니까? 만일 신부인 내가 지금 죽는다면 많은 사람이 울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30~40년 후에 골방에 누워서 아무 힘도 없이 늙어서 죽게 된다면 진실로 울어준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노력해서 살아야 하고 내가 힘들 때, 죽을 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마르타는 온몸으로 주님을 섬긴 사람이고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붇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여자입니다. 라자로는 이와 같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던 사람들의 오빠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같이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죽을 때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울어 주실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반갑게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남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하지 못하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나를 증언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꿇어앉아야 하고 마르타처럼 주님께 대접하기 위하여 뛰어다녀야 합니다. “나자로야 이리 나오너라” 하고 부르고 사랑하신 것처럼 주님 저희도 회개하고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여 당신에게 사랑과 기쁨 받는 자 되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부족하여 남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오니 저희를 회개하는 자 되게 해주시고 당신이 저희를 부를 때 기뻐하고 당신 앞에 나갈 수 있는 자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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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5주일 강론 요약
오늘 복음은 나자로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나자로를 다시 살리시고 부활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과 고통에 대해 괴로워 하셨고, 성서에서 3번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첫번째는 마태복음 26장 38절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전에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하시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번민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두번째는 루카복음 19장 41절에서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 라며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비통의 눈물을 흘리셨다. 세번째는 오늘 복음 말씀인 요한복음 11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하시며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 중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흘리신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눈물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위해 흘리신 예루살렘 도성에서의 눈물과 비교할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사랑하셨고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사랑 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이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위해 울어줄 친구가 있는지도 되새겨 봐야 합니다.
신부가 되고 몇 개월 후에 노부부의 장례미사를 집전한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병간호하시다가 넘어져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뒤따라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이 노부부와 자식들이 모두 엄청남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울어주는 자식이 없었고 오히려 자식들은 재산싸움으로 장례미사 때도 얼굴을 붉히곤 하였습니다. 자식교육을 잘못 시킨 이 노부부가 불쌍해서 따로 제가 기도를 드려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자식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죽으면 진실로 자신을 위해서 울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 만큼 내 인생을 잘 살아왔습니까? 만일 신부인 내가 지금 죽는다면 많은 사람이 울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30~40년 후에 골방에 누워서 아무 힘도 없이 늙어서 죽게 된다면 진실로 울어준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노력해서 살아야 하고 내가 힘들 때, 죽을 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마르타는 온몸으로 주님을 섬긴 사람이고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붇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여자입니다. 라자로는 이와 같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던 사람들의 오빠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같이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죽을 때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울어 주실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반갑게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남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하지 못하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나를 증언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꿇어앉아야 하고 마르타처럼 주님께 대접하기 위하여 뛰어다녀야 합니다. “나자로야 이리 나오너라” 하고 부르고 사랑하신 것처럼 주님 저희도 회개하고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여 당신에게 사랑과 기쁨 받는 자 되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부족하여 남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오니 저희를 회개하는 자 되게 해주시고 당신이 저희를 부를 때 기뻐하고 당신 앞에 나갈 수 있는 자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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