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펌)나와 아내는 너무 다르다
박명근
2011.08.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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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에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 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 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내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 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 버려. 맹물 부어 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 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 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이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 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 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 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 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느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 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 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 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습관에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 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 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내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 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 버려. 맹물 부어 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 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 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이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 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 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 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 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느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 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 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 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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