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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동문칼럼] 다르다와 틀리다 - 퍼온글

김진수
2005.07.29 05:49 766 0

본문

blog.chosun.com/home0326 - 나정임 (home0326) 에서 퍼온 글 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다.
무책임한 말잔치가 끊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근거없이 퍼 나르고 있고
정책비판이나 대안의 말로 일관해야 할 정치인들마저
인신공격형으로 치닫고 있으니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뿐 아니라
아예 제쳐두고 틀리다며 서로 목청 높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면 이 사회 발전의 틀은 어디서 짜야 할까.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가
각자 자리에서 최선 다하는 사회구성원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개인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이데아다.

왜 이리 시끄럽고 혼탁한 세상이 되었는가.
하늘찌르며 목청껏 외치던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이라
좀 잠잠해 질 줄 알았는데 권좌에 있고보니
그게 전부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합집산은 이권과 실익편에 밥먹 듯하고
*개발, *프로젝트라 하여 개혁을 주도하는 양 밀어부치다가
브레이크에 걸려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정말 언제까지 연습게임만 할 것인지 모르겠다.
그 소용돌이 중심에는
'다르다'과 '틀리다'란 개념에 약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두용어가 혼동된 현상에 살고 있으니
어찌 조용한 날들을 바랄 수 있을까.

'다르다' 와 '틀리다'사전적용어 풀이를 보자.
# 다르다...같지않다, 한 사물이 아니다
# 틀리다....바른 점에 들어서지 아니하다. 맞지않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일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깊이를 안고 가는 소중한 일이다.
정치권에서 특히 我田引受格 해석이 난무하다보니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
정당정치가 갖는 한계다.
이익집단이다보니 다른 당이 내 놓은 정책엔 정쟁만 있고
합리적 타결책은 눈에 가시인 듯
야합으로 추정하기 일쑤다.
참여정부를 내건 이 정부도 초창기엔
정책토론문화를 주도하는 것 같더니
부지불식간에 잠식시켜 버렸다.
이 세상에 같은 것이 없으니 나(我)이외엔 다른 세계,
다른 사람으로 다르다를 명쾌하게 받아들이려면
우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 하는게 우선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 사람은
무조건 틀리다로 선을 그어 놓고
대하니 일치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곧바로 논쟁에 들어 간다.
매사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은 이제 그만 끝내자는 주문을 하고 싶다.
상대의 다른 의견에 박수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이 더 우대받는 세상에 살고 있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제반에 걸친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각계 전문가는
최소한 이런 분별력이 있어야 할 줄 안다.

우주만물아래 모든 추상명사에 속하는 가치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인식부터 해 보자.
생각, 행복, 기쁨, 슬픔, 분노, 사랑, 미움, 믿음, 희망, 노력.....
공감하는 것만큼 소중한 가치가 어디 있을까마는
다르다를 같다는 선으로 놓으려면 설득의 논리가 필요하다.
설득할 논리가 없으면 그대로 인정함이 마땅한데 흑백논리로만
선택하라 하니 이변이 일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한 울타리에서 성장시키면서
조급증까지 동행해 온 결과일까.
전리품치고는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어느 사안을 놓고 결과가 미흡하면 책임추궁, 떠넘기기 일환이니
누가 소신있게 다른 편에 서 있기를 즐겨 하겠는가.
다른 의견을 마음껏 내어 좋은 결론에 이르도록 함께 동조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풍토가 있을때 발전의 시금석이 되는 것.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생기는 갈등에 있어
가장 대표적 사례는 정당이라는 공동체이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다.
집권하면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이는 집권세력의 의무인 것이다.
정당간 다른 정책에 무조건 틀리다로 규정지으면
나라 발전의 틀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

가정이란 공동체도 이 두 개념을 벗어날 수 없다.
같은 혈통을 갖고 사는 직계간에도 갈등이 다반사인데
남남으로 만나서 부부의 연으로 사는데
어찌 평탄의 길만 갈 수 있겠는가.
속을 들여다 보면 '다르다'와 '틀리다'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못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게 문제다.
올해로 결혼 10년차인 인문계형 남편A씨는 이공계형 부인 B씨가
자신에게 없는 매사 맺고 끊음이
분명해 결혼한 케이스다.
결혼직후 1년을 사수하라는 원칙(?)에 성실하려고
서로 기선잡기에 연연하고 보니 알콩달콩 신혼의 꿈은 접어지고
결혼 10주년 언덕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갈등의 골이 너무도
깊어진지라 회생의 기미가 없는 것이다.
삶의 질 문제라면 남들이 이루고 사는 평균치를 넘어선 수준이라 했다.
부부간 공유하지 못한 부분들을 이해하는 단계에서
어찌 쟁점과 갈등의 대상이 될까.
틀리지만 않다면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가족간 최우선 미덕이었으면 한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세태라 하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10년간 흘린 땀의 댓가는
사장시켜도 되는 것인지 자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혼분포도가 네 집 건너 하나라 하니
이러다가 독신자들의 천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현상은 또 다른 사회갈등요인과 병폐로 등장하고 있으니
이 또한 심각한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틀리다란 개념긋기엔 명쾌한 체계가 있다.
즉 정답이 꼭 있게 마련인 것이다.
수학문제풀이나 도덕이나 법의 잣대로 보아
바르지 못한 생각이나 행동은
정답에 비추어 틀리다라고 단호하게 맞대응해야 한다.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때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 씩씩하게 외치며
현관에 들어서곤했는데 그 날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것이다.
국어 시험지를 내미면서 '80점 받았어....요' 한다.
빨간 색연필로 틀렸다고 굵게 빗장 친 문제를 읽어내려 갔다.
'사냥꾼과 개미'라는 동화본문을 읽고
문제에 대한 답을 쓰라는 주관식문항이었다.

= 사냥꾼은 총을 겨누며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개미는 사냥꾼의 발을 물었습니다,
사냥꾼은 '앗 따가와' 하며 주저 앉았습니다.
그 소리에 개미는 깜짝놀라......=

문제는 그 소리는 무슨소리입니까란 서술형 답을 묻는 문제였다.
무려 20점짜리 문제,
답이 '앗 따가와'라는 것이다.
아이의 답안에는 '사냥꾼의 비명소리'라 쓰여 있었다.

과연 틀린 답인가?

수학문제나 객관식문제,
단답형 주관식문제는
정답이 있어서 맞다, 틀리다가 분명하다.
서술형은 다른 표현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하나 實例를 보자.
어느 집에 부모모시기문제를 놓고 형제자매간 의견이 분분하다.
따로 사시는 부모가 이대로 행복하다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행복은 억지로 의미부여 한다고 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고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아무리 부모행복을 위해서 의논하면 무엇할까, 그 과정에서 폭언이
오가고 끝내는 형제간 우애에 금이 가고 마는 것을 말이다.
대화와 타협은 우리네 삶을 선하게 이끌어 가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는 것으로 몰아 부치는 한
우리 가정과 사회 전반에 걸쳐 갈등은 증폭되게 마련이다.

느낌과 관념적 풀이까지도 맞다 틀리다로 몰아가는 세태
자신의 잣대에 맞지않으면
틀리다로 경계선을 긋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시끄러운 세상 가운데 살 수밖에 없다.

공동의 목표
공동의 선아래 이루어 지는 모든 행위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
그에 걸맞는 경계와 해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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