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칼럼] <추억여행>남성 컴플렉스(첫회)
김시우
2007.02.28 16:38
1,472
6
본문
내 인생에서 전무 후무하게 두문불출 집에서 2달 가까히 지냈다.
그 동안 진행되고 있던 일들을 중단하거나 정리하면서 금전적인 손해도 있었지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
영화, 책읽기, 글쓰기 등에 몰두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진정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충분한 여유를 두고 가졌던 것 같다.
할 일 없어 자주 거울을 보니 이제 젊지 않은 얼굴과 희끗한 머리색도 제대로 보였다. 스스로 위장을 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몸이 불편하니 누워서 영화보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놓쳤던 영화 ‘박하사탕’를 본 날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뒤척이면서 내가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어려서 부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때는 공부도 곧 잘 했었던 것 같은데
그 보다 예체능에 더 관심과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인 형이 친구들에게 자주 맞고 들어오니까 속상한 어머니가 동네에 있는 합기도 도장에
형을 입회시켰다. 형이 도장에 자주 결석을 하자 어머니는 형을 오른 손에, 나를 왼손에 잡고 형을 도장에
직접 데려가셨다.
“어머니, 저희들은 싸움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예를 통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더 엄밀히
얘기하면 정신수양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어 도저히 진도가 안나갑니다.”
수업이 끝나자 관장이 참관하고 있던 어머니 곁으로 와서 고개를 절레 흔들며 한마디 했다.
그러더니 유치원생인 나를 바라보며 “요놈이 야무지니 잘 할 것 같은데요” 라고 했다.
그 때부터 나는 유치원은 안가도 도장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내 수업이 끝나면 고수들이 진검을 가지고
무예를 다듬는 것을 훔쳐보았다. 하루 하루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났다.
어머니는 어려서 부터 병약하셨다고 한다. 누나가 그것을 닮았는지 이유없이 코피를 쏟고 시름 시름 앓고
병석에 눕는 일이 많았다. 형은 전술 하였다시피 맞고 들어오는 것이 일과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자라면서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자연스레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키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급우들과 점심시간 때 팔씨름을 했는데 아깝게 2등을 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한 친구가 목발을 짚고 다녀서 어깨와 팔 근육이 발달해 나는 힘을 쓰지 못하고 그와의 대결에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맥없이 졌다. 그는 고등학생인 그의 형과의 팔씨름에서도 이긴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를 졸라 목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오지만 그 친구처럼 팔의 힘을
더 키운다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었나 보다. (2회로 이어집니다.)
그 동안 진행되고 있던 일들을 중단하거나 정리하면서 금전적인 손해도 있었지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
영화, 책읽기, 글쓰기 등에 몰두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진정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충분한 여유를 두고 가졌던 것 같다.
할 일 없어 자주 거울을 보니 이제 젊지 않은 얼굴과 희끗한 머리색도 제대로 보였다. 스스로 위장을 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몸이 불편하니 누워서 영화보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놓쳤던 영화 ‘박하사탕’를 본 날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뒤척이면서 내가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어려서 부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때는 공부도 곧 잘 했었던 것 같은데
그 보다 예체능에 더 관심과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인 형이 친구들에게 자주 맞고 들어오니까 속상한 어머니가 동네에 있는 합기도 도장에
형을 입회시켰다. 형이 도장에 자주 결석을 하자 어머니는 형을 오른 손에, 나를 왼손에 잡고 형을 도장에
직접 데려가셨다.
“어머니, 저희들은 싸움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예를 통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더 엄밀히
얘기하면 정신수양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어 도저히 진도가 안나갑니다.”
수업이 끝나자 관장이 참관하고 있던 어머니 곁으로 와서 고개를 절레 흔들며 한마디 했다.
그러더니 유치원생인 나를 바라보며 “요놈이 야무지니 잘 할 것 같은데요” 라고 했다.
그 때부터 나는 유치원은 안가도 도장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내 수업이 끝나면 고수들이 진검을 가지고
무예를 다듬는 것을 훔쳐보았다. 하루 하루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났다.
어머니는 어려서 부터 병약하셨다고 한다. 누나가 그것을 닮았는지 이유없이 코피를 쏟고 시름 시름 앓고
병석에 눕는 일이 많았다. 형은 전술 하였다시피 맞고 들어오는 것이 일과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자라면서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자연스레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키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급우들과 점심시간 때 팔씨름을 했는데 아깝게 2등을 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한 친구가 목발을 짚고 다녀서 어깨와 팔 근육이 발달해 나는 힘을 쓰지 못하고 그와의 대결에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맥없이 졌다. 그는 고등학생인 그의 형과의 팔씨름에서도 이긴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를 졸라 목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오지만 그 친구처럼 팔의 힘을
더 키운다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었나 보다. (2회로 이어집니다.)
댓글목록 6
김시우님의 댓글
더 재미있고 보다 많은 것을 얻습니다.<br />
결론은 항상 마지막에 있으니까요.
정창주님의 댓글
<br />
선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시우님의 댓글
제가 글의 순서를 바꾸면서 여기에 남게 되었습니다.
하태돈님의 댓글
글을 읽으면서 同病相憐을 느꼈다면 <br />
나의 처지에 과장이 아닐 듯 합니다.<br />
언제 한번 만나면 그 정을 풀어 봅시다.
김시우님의 댓글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박명근님의 댓글
이것이 살아온 인생여정이라면 정말 대 장정이군요<br />
어찌보면 삶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br />
<br />
건데 그 열정이 꼭 쓰여야 할 곳이 있는데<br />
길게 말씀은 못드리겠고<br />
언제 만나야 될낀데<br />
<br />
아이구 이제 고누무 남성 콤플렉스가 해 가이고 <br />
어부인 좀 고만 괴롭히소<br />
결혼이 혼자 사는것 아일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