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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동문칼럼] [명상칼럼]오빠, 나 한가해요...

김시우
2007.04.22 17:04 1,96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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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한국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빨리 보고싶다는 가족들의 성화에 견딜 수가 없었다. 비행시간과 시차를 빼면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왔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 대부분을 만날 시간이 없었지만 간석동에서 자동차 중고상을 하는 친구는 꼭 만나고 싶었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분간 일을 벌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주 먼 옛날 일인양  잊어버리고, 다시 일을 내고야 마는 병이 또 도진 것이다. 한국에 며칠 있는 동안 자동차 산업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 발전하여, 셀폰 쓰다가 싫증나면 버리는 것처럼 중고차가 넘쳐나고 있어, 폐차하기 너무 아까운 차가 폐차장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언뜻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의 부친이 운영하던 도금 공장이 사업부진과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그 공장부지를 수 년째 매매를 못하고 있다는 말을 다른 경로로 들은 바 있어, 그 땅에 중고차 매매업 센터를 짓고, 여기 저기 난무하는 군소 자동차 중개상들을 불러들여 주차장과 사무실을 임대하는 사업을 구상하자, 10여년 아파트 단지 바로 옆의 땅을 매입하여 아파트 단지 상가에 없는 업종의 상가 건물을 지어 히트쳤을 때와 같은 뭔가 대박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에서도 흉물스레 방치되어 우범지역이 된 폐공장보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대환영하여  관공소,금융기관및 환경단체는 물론 지역주민 으로부터 여러가지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지만 미국 물을 먹어서 그런지, 전화를 하고 시간을 정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옛날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내일 떠나기에 오늘 잠깐 볼 수 있냐"고 했지만 서로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국에 돌아와서야  그에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전화를 했다. 그때서야 그가 내 사업구상을  인지하고 ‘왜 그때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냐’ 며 자신의 15년 자동차 중개상 노하우와 모든 여행 비용을 제공할 테니까 당장 한국에 다시 오라는 것이다. 공장부지를 팔지 못해 전전긍긍해 하는 그가 내 의도를 미리 알았다면 친척분 초상집에 가는 대신 나를 근사한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바쁘지 않아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 일쑤다. 거기에는 이민사회 라는 수식어가 항상 개입된다. 좀 더 인간다운 삶의 질을 추구하며 온 우리들 아닌가. 한가하다고 하면 마치 자신의 비즈네스가 잘 안되는 것으로 인식 될까 두려워서인지,  주거조건이 안 좋은 주택이나 낡은 상가의 파리날리는 가게를 팔지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바쁘다고 한다. 안을 들여가 보면 속빈 강정의 결과를 내고 있는 사람도 나는 "바쁜사람"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커넥션과 사회적 역할의 비중을 높이려는 속 다 들여다 보이는 우를 범해 스스로 비중있는 사람이 아닌 작은 사람을 만들기도 하기도 한다.

누구나 하듯이 나도 하루에 8-10시간 이상 일에 몰두한다. 하루 세끼 꼭 챙겨먹어야 하고 외모 컴플렉스가 있어 화장실도 자주 간다.  밥먹을 시간이 없으면 간단한 요기거리를 챙겨 하루에 2시간 이상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주일에 1편 이상의 좋은 영화를 찾아 감상하며 나의 삶과 연결하여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 본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 달에 2-3회 전화하고 여자 못지 않게  2-30분씩 수다도 떤다.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포옹으로 인사하고 그녀가 음식 만드는 것을 돕고, 그 음식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반주를 겸해 즐기고, 취기가 오르면 가라오케 마이크를 잡고 어제같이 새벽 2시를 넘긴다. 취미로 쓰고 있는 소설의 전개가 꼬이거나  막힐 때에는 잠자리에 누워서는 줄곧 그 생각만을 한다. 그러면 그 뒷 얘기는 꿈에서 해결해 준 적도 있다. 정성이 넘치면 하나님도 꿈꾸는 시간에 스토리를 이어주셔 부족한 시간을 보충해 주신다.

그리고 오늘 같은 일요일 이면  11시까지 늦잠을 자고 면도를 하고 정장을 꺼내 교회에 간다.  예배를 마치고 순모임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와  잔디를 깍고 이렇게 앉아서 글도 써본다. 그런데 나는 바쁘다는 사람을 접할 때 마다, 내가  시간을 허튼 곳에 쓰며 잘 못 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나는 할 것 다하고 감당할 만큼 바쁜데 왜 그들은 말 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저렇게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까.

일년의 반 이상을 해외출장으로 보냈다는 김우중 회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공항 대기실에서 차 안에서 틈만 나면 부족한 잠을 보충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일이란 어떤 경우는 한 번에 쏟아지기도 하기에 일에 파묻힌 사람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다른 홈페이지와 달라 한 번 클릭으로 초기화면에 최근 정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기능 만점의 인하옥에 한 번 들어오는 것을, 없는 시간 쪼개 모처럼 들어온 것 인 양 하는 사람, 성경 공부 단 1시간에도 울리는 셀폰을 받고 뛰쳐나가서 끝날 때 쯤 들어오는 사람,  간만의 모임에 울리는 전화를 꺼냈다 집어넣어다 하며 대화의 맥을 끊고 분위기 깨는 사람, 자신이 모임의 주체격인데도 30분 늦게 왔다 언제 간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에게서 전혀 동질감을 느낄 수 없다.

그런 비동질성 주변인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의 일상을 전부 알 수 없으므로  바뻐서 그랬거니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항상 그렇게 바쁘고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면 시간관리를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볼 일이다. "머리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속어가 있듯이 바쁜 사람이 능력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쁜 가운데 시간 관리를 잘하여  함께 있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동화할 수 있는 사람이 능력있고 존경받는 것이다.

보기만 하면 늘 바쁘다고 하는 사람의 여기저기에서 모순된 언행이 포착된다.  앞에서는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하고 뒤에서는 휴가 계획을 짠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거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여유없는 삶을 내세우지만,  자신을  추켜세우는 자리에는 눈에 불을 켜고 십리길을 마다하고 달려가고 심지어 새치기까지 한다. 결국 부와 명예에 누구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가엾은 인간의 속성이니 그리 비난할 바는 못되지만 입맛은 개운치 않다.

바쁜 사람은 시기심도 많다. 그래서 남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먼저 앞서가는 것을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한다. 이같은 십리길을 마다않고 달려 남의 공적을 탈취하고 새치기하는, 일반인이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정력과  민첩성은 희생정신과 이웃사랑으로 포장되어 추앙을 받기도 하지만, 분주한 공항에서도 동문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인터넷이 가능한 곳을 찾아 인하옥의 대문을 여는 숯불같이 은근한 관심과 능력과 비교된다. 전자는 자신의 입신 영달을 위해 필요한 곳에서 빛을 발하다가 이내 꺼졌다가 파리처럼 냄새나는 곳이 있으면 다시 헐떡거리며 그 현장에 나타나지만, 후자는 순수한 마음이 근간이 되고 꾸준하기에 그렇게 바뻐 보이지 않으나 실속이 있다.

바쁘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아름답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의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은 이른 아침 출근 길, 구두 코에 차이는 아침 이슬보다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앞집의 초로의 노부부가 장작패는 소리는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보다 아름다우며, 굴뚝에서 품어나오는 장작타는 냄새는 구수하기 까지 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루에 한 번 눈감고 5분간 명상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평균 5시간을 더 알차게 쓴다고 한다. 여유를 가져볼 일이다. 그 여유있는 5시간을 창출해 내어 무미 건조한 삶을 재미있고 풋풋하게 만들어야 겠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돌려보던 선데이 서울이란 잡지의 중간에 <오빠, 나 한가해요> 라는 색션이 있었다. 속살을 드러낸 여자가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화보(Foldout Page)를  잡아당겨 커다란 달력크기의 사진을 감상하곤 했다. 그 3류 모델처럼 바빠도 한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렇다고 3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한가한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도록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자.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위선의 가식을 벗어던지고 살갑게 사는 인간다운 진솔한 모습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댓글목록 3

김시우님의 댓글

김시우 2007.05.03 16:06
  과묵한 채박사의 댓글을 백만불짜리입니다. 짧은 글에도 선배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kseattle.com에 수필과 칼럼을 자주 올려야 하는데 게을러서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력중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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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수양이라는 내공은 생명을 다할 때까지 닦아야 할 덕목이므로 정 후배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뉴욕의 좋은 선배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니 일취월장하실 겁니다.

채승묵님의 댓글

채승묵 2007.04.23 13:50
  댓글달기, 원저자 빼고는 1등입니다.<br />

정창주님의 댓글

정창주 2007.04.23 20:06
  돌아보는 시간은 항상 소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생각을 하다보면 망상이나 제 탓으로 돌리는 시간이 되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