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
admin
2006.07.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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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
출처 사장으로 산다는 것.
최근 몇 년간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코리아 홈쇼핑 박인규 사장의 성공 비결은 ‘싼 값에 비단옷’이다. 값은 싸지만 실속 있는 상품을 팔자는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2002년부터 과감하게 실시한 후불제가 그것이다. 후불제란 말 그대로 상품을 받아보고 돈을 내는 방식. 그가 처음 이 제도를 제안했을 때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무조건 안되고, 어떻게 해서도 안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기를 쓰고 반대하니 곤혹스러웠다. ‘정말 괜찮을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가? 헐값에 얻은 월셋집에 곰팡이가 뒤덮여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아내와 딸을 처가로 들여 보낸 뒤, 자신은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한 날이 얼마인가.
하지만 자신은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었다. 돌파구 없이 어떻게 작은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결정을 내렸다. 결정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무성한 우려 속에 시행된 후불제는 성공적이었다.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그는 이를 ‘2% 인간론’으로 설명했다.
“100명 중 90명은 선한 사람이죠. 나머지 10명 중 2명 정도가 나쁜 편이고, 8명은 중간 정도 됩니다. 의외로 제품을 받아놓고도 돈을 안 내는 사람은 형편이 비교적 나은 쪽입니다.”
물론 CEO의 결정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이런 ‘고집’에는 조건이, 필수 조건이 있다.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81년 9월, 삼성그룹 전체 임원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병철 회장의 선언 때문이었다.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거의 모든 사업을 사장단의 의견을 경청한 후 시작했다. 사장단이 안된다고 하면 미련없이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음반 사업을 하고 싶어 두 번이나 추진했으나 사장단이 반대하자 체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밀어붙인 사업이 하나 있었다. 반도체였다. 이회장은 그룹 임원회의에서 “앞으로 반도체와 컴퓨터에 삼성의 흥망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 경제학자나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진국의 살길은 컴퓨터와 반도체라고 합니다. 중진국이 앞으로 살아갈 길, 곧 흥망은 반도체와 컴퓨터에 달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개발해야 합니다. ..(중략)..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안팎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고, 비난과 원성이 자자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니를 능가한다는 삼성의 저력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누구든지, 특히 혜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는 확신이 있다면, 과감하게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위대한 그 어떤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사장으로 산다는 것.
최근 몇 년간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코리아 홈쇼핑 박인규 사장의 성공 비결은 ‘싼 값에 비단옷’이다. 값은 싸지만 실속 있는 상품을 팔자는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2002년부터 과감하게 실시한 후불제가 그것이다. 후불제란 말 그대로 상품을 받아보고 돈을 내는 방식. 그가 처음 이 제도를 제안했을 때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무조건 안되고, 어떻게 해서도 안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기를 쓰고 반대하니 곤혹스러웠다. ‘정말 괜찮을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가? 헐값에 얻은 월셋집에 곰팡이가 뒤덮여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아내와 딸을 처가로 들여 보낸 뒤, 자신은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한 날이 얼마인가.
하지만 자신은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었다. 돌파구 없이 어떻게 작은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결정을 내렸다. 결정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무성한 우려 속에 시행된 후불제는 성공적이었다.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그는 이를 ‘2% 인간론’으로 설명했다.
“100명 중 90명은 선한 사람이죠. 나머지 10명 중 2명 정도가 나쁜 편이고, 8명은 중간 정도 됩니다. 의외로 제품을 받아놓고도 돈을 안 내는 사람은 형편이 비교적 나은 쪽입니다.”
물론 CEO의 결정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이런 ‘고집’에는 조건이, 필수 조건이 있다.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81년 9월, 삼성그룹 전체 임원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병철 회장의 선언 때문이었다.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거의 모든 사업을 사장단의 의견을 경청한 후 시작했다. 사장단이 안된다고 하면 미련없이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음반 사업을 하고 싶어 두 번이나 추진했으나 사장단이 반대하자 체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밀어붙인 사업이 하나 있었다. 반도체였다. 이회장은 그룹 임원회의에서 “앞으로 반도체와 컴퓨터에 삼성의 흥망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 경제학자나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진국의 살길은 컴퓨터와 반도체라고 합니다. 중진국이 앞으로 살아갈 길, 곧 흥망은 반도체와 컴퓨터에 달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개발해야 합니다. ..(중략)..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안팎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고, 비난과 원성이 자자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니를 능가한다는 삼성의 저력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누구든지, 특히 혜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는 확신이 있다면, 과감하게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위대한 그 어떤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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