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의 차이
admin
2006.07.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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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의 차이
출처 낙관성 훈련
인생을 보는 데에 있어서는 두가지의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다름아닌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다. 사람들이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비관주의를 가지고 있는지는 한 조직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정신적 건강과 경제와 생산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들이 봉착한 문제의 원인을 보는 시각이 아주 상반된다는 점이다. 비관주의자들은 영구적이고 확산적인 문제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빈민층과 부유층간의 끝없는 투쟁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인들의 참을 수 없는 적대감, 점점 증가되고 있는 국가 부채, 시들어가는 미국의 주도권, 긴 역사를 가진 러시아의 독재와 같은 것이다.
이에 비해 낙관주의자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국한된 원인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금년의 밀생산 흉작, 이락의 흉악한 독재자, 일본의 무역장벽, 부시 대통령의 신세계질서 같은 것이다.
지난 20년간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한 수 백건의 연구는 이런 류의 낙관주의가 네 가지 혜택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낙관주의자는 비관주의자보다 우울증을 더 잘 물리친다.
2) 낙관주의자는 직장(직장인)과 학교(학생) 그리고 경기장(스포츠 선수)에서 그들이 가진 재능보다 더 훌륭하게 성취해낸다.
3)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낙관주의자를 그들의 대표로 선택하고 비관주의자에게는 등을 돌린다.
4) 낙관주의자는 비관주의자보다 건강상태가 더 좋다. 이런 것들은 낙관성을 갖는 원인인 동시에 낙관성으로부터 생기는 결과이기도 하다.
낙관주의의 메커니즘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낙관주의는 문제에 직면해서 점점 더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패배를 겪었을 때 낙관주의자는 끊임없이 재기를 시도하지만 비관주의자는 쉽게 포기해 버린다.
국가차원에서 비관주의의 결과는 과연 어떠한가? 비관적인 개인과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국가는 보유하고 있는 자원보다 훨씬 더 낮은 성취도를 나타낸다. 비관적인 국가는 국민들 중에 정신질환자나 우울증 환자가 많고, 10대 들은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조직이나 국가도 비관적일 때에는 어려운 국면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난관에 봉착되었을 때에는 쉽게 포기해 버린다.
이에 비해 낙관주의자는 똑같이 어려운 일을 당해도 불행한 일들을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실패란 잠시 후퇴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원인은 이번에만 국한된다고 본다. 그들은 이런 실패가 자기 잘못 탓이 아니라 좋지 못한 환경이나 운이 나쁘거나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도 혼란해지지 않는다. 좋지 못한 상황을 만나면 그들은 이것을 도전해 볼 만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맞선다.
어떠한 견해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모든 상황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련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 역시 일종의 습관입니다. 그리고 연습에 의해서 충분히 달성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좋은 점을 먼저 찾아내는 것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삶에서 낙관주의가 주는 혜택을 톡톡히 얻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출처 낙관성 훈련
인생을 보는 데에 있어서는 두가지의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다름아닌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다. 사람들이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비관주의를 가지고 있는지는 한 조직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정신적 건강과 경제와 생산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들이 봉착한 문제의 원인을 보는 시각이 아주 상반된다는 점이다. 비관주의자들은 영구적이고 확산적인 문제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빈민층과 부유층간의 끝없는 투쟁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인들의 참을 수 없는 적대감, 점점 증가되고 있는 국가 부채, 시들어가는 미국의 주도권, 긴 역사를 가진 러시아의 독재와 같은 것이다.
이에 비해 낙관주의자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국한된 원인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금년의 밀생산 흉작, 이락의 흉악한 독재자, 일본의 무역장벽, 부시 대통령의 신세계질서 같은 것이다.
지난 20년간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한 수 백건의 연구는 이런 류의 낙관주의가 네 가지 혜택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낙관주의자는 비관주의자보다 우울증을 더 잘 물리친다.
2) 낙관주의자는 직장(직장인)과 학교(학생) 그리고 경기장(스포츠 선수)에서 그들이 가진 재능보다 더 훌륭하게 성취해낸다.
3)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낙관주의자를 그들의 대표로 선택하고 비관주의자에게는 등을 돌린다.
4) 낙관주의자는 비관주의자보다 건강상태가 더 좋다. 이런 것들은 낙관성을 갖는 원인인 동시에 낙관성으로부터 생기는 결과이기도 하다.
낙관주의의 메커니즘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낙관주의는 문제에 직면해서 점점 더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패배를 겪었을 때 낙관주의자는 끊임없이 재기를 시도하지만 비관주의자는 쉽게 포기해 버린다.
국가차원에서 비관주의의 결과는 과연 어떠한가? 비관적인 개인과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국가는 보유하고 있는 자원보다 훨씬 더 낮은 성취도를 나타낸다. 비관적인 국가는 국민들 중에 정신질환자나 우울증 환자가 많고, 10대 들은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조직이나 국가도 비관적일 때에는 어려운 국면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난관에 봉착되었을 때에는 쉽게 포기해 버린다.
이에 비해 낙관주의자는 똑같이 어려운 일을 당해도 불행한 일들을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실패란 잠시 후퇴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원인은 이번에만 국한된다고 본다. 그들은 이런 실패가 자기 잘못 탓이 아니라 좋지 못한 환경이나 운이 나쁘거나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도 혼란해지지 않는다. 좋지 못한 상황을 만나면 그들은 이것을 도전해 볼 만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맞선다.
어떠한 견해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모든 상황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련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 역시 일종의 습관입니다. 그리고 연습에 의해서 충분히 달성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좋은 점을 먼저 찾아내는 것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삶에서 낙관주의가 주는 혜택을 톡톡히 얻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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