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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1회)

김시우
2007.01.17 04:01 1,697 4

본문

달수가 눈을 떠보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 고여 있었다. 그가  무의적으로 눈을 껌뻑하자  양 눈꼬리 옆으로 눈물이 주룩 빠져 내려가  양쪽 베게 닢을 적셨다. 그제서야 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슴에 안도의 가벼운 숨을 내 쉬었다.  

그는 의사가 마취제를 투여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천천히 열을 세라고 한 후 일곱을 채 세지도 못했지만, 그 수 초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하지만 엄습해왔던 두려움을 벗어 던진 것에 홀가분해 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라는 말도 못하고 수술실에 밀려들어 온 것이 후회스러웠으나, 다시 그 말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때에는 그 말이 마치 다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하는 말로 듣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까봐 망설였었다.

그는 회복실에서 이동식 침대에 누워 병실로 이동하는 동안 빗겨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을 올려다 보는 것이 싫어 담요로 얼굴을 덮었다. 어슴치레한 천정의 형광등을 수십여 개 밀려 보내고 나니 병실에 닿았다. 그의 침대로 사람들이 몰려와 ‘수고했다,라는 말을 건냈다. 말할 힘도 없어 그저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돌아보니 정작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달수는 자세를 고치려다 절개한 근육과  깎아낸  뼈 부위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간호장교가  뛰어와 뭔가를 달수의 허벅지에 박고는 무표정하게 병실을 나갔다.  그녀는 우는 아기의 입에 인조 젖꼭지를 물리듯 모르핀 한방으로 김대위의 입을 막았다. 손발 다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져 흘러내린 내장을  야전 군의관이 감싸 안은 채 긴급히 헬기로 후송되는 전후방 장병들을 밥 먹듯이 상대해 온 그녀에겐 달수는 감기환자 정도일 것이다. 또 스르르 잠이 왔다. 간호장교가  그의 허벅지에 꽂은 모르핀 때문이리라.

"달수씨, 눈이 참 많이 왔네요. 정말 경치가 좋죠?"

달수는 그녀와 함께 지난 밤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자유공원의 자갈길을 걷고 있었다. 지긋이 밟아 자갈과 눈이 함께 내는 소리는 그들의 사랑처럼  아기자기하게 보뜩거렸다.  꼬끝과 양 광대뼈가 붉게 상기된 그녀지만 마냥 즐거워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그의 긴 코트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더욱 하나가 된 마음에 그들은 공원을 넘어 하인천역에 닿았다.

역사에 들어간 그는 자판기의 커피와 코코아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 순간 누군가 막 역에 들어선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황급히 역사로 뛰어들면서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녀의 손에 올려지려 했던 코코아는 중심을 잃은 그녀의 손을 떠나 김대위의 손등에 올라앉았다.

" 앗 뜨거! "

달수는  외마디 짧은 비명을 삼켰다.

“어머머…이를 어떻해! 죄송해요. 김대위님 괞찮으세요?”

신 대위 아내는 몹시 당황하여 안절부절하며 김대위의 손에 떨어뜨린 뜨거운 보리차 물을 닦을 손수건을  핸드백에서 주섬 주섬 꺼내 들었다. 달수의 바로 옆 침대에서 가슴에서 목까지 기브스 한  신대위가  눈동자만 돌려 나를 보고는 ‘ 괞챃냐’고 되묻고는 이내 그의 아내를 질책한다.

“그러게  뜨거운 물 따를 때 조심하지 않고… 자리 이쪽으로 옮겨 이그… 저 곰탱이... 그 때도 네가  조금만 조심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야.”  

신대위의 말에 그의 아내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울면서 병실을 나갔다.

“ 뭘...그까짓 걸 가지고  마누라 상처를 건드리고 그래…”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김대위는  젖은 손을 담요에 쓱 문질러 닦아내면서 신대위의 독설을 잠재웠다. 그의 아내에 대한 투박스런 말투는  이미 병실에서 정평이 나있었다.

“ 김대위! 생각해봐...그래야 정을 뗄 것 아냐 ?  나를 평생 바라보고 살게 할 수 없쟎나.”  

신대위는 깊은 한 숨을 내쉬고 지그시 감은 눈에서 엷은 눈물이 비쳤다. 신대위는 동기중에서 최초로 정식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 바로 옆 병상의 김대위와는  군 자체가  틀리지만  임관년도가 같아 동기같이 지냈다. 그는 아내가 차 안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가 무릎 위에 엎질러 비명을 지르자 전방 주시를 잠깐 게을리한 것 때문에 앞차를 추돌하여 차가 전복되었고  아내는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반면 그는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상태가 6개월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이미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살 하세요 흑흑흑... 말하지 못해도 얼마나 아프겠노"

달수는 수술후 어느정도 걸을 수 있게되자  신대위의 휠체어에 앉힌 후 자주 산책을 나갔다.  그들은 병사 병동을 지나다가 멈추어 그 울음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식물인간 상태의 중사 한 명이 있는데 위생병이 가죽만 앙상하게 남은 그의 등에 난 욕창 구멍 안으로 핀셋을 깊이 집어 넣어 무표정하게 설걷이하듯 소독하는 것을 지켜보는 그의 어머니가 흐느낀다.  달수는 차마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보지 못했으나 신대위는  왠지 뚫어지게 본다.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일까.

"너 이누무 시키, 어머니가 살살하라고 부탁하시쟎아."

달수가 몹시 경직된 신대위의 얼굴을 한 번 내려보더니 고개를 들어 위생병에게 소리친다. 그래도 그가 들은 척
만 척 소독을 재촉했다.

" 야, 야! 김대위 왜그래?  어디가? "

신대위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간파하는 순간 달수는 이미 위생병을 일으켜 세운 뒤 주먹을 날려 위생병은 뒤로 나뒹굴고 그가 들고 있던 소독용 도구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잠시후 군의관실과 간호장교실에서 당직 군의관과 간호장교 그리고 간호병사들이 튀어나와 김대위의 양팔을 잡지만 분을 김대위는 발로 그 위생병을 한 번 더 걷어찬다.

" 저 중사님 마누라가 도망갔대"

분을 못 삭이고 돌아서는 김대위 옆 병상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병사가 옆 병사에게 나즉히 속삭인다. 20대 초반의 그 하사관의 아내가 약 6개월 정도 그의 옆을 지키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지금은 그의 노모가 그녀를 대신하고 있었다. 가끔 면회오는 신대위의 장모와 아내도 이미 그가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신대위 자신이 몸으로 느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신대위의 눈빛만큼은 재활의지가 확고해 보였고 그의 어머니의  면회는 하루도 거름이 없었다.

 “야!  김대위”

누군가 달수를  불렀지만 그는  현관문을 향해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이미 제대를 한 지 6년이 넘었고  대학원생중에는 군인들도 몇 명 있어 누군가 자기 아닌 다른 군인을  부른다고 생각했다.

“야! 김달수  대위.”

순간 달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다 뒤를 휙 돌아보니 광대뼈가 툭 튀어나올 정도로 여윈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히죽 웃고 있었다. 달수는 혹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주위에 있나 돌아보았다.

“야, 김대위 거기 너 밖에 누가 있어, 정말 오래간 만이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누구…시더라? 저를 아십니까?   ”

달수는 두 어 발걸음  그에게 옮긴 후 그를 뚫어지게 보았지만 어쩐지 낯이 익다는 것외에는 그와의 친분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얌마 나야  신대위… 신동찬, 나 몰라? 저기 화곡동 국군 통합병원…”

그제서야  달수는 그가 7년전 같은 병실에 있었던 신대위 였슴을 알아채렸다. 그도 그럴것이 신대위는 병원에서 머리를 모두 밀어버렸고 지금은 더벅머리가 눈을 찌르고 있었다.  ‘

“ 야-아 !  기똥찬!  네가 여기 웬일이냐?  반갑다!!!”  

달수는 자신이 그에게 붙힌 별명을 부르며 뜻밖의 만남에 몹시 기뻤다.  달수는  퇴원 명령을 받고 자대로 복귀하는 날  그렁거리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했던 동찬의 커다란 눈망울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달수는 그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은 채 그와 눈을 맞추고 손을 덥석 잡았다.

" 언제 퇴원했어? 결국 자대 복귀가 안된거야? 몸은 좀 어때? 많이 야위었네? 괞찮은 거야?  여긴 웬일이야 응?"

달수는 집나간 아들 돌아온 것 모양 신대위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마구 물어댔다.

“ 응 그냥  공부 좀 더해 볼려고… 할 수 있는게 이거 밖에 없어… 몸이 이러니… 근데 너는 여기 웬일이야? 소령 진급했겠네. 근데 그  복장은 뭐고… 보안대로 차출됐어?  흠....독사 중대장 출신 보안사 장교라…그거 어울리는데, 나중에 보안사령관 되면 좀 봐줌세나, ”

동찬은  달수가 여전히 군인의 신분을 유지하는 줄 알았고 그의 길어진 머리와 신사복 차림에 의아해하며 그 역시 반가움에 떨며 호들갑이었다.

“ 나 제대했어, 자대에 복귀했다가  1년을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어.”

“무슨 얘기야 ! 너 동기중에서 잘 나가는 장교였잖아, OAC 성적도 좋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고, 게다가 부대 지휘중 사고도 없었다는 것을 네 대대장이 면회왔을 때 들어 다 알고 있었는데 뭐...  중령까지는 따 놓은  당상이고 네 말대로 장군을 바라보고 있었잖아.”

동찬은 달수가 퇴원하는 날,  김대위가 ‘서로 장군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한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 같았다.  

“ 근데 그게 말야 … 병력이 나중에 진급에 영향을 미칠 것같아서 ….”

달수는  차마  걷지도 못하는 그 앞에서 건강에 자신이 없어 제대를 했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달수도 당시 수술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무-순 얘기야.  그건 진급 심사때 동점자가 있으면 그런거고, 자네가 평점이 0.1점이라도 높으면 상관없어. 우리 편대장도 사고로 더 이상 전투기를 몰 수 없지만  얼마 전 전화통화를 했는데 준장으로 진급하셨더라구….공군본부 인사처에 계서…공군 장교들 보직을 좌지우지 하지…그건 그렇고 지금 뭐해 ”

“지금은 신동아 건설 기조실에 있어. 건설분쟁 조정과장으로…. 여기도 회사에서 보내준 거야. 내가 한 건 크게 했거든…수 백억 왔다 갔다 하는 재판에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여 승소했어. 돈보다는 사실상 현대건설과 자존심을 건 한 판이었든. 그래서 회장님 지시로 총무부에서 기조실로 발탁되었어. 입사동기중  제일 먼저 과장진급도 했고…”

“ 그래? 잘 됐다. 건설분쟁 조정과장? 그게 뭐하는 건데?”

“ 야, 야 , 신대위! 우리 그러지 말고 어디 다른데 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이게 얼마만이냐  응?”

달수는 그를 내려다 보고 말하는 것이 어쩐지 미안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어 휴게실로 휠 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제가 할께요”

30대 중반의 미모의 여성이 김대위의 뒤에서 다가오며 신대위의 휠 체어의 핸들을 건네 잡았다.  

“ 어?  김대위, 내  마누라… 인사해. 여보 여기 내가 얘기했던  김대위,  잘 생겼지?  이 친구 별명이 독일장교였어.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카키색 장교 코트를 입고 나타나면 간호장교들이  김대위 보려고  괜히 병실로 와서 순찰을 하고 갔지. 거기다가 비오는 날 코트깃을 세우고 병실로 들어서면  압권이었어.”

신대위는 김대위가 퇴원 후 장마철에 자신을  몇  차례  면회온 것을 을 회상하며 김대위를 추켜세웠다.

“ 야  신대위  너 뭐 먹고 싶은거 있어. 그런말은 마이크 대고 크게 해야지 하하핫…”

달수는 호탕하게 웃다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본 후 찬물세례 받은 것 인양 얼굴과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댓글목록 4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7.01.17 14:14
  김대위가 김시우 대위 아니던가요?<br />
왜 경직 되었는지 궁금합니다<br />
<br />
2편은 언제 연재가 되나요?<br />
마음은 무겁지만 진지하게 잘 읽었습니다<br />
다음 편이 기대 됩니다<br />

최강일님의 댓글

최강일 2007.01.17 22:49
  김시우 동문 잘 읽고 갑니다.<br />
2편 기대 됩니다.

길동돼랑님의 댓글

길동돼랑 2007.01.23 18:20
  선배님 ... 1편 너무 길게 올린가 아니세요?<br />
2편 올리세요

길동대랑님의 댓글

길동대랑 2007.01.23 18:21
  선배님 ... 1편 너무 길게 올린거 아니세요? <br />
2편 부탁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