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목적!
임동섭
2007.09.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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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목적!
한국의 한 전자회사에서 1980년대에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TV 2000대를 수출했습니다. 그런데 수출한 TV 모두 반품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반품 이유를 조사해보니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에 수출한 TV는 다리가 있는 주로 19인치 Box형 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선반 위에 있는 물건을 내리려면 TV를 밟고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TV가 견디어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 수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TV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물건은 만든 이의 원래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에 맞게 사용될 때 가장 좋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이 땅에 목적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 26절에서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형상을 갖고(神人同形論, anthropomorphism)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의 형상은 지정의(知情意, intellect, emotion and volition)를 말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성, 양심, 사랑.......이라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성경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했다면, 인간은 지금도 계속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께 계속 보고를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또한 다스리라고 말씀했다면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강가에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의 수원지는 본 사람은 그 마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강물의 시작과 끝을 알려면 수원지와 마지막으로 이 강물이 도착하는 바다를 보아야 제대로 알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사람도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인생의 시작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연히 생겨 점차 진화했다는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도록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견해입니다.
만약 인간이 우연히 생겨났다면 우리의 인생은 목적도 가치도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연한 인생이 아니라면 그리고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를 만든 이에게 물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의 목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면 사람을 통해서 만날 수 있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때도 우리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 때문에 상처 입은 분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 우리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아니라 그 형상의 본체이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이기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보지 않고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겠습니까?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말은 그래서,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잘못해 놓고 합리화하는 핑계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이웃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습니다.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로 비쳐지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또 한 가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고, 그 형상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장애가 있어도, 그렇다고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혹시 내가 가난이나 질병으로 어려움 당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모습, 어떤 조건 속에 있어도, 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포근한 교회 / 임동섭 목사 / 콜로라도 덴버 / 72 응용물리)
한국의 한 전자회사에서 1980년대에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TV 2000대를 수출했습니다. 그런데 수출한 TV 모두 반품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반품 이유를 조사해보니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에 수출한 TV는 다리가 있는 주로 19인치 Box형 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선반 위에 있는 물건을 내리려면 TV를 밟고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TV가 견디어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 수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TV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물건은 만든 이의 원래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에 맞게 사용될 때 가장 좋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이 땅에 목적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 26절에서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형상을 갖고(神人同形論, anthropomorphism)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의 형상은 지정의(知情意, intellect, emotion and volition)를 말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성, 양심, 사랑.......이라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성경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했다면, 인간은 지금도 계속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께 계속 보고를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또한 다스리라고 말씀했다면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강가에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의 수원지는 본 사람은 그 마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강물의 시작과 끝을 알려면 수원지와 마지막으로 이 강물이 도착하는 바다를 보아야 제대로 알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사람도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인생의 시작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연히 생겨 점차 진화했다는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도록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견해입니다.
만약 인간이 우연히 생겨났다면 우리의 인생은 목적도 가치도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연한 인생이 아니라면 그리고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를 만든 이에게 물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의 목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면 사람을 통해서 만날 수 있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때도 우리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 때문에 상처 입은 분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 우리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아니라 그 형상의 본체이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이기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보지 않고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겠습니까?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말은 그래서,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잘못해 놓고 합리화하는 핑계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이웃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습니다.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로 비쳐지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또 한 가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고, 그 형상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장애가 있어도, 그렇다고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혹시 내가 가난이나 질병으로 어려움 당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모습, 어떤 조건 속에 있어도, 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포근한 교회 / 임동섭 목사 / 콜로라도 덴버 / 72 응용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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