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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여정(42회)

김시우
2007.12.02 15:46 1,500 3

본문

달수는 라이터 불을 향해 숙인 고개를 세운 후, 입에 물린 담배를 다시 손으로 잡아들고 자신을 부른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 번 본 얼굴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달수에게도 그는 낯설었다. 전역한 지 십 수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 때의 계급을 호칭하는 것으로 보아 군 재직 당시 알았던 사람인 듯 싶었지만 달수는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 누구시더라…”

“ 김달수 대위님 맞으시죠?”

“ 맞습니다만... 전 선생이 누군지 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거 제가 실수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무슨 말씀을요,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그 때가 벌써 언젭니까? 국군통합병원에서 뵈었죠, 제가 신대위님 면회 갔다가 멀치 감치서 뵌 것이 전부입니다. 당시에 김대위님하고 신대위님 마치 친형제같이 붙어다니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었죠.”

“ 신대위? 신동찬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이제 기억납니다. 박준위님 맞으시죠? 신동찬 대위 편대의 정비관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직접 대면하고 통성명한 적이 없어 기억이 안났군요. 난 실수라도 하는 줄 알고 내심 걱정했습니다. ”

“ 하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신대위님한테 말씀은 들었습니다. 요즘 잘 나가신다구요?”

“ 잘 나가긴요, 신대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근데 신대위과 지금도 연락을 합니까? “

“ 그러문요, 김대위님 대신 이젠 내가 신대위님 옆에 항상 붙어 다니는 걸요”

달수는 박 준위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손목 시계를 올려다 보며 바쁜 시늉을 했다. 그 자리에 더 머물러있다가 박 준위 앞에서 희정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 준위와 악수를 하고 헤어져 뒤돌아 걸어가던 달수는 빌딩 모서리를 돌기 직전에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박준위는 웬일인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배를 피고 있었고 그 또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빌딩 모서리에  몸을 반쯤 숨기고 희정의 도착만을 기다리는 달수에게 일분 일초가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박 준위가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카페의 통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하늘색 택시가 그 앞에 멈추고 이윽고 나타난 희정도 그 카페를 향해 발걸음 옮기고 있었다. 어떻해 같은 시각에 박준위와 희정이 같은 장소에 도착을 한 것인지 달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희정의 품성으로 보아 적어도 그 두사람이 사전에 약속을 하고 같은 장소에 나타난 것을 아니라고 확신했다.

“ 희정씨!”

달수의 외침에도 희정은 달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달수가 그녀를 향해 뛰어가면서  더욱 더 크게 희정의 이름을 외쳤지만 번화한 거리의 차량 소음은 달수의 목소리를 삼켜 버렸고, 희정은 조금 전 박준위가 들어간 카페의 문을 밀어 제끼고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카페 입구에 도착한 달수는 이마에 송송 땀이 맺혀있었고 안절 부절 못하며 어떻해 해야할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 이게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최선을 다했슴에도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할 때 그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급적 빨리 다음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 달수의 처세술 내지는 마인드 컨트롤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지금의 달수는 그런 그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다음 한 걸음 조차 움직일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 처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카페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그렇다고 이미 약속시간을 넘겨버린 시각에 무작정 밖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에서 달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카페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희정과 박준위가  이미 카페 안에서 조우했다면 모르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자리에 앉아있다면, 오히려 희정의 존재를 박 준위에게 알리고 박 준위로 하여금 자신과 희정의 관계를 의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달수는 더욱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먼산을 바라보듯 하다가 의미심장한 얼굴을 한 달수가 카페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박 준위가 항상 신동찬의 곁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 맘에 걸렸지만, 이런 절박한 순간에 자신도 희정도 우연히 만난 것으로 가장하는 것 밖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눈치 빠른 박 준위가 막연히  의심을 하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희정을 눈 앞에서 놓치는 것보다 일단 부딪히는 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달수가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기로 한 것이다. 비지네스 문제에서는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았던 달수가 희정의 문제에서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십 여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달수가 카페 통유리 문의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달수와 카페에서 되돌아 나오는 희정은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달수는 자신도 모르게 얼떨결에 출입구 손잡이를 잡아 당겨 희정이 밖으로 나오도록 안내했다.

“ 우리 다른 곳으로 가요.”

달수가 하고 싶은 말을 희정이 대신했고 달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다른 장소를 찾으려는데 희정이 잰 걸음으로 앞서 걸어갔다. 달수는 일부러 그녀와의 거리를 넓히려고 천천히 걸으면서 본능적으로 카페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종종 걸음을 치던 희정이 마침 마주오는 노란색 빈 택시를 잡아 세우면서 달수를 돌아보았다. 멀뚱히 희정의 뒷꿈치를 바라보며 따르던 달수가 뛰기 시작했고 이미 택시에 올라 운전사 뒷자리에 앉은 희정의 곁에 달수가 황급히 올랐다.

“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고개를 돌려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희정이 잠시 머뭇거리는 짧은 순간에 달수가 말을 이었다. 희정 역시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 그냥 여기를 빨리 벗어나 주세요. 그냥 드라이브나 합시다.”

택시기사가 룸 밀러로 달수와 희정을 다시 한 번 번갈아 보았다. 누가 보아도 자연스럽지 못한 두 사람의 태도에 택시기사도 더 이상 묻지 않고 택시의 속력을 높여 신촌 카페 골목을 빠져나와 신속하게 대로로 진입했다. 둘은 양화대교가 보일 때 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 희정씨… 저기… 우리 인하대학교 가요.”

“ ……”

“ 아님 월미도로 갈까요?”

평소에 인천과 서울을 자주 오가던  달수는 양화대교를 건너기 전까지, 어쩐지 서울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심리적 거리감을 평소에 느끼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서울에서 인천방향으로 향할 때 양화대교만 넘어서면 거의 서울을 벗어났다는 안도감 또한 느끼곤 했었다. 달수가 양화대교를 건너기 위해서는 그 다리 너머에 있는 목적지를 지목해야 했었고, 인위적인 건물보다는 자연적인 장소에서 희정과 함께 있고 싶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이 눈을 피해 어둑한 카페로 숨어 들려 했던 그들은 오히려 덫에 갇힐 뻔 했던 경험을 한 터였다. 어쩌면 그 옛날 둘이 함께 걷던 길을 다시금 즈려 밟고 싶은 달수의 마음이 곧 희정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희정의 대답없는 대답이 바로 그것을 반증하는 것 같았다.

“ 오늘은 토하지 않을 꺼죠?”

달수의 뜬금없는 말에 택시 기사가 눈이 휘둥그레 지더니 룸밀러로 희정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갸르함 턱선을 따라 파란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그녀의 피부에 술을 먹은 사람의 홍조를 찾아볼 수 없던 지라 택시 기사는 고개를 꺄우뚱해 보였다. 그래도 뭔가 불안한지 택시기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운전하는 내내 룸 밀러로 몇 번이고 희정을 넘겨보았다. 달수의 이러한 짧은 농담과 그 농담의 진위를 몰라 잠시 허둥대었던 택시기사의 행동은  좁은 택시 공간을 다소 우스꽝스런 분위기로 채웠다.

택시가 양화대교를 건너 경인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무표정했던 희정의 입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다 내려갔다. 희정도 그 옛날 그 일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슴이 분명했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달수는 그제서야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달수는 이 순간이 마치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멈추어선 것 같이 행복감에 젖어 들어갔다.

표정없는 희정이 느끼는 감정도 사실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추억의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그 둘의 가슴이 뛰고 있슴이 분명했다. 그러나 달수와 희정 그 누구도 깃털에 올라있는 것 같은 이 포근함과 행복함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의 안도의 한숨이 먹구름이 되어 자신들은 휘감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둘의 마음 한구석 어디엔가 이미 자리잡았을 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처럼 안타까운 것인가 보다.

댓글목록 3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7.12.07 07:31
구성이 역시 긴박감을 넣어서 좋네요<br />
다음이 기대 됩니다

임성택님의 댓글

임성택 2007.12.03 22:49
김시우 동문!<br />
12/08/07 토 6pm 오창호 동문 집에서 있는<br />
2007년 동문 송년모임에서 만나기를 희망해 봅니다

길동돼랑님의 댓글

길동돼랑 2007.12.06 20:24
서울은 눈비가 오고 춥습니다. 오랫만에 들렸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