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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 여정 50회

김시우
2008.03.11 21:22 1,34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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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돌아온 달수는 진태의 집무실을 노크했다. 회사에서 오직 중 고교 동창인 진태만이 달수가 사적인 심경을 털어놓는 상대였다. 달수가 새로운 주택개발지의 선정을 제외한 모든 전결권을 이미 진태에게 이양한 상태였기에 회사에서는 달수와 진태가 보고라인에서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실 진태는 달수의 성격상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회계학도답게 빈틈없이 뒷처리하여 달수가 다른 쪽에 신경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진태는 자신을 회사 발전의 주역임을 인정하였으며 불필요한 간섭은 창의력을 떨어뜨린다며 사장과 부사장 집무실도 각기 다른 층에 배치시킨 달수가 자신의 집무실을 직접 찾아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달수를 맞았다.

“ 아니…인터폰으로 올라오라고 하지 않고 직접 내려왔어? ”

“ 우리 친구끼리 옛날 얘기 좀 하려구… 요즘 부쩍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

“ 허참, 천하의 김달수가 이렇게 센치한 모습은 첨 보네 그려…무슨 일인데 그래? 또 아버지 문제냐? 그 여자 때문에? ”

진태가 말한 여자는 희정이 아니었다. 달수의 아버지의 여자를 일컫는 것이었다. 달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또한 참기 힘든 고뇌를 안겨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의 아버지이며 아버지의 여자였다.

달수가 고등학교 재학시 인천경찰서 정보과장이었던 달수의 아버지는 대한제분의 회장이었던 민규의 아버지가 인천항에서 곡물을 밀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내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의 고위 간부에게 고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던 민규의 아버지의 영향력 행사로 인천 경찰서장으로부터 내사중단 지시를 받았으나 달수의 아버지는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부하의 항명은 상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법이다. 특히 군이나 경찰 같은 위계질서가 분명한 집단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달수 아버지의 그런 강직함은 최회장의 방문을 받은 서장이 민규의 아버지에게 달수의 아버지의 비리사실을 전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천시에서는 도시계획의 변경이 있을 때마다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서와 그 정보를 공유하였는데, 정보국장인 달수의 아버지가 그것을 이용하여 인천 서부지역 일대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합법적인 과정을 거쳤다해도 H 호텔의 소유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치명적 결함이었고 서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기 인천경찰서장으로 거의 낙점을 받은 달수의 아버지는 최회장의 이 같은 음해와 밀고로 인해 대전 경찰청 추풍령 출장소장으로 좌천되었다. 이 때부터 달수의 집안은 기울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토록 강직하여 어떤 뇌물도 먹히지 않아 고위 정치인들도 쉬쉬했던 달수의 아버지의 날으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기세는 이때부터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었다. 오히려 달수 아버지 자신이 날개 꺽인 새가 되어, 푸드덕거리다가 결국 하늘이 아닌 땅에서 그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절망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올랐던 거대한 침엽수가 전기톱에 밑둥을 잘리자 힘없이 무너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오랜 출장으로 돌아오면 자식들 보다 먼저 병든 아내를 찾았던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지 좌천 근무지의 과부와 눈이 맞아 가정까지 소홀히 하게 되었다.

달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절대로 아버지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이 자신이 민규와 싸움을 벌인 것이 발단이 되었다는 죄의식과 증오의 고통을 안고 살았다.

달수는 정의감과 소신에 찬 아버지가 주민수가 몇 백명도 안 되는 시골마을의 경찰 책임자로 좌천을 명령 받았을 때, 명예롭게 사표를 던지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훗날 달수는 아버지가 퇴직하지 않고 그 같은 치욕적인 좌천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5명이나 되는 달수의 형제의 대학공부까지 모두 마칠 때까지 어떻든 자리를 보존해야 했었다는 절박한 부정을 알게 되어 눈물을 한껏 쏟아냈었다.

달수가 전역 후 아버지의 근무처인 추풍령을 찾았다. 대전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추풍령 고개를 돌고 돌아 내린 마을에서 달수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곳에는 버스도 들어가지 않았다. 달수의 아버지가 기사를 딸려 보낸 준 낡은 검정색 관용 짚차는 40여분의 시골길을 지나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높은 안테나가 얹혀 있는 회색건물 앞에서 정차했다. 달수가 마주한 아버지는 칼날 잡힌 푸른 경찰 정복대신에 회색 점퍼차림의 평상복을 대충 걸친 시골 잡부 모습 그 자체였다.

하루 아침에 남편이 좌천당해 동네 어귀에서 아낙네들이 수근거림을 감당하기 힘든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어 아버지는 첩까지 두고 살아야 하냐며 아버지에게 강경하게 대항하였던 대학시절의 달수는 온데 간데 없고, 달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뜨근한 눈물이 뺨을 타고 턱에 걸쳤다.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인천을 올라오는 달수는 아버지가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

“복수하지 마라, 복수하려면 너 자신부터 복수를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네가 가족이 있고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되면 온전한 네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 복수다. 그들이 언젠가 정의의 불꽃에 의해 촛농처럼 서서히 녹아 흘러내리는 널, 그 앞에 네 온전하고 강경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수다. 그것이 내가 여기에 가족과 떨어져 있는 이유다.”

그 뒤로 13 년이 지나 최회장은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부정축재와 불법 밀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 수 없이 많은 죄목으로 법의 심판을 받아 재산이 몰수되었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중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발가락 전부를 잘라내었거,  형집행정지로 집에서 기거하다 달수의 아버지가 복권하여 명예회복을 하는 다음 날에 6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달수의 어머니는 달수의 아버지가 복권하여 재산과 명예를 되찾기 3년 전 화병으로 앓다가 겨우 5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달수는 육군 전격부대 전차중대장으로 근무할 때 여동생 달희가 '엄마가 오빠를 부르다'가 의식이 없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달수가 짙은 안개를 뚫고 3시간 여를 달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는 막 임종하셨고 그 옆에는 달수가 몇 개월 전에 서신에 동봉한 팀스프리트 훈련때 찍은 사진이 담긴 앨범이 펼쳐져 있었다. 달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으나 식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눈동자에 핏발이 서리고 목에서 피 비린내가 나도록 서럽게 울어댔다. 어쩌면 달수는 어머니의 한 많은 죽음이 자신의 아버지 또는 민규 아버지가 아니고 자신과 민규가 벌인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자학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달수는 어머니의 얘기를 꺼낼 때 마다 감정을 추스릴 수 없었다. 달수의 이야기를 쭉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진태가 담배를 한 대 물어 불을 붙여 눈물이 그렁 그렁한 달수에게 건넸다. 달수는 자신의 한이 녹아 흩뿌려는 것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 인양 그것을 받아 들어 깊이 한 모금 팔아 허공에 흩뜨려 뿜어 올렸다.

“ 달수야! 네가 과거에 묶여있는 것을 보면 너답지 않아. 넌 항상 앞만 보고 무서울 정도의 추진력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것이 직원들이 너를 따르고 존경하는 이유고…”

" ......"

“ 달수야, 이제 잊어야지 어쩌겠니, 그 여자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 네 삶을 살아, 네 독립적인 혼자만의 인생을 살아가란 말야. 더 이상 세월에 끌려 다니는 것은 안된다.”

“ 그래야겠지, 그러나 내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내 뿌리는 항상 거기에 있는 거야, 나무가 뿌리를 스스로 뽑아버리고 자랄 수 없듯이 나 또한 항상 거기에 있는 거지, 이미 오래 전 내 곁을 떠난 어머니 그리고 또 한 사람… 나에게 존재하는 가치와 즐거움을 안겨준 또 한사람…그녀도 이젠 떠나는 것 같다.”

진태는 오래 전에 달수와 신촌의 어느 스탠드 바에서 술을 마실 때, 희정이 프랑스 유학시절을 일기형식으로 펴낸 ‘몽마르뜨의 언덕’ 이란 베스트 셀러가 몇 년 째 달수의 책상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물었었다. 그 때 진태는 달수로부터 눈에 젖은 희정의 머리에서 새어 나오는 풋풋한 사람 냄새 같은 그녀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들었다.  

“ 달수야…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든 법이야, 등산이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냐… 잊어라…”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다. 또한 꽃이 지는 건 쉬워도 그 화려했던 꽃의 자태를 잊는 건 한참이다. 달수는 희정과의 사랑을 피우기 위해서 무수한 세월을 흘려 보냈다. 하지만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전에 꺽여버린 가지에 달려있는 꽃봉오리의 처참함이 달수의 가슴에 절절히 흐르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창가로 걸어가 밖을 바라보던 달수가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카우치에 앉아 달수를 올려다 보는 진태에게 강한 눈빛을 보냈다.

“진태야! ”

달수는 민규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몇 시간 전에 만난 태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민규의 관계를 알아봐달라는 것이었다. 친구 태훈의 직업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 달수가 차마 태훈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없었던 것이었다.

“ 진태야 ! 너 민규 알지? ”

“ 민규? 최민규 말야? 걔 얘기는 왜 꺼내야?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 네가 걔를 만나서 신동찬 사장 부인과 민규가 어떤 관계였는지 한 번 알아봐라. ”

“ 이희정 교수 말하는 거야? ”

'강도를 만나면 만났지 민규는 만나기 싫다'는 진태에게 달수는 다시 한 번 진지한 눈빛을 보냈다. 달수는 전교 1, 2등을 다투던 모범생 진태 앞에서는 민규도 감히 주먹을 휘두르지 못한 옛날 일을 상기시키면서, 민규가 진태에게는 거부감과 경쟁의식 없이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우연한 만남으로 위장하여 민규에게 접근을 하는 거야. 학교때 진정한 친구를 한 명도 갖지 못한 놈이야, 나랑 싸우고 전학을 가서도 친구를 만들지 못했을 거고…너를 보면 무척 반가워할 거다. 그리고 명함은 다른 것을 하나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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