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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김시우의여정] 연재소설 여정51회

김시우
2008.03.21 00:57 1,94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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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수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진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태는 대기업 증권회사의 펀드 메니져로 있을 때 고객을 돈을 잠시 유용하여 투자한 것이 발각되어 퇴사를 당한 후, 누나와 포장마차를 운영할 때 그 곳에 들린 민규를 우연히 만났었다.

그 때 진태는 민규가 자신을 격의없이 대했지만 대건 고등학교 최고 우등생인 그가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오만에 찬 어투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던 일을 떠올렸고 마침내 그의 호텔을 찾아갔다.

“ 전무님, 고등학교 동창이란 분께서 찾아왔는데요.”

어딘가 내선전화로 진태의 방문을 보고하는 호텔 프론데스크에 있던 남자 직원이 수화기를 내리고 손으로 막으면서 진태에게 이름을 물었다. 진태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옆에 있던  여직원에게 진태를 전무실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 어이구! 진태야, 네가 나를 다 찾아오다니 이거 영광이다. 잘 지냈어? “

“ 그, 그래 잘 지냈구말구. 사무실이 정말 삐까번쩍하구나.”

진태는 민규가 안내하는 이태리 양식으로 조각된 고동색 푹신한 양가죽 쇼파에 앉으면서 사무실 여기 저기를 두리번 거렸다. 그런 진태를 민규는 의기양양하게 내려다 보며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폼새가 꽤 나는 걸 보니 아직도 포장마차를 하는 건 아니겠지? 어쩌자구 서울 양반이 인천 촌구석에 까지 행차하셨나? 설마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겠지?”

평생을 남을 기만하고 약점을 잡아 강탈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민규의 영혼은 맑지 못했고 그러한 그의 마음은 항상 비아냥 거리는 듯한 어투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 응… 너를 보러왔어. 그래도 네가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지잖아…  이 한식당을 인수했어, 네가 좀 많이 애용해주었으면 해서…”

“ 청명옥? ”

민규가 진태에게 받아들은 청명옥의 명함에 대표 직함으로 되어 있는 진태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들어 진태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 그 유명한 청명옥 사장이 너란 말이야?”

“ 너 알다시피 누나와 함께 포장마차를 했었잖아, 그 때의 경험으로  요식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그래서 조금 모은 돈을 가지고 조그만 식당이라고 하려는 차에  아시는 분과 같이 그걸 인수하게 됐어, 그리고 내가 대표를 맡게된 거야.”

“ 야~아! 그 동네는 그 양동이파 쇄끼들 땜에 얼씬하지 못했는데 이젠 늬 빽으로 인천에 미인이 다 모인다는 청명옥에서 한 탕 놀 수 있겠는 걸… 오래 살고 볼일일세. ”

“ 무슨 말을…이젠 그런 깡패들 더 이상 얼씬하지 않을거야, 이젠 요정사업 완전히 접고 순전히 한식당으로 자리매김 했거든… 하지만 네가 온다면  내가 직원들에게 특별히 지시해 놓을께, 그러지 말고 오늘 밤 당장 놀러와, 미스코리아 인천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최고의 미인들을 특별히 조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정말이냐’

민규는 반색을 하며 고개를 뒤로 제끼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악수나 인사할 때 허리는 숙이되 고개를 들어 상대방 눈을 바라보며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은 그였다.

5년전 주사파와 주안역 부근 야간업소의 보호비 쟁탈전이 한창일 때, 주사파에게 매수당한 단골 과일 노점상에게 과도로 복부에 칼을 두 번이나 맞아 생사를 오고 간 다음부터는  그는 절대로 눈을 아래로 내리지 않았다. 그런 민규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뒤로 제끼고 웃는 것은 진태에 대한  믿음의 반증이었다.

그날 밤 7시경 청명옥으로 검정색 그랜져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서자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웨이터가 그 차로 뛰어갔다.  차에서 내리는 두 남자중 하나는 민규였고 또 하나는 콧수염을 기르고 키가 땅딸한 남자였다.

둘은 차에서 내리자 마치 사찰 본당같은 건물에 어리둥절하여 이리저리 돌아보는데, 옥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학모양의 자수를 놓은 한복을 고즈넉하게 차려입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들을 맞았다.

그녀는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하고 앞장서서 본당을 돌아서 뒤켠에 또 하나의 한옥 건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 앞에는 두명의 미모의 옥비녀를 꽂은 쪽진 머리와 걸을 때마다 가을 저녁바람에 너플거리는 한복차림의 젊은 여자 둘이 디딤돌을 가운데 두고 그들을 맞았다.

그녀들은 디딤돌에 올라선 민규와 콧수염 남자의 구두의 뒷굼치를 잡아 그들이 구두를 벗는 것을 도왔다. 그때 대청마루 맞은 편에 있는 창호문이 좌우로 스르르를 열렸다. 그 창호문을 열었던 젊은 여자 둘이 고개를 깊숙이 숙여 민규와 콧수염 남자를 환대했다. 그러자 그안에는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진태와 청명옥의 지배인 한태성이 벌떡 일어서 그들을 맞았다.

문을 열었던 두명의 여자는 각각 진태와 한태성, 그리고 민규와 콧수염 남자의 구두를 벗는 것을 도왔던 두 여자는 각각 그 둘 곁에 앉아서 그들 앞에 놓인 옥색 잔에 청주를 따랐다. 민규는 자신과 동행한 사람이 재일동포 노천구로 일본 오사카에 소재한 호텔의 대주주이며 자신이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사업파트너라고 소개했다.

한태성은 곱상한 외모임에도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 3연패를 한 불패의 싸움꾼으로 달수가 외식사업부에 속해있는 청명옥을 자신의 회사에서 회계상으로 분리하여 부사장인 진태를 대표이사로 앉혔을 때 그의 안전을 위해 발탁한 인물이었다.  

청명옥은 처음에 달수가 경숙을 위해 자유공원 언덕밑에 한식당을 인수하여 그녀의 거처 겸 일터로 인수한 것이었는데, 차츰 규모가 커지고 고급 식당에서 요정으로 발전하였다. 청명옥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본선에 진출 못한 인천 최고의 미인들로 가득 차있다는 소문이 났고, 그곳에서 지역 폭력배들의 승급식및  비리 공직자들에 대한 각종 향응이 이루어져 당국의 감시를 받아오던 터였기에 달수가 본사와 아예 별개의 법인체로 분리시켰던 것이다.

진태는 이미 청명옥 본관 사무실에 미리 나와 이 모든 상황을 진두 지휘하던 달수의 지시에 따라 일반 사람들은 보지도 못한 호화식단이 열을 맞추어 진열된 식탁위에 일본 황실에 진상한다는 니시키노 마노즈루 청주를 핑크 파스텔 톤 한지로 멋을 내어 포장하여 올려놓았다. 또한 언행에서 애교가 넘쳐나고 미모가 가장 뛰어난 처자 2명을 선별하여 민규와  노천구의 곁에 바짝 붙여 앉혔다.

노천구는 초등학교때 부산에서 태어나 일본 쓰시마 근교를 오가며 어부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본토로 밀항을 하여,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에서  한국식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야키니쿠 식당에서 막일을 했다. 그는 자세가 흐뜨러짐이 없이 곧바르게  앉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진태가 묻는 말에 예, 아니오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식 불고기를 유난히 좋아하여 그가 일하는 식당에 자주 들린 동네 공수도 체육관 관장은 노천구의 타고난 다부진 체격과 일하는 손놀림에서 그의 재능을 발견했다. 노천구는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오사카 공수도 대회 청소년부에서 우승을 하고, 이어 전국대회 일반부에서 두 차례 우승을 하였다.

노천구는 다소 키가 작은 체구에도 각진 턱과 딱 벌어진 어깨에서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경기에서 보는 일본 유도선수의 다부진 몸매가 베어나왔다. 강태성과 노천구는 서로를 눈을 피했으나 싸움꾼만이 느끼는 직감으로 서로가 보스의 보디가드임을 직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주안상이 마련된 방을 막고 있는 칸막이를 서서히 열리면서 또 하나의 방에서 가야금과 장구를 무릎과 가슴에 안은 처자들이 흥을 돋구기 시작했다. 진태와 민규, 한태성과 노천구 사이에 천천히 오가던 잔은 빨라지고, 한 두잔 받아 마셔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취기가 오른 처자들이 거추장스런 한복 윗 저고리를 벗어내자  볼룩한 가슴을 간신히 가린 치마처고리의 위로 포얀 그녀들의 살결이 드러났다.  

그녀들은 모두 일어서 거문고와 장구의 장단에 맞춰 나비의 날개짓 같은 가늘고 하얀 긴 팔을 넘실댔고, 빙빙 도는 속도에 따라 치마 저고리의 밑이 높낮이를 달리하여 들리면서 미끈한 장딴지 또는 물컹한 허벅지가  보여지기도 했다. 술에 취하고 색에 취한 민규와 노천구는 자신도 모르게 진태와 강태성에게 가졌던 약간의 경계심을 풀어내는 듯 싶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진태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희정의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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