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보고 싶은 얼굴!
임동섭
2008.03.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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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보고 싶은 얼굴! [요 21: 1-14]
1-1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 새벽에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약 한달 전쯤 한국의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취임식에 약 5만 명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900명에 한 명쯤 취임식에 참석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취임식 자리 배치도를 보면 연설하는 단상을 중심으로 자리를 배치했습니다. 단상으로부터 가까울수록 더욱 중요한 인물이 앉는 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취임식에 참석하여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람도 있고, 대통령 얼굴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형성됩니다. “어떤 사람을 먼저 만나는가? 어떤 사람을 더 가까이 만나는가?”가 중요합니다.
1-2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려고 오셨습니다. 왜 정권을 쥐고 있는 빌라도 총독이나, 부활을 믿지 못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았을까요? 왜 제자들에게 보이셨을까요?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보았는데도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왜 고기 잡으러 갔을까요? 이러한 기적 중에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을 반갑게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1-3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나셔서 우리의 눈으로 보고 만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고기 잡으러 갔다면 우리도 예수님보다는 돈 벌려고 사업장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 보다 더 귀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왜 돈벌러 갑니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나아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통해서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1
오늘 성경 본문의 배경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3주 쯤 되셨을 때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7제자들이 고기 잡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갈릴리에 오기 전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2번이나 보았습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은 기적입니다. 기적 중에 기적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예언하신대로 살아나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닫힌 집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의심하는 제자들 앞에서 생선을 드시기도 했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못 박혔던 손을 보라고 내밀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2-2
부활하신 주님을 본 베드로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얼마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모두 주님을 버릴지라도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장담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염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던 방에 오신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사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차라리 책망을 하셨으면 베드로의 마음은 오히려 편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다릴 면목이 없었습니다. 제자로 다시 맞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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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서민으로 먹고 살만한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를 갖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님은 베드로에게 시집을 보내면 딸을 굶기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수 청년에 홀려 가족과 배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의 장모님은 열병을 앓았습니다. 걱정하는 장모님에게 베드로는 큰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이 장차 왕이 되시면 따님은 귀족이 될 것입니다!”라고.
그런데 지금은 백수가 되어 고향에 오게 되었습니다. 가진 돈도 없습니다. 가족과 고향사람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실패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소망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다시 맞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어부가 되어 가족이라도 먹여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세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에게 고기 잡으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3년 동안 그물을 던지지 않았다고 이렇게 한 마리도 잡지 못할 수가 있는가? 빈 배로 집에 가야하다니! 가족들의 기대가 무너질 것을 생각하니 참담합니다.
3-1
이 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로 오시지 않고 빌라도 총독에게 나타나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빌라도를 죽였을 것입니다. 흥분한 군중들은 로마 군인들도 죽였을 것입니다. 간신히 살아난 몇 명의 군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보고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혁명이 일어나 빌라도 총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청년이 왕이 되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제국의 위신을 살리기 위해 로마 황제는 군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군 천사를 동원시켜 로마 군인들을 무찌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죽이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살리려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에게 가시지 않고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갈릴리 호수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3-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이 순종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른 쪽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제자들은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처음 제자로 부르실 때와 똑 같은 상황임을 기억하였습니다.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베드로는 겉옷을 입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주님을 만나고 싶어 물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약 100야드(90m)를 달려갔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갈수록 소망이 커집니다! 미래가 열립니다!
3-3
베드로가 예수님께 왔을 때 이미 예수님은 식탁을 손수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베푸시는 분입니다! 책망하시기보다 연약함을 이해하고 포근히 감싸 주시는 분입니다. 반갑게 달려온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사명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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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습니다.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없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믿었던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간 것처럼 힘이 없습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불경기에 낙심합니다. 소망이 없이 그럭저럭 삽니다. 마지못해 삽니다.
4-2 & 4-3
부활하신 예수님과 멀리 있는 사람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사명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있는 성도님은 예수님이 보고 싶어 하시는 얼굴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5-1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에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장소에 가는 것입니다.
5-2
열왕기상 9장 3절에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22편 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 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20절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그(예수님)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성전(교회)에서 두 사람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예배 요소들은 기도, 찬송, 말씀(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 그리고 헌신(몸과 마음과 예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곳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부흥되고 나라가 새로워지고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5-3
예배는 영혼의 햇빛입니다. 예배 한 번 드리지 않았다고 영혼이 즉시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빠지면 햇빛을 받지 못한 식물이 시들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 한 번 드렸다고 즉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예배를 드리는 자는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는 식물처럼 영혼이 잘 됩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부활절 새벽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예배에 성공하여 행복한 삶이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덴버지역 교역자회 주최 부활절 연합 새벽예배 설교 전문 / 회장 임동섭 목사)
(2008년 3월 23일 / 응용물리 72 / 포근한 교회 / 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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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 새벽에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약 한달 전쯤 한국의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취임식에 약 5만 명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900명에 한 명쯤 취임식에 참석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취임식 자리 배치도를 보면 연설하는 단상을 중심으로 자리를 배치했습니다. 단상으로부터 가까울수록 더욱 중요한 인물이 앉는 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취임식에 참석하여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람도 있고, 대통령 얼굴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형성됩니다. “어떤 사람을 먼저 만나는가? 어떤 사람을 더 가까이 만나는가?”가 중요합니다.
1-2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려고 오셨습니다. 왜 정권을 쥐고 있는 빌라도 총독이나, 부활을 믿지 못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았을까요? 왜 제자들에게 보이셨을까요?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보았는데도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왜 고기 잡으러 갔을까요? 이러한 기적 중에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을 반갑게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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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나셔서 우리의 눈으로 보고 만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고기 잡으러 갔다면 우리도 예수님보다는 돈 벌려고 사업장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 보다 더 귀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왜 돈벌러 갑니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나아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을 통해서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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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본문의 배경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 3주 쯤 되셨을 때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7제자들이 고기 잡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갈릴리에 오기 전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2번이나 보았습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은 기적입니다. 기적 중에 기적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예언하신대로 살아나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닫힌 집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의심하는 제자들 앞에서 생선을 드시기도 했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못 박혔던 손을 보라고 내밀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2-2
부활하신 주님을 본 베드로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얼마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모두 주님을 버릴지라도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장담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염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던 방에 오신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사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차라리 책망을 하셨으면 베드로의 마음은 오히려 편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다릴 면목이 없었습니다. 제자로 다시 맞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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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서민으로 먹고 살만한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를 갖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님은 베드로에게 시집을 보내면 딸을 굶기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수 청년에 홀려 가족과 배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의 장모님은 열병을 앓았습니다. 걱정하는 장모님에게 베드로는 큰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이 장차 왕이 되시면 따님은 귀족이 될 것입니다!”라고.
그런데 지금은 백수가 되어 고향에 오게 되었습니다. 가진 돈도 없습니다. 가족과 고향사람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실패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소망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다시 맞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어부가 되어 가족이라도 먹여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세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에게 고기 잡으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3년 동안 그물을 던지지 않았다고 이렇게 한 마리도 잡지 못할 수가 있는가? 빈 배로 집에 가야하다니! 가족들의 기대가 무너질 것을 생각하니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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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로 오시지 않고 빌라도 총독에게 나타나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빌라도를 죽였을 것입니다. 흥분한 군중들은 로마 군인들도 죽였을 것입니다. 간신히 살아난 몇 명의 군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보고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혁명이 일어나 빌라도 총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청년이 왕이 되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제국의 위신을 살리기 위해 로마 황제는 군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군 천사를 동원시켜 로마 군인들을 무찌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죽이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살리려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에게 가시지 않고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갈릴리 호수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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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이 순종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른 쪽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제자들은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처음 제자로 부르실 때와 똑 같은 상황임을 기억하였습니다.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베드로는 겉옷을 입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주님을 만나고 싶어 물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약 100야드(90m)를 달려갔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갈수록 소망이 커집니다! 미래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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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수님께 왔을 때 이미 예수님은 식탁을 손수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베푸시는 분입니다! 책망하시기보다 연약함을 이해하고 포근히 감싸 주시는 분입니다. 반갑게 달려온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사명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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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습니다.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없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믿었던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간 것처럼 힘이 없습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불경기에 낙심합니다. 소망이 없이 그럭저럭 삽니다. 마지못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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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과 멀리 있는 사람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사명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있는 성도님은 예수님이 보고 싶어 하시는 얼굴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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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에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장소에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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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9장 3절에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22편 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 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20절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그(예수님)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성전(교회)에서 두 사람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예배 요소들은 기도, 찬송, 말씀(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 그리고 헌신(몸과 마음과 예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곳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부흥되고 나라가 새로워지고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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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영혼의 햇빛입니다. 예배 한 번 드리지 않았다고 영혼이 즉시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빠지면 햇빛을 받지 못한 식물이 시들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 한 번 드렸다고 즉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예배를 드리는 자는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는 식물처럼 영혼이 잘 됩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부활절 새벽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예배에 성공하여 행복한 삶이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덴버지역 교역자회 주최 부활절 연합 새벽예배 설교 전문 / 회장 임동섭 목사)
(2008년 3월 23일 / 응용물리 72 / 포근한 교회 / 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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