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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동문칼럼] 다윗의 성공비결

김진수
2009.01.12 10:42 1,249 0

본문

우리는 다윗 왕을 생각하는 성경과 세계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즉 다윗은 외모로는 별로였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도 있다. 아버지 이새도 그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양이나 지키게 하고 선지자 사무엘 앞을 지날 때 그곳에도 없었었다. 또한 그는 우리아의 아내에 탐이나 자기의 충성된 신하를 죽인 죄인이었다. 그는 신하인 요압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식인 압살롬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여 자식으로부터 반란을 당하여 결국은 자기 자식을 죽게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에 길이 남는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으로서의 영광을 누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다윗이 다른 모든 왕에게 절대적 비교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윗이 왜 위대한 지도자,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까?


첫 번째, 다윗은 백성의 마음을 사기위해 노력했었다. 사울의 경우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원해서 된 왕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선택이 실패였다고 느끼지 않기 위하여 사울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죽일 수 없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만약 다윗이 사울을 죽였을 경우는 다윗이 자기 조상의 백성인 유다의 왕은 되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의 왕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기위하여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으로 보고한 아말렉 사람도 죽였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의 적이었던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시를 짓기까지 하였다. 그리함으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가 사울에게 적대관계가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어디 그것뿐이었는가. 사울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이스보셋의 장군이었던 레갑과 바아나가 자기의 왕인 이스보셋의 목을 잘라왔을 때도 그들을 죽인 것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기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두 번째, 다윗은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실리를 좇았다. 요압 장군은 그에게 있어서 오른팔이었지만 또한 때로는 제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요압은 자기의 왕인 다윗이 시킨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항복하려온 이스라엘의 실권자인 아브넬을 죽였고, 또한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였을 때 아들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그을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압을 계속하여 그의 장군으로 기용하여 나라를 굳건히 세웠다. 싸움에는 요압을 당할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는 때로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랍들이 있다하더라도 큰 목적을 위해서는 실리를 좇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하나님이 치심으로 그가 금식하면서 눈물로 기도하였지만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어나 복장을 바르게 하고 음식을 먹은것을 보고 그 이유를 신사들이 물었을 때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이제는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는 답에서 그가 얼마나 실리주의자인가를 엿볼 수 있다.


세 번째,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용기의 인물이었다.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의도적으로 죽게 한 죄를 선지자 나단이 지적했을 때 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실수에 대한 책임도 철저히 진 사람이었다. 그는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그녀에게서 태어난 솔로몬을 왕으로 지명하였다. 또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도망 중에 사울의 집 족속 중 하나인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화가 나서 저를 죽이자고 했을 때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라고 하였다. 또한 다윗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인구 조사를 한 후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고 고백하였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지도자는 자기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였다. 열왕기에 나오는 많은 나쁜 왕을 말할 때  ‘나의 종 다윗과 같이 아니하고’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삶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그의 삶에 섭리하셨음을 알 수 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았음에도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을 가지기를 원하였었다. 그러나 다윗은 백성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선택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왕 아기스의 신하로 있을 때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발생하였을 때 다윗은 아기스를 위하여 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블레셋의 방백들은 다윗이 나가서 싸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다윗이 이스라엘과 싸울 수 없도록 하였다. 이 사건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다. 만약 다윗이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과 싸웠다면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살수 있었겠는가? 그는 통일된 왕국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블레셋 방백들을 이용하여 다윗이 이스라엘과 싸우지 못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이다. 밧세바의 사건도 섭리의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섭리하셨고, 그 사건을 통하여 다윗은 철저히 회개함으로 섬기는 지도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여본다. 하나님의 우리의 실수를 통해서도 섭리하시고 그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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