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복종 없이 성공 없다!
임동섭
2009.02.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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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복종 없이 성공 없다!
뉴욕의 한 대학에서 한국 청년이 ROTC 훈련을 받고 있을 때입니다. 하루는 교관이 1+1은 얼마인가? 모두 2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교관이 “앞으로 1+1은 1이다! 다음 시험에 나온다. 답은 1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얼마 후 시험 문제에 정말 “1+1은 얼마인가?”라는 100점 만점에 20점이 배당된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수학적 진리를 무시하면 되겠는가? 나는 그래도 명색이 크리스천인데, 진리를 왜곡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고민한 후에 2라고 답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20점을 날렸습니다.
도쿄대학 1968년도 입학시험에 “2+3은 몇이고 왜 그렇게 되는지 증명하라!”라는 수학 문제가 나왔습니다. 답은 “5이고, 공리다.”입니다. 공리는 모든 사람이 2+3은 5라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교관은 장교훈련생들에게 1+1=1이라고 분명히 선포했기 때문에 군대의 성격상 모두 약속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1+1의 답은 1이 되어야합니다. 만약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지금은 돌격할 때가 아닙니다!”라고 반대의견을 내면서 돌격하지 않으면 위험해집니다. 수학적 진리도 중요하지만 군대 동료들의 생명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독재정치를 하는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아내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가? 불완전한 인격의 직장 상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였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서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양은 가난한 사람의 팔에서 잠을 잤습니다. 양은 가난한 사람에게 마치 딸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그네가 부자를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자기의 양이나 소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나그네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해서 크게 화를 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지만 그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그는 무자비한 사람이다.”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왕으로 세워 주었다. 그런데 너는 우리아를 죽게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너의 집안에는 언제나 칼로 죽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다윗이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소!”
나단은 다윗을 직접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윗이 큰 죄를 저질렀지만 그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단은 다윗에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적해야할 선지자이므로 예화를 통해서 다윗이 스스로 죄를 깨닫도록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는 “누구든지 국가의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복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권세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권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순종의 사람이래야 남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책임이 없으므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종 없이 성공은 없습니다! 순종하면 성공합니다! 질서를 위해 하나님은 선한 지도자를 세우시기도 하고, 벌을 주시기 위해 악한 지도자를 세우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므로 깨닫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지도자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따지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선악 간에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 소관입니다. 우리는 다 허물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선악과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어야 합니다!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뉴욕의 한 대학에서 한국 청년이 ROTC 훈련을 받고 있을 때입니다. 하루는 교관이 1+1은 얼마인가? 모두 2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교관이 “앞으로 1+1은 1이다! 다음 시험에 나온다. 답은 1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얼마 후 시험 문제에 정말 “1+1은 얼마인가?”라는 100점 만점에 20점이 배당된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수학적 진리를 무시하면 되겠는가? 나는 그래도 명색이 크리스천인데, 진리를 왜곡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고민한 후에 2라고 답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20점을 날렸습니다.
도쿄대학 1968년도 입학시험에 “2+3은 몇이고 왜 그렇게 되는지 증명하라!”라는 수학 문제가 나왔습니다. 답은 “5이고, 공리다.”입니다. 공리는 모든 사람이 2+3은 5라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교관은 장교훈련생들에게 1+1=1이라고 분명히 선포했기 때문에 군대의 성격상 모두 약속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1+1의 답은 1이 되어야합니다. 만약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지금은 돌격할 때가 아닙니다!”라고 반대의견을 내면서 돌격하지 않으면 위험해집니다. 수학적 진리도 중요하지만 군대 동료들의 생명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독재정치를 하는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아내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가? 불완전한 인격의 직장 상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였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서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양은 가난한 사람의 팔에서 잠을 잤습니다. 양은 가난한 사람에게 마치 딸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그네가 부자를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자기의 양이나 소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나그네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해서 크게 화를 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지만 그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그는 무자비한 사람이다.”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왕으로 세워 주었다. 그런데 너는 우리아를 죽게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너의 집안에는 언제나 칼로 죽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다윗이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소!”
나단은 다윗을 직접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윗이 큰 죄를 저질렀지만 그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단은 다윗에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적해야할 선지자이므로 예화를 통해서 다윗이 스스로 죄를 깨닫도록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는 “누구든지 국가의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복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권세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권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순종의 사람이래야 남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책임이 없으므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종 없이 성공은 없습니다! 순종하면 성공합니다! 질서를 위해 하나님은 선한 지도자를 세우시기도 하고, 벌을 주시기 위해 악한 지도자를 세우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므로 깨닫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지도자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따지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선악 간에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 소관입니다. 우리는 다 허물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선악과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어야 합니다!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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