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510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임동섭의종교칼럼] 부끄러운 김밥!

임동섭
2009.04.22 10:37 1,101 2

본문

부끄러운 김밥!

어머님께서 김밥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김밥의 재료는 4가지였습니다. 김, 밥, 소금 그리고 들기름이 전부였습니다. 김 위에 밥을 얇게 폅니다. 그 위에 들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소금을 일정한 간격으로 씨앗을 심듯이 뿌립니다. 그리고 비닐로 쌉니다. 그 다음에 다시 신문지에 쌉니다. 서울에 가는 남편과 아들을 위한 점심이었습니다. 아버님은 기쁜 마음으로 김밥이 들어있는 신문지 뭉치를 받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22가옥의 조그만 농촌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서울 가는 것은 해외로 여행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동네 분들이 배웅하러 모두 나오셨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약 5킬로미터 정도 걸어서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아버님과 서울행 기차를 탔습니다. 1970년대 기차는 언제나 좌석이 모자랐습니다. 아버님은 앉으시고 저는 서서 가고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은 배가 고팠습니다. 집에서 먹는 어머님의 김밥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보는 기차에서 어머님의 김밥을 먹는 것은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 당시 기차 안에서는 일회용 나무도시락의 김밥을 팔았습니다. 도시락 김밥은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참 맛있게 보였습니다. 아버님은 왜 저런 도시락을 사 주실만한 여유가 없으실까? 불만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옆에 앉으신 분에게 김밥을 권하셨습니다. 그 분은 매우 고마워하셨습니다. 어머님의 김밥은 칼질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입 물면 김밥이 마치 엿가락처럼 쭉 늘어났습니다. 아버님의 그러한 모습을 볼 때 더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버님이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그 때 저는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시골에서 대학에 입학한 저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걸어가면 지구가 뒤로 굴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시골에 가면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기숙사에 오면 한없는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통기타가 유행했습니다. 기타를 치지 못하면 무장공비라고 놀려댔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은 통기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친구들을 볼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서울출신 여대생들은 얼마나 미끈한지 농촌 출신 총각의 눈을 토끼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움과 초라한 내 모습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기타를 갖고 있던 친구가 시골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하루만 기타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내일이면 돌려주어야 하므로 열심히 쳤습니다. 하루 만에 3곡을 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몸살을 앓았지만 매우 기뻤습니다.

저는 김밥을 매우 좋아 합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저는 M그룹(종합식품회사) 주재원으로 뉴저지에서 근무한 때였습니다. 오피스 빌딩을 빌려서 업무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음식 냄새 나는 것 때문에 6개월 정도 점심을 김밥으로 먹었습니다. 동료직원들은 김밥만 보면 물린다고 하였지만 저는 언제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심지어 저녁에 김을 내놓으라고 부탁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어머님의 정성이 담겨있는 그 김밥이 그립습니다. 초라한 김밥 재료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양심을 속이고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옆에 앉은 분에게 김밥을 권하셨던 아버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참 아버님은 당당하셨습니다. 자상하시고 당당하셨던 아버님이 보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뵐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이 부모님을 뵐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김밥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아버님 어머님 모두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만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뵐 수 있다는 것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댓글목록 2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9.04.22 19:32
참 자랑스런 김밥이었구먼요<br />
잘 읽고 나갑니다

지용철님의 댓글

지용철 2009.04.22 23:12
부모님이 그리워지네요. 다시 뵐 날이 있겠지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