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칼럼] 안데스 산맥을 넘으며
하태돈
2009.05.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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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에 Bogota와 Barranquilla 두 도시 방문에 이은 이번 여행은 Medellin, Pereira, Bogota, Barranquilla, Cartagena 그리고 다시 Barranquilla, Medellin을 거쳐 뉴욕으로 돌아가는 4월 16일부터 23일까지 6박 7일의 강행군이다. 한번 와본 나라라 그런지 낯설지가 않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마약 마피아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지만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으로 별 상관을 하지 않았으나 좀도둑에 대한 경고는 수차례 들은바 있어 잔뜩 긴장을 했지만 두번째라 그런지 제법 여유가 생긴다.
NY의 JFK를 출발해서 Florida의 Miami를 거쳐 첫 기착지인 Medellin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동료 짐이 하나 미도착이다. 할 수 없이 신고만하고 뉴욕에서 소개받는 M의 아들 차를 타고선 집으로 향한다. 자기 집에 재워 주겠다니 고맙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고개를 넘어 한없이 내려가는데 대관령은 조그만 고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데스 산맥 줄기의 평평한 곳에 공항을 만들고 도시는 산을 넘에 한없이 내려간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땅은 남한의 열배나 되는큰 나라지만 도시가 주로 산맥 사이의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가 브라질과 베네주엘아에 국경을 접한 동부 지역은 주로 정글지형이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을 하니 키가 140이나 될까한 여인네가 반긴다. 뉴욕에서 만났던 처녀의 언니다. 집이라고는 하나 서울의 옛 60년대 말께나 될까한 수준이다. 한평 반이나 될까한 방에다 짐을 풀고 샤워실에 들어가니 머리 위에서 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찬물아닌가. 그래도 어떻게 하나. 변기는 깔개가 없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나라는 양변기이기는 하지만 공항에도 깔개가 거의 다 없는게 일반적이였다. 미리 도착해 있는 Dr. A을 반갑게 만나고 전통음식으로 차려 주는 늦은 저녁을 또 먹으며 내일 일정을 논의한 후에 곧바로 잠에 빠진다.
17일 금요일 첫날 Dr. A의 group member인 K를 앞장세워 시내를 돌면서 자료copy도 하면서 세미나 준비를 한다. 내년이면 간호사가 된다는 이 아가씨는 18살인데 살이통통하게 찐것이 아주 똘똘하게 안내도 잘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갑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재미가 있는가 보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고 세마나 장소로 향한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니 shopping mall에 커다란 장소를 준비 해 놨다. 미리 몇몇이 준비를 하고 있다. 저녁 6시에 시작 예정이었는데 역시 Colombian Time이다. 7시가 넘어서 시작을 했는데 지난번 이미 눈치를 챘지만 Korean time은 이사람들 시간 관념에 비하면 양반이다. 한시간은 예사로 늦고선 아무렇지도 않다. 여행 내내 이 사람들 시간 관념에 아주 질려 버렸다. 그런데로 열심히 세미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택시가 아니고 봉고차 택시를 탔는데 피곤한데로 거꾸로 앉아서 가고 지독한 매연에 곧 토할 듯 하다. 집에와서 우선 진정을 시킨다. 11시가 넘었는데 바깥 구경을 하자는 권유를 사양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예정데로 다음 방문 도시인 Pereira로 출발 할 준비를 한다. 원래 계획은 차를 rent 해서 가기로 했다. 약 225km 정도니 두세시간이면 될 것으로 생각 했는데 사람들 얘기가 5시간을 족히 걸릴 것이란다. Google Earth를 보니 길이 좀 꼬불하지만 설마 그렇게나 걸리겠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차로 갈 길이 아니더라. 다행히 어제 택시 운전사가 자기가 거기까지 가겠다고 해서 운임을 넉넉히 주고 네명이서 출발을 한다. 아직 속이 매식거려서 Coke을 하나 사 마시고 단단히 각오를 한다. 시내를 벗어나도 고속도로가 나오질 않고 산으로 꼬불꼬불 계속 올라 가기만 한다. 계속되는 일차선에 버스나 트럭을 추월해도 곧바로 다시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버스나 트럭에서 나오는 매연이 얼마나 심하던지. 차에 air conditioner도 없고 더우니 문을 열어야 하고, 고생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바깥 구경을 하며 속을 진정 시켜본다. 한참을 가도 산으로 끝없이 올라 가기만 하더기 이제는 산등성을 타고 가는 길을 보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산정상을 따라가며 만든 길을 따라가는 데 양쪽으로 보이는 계곡이 안데스 산맥의 규모를 짐작 할만 하다. 이런 산꼭대기를 따라 길을 어떻게 냈는지, 그리고 이런곳에 생겨진 마을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사가 심한 계곡이지만 파파야, 맹고, 바나나 등 과일나무들이 수없이 펼져지고 커피나무도 계속해서 나온다.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생활 하기에는 충분 하리라. 산꼭대기에 다다르니 군인들이 차를 세워고 검문을 한다. 아마도 마약 딜러가 아닌가 조사 하는 것이리라. 소변을 봐야 하는데 화장실을 물으니 숲속을 가르키면서 싱긋 웃는데. 조금을 더 내려가니 한국 농촌 할머니라 해도 믿을 만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길거리 식당이 나오기에 휴식겸 점심을 먹기로 한다. Colombia 전통 음식 몇 가지와 chicken soup을 주문해 먹어보니 입맛에 꼭 맞는다. 한국의 촌노인네와 별반 다를바 없는 마음씨 좋게 생긴 할머니에게 팁까지 조금 더 주니 이가 다빠진 합죽한 얼굴에 함박 미소를 짓는다. 역시 늙으면 어린아이와 같아 진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길거리 식당에 고생을 숨길 수 없는 늙음은 어쩔 수 없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 예사롭지가 않다. 산맥을 한참이나 타고가니 서서히 내려 가는데 양쪽 경치가 환상적이다. 나무가 얼마나 울창하던지. 그런데도 paper 산업을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단다. 주로 Brazil에서 종이 생산을 한다고 하니 경쟁에서 밀리는가 보다. 이제 평지에 다다르니 소양강 정도 규모의 강이 나오는데 흙탕물의 물살을 보니 엄청 험한가 보다.
드디어 Pereira 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시가지에 들어서니 듣던대로 상업도시라 그런지 소규모 도시답지 않게 온통 시가지는 각종 물건으로 뒤덥힌 상점들이다. 우선 호텔에 자리를 잡고 세미나 장소로 나선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Colombian time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추가 비용지출하고 시간 연장하는 수 밖에. 이곳 호텔은 더운물이 찔끔 나오기는 하는데 샤워꼭지다 헛돌고 엉망이다. 현지에서 만난 뉴욕 F의 언니 L를 앞장세워 젊은이들이 모이는 식당으로 간다. 첫 비행기를 타고 Bogota로 가야 하기 때문데 4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먹다보니 과식이다. 호텔로 돌아와 곧바로 깊은 잠에 떨어진다. 겨우 세시간 반이나 잤을까. 공항으로 이동.
주일인 19일 오전 일찍 Bogota 공항에 도착해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한다. 역시 전통음식을시식해 봐야지. Caldo라고 하는 음식을 한국의 갈비탕하고 거의 비슷하다.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Dr. A의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 맛있는 점심을 대접 받는다. 망고, 토마도, 아보카도, 어니언 그리고 살란초, 올리브 오일, 레몬주스가 가미된 살라드는 아주 일품이었고, 닭고기 요리는 우리 입맛에 어찌그리 꼭 맞는지. Colombian 음식이 일반적으로 우리 입맛에 그리 거부감이 없는 음식 들이었다. 호텔에 돌아가 잠시 쉰 후에 저녁에는 shopping mall에 가서 도시 분위기를 살핀다. 역시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는 떨어질 뿐이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마찬가지 인가 보다. 각종 유명 브랜드 상품들이 즐비하고, 젊은 연인들이 몰려 다리는 것을 보니 서울이나 뉴욕이나 마찬가지이다. Spain의 피를 받은 백인계의 여자들은 얼마나 이쁘고 잘 빠졌는지 겻눈질을 열심히 했다. 옷들은 궁뎅이에 달랑 걸치고 아슬아슬하니 눈요기가 그만이다. 저녁엔 한국 식당을 찾아서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간다. 한국음식이야 몇 날이곤 먹지 않아도 이젠 견딜 수 있지만 한국동포들이 동정이나 현지 사정을 더 잘 알아 보려면 역시 한국식당이 최적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복스럽게 생긴 여주인이 반갑게 반긴다. 주재원으로 나왔다가 남편은 다른 사업을 시작했고, 부인이 식당을 맡아서 한단다. 음식이 정갈하고 그런데로 맛이 있다. 이것저것 물은 다음 내일 낮에 다시와서 남편과 함께 얘기를 나누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와 오래간만에 늦잠을 잔다.
월요일(20일)이다. 잠을 충분히 보충 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Dr. A와 동행해서 박물관으로 간다. Museo del Oro라는 박물관으로 금으로 만든 옛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다. 일전에 읽은 Gabriel Garcia Marquez의 ‘백년의 고독’을 보면 아울렐이아노 부엔디아가 고통에 가까운 고독을 견디이 위해 끊임없이 금세공에 열심인 장면들이 나온다.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들의 보면 난해하기만 했더 그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여간 실망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자건 동물이건 뚱뚱하게 그림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보테로Botero 박물관과 함께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은 한가한 여행길이 아니지 않았던가. 대신해서 바로 앞에 있는 선물 가게에 들러 모조품만 실컷 구경하고 대리 만족을 했다.
그러고 보니 동행한 Dr. A가 Buendia 가문이다.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성이 Buendia라 내가 읽었던 책 얘기를 했더니 너무도 반가워 했던 일이 있다. 한 문장이 무려 한 쪽을 넘나드는 기나긴 문장이며, 기상천외하고 환상적인 기술들이 이어지는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남미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모든 것이 환상적인 것 같지만 실은 환상 속에서의 사실성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 눈에는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남미, 특히 콜롬비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는 모든 것이 사실적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번에 만나본, 그리고 스처가면서 느껴본 그들의 모습에서 작품의 등장 인물들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점심에 다시 비원이라는 한국 식당에 들러 남편인 김사장과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현지에 약 50여명이 교민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주재원 출신이란다. 의지의 한국인들이 거기에도 여전히 힘차게 살고있단다. 미국에 살고있는 우리들도 어떤 면에서는 역마살 꽤나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만나보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식당 게시판에 한국학교 개학을 알리는 안내문이 하나 붙어있다. 나중에 연락을 취해봐야지 하고 학교 연락처를 알아 놨다.
21일 화요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바랑끼야Barranquilla로 향한다. 지난 4월 초 첫번 방문시 가본 도시라 그런지 여유가 있다. Dr. A의 오빠들이 줄줄이 마중을 나왔다. 아침부터 푹푹찌는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A의 어머니 집에 도착하니 89세난 노인이 반긴다. 팔남애의 자녀들이 의사 변호사 아들, 딸들이 있지만 혼자 집에서 도움이 하나두고 손수 화초며 나무를 가꾸며 건강하세 살고 계신다. ‘백년의 고독’에 나오는 어머니 우르슬라 생각이 난다. 공교롭게 이름도 같은 이 Buendia 가문은 아마도 우르슬라 처럼 의지의 이 노인네가 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식들 교육 수준이며 인품들이 나무랄 곳이 없다.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한국으로 치면 시장가 국밥집 정도겠다. 어디를 가도 가격이 저렴하지만 이런 곳에서 진짜 콜럼비아 전통음식도 맛볼 수가 있다. 수퍼마켓에 들러 Papaya, Mango, 바나나, 그리고 이름도 모를 몇 가지 과일을 사서 저녁 대신으로 준비해 놨다. 커피 시식 코너에 가니 커피향이 너무도 좋다. 아가씨와 손짓발짓 해가며 말을 건네고 사진도 한장 찍는다. 다녀보니 선입관과는 달리 사람들이 너무도 상냥하고 친밀감이 있다. 사진을 찍자고 해도 전혀 거부함이 없다. 누구든 조금만 친해지면 헤어질 땐 반드시 포응이다. 한국에서는 오해받기 십상이었는데…
저녁 세미나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이번 여행중에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둔다. 기분이 좋아 뒤풀이로 bar로 이동해 맥주 한잔 하잔다. 지난번 속이 메스꺼워 사양 한 일이 있기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다. 귀가 찢어지듯 쏟어지는 살사 음악에 맟춰 흔들어대는 모습들이 에너지가 넘친다. 부등켜안고 빠른 스텝으로 춤을 추는 젊은 한쌍은 혹시 발을 밟을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인데 너무도 멋지게 보이는 한쌍이다. 옆에 앉기에 말을 걸어보니 Atlanta에서 잠시 다니러 왔다고 한다. 내일 아침일찍 마지막 기착지인 북쪽 해변가 도시인 카르테헤나Cartagena에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예정은 아침 일찍이었으나 역시 Colombian Time 덕에 느즈막이 아침을 먹고, 9인승 봉고차를 대절해 13명이 끼어타고 카르타헤나Cartagena로 향한다. 남미 인들의 낙천적이고 넘치는 정열이 유감없니 발휘되는 2시간 반 거리의 여행이다. 나에게는 다 똑같은 박자의 음악으로 들리는데 고성능 스피카에서 한순간도 쉼없이 흘러나오는 라틴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며 흔들어 댄다. 더워 죽겠구만 상관이 없다. 옆의 아줌마는 몸이 마구 부딪겨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 하다. 역시 예정보다 늦게 일정을 끝내고 다들 지친몸을 이끌고 돌아온다. 처음에는 역시나 시끌벅적 하더니 조금 지쳤는지 조용해 진다. 기회를 봐서 나도 앉은 잠을 청해본다.
내일 새벽이면 이제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다. 2시간 반이나 잤을까. 서둘러 공항으로, 그리고 네번을 갈아탄 끝에 길 나선지 22시간만에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과 Milo가 반긴다. 밖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하거나 힘들어 해도 집에오면 변함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반기는 아이들과 강아지 Milo가 피로를 한순간 잊게 한다. 5개 도시를 순방하는, 조금은 빡빡한 일주일간의 일정 이었으나 기억에 오래 남을 즐거운 여행 이었다. 몇 일 쉬고나니 다시 또 가고 싶다. 역시 사람이란 밖으로 돌아 다녀야 견문도 넓어지고 배우는 것이 많다. 일이 잘 되면 앞으로 자주 갈 기회가 생기겠으니 그 땐 미리 준비를 더 하고 현지에서 볼 거리를 미리 조사 해가서 열심히 돌아보고 좀더 생생한 공부를 해볼 작정이다.
2009년 4월
NY의 JFK를 출발해서 Florida의 Miami를 거쳐 첫 기착지인 Medellin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동료 짐이 하나 미도착이다. 할 수 없이 신고만하고 뉴욕에서 소개받는 M의 아들 차를 타고선 집으로 향한다. 자기 집에 재워 주겠다니 고맙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고개를 넘어 한없이 내려가는데 대관령은 조그만 고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데스 산맥 줄기의 평평한 곳에 공항을 만들고 도시는 산을 넘에 한없이 내려간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땅은 남한의 열배나 되는큰 나라지만 도시가 주로 산맥 사이의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가 브라질과 베네주엘아에 국경을 접한 동부 지역은 주로 정글지형이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을 하니 키가 140이나 될까한 여인네가 반긴다. 뉴욕에서 만났던 처녀의 언니다. 집이라고는 하나 서울의 옛 60년대 말께나 될까한 수준이다. 한평 반이나 될까한 방에다 짐을 풀고 샤워실에 들어가니 머리 위에서 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찬물아닌가. 그래도 어떻게 하나. 변기는 깔개가 없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나라는 양변기이기는 하지만 공항에도 깔개가 거의 다 없는게 일반적이였다. 미리 도착해 있는 Dr. A을 반갑게 만나고 전통음식으로 차려 주는 늦은 저녁을 또 먹으며 내일 일정을 논의한 후에 곧바로 잠에 빠진다.
17일 금요일 첫날 Dr. A의 group member인 K를 앞장세워 시내를 돌면서 자료copy도 하면서 세미나 준비를 한다. 내년이면 간호사가 된다는 이 아가씨는 18살인데 살이통통하게 찐것이 아주 똘똘하게 안내도 잘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갑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재미가 있는가 보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고 세마나 장소로 향한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니 shopping mall에 커다란 장소를 준비 해 놨다. 미리 몇몇이 준비를 하고 있다. 저녁 6시에 시작 예정이었는데 역시 Colombian Time이다. 7시가 넘어서 시작을 했는데 지난번 이미 눈치를 챘지만 Korean time은 이사람들 시간 관념에 비하면 양반이다. 한시간은 예사로 늦고선 아무렇지도 않다. 여행 내내 이 사람들 시간 관념에 아주 질려 버렸다. 그런데로 열심히 세미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택시가 아니고 봉고차 택시를 탔는데 피곤한데로 거꾸로 앉아서 가고 지독한 매연에 곧 토할 듯 하다. 집에와서 우선 진정을 시킨다. 11시가 넘었는데 바깥 구경을 하자는 권유를 사양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예정데로 다음 방문 도시인 Pereira로 출발 할 준비를 한다. 원래 계획은 차를 rent 해서 가기로 했다. 약 225km 정도니 두세시간이면 될 것으로 생각 했는데 사람들 얘기가 5시간을 족히 걸릴 것이란다. Google Earth를 보니 길이 좀 꼬불하지만 설마 그렇게나 걸리겠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차로 갈 길이 아니더라. 다행히 어제 택시 운전사가 자기가 거기까지 가겠다고 해서 운임을 넉넉히 주고 네명이서 출발을 한다. 아직 속이 매식거려서 Coke을 하나 사 마시고 단단히 각오를 한다. 시내를 벗어나도 고속도로가 나오질 않고 산으로 꼬불꼬불 계속 올라 가기만 한다. 계속되는 일차선에 버스나 트럭을 추월해도 곧바로 다시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버스나 트럭에서 나오는 매연이 얼마나 심하던지. 차에 air conditioner도 없고 더우니 문을 열어야 하고, 고생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바깥 구경을 하며 속을 진정 시켜본다. 한참을 가도 산으로 끝없이 올라 가기만 하더기 이제는 산등성을 타고 가는 길을 보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산정상을 따라가며 만든 길을 따라가는 데 양쪽으로 보이는 계곡이 안데스 산맥의 규모를 짐작 할만 하다. 이런 산꼭대기를 따라 길을 어떻게 냈는지, 그리고 이런곳에 생겨진 마을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사가 심한 계곡이지만 파파야, 맹고, 바나나 등 과일나무들이 수없이 펼져지고 커피나무도 계속해서 나온다.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생활 하기에는 충분 하리라. 산꼭대기에 다다르니 군인들이 차를 세워고 검문을 한다. 아마도 마약 딜러가 아닌가 조사 하는 것이리라. 소변을 봐야 하는데 화장실을 물으니 숲속을 가르키면서 싱긋 웃는데. 조금을 더 내려가니 한국 농촌 할머니라 해도 믿을 만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길거리 식당이 나오기에 휴식겸 점심을 먹기로 한다. Colombia 전통 음식 몇 가지와 chicken soup을 주문해 먹어보니 입맛에 꼭 맞는다. 한국의 촌노인네와 별반 다를바 없는 마음씨 좋게 생긴 할머니에게 팁까지 조금 더 주니 이가 다빠진 합죽한 얼굴에 함박 미소를 짓는다. 역시 늙으면 어린아이와 같아 진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길거리 식당에 고생을 숨길 수 없는 늙음은 어쩔 수 없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 예사롭지가 않다. 산맥을 한참이나 타고가니 서서히 내려 가는데 양쪽 경치가 환상적이다. 나무가 얼마나 울창하던지. 그런데도 paper 산업을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단다. 주로 Brazil에서 종이 생산을 한다고 하니 경쟁에서 밀리는가 보다. 이제 평지에 다다르니 소양강 정도 규모의 강이 나오는데 흙탕물의 물살을 보니 엄청 험한가 보다.
드디어 Pereira 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시가지에 들어서니 듣던대로 상업도시라 그런지 소규모 도시답지 않게 온통 시가지는 각종 물건으로 뒤덥힌 상점들이다. 우선 호텔에 자리를 잡고 세미나 장소로 나선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Colombian time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추가 비용지출하고 시간 연장하는 수 밖에. 이곳 호텔은 더운물이 찔끔 나오기는 하는데 샤워꼭지다 헛돌고 엉망이다. 현지에서 만난 뉴욕 F의 언니 L를 앞장세워 젊은이들이 모이는 식당으로 간다. 첫 비행기를 타고 Bogota로 가야 하기 때문데 4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먹다보니 과식이다. 호텔로 돌아와 곧바로 깊은 잠에 떨어진다. 겨우 세시간 반이나 잤을까. 공항으로 이동.
주일인 19일 오전 일찍 Bogota 공항에 도착해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한다. 역시 전통음식을시식해 봐야지. Caldo라고 하는 음식을 한국의 갈비탕하고 거의 비슷하다.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Dr. A의 친구집에 초대를 받아 맛있는 점심을 대접 받는다. 망고, 토마도, 아보카도, 어니언 그리고 살란초, 올리브 오일, 레몬주스가 가미된 살라드는 아주 일품이었고, 닭고기 요리는 우리 입맛에 어찌그리 꼭 맞는지. Colombian 음식이 일반적으로 우리 입맛에 그리 거부감이 없는 음식 들이었다. 호텔에 돌아가 잠시 쉰 후에 저녁에는 shopping mall에 가서 도시 분위기를 살핀다. 역시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는 떨어질 뿐이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마찬가지 인가 보다. 각종 유명 브랜드 상품들이 즐비하고, 젊은 연인들이 몰려 다리는 것을 보니 서울이나 뉴욕이나 마찬가지이다. Spain의 피를 받은 백인계의 여자들은 얼마나 이쁘고 잘 빠졌는지 겻눈질을 열심히 했다. 옷들은 궁뎅이에 달랑 걸치고 아슬아슬하니 눈요기가 그만이다. 저녁엔 한국 식당을 찾아서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간다. 한국음식이야 몇 날이곤 먹지 않아도 이젠 견딜 수 있지만 한국동포들이 동정이나 현지 사정을 더 잘 알아 보려면 역시 한국식당이 최적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복스럽게 생긴 여주인이 반갑게 반긴다. 주재원으로 나왔다가 남편은 다른 사업을 시작했고, 부인이 식당을 맡아서 한단다. 음식이 정갈하고 그런데로 맛이 있다. 이것저것 물은 다음 내일 낮에 다시와서 남편과 함께 얘기를 나누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와 오래간만에 늦잠을 잔다.
월요일(20일)이다. 잠을 충분히 보충 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Dr. A와 동행해서 박물관으로 간다. Museo del Oro라는 박물관으로 금으로 만든 옛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다. 일전에 읽은 Gabriel Garcia Marquez의 ‘백년의 고독’을 보면 아울렐이아노 부엔디아가 고통에 가까운 고독을 견디이 위해 끊임없이 금세공에 열심인 장면들이 나온다.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들의 보면 난해하기만 했더 그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여간 실망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자건 동물이건 뚱뚱하게 그림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보테로Botero 박물관과 함께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은 한가한 여행길이 아니지 않았던가. 대신해서 바로 앞에 있는 선물 가게에 들러 모조품만 실컷 구경하고 대리 만족을 했다.
그러고 보니 동행한 Dr. A가 Buendia 가문이다.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성이 Buendia라 내가 읽었던 책 얘기를 했더니 너무도 반가워 했던 일이 있다. 한 문장이 무려 한 쪽을 넘나드는 기나긴 문장이며, 기상천외하고 환상적인 기술들이 이어지는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남미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모든 것이 환상적인 것 같지만 실은 환상 속에서의 사실성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 눈에는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남미, 특히 콜롬비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는 모든 것이 사실적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번에 만나본, 그리고 스처가면서 느껴본 그들의 모습에서 작품의 등장 인물들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점심에 다시 비원이라는 한국 식당에 들러 남편인 김사장과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현지에 약 50여명이 교민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주재원 출신이란다. 의지의 한국인들이 거기에도 여전히 힘차게 살고있단다. 미국에 살고있는 우리들도 어떤 면에서는 역마살 꽤나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만나보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식당 게시판에 한국학교 개학을 알리는 안내문이 하나 붙어있다. 나중에 연락을 취해봐야지 하고 학교 연락처를 알아 놨다.
21일 화요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바랑끼야Barranquilla로 향한다. 지난 4월 초 첫번 방문시 가본 도시라 그런지 여유가 있다. Dr. A의 오빠들이 줄줄이 마중을 나왔다. 아침부터 푹푹찌는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A의 어머니 집에 도착하니 89세난 노인이 반긴다. 팔남애의 자녀들이 의사 변호사 아들, 딸들이 있지만 혼자 집에서 도움이 하나두고 손수 화초며 나무를 가꾸며 건강하세 살고 계신다. ‘백년의 고독’에 나오는 어머니 우르슬라 생각이 난다. 공교롭게 이름도 같은 이 Buendia 가문은 아마도 우르슬라 처럼 의지의 이 노인네가 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식들 교육 수준이며 인품들이 나무랄 곳이 없다.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한국으로 치면 시장가 국밥집 정도겠다. 어디를 가도 가격이 저렴하지만 이런 곳에서 진짜 콜럼비아 전통음식도 맛볼 수가 있다. 수퍼마켓에 들러 Papaya, Mango, 바나나, 그리고 이름도 모를 몇 가지 과일을 사서 저녁 대신으로 준비해 놨다. 커피 시식 코너에 가니 커피향이 너무도 좋다. 아가씨와 손짓발짓 해가며 말을 건네고 사진도 한장 찍는다. 다녀보니 선입관과는 달리 사람들이 너무도 상냥하고 친밀감이 있다. 사진을 찍자고 해도 전혀 거부함이 없다. 누구든 조금만 친해지면 헤어질 땐 반드시 포응이다. 한국에서는 오해받기 십상이었는데…
저녁 세미나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이번 여행중에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둔다. 기분이 좋아 뒤풀이로 bar로 이동해 맥주 한잔 하잔다. 지난번 속이 메스꺼워 사양 한 일이 있기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다. 귀가 찢어지듯 쏟어지는 살사 음악에 맟춰 흔들어대는 모습들이 에너지가 넘친다. 부등켜안고 빠른 스텝으로 춤을 추는 젊은 한쌍은 혹시 발을 밟을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인데 너무도 멋지게 보이는 한쌍이다. 옆에 앉기에 말을 걸어보니 Atlanta에서 잠시 다니러 왔다고 한다. 내일 아침일찍 마지막 기착지인 북쪽 해변가 도시인 카르테헤나Cartagena에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예정은 아침 일찍이었으나 역시 Colombian Time 덕에 느즈막이 아침을 먹고, 9인승 봉고차를 대절해 13명이 끼어타고 카르타헤나Cartagena로 향한다. 남미 인들의 낙천적이고 넘치는 정열이 유감없니 발휘되는 2시간 반 거리의 여행이다. 나에게는 다 똑같은 박자의 음악으로 들리는데 고성능 스피카에서 한순간도 쉼없이 흘러나오는 라틴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며 흔들어 댄다. 더워 죽겠구만 상관이 없다. 옆의 아줌마는 몸이 마구 부딪겨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 하다. 역시 예정보다 늦게 일정을 끝내고 다들 지친몸을 이끌고 돌아온다. 처음에는 역시나 시끌벅적 하더니 조금 지쳤는지 조용해 진다. 기회를 봐서 나도 앉은 잠을 청해본다.
내일 새벽이면 이제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다. 2시간 반이나 잤을까. 서둘러 공항으로, 그리고 네번을 갈아탄 끝에 길 나선지 22시간만에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과 Milo가 반긴다. 밖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하거나 힘들어 해도 집에오면 변함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반기는 아이들과 강아지 Milo가 피로를 한순간 잊게 한다. 5개 도시를 순방하는, 조금은 빡빡한 일주일간의 일정 이었으나 기억에 오래 남을 즐거운 여행 이었다. 몇 일 쉬고나니 다시 또 가고 싶다. 역시 사람이란 밖으로 돌아 다녀야 견문도 넓어지고 배우는 것이 많다. 일이 잘 되면 앞으로 자주 갈 기회가 생기겠으니 그 땐 미리 준비를 더 하고 현지에서 볼 거리를 미리 조사 해가서 열심히 돌아보고 좀더 생생한 공부를 해볼 작정이다.
2009년 4월
댓글목록 1
박명근님의 댓글
콜롬비아 그러면 무시무시한 마약과 좌파 테러리스트가 준동하는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br />
그래도 괜찮은가 보지요<br />
여하간 뜻하는 일 성취 되사 돈좀 팍 팍 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