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외가가 없는데요!
임동섭
2009.05.1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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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외가가 없는데요!
"너의 외가가 어디냐?” “저는 외가가 없는데요!” “이 녀석이 선생님을 놀리네!”하시면서 나의 머리에 꿀밤을 주셨다. “너의 외가가 어디냐니까?” “외가가 정말 없다니까요!” “이 녀석이 그래도 끝까지 농담을 하려고 하네!”하시면서 또 꿀밤을 주셨다. 옆의 학생들이 껄껄껄 웃었다. 나는 같은 반 학생들이 얄미웠다. 내가 선생님께 꿀밤을 맞는 것이 그렇게 고소하단 말인가? 은근히 화가 났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계속 화가 났다. 아니 외가가 없다고 말씀드리면 그런 줄 아시면 되지 꼭 꿀밤을 주셔야 하나! 집에 도착해서 어머님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어머니! 우리 외가 없는 거 맞지요?” 어머님은 그냥 웃으시기만 하셨다. 왜? 내가 외가가 없다고 하면 다 웃기만 하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다음 날 학교에 가는 길에 같은 학년의 친구를 만나자 마자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 친구도 웃으면서 “맞을 짓 했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아니 왜 그게 맞을 짓이냐?” 그러자 그 친구가 “외가는 어머니의 집인데 외가가 없다는 말은 어머니가 없다는 말이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때야 내가 몰라서 큰 실수를 했음을 알았다.
엄마 손을 잡고 “나 외가(집) 간다!”하면서 기쁘게 걷는 친구들을 볼 때 참 부러웠다. 나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가에 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님이 태어나신 곳은 바로 옆 마을이었다. 산길로 가면 2km 정도의 거리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외가를 몰랐다고 하면 다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내용도 가르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잘 가르치면 다 알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형님이 5살 때 서당을 다녔는데 그 어려운 한자를 줄줄 읽을 수 있었다. 어른께 인사하라고 가르치면 인사를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크면서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버려두면 커서도 어른께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우리 동네에 교회가 생긴 때는 5학년 가을이었다. 동네에 유선 라디오가 2집밖에 없었을 때였다. 유선 라디오란 읍내에서 동네의 집에 있는 스피커까지 전선을 연결한 라디오인데, KBS 한 채널만 나왔다. 볼륨도 3단계뿐이었다. 놀 거리가 없었던 때이므로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 교회는 가장 앞서가는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곳이었다. 교회 다닌 지가 벌써 45년이 되어간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어도 외가도 모르고 지낸 것처럼 교회를 오래 다녀도 상식적인 내용도 모르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예를 든다면 누가복음 3장 16절을 들 수 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다. 여기에 나오는 신들메는 신발 끈을 말한다. 한번만 가르쳐주면 알 수 있는 내용이라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반복이다! 반복하는 것이 능력이다! 이미 알고 있더라도 또다시 가르친다면 반복이 되는 것이고 아직 모르고 있다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목사이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많은 분들을 천국에 가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기쁜 소식이며 복된 소식이다. 그러므로 이를 복음이라 한다. 많은 분들이 복음을 들었을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이다. 천국가기가 이렇게 쉽고 간단하고 즉시 이루어지는 일인데도 듣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 중에 아직 죽은 후에 어디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다음 성경구절을 읽으시고 천국에 같이 가시기를 기원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예수님)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장 13절)”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너의 외가가 어디냐?” “저는 외가가 없는데요!” “이 녀석이 선생님을 놀리네!”하시면서 나의 머리에 꿀밤을 주셨다. “너의 외가가 어디냐니까?” “외가가 정말 없다니까요!” “이 녀석이 그래도 끝까지 농담을 하려고 하네!”하시면서 또 꿀밤을 주셨다. 옆의 학생들이 껄껄껄 웃었다. 나는 같은 반 학생들이 얄미웠다. 내가 선생님께 꿀밤을 맞는 것이 그렇게 고소하단 말인가? 은근히 화가 났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계속 화가 났다. 아니 외가가 없다고 말씀드리면 그런 줄 아시면 되지 꼭 꿀밤을 주셔야 하나! 집에 도착해서 어머님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어머니! 우리 외가 없는 거 맞지요?” 어머님은 그냥 웃으시기만 하셨다. 왜? 내가 외가가 없다고 하면 다 웃기만 하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다음 날 학교에 가는 길에 같은 학년의 친구를 만나자 마자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 친구도 웃으면서 “맞을 짓 했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아니 왜 그게 맞을 짓이냐?” 그러자 그 친구가 “외가는 어머니의 집인데 외가가 없다는 말은 어머니가 없다는 말이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때야 내가 몰라서 큰 실수를 했음을 알았다.
엄마 손을 잡고 “나 외가(집) 간다!”하면서 기쁘게 걷는 친구들을 볼 때 참 부러웠다. 나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가에 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님이 태어나신 곳은 바로 옆 마을이었다. 산길로 가면 2km 정도의 거리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외가를 몰랐다고 하면 다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내용도 가르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잘 가르치면 다 알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형님이 5살 때 서당을 다녔는데 그 어려운 한자를 줄줄 읽을 수 있었다. 어른께 인사하라고 가르치면 인사를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크면서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버려두면 커서도 어른께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우리 동네에 교회가 생긴 때는 5학년 가을이었다. 동네에 유선 라디오가 2집밖에 없었을 때였다. 유선 라디오란 읍내에서 동네의 집에 있는 스피커까지 전선을 연결한 라디오인데, KBS 한 채널만 나왔다. 볼륨도 3단계뿐이었다. 놀 거리가 없었던 때이므로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 교회는 가장 앞서가는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곳이었다. 교회 다닌 지가 벌써 45년이 되어간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어도 외가도 모르고 지낸 것처럼 교회를 오래 다녀도 상식적인 내용도 모르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예를 든다면 누가복음 3장 16절을 들 수 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다. 여기에 나오는 신들메는 신발 끈을 말한다. 한번만 가르쳐주면 알 수 있는 내용이라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반복이다! 반복하는 것이 능력이다! 이미 알고 있더라도 또다시 가르친다면 반복이 되는 것이고 아직 모르고 있다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목사이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많은 분들을 천국에 가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기쁜 소식이며 복된 소식이다. 그러므로 이를 복음이라 한다. 많은 분들이 복음을 들었을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이다. 천국가기가 이렇게 쉽고 간단하고 즉시 이루어지는 일인데도 듣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 중에 아직 죽은 후에 어디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다음 성경구절을 읽으시고 천국에 같이 가시기를 기원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예수님)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장 13절)”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댓글목록 3
박명근님의 댓글
비유가 아주 적절한것 같습니다<br />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으신 글들로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시고 <br />
때를 얻던 못얻던 힘든 길이지만 잘 걸어 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최강일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노철영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