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의종교칼럼] 올라가 내려다보기!
임동섭
2009.05.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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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올라가 내려다보기!
2008년 6월 9일 제주도에서 2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김포공항으로 오던 아시아나 항공기(OZ 8942편)가 우박에 맞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비행기가 오산 근처에서 착륙을 하기 위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중에 비구름을 만나게 되었다. 골프공 크기의 우박이 비행기를 사정없이 두들기므로 전방레이더 덮개가 떨어져 나가고 조종석 유리창이 모두 금이 갔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고 승객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조종사는 레이더장치가 떨어져나갔으므로 자동 항법장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자동항법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하였다. 김포공항 관제탑과 교신하면서 조종석 옆 유리창을 보면서 조종했다. 조종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침착하게 비행기를 잘 착륙시켰다. 아시아나 항공회사는 인명피해 없이 잘 착륙한 기장과 부기장에게 큰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항공관계 전문가들이 2주 정도 자세한 조사를 하였다. 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그 조종사들에게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 비행기보다 3분 전후로 출발한 비행기는 모두 우박을 피해 잘 도착하였기 때문이었다.
비행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위와 같은 비구름은 보통 30마일 정도의 크기이므로, 비구름 대를 피하여 옆으로 또는 위로 회피하는 비행을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종사들의 말에 의하면 고도가 낮으면 위험하고 불안한 일들이 많지만 오히려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날게 되면 안전하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갔다. “저기를 봐라!” 그 때 아이는 “아빠!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사람들 다리만 보여요!” 내 눈에 보이니 아이의 눈에도 잘 보이는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요즈음 눈높이 교육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교육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눈높이 교육은 좋은 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더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결국 눈높이가 낮아져 버린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새로 나온 교인에게 가장 낮은 교리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깊이 있는 교리를 가르치려고 하지만 그 분은 이미 교회를 떠나버린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체계적인 교리를 모르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어렸을 때 동네에 서당이 있었다. 형님은 어려서부터 서당에 다녀야 했다. 그런데 한자가 어린이에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도 몇 년이 지나면 형님이 그 어려운 한자를 읽고 쓰고 뜻도 이해하는 것을 보면 놀라운 일이다. 사실 중국 아이들은 한자를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 사용하고 있다.
신앙에 있어서 눈높이 교육은 인간의 생각에 맞추므로 결국 근본이 사람중심(Anthropocentric)이라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중심(Theocentric)이어야 한다. 눈높이 신앙교육을 계속하게 되면 성도님들의 신앙 수준으로는 어려운 환경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신앙의 성장은 관점의 변화이다! 관점이 변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실력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영안이 열렸다고 한다.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이다. 하나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예배다! 즉 예배를 통해서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이사야 40장 31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을 앙망(히브리어: 관점, 바라본다)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바로 예배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점치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이 여인이 계속 따라오면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구원의 도리를 전하고 있다고 큰 소리로 계속 외쳤다. 바울과 실라는 귀찮고 괴로웠다. 바울이 그 여인 안에 있는 귀신에게 명령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여인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귀신이 떠나가 버렸다. 그 여인은 점을 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여인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이 없어지게 된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관가에 고소하였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들은 기도하며 찬미하였다. 예배를 드릴 때 지진이 나고 감옥 문이 열리고 착고(발을 묶는 고리)가 풀렸다. 예배는 작은 시공에 갇혀있는 우리를 들어 올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도록 하시는 방법이다. 예배는 성도들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사탄을 제압한다!
환경을 넘어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 낮은 곳에서 보이는 세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예배가 관점을 바꾼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서 하나님의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믿음의 고도가 낮을수록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믿음의 고도를 높여야 위험하고 불안한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예배가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게 한다! 예배는 환경과 상관없이 드려져야 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통해 크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고통이 너무 심해 예배할 수 없다고 할 때가 바로 예배할 때이다.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2008년 6월 9일 제주도에서 2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김포공항으로 오던 아시아나 항공기(OZ 8942편)가 우박에 맞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비행기가 오산 근처에서 착륙을 하기 위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중에 비구름을 만나게 되었다. 골프공 크기의 우박이 비행기를 사정없이 두들기므로 전방레이더 덮개가 떨어져 나가고 조종석 유리창이 모두 금이 갔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고 승객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조종사는 레이더장치가 떨어져나갔으므로 자동 항법장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자동항법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하였다. 김포공항 관제탑과 교신하면서 조종석 옆 유리창을 보면서 조종했다. 조종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침착하게 비행기를 잘 착륙시켰다. 아시아나 항공회사는 인명피해 없이 잘 착륙한 기장과 부기장에게 큰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항공관계 전문가들이 2주 정도 자세한 조사를 하였다. 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그 조종사들에게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 비행기보다 3분 전후로 출발한 비행기는 모두 우박을 피해 잘 도착하였기 때문이었다.
비행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위와 같은 비구름은 보통 30마일 정도의 크기이므로, 비구름 대를 피하여 옆으로 또는 위로 회피하는 비행을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종사들의 말에 의하면 고도가 낮으면 위험하고 불안한 일들이 많지만 오히려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날게 되면 안전하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갔다. “저기를 봐라!” 그 때 아이는 “아빠!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사람들 다리만 보여요!” 내 눈에 보이니 아이의 눈에도 잘 보이는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요즈음 눈높이 교육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교육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눈높이 교육은 좋은 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더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결국 눈높이가 낮아져 버린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새로 나온 교인에게 가장 낮은 교리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깊이 있는 교리를 가르치려고 하지만 그 분은 이미 교회를 떠나버린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체계적인 교리를 모르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어렸을 때 동네에 서당이 있었다. 형님은 어려서부터 서당에 다녀야 했다. 그런데 한자가 어린이에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도 몇 년이 지나면 형님이 그 어려운 한자를 읽고 쓰고 뜻도 이해하는 것을 보면 놀라운 일이다. 사실 중국 아이들은 한자를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 사용하고 있다.
신앙에 있어서 눈높이 교육은 인간의 생각에 맞추므로 결국 근본이 사람중심(Anthropocentric)이라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중심(Theocentric)이어야 한다. 눈높이 신앙교육을 계속하게 되면 성도님들의 신앙 수준으로는 어려운 환경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신앙의 성장은 관점의 변화이다! 관점이 변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실력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영안이 열렸다고 한다.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이다. 하나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예배다! 즉 예배를 통해서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이사야 40장 31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을 앙망(히브리어: 관점, 바라본다)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바로 예배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점치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이 여인이 계속 따라오면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구원의 도리를 전하고 있다고 큰 소리로 계속 외쳤다. 바울과 실라는 귀찮고 괴로웠다. 바울이 그 여인 안에 있는 귀신에게 명령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여인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귀신이 떠나가 버렸다. 그 여인은 점을 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여인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이 없어지게 된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관가에 고소하였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들은 기도하며 찬미하였다. 예배를 드릴 때 지진이 나고 감옥 문이 열리고 착고(발을 묶는 고리)가 풀렸다. 예배는 작은 시공에 갇혀있는 우리를 들어 올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도록 하시는 방법이다. 예배는 성도들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사탄을 제압한다!
환경을 넘어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 낮은 곳에서 보이는 세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예배가 관점을 바꾼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서 하나님의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믿음의 고도가 낮을수록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믿음의 고도를 높여야 위험하고 불안한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예배가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게 한다! 예배는 환경과 상관없이 드려져야 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통해 크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고통이 너무 심해 예배할 수 없다고 할 때가 바로 예배할 때이다.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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