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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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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섭의종교칼럼] 가난한자의 자존심!

임동섭
2009.11.10 22:30 1,331 1

본문

가난한자의 자존심!

‘부안 촌 할아버지’는 오늘도 이른 아침 우리 집에 오셨다. 그리고 곧바로 화장실에 가셨다. 불을 펴서 밥을 하던 시절이라 짚을 때고 난 후 생기는 재를 화장실 옆 빈터에 쌓아 놓았다. 아버지는 모아둔 소변을 재위에 부어두셨다. ‘부안 촌 할아버지’는 소변이 섞여진 재를 퍼서 마당에 쌓아둔 풀 더미에 붓고 잘 섞으셨다. 재, 소변 그리고 풀이 섞어지면 양질의 거름이 되었다.

그 분은 냄새가 나고, 먼지가 나는 일을 묵묵히 하셨다. 그분이 일하실 때 아버지는 제가 할 테니까 놔두시라고 만류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노느니 소일삼아 하신다면서 계속하셨다. 당시 아버지는 토목 관구의 4급(갑) 공무원이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건설부 5~6급 정도의 토목기사이셨다. 아버지는 출근 전에 필요한 서류들을 점검하고 계셨다.  

어린나이의 내 눈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나이 많은 분이 아침 일찍 오셔서 힘든 일을 하시는데 왜 적극적으로 만류하시지 않으실까? 왜 그분은 부탁드리지도 않은 힘든 일을 매일 아침 일찍 오셔서 하시나? 아버지는 왜 그 분을 도와 같이 일하시지 않으실까?

어머니가 아침 밥상을 들고 마루에 올려놓으시면 아버지는 진지(식사) 드시자고 '부안 촌 할아버지‘를 부르셨다. 그러면 그분은 집에 가서 먹겠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반찬은 없지만 밥이 따뜻할 때 같이 드시자고 권하신다. 그러면 마지못한 듯이 마루로 오셔서 함께 식사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가만히 부르신다. 쟁반 위에 높이 쌓아 올린 밥 한 그릇과 반찬들을 놓으시고 ‘부안 촌 할머니’에게 드리고 오라고 하신다. ‘부안 촌 할아버지’는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밥이 따뜻하니까 좀 드셔보라고 심부름 보냈다고 하신다. 이러한 일은 매일 아침 반복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때가 보릿고개를 넘던 때였다. 생활수준이 낮은 농촌에서는 가을에 수확한 쌀이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다 떨어져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는데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 불렀다.

‘부안 촌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을 땅이 없으셨다. 남의 일을 돕고 받은 품삯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가셨지만 봄철이 되면 먹을 양식이 없으셨다. 우리 집도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공무원이셨으므로 보리보다 쌀이 더 많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부안 촌 할아버지’는 밥값을 벌고 싶었지만 일하실 곳이 없으셨다. 밥을 드실 만한 곳으로 우리 집 이 가장 마음이 편하셨으므로 매일 아침 일찍 오셨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기 전에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시려고 일찍 오셨다.

아버지는 그 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고 돕는 방법은 혼자서 일하시도록 놔두시고, 그분과 아침식사를 같이 하시는 것이었다. 또한 집에서 굶고 계시는 ‘부안 촌 할머니’에게 밥 한 그릇을 드리면 두 분이 한 그릇의 밥으로 하루를 연명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꼭 한 그릇만 드리셨다. 왜냐하면 2~3그릇을 드리면 품삯이 되고 그분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한 그릇에 최대한 많은 밥을 담으시려고 노력하셨다.  

‘평화교회’를 다닐 때였다. 연말이 다가오자 여선교회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았다. 여선교회 임원회에서 누구에게 모아놓은 성금을 보내면 좋을까를 협의했다. 다 도와줄 수는 없으니 한 사람을 선택하자! 누구든지 자기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악하다(딤후5:8)고 했으니 교회 식구 중에서 돕자! 그러면 누가 가장 어려운가? 가장 어려운 분은 C집사님이고, 두 번째가 L집사님이다!

임원들은 먼저 C집사님 댁으로 가서 쌀 2가마니와 약간의 성금을 드렸다. C집사님은 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공식으로 지목되었으니 어떻게 내가 창피해서 계속 교회에 다닐 수가 있겠냐고 화를 내셨다. 결국 임원들은 쌀과 성금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미 모아놓은 성금을 다시 돌려줄 수도 없었다.

임원들은 두 번째로 가난한 사람으로 지목된 L집사 댁으로 갔다. L집사도 마찬가지였다. L집사도 교회에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고 화를 내셨다.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성금과 쌀을 놓고 나왔다. 남을 도우려면 넉넉해야 한다. 그러나 넉넉하다고 돕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의 자존심은 우리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노력 없이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길은 부작용도 거의 없으며 효과도 크다.  그 길은 바로 말로 하는 것이다. 첫째로 남을 칭찬 또는 격려하는 것이다. 둘째가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가 복음을 전하여 천국 가도록 돕는 것이다.          

('월간 독자'에 기고한 글/ 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응용물리 72/ 콜로라도 덴버/ kgoodnews.com)

댓글목록 1

노철영님의 댓글

노철영 2009.11.13 10:10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할 글을 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캠퍼스 사역에 하느님이 같이하시는 역사가 곧 일어나길 기도 합니다.  건강하세요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