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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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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고리오 영감

하태돈
2009.12.03 09:22 1,297 1

본문

     '고리오 영감(Le Peré Goriot)’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작가인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에 의해 쓰여진 소설로서 당시 근대화의 상징이던 파리의 영화와 그 뒤에 숨겨진 신분상승에의 욕구와 몰락하는 부루조아,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끊임없는 비인간적 욕심과 비정함이 너무나도 리얼하게 잘 묘사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발자크가 구상한 방대한 ‘인간희곡’(La Comédie Humaine)이라는 연작품의 대표작으로설 작중 인물들이 다른 작품에도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인간희곡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희비극, 즉 돈과 무모한 열정에 대한 인간드라마를 그리기 위한 제목이겠으나 아마도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에 견주어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1세의 한창 원숙한 나이에 죽음으로 아쉬움을 남긴 생애이나 발자크는 프랑스 문학 뿐만 아니고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세계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의 파리의 사회상은 겉으로는 화려한데, 영혼 깊은 곳에는 혹독한 근심들이 도사리고 있는 인간들이 사는 곳이었다. 시골에서 파리로 유학온 순진한 법대생인 라스티냐크(Eugène de Rastignac)와,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과 그의 둘째 딸인 델핀(Delphine). 그리고 탈옥수이나 신분을 숨기고 같은 하숙에 기거하는 보트랭 등이 중심 인물이고 그 밖에 보케(Vauguer) 하숙집에 기거하거나 기식을 하는 사람들의 성격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돈, 명예, 출세 지상주의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외곬의 열정이 주제라 할 수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파리로 신분 상승의 희망을 품고 올라온 외젠 라스티냐크, 파리에서의 상류사회 진출 기회를 인생 목적으로 삼고 먼친척 누나인 보세앙 자작부인(Madame de Beauséant)의 도움으로 귀족들의 사교계로 진출을 꽤한다. 그를 통해 만나게 되는 델핀 자작부인을 통하여 사교계에 발은 들여놓게 되지만 신흥 부루조아 귀족인 델핀 역시 외젠을 통하여 한 단계 더 높은 상류귀족사회로 상승하려고 보세앙 자작부인과 친척관계인 외젠과 내연의 관계를 맺는다. 이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의 큰 역할을 해 준다. 자신에게 더 나올 재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냉대하는 사위들에 대한 배심감 때문이다.  

     고리오 영감을 매개로 전개 되지만 실제로 이 소설은 외젠 학생이 기거하는 소시민적인 보케 하숙집과, 두 딸과 보세앙 부인이 속한 귀족 사회의 사교계 살롱이 두 개의 대조적인 무대가 된다. 주인공인 라스티냐크가 소시민적인 현재의 삶의 근거지인 하숙집을 벗어나 귀족사회로의 진출을 도모하게 되지만, 그리고 그들의 삶의 모습은 완전히 상반된 모양이지만 결국은 두 가지 부류에 속한 인간들이 살아가며 추구하는 속물적인, 몰인격적沒人格的인 삶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자기 지신들의 욕망에 의해 부패한 인간들이며 동시에 자기 위치에서의 생존 투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 자신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을 받아서 피어난 예쁜 꽃들이라고 생각되는 두 딸에 대한 헌신적이나 맹목적인 사랑을 쏟는 불쌍한 고리오 영감, 한 때 사업을 번성시켜 큰 돈을 모으지만 돈이면 두 딸의 행복을 보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노인이다. 모든 재산을 두 딸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하숙집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인생의 위안으로 삼는 불쌍한 아버지이다.

     명예와 부를 갖춘 집안에 귀족 집안에 시집을 보냈으나 결국은 더욱 사악한 남편들로부터 버림을 받게되는 두 딸들의 비참함을 보고 괴로워하는 고리오 영감을 볼 때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까지 자신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딸들에게 버림받는 이 노인은 마직막 순간에, 아마도 무의식 속에서, 딸들에 대한 서운함과 자신이 삶에 대한 회한을 토로한다. 빠르게 반전이 거듭되는 상황 속에서 그래도 양심이 살아있는 순진한 청년 외젠은 자기 양심과 영혼까지 파는 이런 사회에서 버림받고 죽어가는 노인을 끝까지 살피며 돌봐 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순수한 영혼을 지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라스티냐크는 인생과 사회에 대하여 배우고,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하고 외치며 성공에 대한 신념을 새로이 다짐한다.

     170여년 전인 이 작품의 무대를 지금 우리의 현실 상황에 그대로 옮겨 놓아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이 출세지상주의, 배금주의拜金主義, 자식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에서 벗어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인격적으로, 품위를 지니고 살아 간다는 것이 나 혼자만의 과제가 아니고 내 주변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교감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냐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또 한가지 이 작품을 읽으며, 비록 중심 주제는 아니지만, 연상이 된 것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아가며 가족을 지키는 허삼관 <허삼관 매혈기, 위화>의 삶이다. 시대 상황이 전혀 다른 사회이고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 전혀 다른 내용이나 둘 다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들의 삶이 그려진 작품 들이다. 허삼관은 순전히 생존을 위해 먹고 살아야 하고 또 비록 씨가 다른 자식이지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 피를 팔아야만 되는 고달픈 인생이 그려진 작품이니 어쩌면 고리오 하고는 전혀 상반되는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장 피를 팔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되고 또 아들을 잃게되는 상황하고, 오로지 허영과 신분 상승을 꽤하는 어리석은 두 딸들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끊임없이, 과도하게 헌신적인 아버지하고는 입장일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재산을 다 팔고나서는 자기가 죽을 때 입을 수의조차 마련할 돈이 없는 고리오가 마지막까지 딸들을 위하여 피까지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허삼관 하고 똑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 작품 다 허망虛妄한 인생살이에 눈물을 자극하게 하는 내용이지만 또한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2009년 여름을 보내며, 그리고
또 하루 이렇게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고리오 영감 (Le Peré Goriot),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허삼관 매혈기, 위화, 최용만 옮김, 푸른숲

댓글목록 1

박명근님의 댓글

박명근 2009.12.03 11:40
잘 읽었습니다<br />
요즈음 사업도 바쁘면서 마음의 살도 찌게 열심히 읽어시는 구료<br />
그래 자식들에 집착하는 본능들이 누구에게나 강한것 같네요. 울 마나님을 봐도 나두요<br />
그런데 요즈음은 저네들 가고싶은 길을 가라고 합네다. 뭐 잔소리 한다고 될것도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