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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동문칼럼]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하태돈
2010.03.25 17:16 2,132 1

본문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 시인 마종기 -

경상도 하회 마을을 방문하러 강둑을 건너고
강진의 초당에서는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잔 한다는
친구의 편지에 몇 해 동안 입맛만 다시다가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
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
돌침대에서 일어나 길 떠나는 작은 성인의 발.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놔두고
성도 이름도 포기해버린 야산을 다독거린 후
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을 가면서.
(문학과 지성사, 2007년, 한국문학선)

마종기 시인은 의사로서 미국 오하이오에서 오랜기간 의사로서 활동하면서
또 문인으로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난간에 서서 고통으로 절망하는, 삶에 대한 절절한 열망을 보여주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시심을 키웠나 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소망’ 장으로 잘 알려진 사도바울의 ‘로마서’ 8장에 근거한 내용 입니다.

몹시도 추운 지난 일월 늦은 밤에
늦둥이 성화에 못이겨 산책을 나갔다가
별들이 총총한 맑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둥근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너무도 밝아서 창백해 보이기까지하는 달님이, 몹시도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서 꼭 떨어질것만 같았고 내가 빨리 달려가서
얼른 받아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날 보니 다행이 그 달님은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또다시 떠 올랐습니다.
못 이룰 소망을 갖는 것이 불행이 아니고,
비록 이루지 못할 소망일지라도 그것조차 없는 것이 불행이겠지요.
때로는 수천 번의 실패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소망을 놓을 수는 없지요.
아무리 참담해 보이는 복잡한 미궁 일지라도
아드리아드네의 실 한 줄기를 놓지 않으면
결국에는 빠져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 것이 보이는 날이 오겠지요.

3/7/2010

댓글목록 1

INHA.org님의 댓글

INHA.org 2010.03.26 09:07
잔잔한 감동입니다<br />
<br />
늘 느끼지만 우리 하태돈 동문은 공학을 할 양반이 아니고 문학을 했었어야 하는데<br />
사업에서도 봄기운이 느껴 진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