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177
재미 인하대학교 동문회

통합게시판

[임동섭의종교칼럼] 큰 차를 타는 이유

임동섭
2010.06.30 01:01 1,251 0

본문

큰 차를 타는 이유

제가 상사 주재원으로 뉴저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그룹 회장님이 뉴욕에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차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호텔 옆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가 운전을 하려고 하면 적어도 15분 이상 기다려야 했습니다. 1990년 뉴욕 맨해튼의 주차비는 3시간까지 평균 20불이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회사 경영자들은 매우 바쁘신 분들이라 5분 이상 기다리시도록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회사 선배 주재원에게 여쭈었습니다. 그 분은 호텔 앞에 주차시키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호텔 앞에 리무진이나 고급 승용차들이 몇 대 주차된 것은 보았지만 제 차 정도는 문도 열어주지 않던데,  호텔 도어맨이 제 차를 호텔 앞에 주차시키도록 놔두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분은 호텔 입구에서 20불짜리 지폐를 검지와 장지사이에 세로로 끼우고 들어가면 될 것이라고 노하우를 알려주셨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면서 20불짜리 지폐가 잘 보이도록 끼우고 들어갔습니다. 도어맨 3명이 제 차로 왔습니다. 한 사람은 회장님이 비에 젖지 않도록 모셨고 한 사람은 운전자인 저를 안내했고 한 사람은 제 차를 호텔 입구 조금 지나서 주차 시켰습니다. 제 차가 당당히 리무진과 함께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외출하려고 나오시자 도어맨 3명이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베풀었습니다. 주차비와 같은 돈이 들었지만 매우 편리했고 기분도 훨씬 좋았습니다. 그 때 제 생각에 고급 승용차를 타던지 아니면 팁이라도 듬뿍 줄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경차를 탈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EBS(교육방송) TV의 보도를 보았습니다. 방송국은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직접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경차를 정해진 교차로 1차선에 세우고 파란 신호가 들어와도 그대로 서있게 합니다. 경차는 배기량 1,000cc이하의 차를 말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시판되는 대부분 경차는 배기량이 850cc입니다. 같은 교차로에 10분 간격으로 대형 승용차를 1차선에 세우고 파란 신호가 들어와도 서있게 합니다. 그리고 뒤차가 몇 초 후에 경적을 울리는가를 비교해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12차례 반복을 했습니다. 12번 실험을 한 통계 수치는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경차의 경우 평균 3초 후에 경적을 울렸고, 대형 승용차의 경우 10초 후에 경적을 울렸습니다.  

아닌 줄 알면서도 피하기 어려운 잘못된 믿음 그것을 우리는 사회적 착각이라 부릅니다. 사회적 착각은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도 있습니다. 1994년 1월 강남대로 1차선에서 대형 승형차(그랜저)를 몰고 가던 신 씨 일행은 2차선에서 갑자기 끼어든 소형차(프라이드)를 보고는 경적을 울렸습니다. 소형차를 모는 주제에 건방지게 앞을 막았다고 격분한 신 씨는 소형차 운전자를 끌어내 도로 한 가운데서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4년 12월 티코(경차) 운전자 폭행사건, 2005년 1월 마티즈(경차) 운전자 폭행사건, 모두 경차가 길을 막았다는 이유입니다.

교육방송(EBS) 정성욱 PD는 의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옷차림이 첫인상에 미치는 실험이었습니다. 신문사 마케팅디렉터인 안향진 씨를 쇼윈도에 세우고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질문을 해서 통계를 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평상복 차림으로 서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안 씨를 보고 마음속으로 추정한 연봉은 평균이 3,000만원이었고 호감 도는 10점 만점에 2.5정도였습니다. 다음날에는 고급 신사복 차림으로 서있었습니다. 연봉은 평균 7,500만원이었고 호감 도는 9.5였습니다.    

저는 목회자 신분이라 정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정장 차림으로 은행을 갔을 때는 거의 90%이상  뒤에 꼭 Sir!를 붙여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평상복 차림으로 갔을 때 Sir!라는 존칭어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사람은 모두 사회적 착각을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회적 착각 또는 편견이 늘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결국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하나님)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고급차를 타고 아무리 고급 정장을 해도 명품을 지녀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물질이나 사람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즉 본질인 하나님만이 우리를 만족시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만족할 수 있습니다.  

(포근한 교회 / 임동섭 목사 / 응용물리 72 / 콜로라도 덴버 / kgoodnews.com)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